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도서관
▲한 도서관에서 아이들이 책을 읽고 있는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물건을 필요할 때, 우리는 매겨진 '값', 즉 정가를 돈으로 지불하고 산다. 먹는 것, 입는 것, 타는 것뿐 아니라, 보는 것, 경험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일상에서 늘 '값'을 지불하며 산다. 그야말로 '값'을 지불하지 않고는 아무것도 사거나 할 수 없다. 그래서 간혹 어떤 값도 지불하지 않고 무엇인가를 얻으면 '횡재'했다고 말하는데, 이는 그런 일이 결코 흔하지 않다는 뜻도 담겨 있다.

아무튼, 이 '값'에 대해 얘기할 때 늘 따라붙는 단어가 하나 더 있는데, 바로 '값'에서 파생된 '값어치'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값에 해당하는 분량이나 가치"를 의미하는데, 흔히 값어치가 실제 값보다 크면 '이익'이라고 하고, 반대면 '손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물건의 값은 생산자가 정하기 마련이지만, 그 값어치는 사회가 혹은 개인이 결정하는 것이어서, 실제로 값만큼의 만족을 느끼는 경우가 오히려 드문 것 같다. 그리고 그러한 대표적인 물품으로 '책'을 들 수 있다.

2014년 11월 20일 '도서정가제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출판시장에서는 판매를 목적으로 한 도서의 할인 이벤트가 자취를 감췄다. 자연히 창고마다 가득 쌓인 재고도서들은 출판사들에게 적잖은 부담이 되었다. 가격 할인이나 그에 준하는 선물로도 줄 수 없고 보니, 그냥 가지고 있거나 공짜로 누군가에게 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걱정은 그전 10여 년간 도서 할인 판매에 길들여진 독자들이 볼멘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이미 '책값'에 상당한 불만을 표시했던 시장은 도서정가제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4년여가 지난 지금, '도서정가제'는 어느 정도 독자들의 인식에 자리를 잡은 듯하다. 예전보다 할인을 요구하는 경우도 많이 줄어들었다고 한다. 물론 출판계에서는 독서인구가 급격히 감소하고 책이 아무리 비싸도 사서 읽을 목적구매자들만 독자로 남았다고 자조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처음의 문제제기처럼 한번 되짚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신의 책값(어치)는 얼마에요?"라는 물음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식상하겠지만 두껍고 비싼 책이 값어치 있는 책이 아니라, 사람을 만드는 책이 값어치가 있다. 대단한 사상이나 지식을 담은 책만 양서가 아니라, 한 사람의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 책이 바로 양서다. 그런데 그런 양서를 한 번 읽고 그만두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것으로 충분할까? 학창시절 내게 책을 가르쳐준 한 선배는 "1,000권의 책을 읽으려고 하지 말고, 100권의 책을 10번씩 읽어보라"고 권했다. 다독을 통해 세계를 넓히는 것도 좋은 독서 습관이지만, 진짜 책의 가치를 알기 위해서는 모두가 인정하는 양서를 100권 정도 정해서 10번씩 반복해서 읽는 것이 좋다는 얘기였다.

술은 오래 묵힌 것이 비싼 값에 팔린다. 새로 만들어진 전자기기는 새로운 기술이 접목된 것일수록 비싸다. 반면 책은 정가에 팔리는, 비교적 구매와 소장이 쉬운 상품이다. 하지만, 책이 가지는 값어치는 술이나 첨단기기와 달리, 반복해서 읽혀질수록 더해진다.

우리가 갖는 생각은 홀로 키우고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활발해지고 구체화되어 실제 삶에서 무엇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그러한 유기적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제일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은 바로 독서다.

때문에 책은 상품으로서 이미 정해진 값보다 독자가 읽으면서 부여하는 값어치에 따라 그 이름값을 갖는다. 그리고 그 값어치가 비싸지는 만큼, 주인이 된 독자의 생각이 자라고 삶이 깊어진다.

이러한 독서는 한 번 훑어 읽는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마주앉아 대화하는 연인처럼 반복적이고 적극적인 시간을 통해서 가능하다. 속독(速讀)이나 다독(多讀)이 아니라, 정독(精讀)과 중독(緟讀)이 필요한 이유다.

책을 1억 원어치 사서 장서가가 되는 꿈을 꾼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1억 원의 값어치를 가지는 책을 10권 정도 소장하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어떤 책을 읽을지는 전적으로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1억 원의 값어치를 갖는 책 10권을 소유하는 자산가가 되기를 응원한다.

최승진 사무국장(한국기독교출판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