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인(聾人)들의 되물음 “들어야 행복한가요?”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04.16 14:46

“장애인 아닌, ‘언어 소수자’로 대해주길”

영혼에 닿은 언어
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관련 기독교 도서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영혼에 닿은 언어
김유미 | 홍성사 | 444쪽 | 19,000원

농인(聾人, deaf mutism)들과 평생 소통해 온 수화통역사인 저자가 그들만의 문화와 정체성이 있음을 경험과 예화를 통해 들려준다. 책에는 농인과 농사회(Deaf Community)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진심이 듬뿍 묻어난다. 그리고 그들에 대한 소위 '비장애인'들의 편견과 오해가 얼마나 뿌리깊고 심한지를 깨닫게 한다.

'이 땅의 농인과 한국수어 이야기'라는 부제의 이 책에서는 특히 대중매체를 통해 잘못 인식돼 온 농인과 농사회의 모습을 바로잡고자 한다. 저자는 영화 <도가니> 제작과정에서 배우들에게 수어(手語)를 지도하고 수어 대사를 직접 연출한 경력이 있으며, MBC 수화통역사로 활동 중이다.

농인은 90db 이하의 소리를 듣거나 구별할 수 있는 난청(hard of hearing)과 달리, 90db 이상의 소리를 듣거나 구별하지 못해 청력 활용이 거의 되지 않는 상태를 이른다. 그러나 다수자인 '청인'들의 시선과 달리, 그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장애(소리가 들리지 않음)'가 아니라 '문화(세상을 눈으로 삶)'로 경험하고 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병리학적 관점에서 볼 때 그들은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고 청각장애인이지만, 언어·문화적 관점에서 볼 때 '볼 수 있는 사람들'이고 언어적 소수자인 농인"이라며 "청각장애를 가진 이들 중 노인성 난청이나 경미한 정도의 난청 등을 제외한 상당수는 음성언어가 아닌 수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농문화를 누리며, 커뮤니티 등을 통해 지속적인 교류를 나누고 소속감을 가지고 산다"고 말한다.

그래서 농인들이 다른 장애 영역과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청인은 물론 다른 장애인들과도 거리감이 있다는 것. 사용 언어가 다르고 문화적 토대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은 단순히 이방인이 되기를 원하는 게 아니다. 이렇게 주류 사회와는 다른 언어와 문화, 공동체를 이루고 있지만 그것을 포기함으로써가 아니라 존중받음으로써, 청인과 대등하게 자신의 꿈을 키우고 이뤄나갈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현대 의학기술은 청력이 회복되는 '인공와우 수술'에까지 이르렀다. 청각장애인들에 대한 '인공와우 수술' 지원은 최고의 혜택으로 보이는데, 정작 농인들은 이를 깊이 우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들의 말을 들어보자.

"왜 청인들은 농사회가 정말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걸까! 인공와우의 확대는 수어의 몰락과 연결되고, 그 결과는 농인과 농문화의 말살이다. 그들은 가장 쉬운 방법으로 자신들의 호의를 증명하려 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인공와우 수술 지원이 아니다. 차라리 그 돈을 공부하고자 하는 농인들의 장학금으로 지원해 준다면, 농사회의 자립과 발전에 훨씬 더 유익할 것이다."

인공와우는 기본적으로 '소리의 세계'를 최고의 가치로 설정할 뿐 아니라 유일의 가치로 규정하는 선택이기 때문에, 그것이 농사회에 한 가지 길만 강요하기 때문에 위협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저자는 인공와우 수술을 "내가 가진 달팽이관을 뜯어내고 정교한 기계를 신체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행위 자체가 주는 그 이질감과 폭력성"이라 표현한다. 농인들은 유아동의 인공와우 수술 확대는 수어의 몰락과 농문화의 소멸을 가져올 것이기에 우려하고 두려워한다.

그렇다고 인공와우 수술을 하지 말자는 건 아니다. "농사회는 그저 청인들이 '인공와우 수술만이 농사회를 행복하게 하는 선택이라는 오해와 편견에서 벗어나기'를 바랄 뿐이다. 그리고 농사회의 자생적이고 행복한 성장을 위해 우리 사회가 한국수어를 존중하고 그 언어권을 제대로 보장해 주길 바란다." 마치 미국 등 다문화권으로 이민을 떠난 사람들이 제1언어와 제2언어를 익히듯, 그들은 '언어적 소수자'로서 살 수 있도록 '한국수어법(수화언어법)' 제정을 통한 언어권 확보를 원한다.

헬렌 켈러 설리반
▲헬렌 켈러와 설리반 선생님. ‘장애 극복’의 대명사이지만, 저자는 “한국의 농교육 아래 성장한 농인들은 자신들이 헨렌 켈러가 되지 못했음을 세상에 미안해하며 자신을 낙오자나 실패자로 스스로 낙인찍고, 심지어 그 모든 원인을 자신에게 돌린다”며 “그렇게 한국의 농인들은 헬렌 켈러란 빛나고 자랑스러운 멍에를 가슴에 지고 자신의 삶을 어둠에 몰아넣음으로써 그녀를 더욱 빛나게 했다”고 꼬집는다. ⓒperkins school
'농인들 고집은 당할 수가 없다', '농인들은 무지하다', '농인들은 도덕성이 약하다', '농인들은 심리적으로 문제가 있다' 등의 소문들에 대해서도 "한국수어와 한국어, 농인과 청인과의 관계와 차이를 알지 못한 채 겪었던 많은 시행착오 과정에서 나온 '슬픈 괴담들'"이라며 "마치 연예인들의 작은 실수가 확대해석되듯, 수어를 사용하는 그들의 실수와 실패들은 청인들에게 더 깊이 각인되고 더 쉽게 일반화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청인들이 헬렌 켈러부터 닉 부이치치까지 거론하면서, 장애인들을 '극복'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에 대해서도 '헬렌 켈러 피로증후군'이라는 단어로 대변하고 있다. 그들 모두에게는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을 권리가 있다는 것이다. 청각장애를 극복하지 않아도 자신을 위한 꿈을 꾸고 그 꿈을 펼쳐가는 삶.

"이제까지 농교육은 '구화 획득', '장애 극복'을 가장 큰 가치로 내걸고 농아동과 학생들을 교육해 왔다. ... 헬렌 켈러에게는 설리번이라는, 자신의 일생을 한 아이에게 송두리째 바친 위대한 동반자가 있었지만, 한국의 농인들 중 그 누구도 자기 인생의 설리번을 만난 사람이 없다. 그런데도 세상은 농인들에게 헬렌 켈러가 되라고 말한다." 오히려 저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들어야 행복한가?"

저자는 장신대 입학과 동시에 '사랑의 수화교실' 동아리를 통해 한국수어에 입문, 농사회에서 농인들과 함께하면서 목회와 수화통역, 상담과 교육 등을 하고 있으며, '농인으로 오해받는 행복한 청인(聽人)'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신학이 나에게 생(生)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 다양한 삶에 대한 포용의 길이 되어 주었으나, 내 일생을 관통하는 진정한 전공은 한국수어와 농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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