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

바바라 륭 라이 | 송동민 역 | 이레서원 | 120쪽 | 7,000원

이제야 '일상을 변화시키는 말씀'의 세 번째 책인 '다니엘'을 다 읽게 되었다. 네 번째 책인 에스더서를 보고 난 뒤 이 책에 손을 대었다.

이 시리즈의 책들을 언급할 때마다 매번 이야기하지만, 이 시리즈는 탁월한 기획과 콘텐츠를 독자들에게 제공한다. 두꺼운 주석이나 원문과 씨름하려는 신학자들에게는 그 내용이 부족하게 느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각 성경의 핵심과 주제, 중요한 이슈들, 그리고 그 구조를 이해하는 데 이 책은 읽는 독자들에게 아주 유익하다 할 수 있다.

시리즈의 첫 권인 욥기가 하나님이 개인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면, 네 번째 권인 에스더서는 하나님을 경배하는 한 개인과 민족이 그들이 의식하건 못하건 간에 그들의 무대 뒤에서 역사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두 번째 책인 요한계시록은 궁극적으로 세상 모든 권세가 십자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보좌에 앉으실 것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세 번째 권인 다니엘서는 마지막 때까지 살아가는 하나님을 믿는 에스더와 모르드개 같은 이들 하나하나가 살아가는 통전적 역사 속에서 하나님이 어떠한 큰 그림을 보여주시며, 그것이 어떻게 궁극적인 승리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러한 흐름에 대한 해석은 어디까지나 지금 이 책의 리뷰를 하는 내 개인의 주관적 해석이지만, 이 시리즈를 기획한 원 출판사의 의도도 그리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또 이것은 66권의 서로 다른 저자들이 각각의 다른 시대에서 쓴 글들이 한 주제를 향해 달려간 의도와 크게 벗어나지 않는 해석일 듯싶기도 하다.

이번에 읽은 이 시리즈의 세 번째 권인 <신비를 엿보다: 다니엘>은 이미 이 시리즈가 그러하듯 제목에서부터 다니엘서의 주제와 성격을 보여준다. 네 번째 책인 에스더서는 '무대 뒤에 계신 하나님'이라는 제목처럼 하나님에 대한 한 번의 언급도 없이 하나님이 에스더와 모르드개를 넘어 이스라엘 민족에게 행하시는 하나님을 은연중에 드러내심을 보여주었다.

그랬다면 이번 다니엘서는 '신비를 엿보다'라는 제목을 통해 하나님은 다니엘이 살아가는 한 시대만을 주관하시는 분이 아니라 에스더나 다니엘 같이 하나님을 믿는 이들과 그들이 속해 살아가는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임을 보여준다.

특히 에스더서처럼 무대 뒤에 계신 하나님이 아니라, 제목에 언급된 '신비'라는 단어처럼 다니엘에게 여러 가지 환상과 말씀으로 직접 하나님이 모든 시대와 권세를 주도적으로 다스리심을 보여준다. 또한 이 신비는 다니엘만이 아니라 느부갓네살의 꿈이나 벨사살이 보는 신비로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권세자들에게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 제목에서 '엿보다'라는 단어가 쓰인 것처럼, 이 신비는 확연히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느부갓네살도 꿈은 꾸었으되 다니엘의 도움 없이는 깨닫지 못했고, 벨사살도 신비를 볼 때 마치 뼈가 녹아내리는 듯한 충격을 받고 다니엘의 해석으로 그 비밀을 듣긴 했지만 돌이키지 않음으로써 그날 밤 몰락한 것처럼 말이다.

이러한 신비를 엿보는 행위는 다니엘에게도 다르지 않다. 다니엘이 비록 왕들의 꿈과 신비를 해석하기도 하고 남들이 볼 수 없었던 엄청난 환상과 말씀을 듣고 그 뜻에 대해 듣기도 하지만, 그 들음과 깨달음은 제한적이다.

그것은 그가 살고 있는 시대나 살아갈 시대에 대한 이야기만이 아니라 그 이후의 세계에 대한 환상과 해석을 보여주기에, 그의 이해력과 지식만으로는 애초부터 감당할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그는 그 신비를 엿보는 것이지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비 아침 이슬 성령 햇빛 일출 풀 은혜 빛
저자는 이러한 다니엘의 고민을 이렇게 묘사한다. "5장에서는 대담한 확신에 찬 다니엘이 나약하고 두려움에 사로잡힌 왕 벨사살을 대면한다. 하지만 자신의 사적인 삶에서는 다니엘 역시 그 왕이 느낀 것과 똑같은 두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106쪽)."

저자는 이러한 신비를 엿보는 행위가 다니엘보다 그 이후의 역사를 앎으로써 다니엘보다는 좀 더 그 예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아는 우리에게도 적용됨을 보여준다. 이것은 우리가 아직 요한계시록의 종결과 완성이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그것이 어떻게 궁극적으로 이루어질지를 모르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다니엘서에 있어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그 신비를 보여주는 각 환상과 꿈들을 어떻게 보느냐 하는 것일 게다. 개인적으로 평신도로서 대학부에서 양육 모임을 이끌거나 개인적인 성경공부를 진행할 때 다니엘서를 강의하거나 공부하기를 수 차례 했었는데, 그 때 접했던 반즈 주석 중 하나인 류폴드의 다니엘서나 간하배의 다니엘서에 대한 예언 주석에 관한 책들을 통해 큰 도움을 받으며 나름의 정리를 해나갔던 적이 있다.

바바라 륭 라이의 다니엘서도 그 책들과 맥을 같이 하기에, 이 책은 더욱 친숙함을 주었다. 얇은 책임에도 그 핵심과 큰 개요를 잘 보여주는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환상은 앞서도 지적했듯 다니엘이 살고 있는 시대와 살아갈 시대, 그리고 그 이후의 궁극적 미래까지 보여주는 것이기에, 이것은 신비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를 보여준다.

다니엘서 1장 1-2절에서 유다가 패망하고 여호와의 성전 기물까지 탈취를 당하지만 그것이 '주께서 ~ 넘기시매'라는 표현을 통해 그러한 패망과 이해할 수 없는 일들마저 하나님의 계획과 의지에 있음을 말씀한다. 이것은 다니엘서에 흐르는 세상과 역사의 흐름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보여주는 대표적 구절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이해할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떤 때 우리는 다니엘처럼 '신비를 엿보는 것'을 통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하기도 하지만, 그것이 우리가 모든 역사의 흐름을 다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엿보다'에 그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다니엘처럼 환상을 보고 엎드러지기도 하고 감당할 수 없어 지치기도 한다.

설혹 우리 대다수는 다니엘처럼 그런 환상을 직접 엿보지는 못하지만, 다니엘이 본 환상을 통해 우리 자신도 엿보는 것에 동참하고 그것을 '전유'하게 된다. 저자는 역자가 언급하듯 적용이 아니라 전유라는 독특한 표현을 책의 막바지에 쓰고 있는데, 이것은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인터렉티브한 적용의 또 다른 방법을 제공한다 할 수 있다.

이것은 이제 우리도 다니엘처럼 이방세계를 살아갈 때에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시고 지키심을 믿으며 믿음의 싸움을 행하도록 돕는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