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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이의 크고 작은 결점은 오히려 감싸주고 싶거나 더 나아가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할 수 있다. 하지만 아직 사랑이라고 말하기엔 애매한, 서로를 알아가는 만남의 과정이거나 탐색의 과정이라면, 작은 결점도 미래에 대한 우려가 되기 쉽다. 또한 작고 사소한 결점도 치명적인 것으로 비칠 수 있는 것이다.

손끝에 잡힌 작은 모래 알갱이는 별것 아니지만, 그것이 눈에 들어갔을 때는 마치 바윗돌처럼 너무나 부담스러워 빼내지 않고는 버틸 수 없는 법이니 말이다. 사랑이 이루어진 뒤에는 그다지 크게 보이지 않는 이런 작은 요소들이, 왜 만남의 과정 초반에는 결정적 역할들을 하는 것일까.

내 동창 중 하나는 예전에 한 남자와 교감 중이었고, 제법 이야기가 진전되고 있던 참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날 받은 편지가 화근이었다. 거기엔 이런 말이 씌어 있었다.

"나는 너를 정말 좋와해."

좋와해?... '좋아해'를 '좋와해'로 썼다면 실수일까, 고의일까? 애초에 잘못 알고 있던 걸까?

하지만 다른 편지에서도 좋아한다고 할 때 그냥 '좋아' 하지 않고 늘 '좋와' 하는 게 아닌가. 친구는 그 남자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꼭 그 편지 때문에 그 남자와 멀어진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그 한 글자 때문에 무척 주의가 환기된 것은 사실이라고 그녀는 말했었다. '좋와해... 좋와해...' 하다가, 둘 사이는 결국 와해(?) 되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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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 한 가지 문제를 놓고 전문가와 토론을 하다, 청취자의 의견을 듣는 것이 있었다. 내가 듣고 있던 어느 날은 군 내부에서 일어나는 상급자의 통솔 문제 때문에 새로 생긴 법안 같은 것에 대한 찬반 토론이 진행되는 중이었다.

"네. 그럼 청취자 한 분의 전화를 받겠습니다."

"아, 여보세요?"

"네,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군에는 다녀오셨겠죠? 의견 말씀해 주시죠."

"제 경험에 비춰보면요, 그게 다 이해관계 때문인 것 같아요...."

"그러시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이해관계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그러니까 말 그대로 서로 의사소통을 하는 데 있어 상급자가 한 지시에 대해 밑에서는 잘 이해를 못하고, 부하의 의도도 상급자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아, 네...."

"그런 서로 잘 안 통하는 '이해관계'가 가장 큰 문제인 듯싶네요...."

"네네.... 감사합니다. 다른 분 한 분 더 모실까요?"

진행자와 전문가는 모르긴 해도 난감해하면서 그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것 같았다. 누구나 완벽할 필요는 없지만, 글쎄.... 이득과 손해를 따지는 '이해(利害) 관계'를 '이해(理解) 관계'로 알고 있는 이 남자는, 목소리만 듣기에도 여자들이 얼른 애인 삼고 싶어 하지는 않을 것 같았다.

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57 나비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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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때, 나는 어느 연상의 여자에게 잠시 마음을 둔 적이 있었다. 그녀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였다. 한동안 작업을 시도했으나, 그녀는 내가 자기보다 조금 어리다는 이유로 망설이기만 했다. 그러다 나는 그녀를 포기했는데, 성질이 아주 까다롭고 정말 피곤한 스타일이란 걸 나중에 알게 됐고, 주위의 만류가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관심을 안 보이니 그제야 아쉬운지 약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녀는 나가면서 내게 쪽지를 한 장 남겼다. 솔직히 쪽지를 주는 건 대단한 사건이라고 할 만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 쪽지에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내가 너한테 이런 감정을 같게 될 줄 몰랐어...."

나는 쪽지를 보다가 그걸 바닥에 집어던져 버렸다. 아니, '같게' 되다니, 그런 감정을 같게 되다니....!!

나는 절망했다. '갖게 되다'가 아닌 '같게 되다'의 그 받침 하나 때문에, 아니 그 받침 하나 덕분에 난 그녀를 완전히 포기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쪽지를 단짝이었던 형에게 보여주며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그러자 그는 쪽지를 물끄러미 보더니 이렇게 말했다.

"얘는 어떻게 '소유하다'와 '동등하다'를 같은 받침으로 쓰냐?"

누구나 오타를 내거나 맞춤법을 잘못 알 수 있다. 그 자체는 큰 잘못도 치명적인 단점도 아니다. 하지만 그 대상에게 잔뜩 기대를 걸고 서로 알아가는 상황이나 좋아하는 상태에서는 누구나 약간의 환상을 갖게 되는 법이다.

사소한 것들로 인해 잘 살던 부부가 이혼하지는 않는다. 작은 단서에도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곤 하는 일은, 그것이 두 사람의 역사에 있어 '초반'이기 때문인 것이다. 이렇게 사랑은 의외의 순간에 운명이 되기도 하고, 아주 작은 계기로 인해 더없이 평범한 이야기로 사그라지기도 한다.

나비효과. 북경에 있는 작은 나비의 날갯짓이 다음 달 뉴욕에서 폭풍을 일으킬 수 있다는 어느 기상학자의 이 이론은 '초기 조건에의 의존성'이 얼마나 민감한지를 설명할 때 쓰인다.

사소한 것이라면 단점이나 장점 자체에 큰 뜻이 있지 않다. 바로 '민감한 초기 조건에의 의존성'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누군가를 처음 만날 때 사람들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것이고, 첫인상에서 많은 것이 좌우되곤 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다고 일부러 그런 현상들을 막거나 감출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자연스러운 과정을 통해 하나님은 날씨를 조절하듯 우리 인간들을 '순리'라는 이름으로 이리저리 중매하고 연결하고 막고 그런 작업을 하시는 것인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래서 나비의 작은 날갯짓이 엄청난 결과를 일으키듯, 자연의 일부인 인간에게도 이런 법칙들이 존재하는 것 아닐까....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30여 종
www.woogy68.blog.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