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필버그와 어거스틴: 이단은 상상을 먹고 자란다

입력 : 2018.04.15 21:07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 (下)

레디 플레이어 원
▲가상현실게임에 몰입해 있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인공 웨이드 (타이 셰리던 분). 이 순간만큼은 그에게 허름한 생활환경, 불우한 가정사,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처지가 인식되지 않는다. 그의 눈에는 오직 자기의 이상적 모습을 그려넣은 가상현실만이 보일 뿐이다. 이 장면은 가상현실을 통해 현실을 도피하려는 이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것이다.
◈상상과 이단: 판타스마, 그 허황함에 대하여

목회자로서 영혼들을 섬길 때, 특히 성경 말씀을 가르칠 때, 개인적으로 가장 주의하는 바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배울 때 개인의 의견과 믿음을 앞질러 반영하지 않도록 성도들을 지도하는 일이다.

각 사람이 성경 말씀을 배우고 수용하는 데 있어 완전한 일률성과 정확성을 확보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각 사람이 살아온 배경, 현재 상황, 지식의 정도, 경험, 감정상태 등 개인의 역사적-실존적 정황이 확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성경을 배우고 신앙을 갖는 데 있어 일정한 정도의 통일성은 존재할 수 있고, 또 존재해야 한다.

성경을 배울 때 개인의 의견과 믿음이 말씀의 뜻을 앞지르는 데는 다양한 이유가 존재한다. 완고하고 교만한 마음, 불신과 의심, 자기의 이익과 감정적 만족 추구 등 그 이유를 대자면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 가운데는 개인의 임의적 상상 역시 포함되어 있다.

문학, 영상 등 스토리텔링 중심의 문화 콘텐츠를 통해 어린 시절부터 임의적이고 자유로운 상상 훈련을 스스로 수없이 해온 이들의 경우, 처음 성경을 배우기 시작할 때 제법 진지한 자세를 보인다. 이는 성경의 텍스트가 그들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이들, 완고함을 보이는 사람들보다는 성경을 가르치기 수월한 이들이라는 착각에 빠지게 만든다.

문제는 성경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난 후에 일어난다. 상상에 능한 이들은 원래 설교자나 성경 교사가, 그리고 궁극적으로 성경 말씀이 사람의 마음에 선사하려 하는 이미지를 수용하기보다, 그 이미지를 두세 번 가공해 원본과는 전혀 다른 양태의 해석을 단행하기 일쑤다. 대개 살펴보면 이런 일을 능숙하게 하는 이들 가운데서 탁월한 이단 지도자들이 탄생한다.

이는 비단 오늘날의 일만은 아니다. 전편 후반부에 잠시 언급한 바 있듯, 이단들은 초기 기독교회가 성립되자마자 등장했고, 이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사도들, 교부들, 신학자들이 고군분투한 역사가 1-5세기 기독교회사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어거스틴은 이처럼 이단들에 대응하여 복음을 지키려는 움직임들을 집대성한 인물로 유명하다.

레디 플레이어 원
▲초기 기독교회를 무던히 괴롭혔던 영지주의 이단의 이상을 표현한 그림. 현실의 물질 세계를 벗어나 이상의 세계를 엿보려는 그들의 욕망이 표현되어 있다. 그들이 마음으로부터 상상으로 창조해낸 이상세계는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의 나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는 사람이 대상을 인식하는 방법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신플라톤주의 인식론의 용어들을 일부 차용하여 해명했다. 어거스틴 인식론의 핵심 중 핵심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순수하게 영적이며 지적인 영감이지만, 물질 세계에 대한 인식에 있어서는 상상력의 역할을 강조했다. 어거스틴에게 있어 상상력이란 '마음 속에 영상을 만들어내는 영혼의 능력'으로 정의된다.

사람이 상상력을 통해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을 어거스틴은 다음과 같이 분석해 설명했다. 우선, 사람이 어떤 감각가능한 대상을 감지할 때, 그 대상을 구성하는 질료(물질 성분)는 관찰자와 분리돼 그대로 존재하고, 오직 그 대상의 모습만이 영혼에 의해 하나의 영상으로 변환되어 관찰자의 영혼 안에 들어온다.

이 때 영혼은 이 대상의 영상을 감각기관이 감지한 그대로 수용해 보관하고 있다. 이 상상과 기억이라는 기능 덕에 인간은 이전에 관찰했던 대상이 지금 현재 눈 앞에 없어도 그 모습을 그릴 수 있고 식별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이렇게 자기의 마음 속에 들어와 기억된 영상을 가만히 두지 않고, 자기 임의대로 조작하려는 욕망을 갖는다. 어거스틴은 여기서 원죄에 의해 오염된 인간의 본성을 발견한다. 거짓의 아비에게 속해 거짓을 사랑하고 거짓만을 말하려는 본성, 이것이 바로 인간의 근원적 죄성을 확증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물론 상상은 미래에 다가올 사태를 예견하는 힘으로도 활용된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한, 그리고 자연법칙이 지시하는 한에서의 예견과 이 모든 것을 초월한 근거없는 허황된 상상은 그 격을 완전하게 달리한다. 어거스틴은 바로 이처럼 성경적으로나 자연법칙상으로나 혹은 인간의 경험상으로 전혀 사실이 될 수 없는 허황된 상상을 따로 분류해서 판타스마(phantasma), 즉 허상이라 불렀다.

어거스틴은 젊은 시절 마니교에 심취한 적이 있었고,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된 이후 목회자로 활동하던 시기에는 수많은 이단들이 활개치는 바를 목격했다. 그는 경험과 상상과 기억에 의해 사람의 마음 속에 생성된 영상을 온갖 방식으로 조작하는 것이 바로 성경을 왜곡되게 해석하고 결국 이단을 일으킨다는 것을 지극히 잘 알고 있었고, 이를 자신의 저서 여러 곳에 엄중하게 경고했다.

레디 플레이어 원
▲기독교인이 된 후 평생에 걸쳐 기독교에 결부된 판타스마로 인해 등장한 이단에 대응하는 데 힘쓴 어거스틴.
◈상상과 윤리: 허상, 넘지 말아야 할 경계선을 허무는 힘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들을 자기 임의대로 조작해 그려보는 행위에서 오는 쾌감, 성취감, 만족감 등은 허황된 상상을 끊지 못하는 주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답답한 현실을 자기 마음 속 가상의 세계 속에서 자기 방식대로 혁파해 보자는 것, 이것이 허황된 상상이 부여하는 카타르시스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이 카타르시스를 영상을 통해 실현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가진 인물이다. 이번에 개봉된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의 주된 서사도 이런 맥락에서 살펴볼 수 있다.

주인공 웨이드(타이 셰리던 분)는 현실에서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빈곤, 가정적으로 불우한 형편, 사회적 냉대, 거대기업의 횡포를 가상현실의 세계에서 능히 헤쳐나가는 인물로 묘사된다. 이 영화가 수여하는 카타르시스는, 첫째로 1980-90년대 반가운 영화, 게임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데서 오는 것이고, 둘째로는 가상의 세계에서 자기의 이상적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현실을 극복하는 주인공의 처지로부터 유래되는 것이다.

최근의 대중문화는 이처럼 공상 속에서 자기 현실을 극복해 보려는 시도를 점차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모습을 보인다. 기존에는 이런 공상을 현실의 성공 자산으로 삼을 수 있는 길이 주로 문학, 연극, 오페라 창작 등 몇몇 분야로만 제한돼 있어 삶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요소로 여겼다.

그러나 기술이 발전하고 문화 콘텐츠의 양태가 다양해지면서, 그리고 상류층의 문화와 서민들의 문화가 대중문화라는 거대한 테두리 안으로 통합되면서, 공상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어잡는 중요한 도구로 인식된다. 특히 공상과 허상을 자산 삼아 거대한 부를 획득한 스필버그 같은 인물이 등장하면서 이제는 하나의 중요한 성공 요소로 인식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떤 의미로 보면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은 스필버그 자신의 성공담을 풍유한 '알레고리'라고 해석할 수 있다. 가상의 세계만이 현실의 난관을 타파하고 자신을 빈한한 처지로부터 구원해줄 수 있다는 메시지는 바로 스필버그 감독 자신의 인생을 대변하는 것이다.

기독교에서는 이런 허상, 공상에의 착념을 구원이 아닌 멸망의 길로 이끄는 행위로 본다. 이런 행위가 성경 말씀을 배우고 믿을 때 직접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가장 극단적인 경우는 이단 발생이지만, 꼭 외형으로 이단이 아니라 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 속에서 왜곡해 상상하는 일은 교회 내에 흔하게 발생하는 일이다.

자존감이 높다 못해 자존심으로 뭉친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무시하려 하지만, 자존감이 낮고 자기 현실을 주변에 감추려 하는 이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자기 편의에 맞게 왜곡하려 한다. 이럴 때 성경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아니라 개인의 공상을 위한 가상현실의 배경이 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
▲<레디 플레이어 원>의 촬영 중인 스필버그. 이 영화의 성공담은 바로 스필버그 본인의 성공담을 풍유한 알레고리라 할 수 있다.
성경을 왜곡하는 이들은 현실에서는 회개와 믿음과 순종을 위해 분투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공상 속에서는 자기의 모습을 하나님의 구원과 위로와 특별한 사랑을 획득하는 인물로 그려낸다.

이런 공상이 극단적인 지점에 이르면 이단이 발생한다. 최근 미투 운동의 지목 대상으로 떠오른 한 대형교회 목회자의 사례는 이를 입증하는 증거로 제시될 수 있다.

원래 그는 병나음의 응답을 통해 신앙을 갖고 예성 총회 소속 신학생 시절을 거쳐 목회자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0년 그가 목회하던 교회는 이단으로 판정받았으나, 왕성한 활동을 통해 교회 규모를 크게 확장시켰다. 이전에도 MBC PD수첩을 통해 그 이단성이 일반에 공개된 적이 있었으나, 이번에는 교회 여신도들 다수를 상습적으로 성폭행한 일이 폭로되어 구설수에 오르게 되었다.

사실 미투 운동의 일환으로 폭로된 그의 성범죄 자체도 사안이 심각하나, 개인적으로는 그런 범죄행위 이면의 심리, 그가 이단 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사고방식 자체에 더 큰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그의 설교는 심각한 이단성으로 인해 물의를 일으켰는데, 그 내용이 공상 속에서 자기를 높이는 이단적 사고의 양상을 대표하고 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극진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다른 목회자가 아니라 그가 하나님 아버지를 부르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그의 앞 이 땅으로 내려오신다는 취지의 설교는 다수의 기독교인들을 아연하게 만들었다.

이는 천지에 충만하여 피조물과 같이 요동치 않으시는 성부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정면으로 거부하고, 사람의 자의적 상상력으로 성부 하나님을 사람과 피조물의 수준으로 낮춰보는 처사였기 때문이다.

성경의 원본적이고 통일적인 가르침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자는 윤리적 경계선 역시 무너뜨릴 가능성이 높다. 애초 공상을 통해 자신을 위로하고 자기 행위를 합리화하는 것이 익숙한 인물에게 성경이나 사회가 요구하는 윤리는 그리 중요하게 취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런 인물에게 수많은 교회 성도들에 의해 허락된 큰 권력이 위임된 바에야, 이 권력이 악용되는 일은 어쩌면 시간문제가 아니었을까 생각된다.

레디 플레이어 원
▲<레디 플레이어 원>의 가상현실게임 ‘오아시스’ 속 캐릭터들. 현실도피를 위해 공상 속에서 자기의 이상적 모습을 구현한 결과물이다. 때로는 기독교인들의 신앙 속에서도 자기 모습을 헛되게 이상적으로 그려낸, 자기우상화의 모습이 발견된다.
이는 하나의 극단적인 사례지만, 허상과 공상이 성경을 배우고 믿음을 갖는 데 있어서 갖는 위험성을 명확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판타스마,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기독교 신앙과 결부된 판타스마는 결국 기독교인이라 자처하는 이들이 별볼일 없는 자기 현실에 잘못된 방향으로 대응할 때 산출되는 결과물로 볼 수 있다.

<레디 플레이어 원> 같은 영화는 판타스마가 주는 기쁨을 즐기도록 적극 권장하는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다. 허영과 공상만이 현실의 고단한 처지를 벗어날 길이라고 가르치는 작품을 칭송하는 오늘의 세태 속에서,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를 통일된 방식으로 깨닫고 믿는 일은 갈수록 하찮게 취급되고 있다.

이로 인해 각기 신앙의 기준에 따라 자기 삶을 직시하고, 바른 복음을 고수하며, 스스로에게 변화를 일으키는 일이 정황상 전보다 어려워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이런 당연함을 당연함으로 받아들일 때, 우리 영혼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는 일 역시 당연한 것 아닐까?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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