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본문은 기근으로 고통당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향하여 "양식이 풍성해지리라"는 엘리사의 예언을 두고 일어나는 사건입니다. 그리고 엘리사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는 것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오늘 우리는 본문의 예언이 성취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을 통해 '믿는 사람이 되라!'는 제목으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라

'믿는 사람이 되라!' 무슨 뜻입니까?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을 인정하라는 뜻입니다. 엘리사는 양식이 없어 주리는 사람들 때문에 고민하는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에게 "내일 이 맘 때에는 양식을 거의 절반 값에 사게 될 것이라"는 기적같은 예언을 전합니다.

백성이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상황이기에, 이것은 마치 마술과도 같은 예언이었습니다. 도저히 믿기 어려운 이 예언의 말씀을 옆에서 들은 왕을 모시는 장관은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그런 일이 일어나겠느냐"고 코웃음을 쳤습니다.

우리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이 장관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인정하지 않는 자의 태도를 보게 됩니다. 도저히 바뀌기 힘든 이 어려운 상황 앞에서 예언의 말씀을 믿기란 누구도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믿기 어려운 상황이라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는 인간의 상황을 뒤로 하고 일단 말씀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렇게 인정하지 않은 결과, 오늘 왕을 모시는 장관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엎드러져 죽고 말았기에, 장관의 죽음은 실로 말씀을 인정하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이런 점은 비단 엘리사의 예언의 말씀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될 때 일단 그 말씀을 인정해야 한다는 교훈을 줍니다. 다르게 말하면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 말씀을 일단 인정하는 것이 믿음이요, 또한 믿음이란 일단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사실을 가르치는 교훈입니다.

2. 결단하고 행동하라

다음으로 '믿는 사람이 되라!' 무슨 뜻입니까? 결단하고 행동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등장하지 말아야 할 사람들이 나오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이 바로 네 문둥병자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앞뒤와 연결이 되지 않는 듯 보이는, 마치 본문의 분위기 전환을 위한 삽입구처럼 끼워진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당시 문둥병 걸린 사람들은 성(城) 밖에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그들에 대한 이야기가 3-11절, 무려 여덟 절이나 할애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성(城)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인데도, 죽기를 각오하고 성안으로 들어가는 과감한 행동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양식이 없어 굶주려 죽는 마당에, 성 밖에서 죽으나 성안에서 잡혀 죽으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에서 성 안으로 들어가는 과감한 행동을 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의 과감한 행동에서 죽을 것을 각오하고 행동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는 믿음을 가진 자의 결단하고 행동하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행동한 것이 반드시 믿음이었느냐를 묻기 전에, 무엇인가를 믿고 과감하게 행동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는 믿음 있는 자의 조언을 들어야 한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살다 보면, 때로 이렇게도 저렇게도 할 수 없는 난관에 직면하는 때가 있습니다. 이때 우리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담대하게, 그리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행동하라는 교훈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3. 선한 의지를 작동하라

마지막으로 '믿는 사람이 되라!', 선한 의지를 작동하라는 뜻입니다. 다시 장관 이야기로 돌아가려 합니다. 오늘 엘리사의 예언대로, 죽은 장관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 앞에서 믿기를 거부했습니다. 그것이 죽음을 불러오는 비참한 최후가 되고 말았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하나 배우게 됩니다. 그것은 믿음이란 선한 의지를 작동하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니까 이 장관은 예언의 말씀을 못 믿은 것이 아니라, 믿지 않으려는 부정의지를 작동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믿으려는 긍정 의지는 선한 의지요, 믿지 않으려는 부정의지는 악한 의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긍정 의지와 부정 의지는 겉으로는 별다른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만,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믿으려는 선한 마음의 긍정의지는 삶을, 믿지 않으려는 악한 마음의 부정 의지는 죽음을 초래했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 합니다. 우리는 예언의 말씀이 선포될 때, 말씀을 인정하는 태도를 갖기로 합시다! 그리고 말씀을 인정하는 것을 넘어, 행동하는 태도를 보이십시다. 아니 더 나아가,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라도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신다!"는 믿음으로 나아가십시다!

그리하여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이 도우시는 믿음의 체험을 하여 간증하는 자리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로 예언의 말씀이 선포될 때에 그 말씀을 인정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소서! 말씀을 듣기만 할 것이 아니라 붙들고 행동하는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그 어떤 경우에도, 말씀을 믿지 않으려는 악한 의지를 작동하지 말게 하소서! 말씀을 들을 때에 선한 의지를 작동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 소장, 한일장신대 전 교수, 한국실천신학회 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