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20일 '장애인의 날'을 맞아, 장애인 관련 기독교 도서들을 소개한다. -편집자 주

신학적 관점에서 본 장애인 이해
신학적 관점에서 본 장애인 이해

데이비드 W. 앤더슨 | 김옥기 역 | 밀알서원 | 280쪽 | 15,000원

"교회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이고 하나님 형상의 담지자로서 동일한 가치를 지녔음을 인식하면서, 심지어 중증장애인들의 복지와 인권을 주장하고 변호해야 한다." 장애인 사역과 관련된 주제들을 망라해 성경신학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서문에서 장애인에 대해 "모든 인종과 문화를 대표하는, 세계에서 가장 큰 미전도종족"이라고 말한다. 문화적이고 전통적인 오해 때문에 세상의 모든 면에서 소외돼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서구 국가에서조차, 대부분의 교회들이 의도적인 접근으로 장애인들을 사역해야 한다." "너무 많은 교회에 장애인들이 없다"며, 저자는 그 이유를 묻고 있다.

책은 성경에 등장하는 장애에 대한 기본 개념들과 인간적 장벽, 그리고 하나님의 관점을 제시하고, 장애인 사역을 지지하는 성경적 주제들을 끄집어내고 있다. 그리고 장애인 사역과 관련된 신학적 논제들을 제시한 뒤 그에 답하고, 중풍병자(막 2:1-12)와 문둥병자(눅 5:12-14) 치료 이야기, 므비보셋(삼하 9:1-13)과 야곱(창 31:24-32) 등 장애인 사역에서 할 수 있는 성경공부의 예시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겠지만, 자신도 모르게 장애인들의 능력과 성품 등에 어떠한 제한이 있음을 감안하고 행동하곤 한다. 저자는 이에 대해 "장애인들(그리고 그들의 가족들)은 비장애인들과 같이 동등하게 가치가 있다"며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당연한 듯한 진술을 굳이 하는 이유는,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도 아래와 같은 '편견'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장애의 조건을 갖고 태어난 아이는 하나님이 완전히 다스리신다는 법칙에서 예외인가? 하나님이 실수를 하셨거나 통제력을 상실하셨나? 하나님이 장애를 유발하는 사고가 일어나도록 하셨나? 하나님이 사고의 원인이 아니라면, 왜 하나님은 사고가 일어나도록 허용하셨을까?'

이에 대해 저자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경험을 이해하고 삶에서 질서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타고난 본능이 있기 때문에, 장애에 직면했을 때 이러한 의혹들과 불확실함을 보이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반응들"이라며 "비장애인 신자들 역시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하는데, 모든 사람이 장애를 유발하는 사고 또는 질병에 노출돼 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밀알복지재단 휠체어 장애인
▲휠체어로는 건물에 들어가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교회는 장애인들을 형제 자매로 맞이할 뿐 아니라, 환경적으로도 환대해야 한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저자에 따르면, 장애인 사역은 하나님의 마음 가장 가까이에 있는 성질의 사역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어느 누구도 받을 자격이 없기 때문에 은혜인 것이다. "무지에서 나오든 실수든 혹은 의도적이든, 장애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가치와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장애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배제하는 것은 사랑과 긍휼에 제한이 없으신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다."

더불어 장애인 신자들이 예배와 교회에서의 서비스에 참여하는 기회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하다. 장애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 가운데 혹은 개인적으로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추정해선 안 된다는 것. 그래서 주일학교, 청소년 그룹, 성인 성경공부 같은 교회 프로그램 참여자로, 혹 자격이 된다면 인도자로 포함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장애인 가족'은 장애 당사자만큼이나 긍휼한 접근과 사역의 필요성이 있다. 그들 안에는 상처와 스트레스가 있고, 보통 삶의 질도 낮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는 일관된 사랑과 존중, 목회적 돌봄과 함께, '소망'이 필요하다. "기독교의 소망은 열정을 만들어낸다. 이는 맹목적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변하지 않는 성품에 집중하는 확신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장애를 가진 자녀'를 주심으로 혹은 그들이 장애인이 되도록 허락하심으로 '징계하신다'고 말하는 것은 일종의 '영적 남용'이며, 하나님과 죄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반영한다고 우려한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장애가 치료될 필요가 있다'고 과도하게 강조하는 것은 일종의 우상이 되거나, 의도치 않게 장애인의 편에서 고립감과 상처를 강화시킬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비장애인들은 장애인들의 첫 번째 바람이 육체적 치료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장애인들이 크리스천이라면, 비록 치료는 언제든 환영하고 반길 것이지만, 더 큰 필요는 그리스도 안에 형제 자매인 친구로 받아들여지는 것이고, 믿음의 공동체에 적극 참여하는 기회를 제공받는 것이다."

저자는 장애인들에게 가장 민감한 '악과 고난의 문제'를 다룬 후 다음과 같이 결론짓는다. "교회는 장애인들을 위한 사회정의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정부나 사회기관들에게 그 역할을 내줘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교회는 총체적으로 장애인 사역을 하기 위해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필요뿐 아니라, 영적이고 관계적인 필요를 언급하면서 인도주의적 목적들을 넘어서야 한다."

특수교육학 교수를 역임하고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는 저자의 소망은 "교회가 세상의 본으로 모든 인종들과 모든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비장애인이든 장애인이든, 그들이 함께 있어 공동체 안에서 경배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서로를 섬기기 위해 자신들의 은사들을 자유롭게 사용할 장소로 찾는 곳이 되는 것"이다. 원제 'Reaching Out and Bringing 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