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일어남이 없도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마 11:11)".

다소 일찍 프로야구가 개막했습니다. 야구의 꽃이라면 물론 홈런입니다. 그 홈런을 치지 못하도록 투구하는 투수도 야구에서는 주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투수를 잘 보좌하고 리드해 주는 포수와 내·외야수들의 안전한 수비의 조화 없이는 시합을 이길 수 없습니다.

축구 역시 공격수에게 골을 넣을 수 있도록 연결해 주는 어시스트맨이 없으면 결코 골을 넣을 수 없습니다. 수비수 역시 골을 내주지 않기 위해 몸을 내던지는 철벽수비로 조연의 사명을 다해야 합니다. 혹 주전 선수가 부상이라도 입게 되었을 때, '엑스트라'였던 후보 선수에게 기다렸던 기회가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 모두 조연과 엑스트라들의 숨은 노력의 하모니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입니다. 운동 시합은 물론이고, 우리 가정과 직장, 그리고 모든 생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연들만 존재해서는 원하는 목적을 이룰 수 없습니다. 마땅히 조연과 엑스트라, 그리고 많은 관중들이 있어야 주인공의 역할도 돋보일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이름 '요한'이란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뜻입니다. 제사장인 아버지 사가랴와 어머니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세례 요한은 어릴 적 기록은 찾아볼 수 없으나, 나실인으로서의 생활은 기록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메시아의 오심을 예언했고, "회개하라"고 외치면서 복음을 전파했으며, 예수님에게 물로 세례를 베푼 사람이기도 합니다. 유대교를 이끌던 제사장 아버지 사갸라의 길을 걷지 않고, 새로운 시대의 떠오르는 인물이자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해 사명자의 길을 선택한 자였습니다. 처음에는 목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했지만, 나중에는 당시 분봉왕이던 헤롯의 정치적 행사에 관여하므로 비참하게 최후를 마감하는 안타까운 조연자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것이 있습니다. 자신이 감당해야 할 짐과 사명을 분명히 알았고, 자신의 현 위치와 역할에 대한 것들을 어느 누구보다도 잘 파악하여, 이를 행동으로 옮겼다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 메시야는 아니었습니다. 그 분에 앞서 그분의 길을 예비하고 미리 준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자기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라" 하면서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주저 없이 제자들에게 일러줍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에게 자신을 잊고, 새로운 이 시대의 구원자인 예수님을 선택하여 그 분을 따라가라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흔히 영화나 연극, TV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아닌 조연과 엑스트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엑스트라가 없는 연극과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우리 인생의 삶에는 흥미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지구상에는 어느 것 하나 귀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비록 에덴의 낙원이라 할지라도 거기에는 아담과 이브가 있어야 하고, 많은 동식물들과 자연이 함께 조화를 이루어야만 창조주 하나님의 신비가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동산이 됩니다.

우리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우주 만물의 주인공이십니다. 세상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조연들이자 엑스트라들임을 알아야 합니다.

주인공이신 예수님을 위해, 교회 안에서의 모든 직분은 조연과 엑스트라인 것입니다. 더구나 주님을 위하는 모든 직분에는 크고 작음이 없습니다. 우리 인간들이 생각하는 크고 작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합당한 직분자만이 옳은 사명자임을 알아야 합니다.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이뿐인가 하노라'는 옛 시인의 글에서도 보듯, 겉으로는 화려하고 보기 좋은 떡 같지만 실속이 없는, 주님이 없는 모든 직분과 사업은 주인공이 슬퍼할 따름입니다. 비록 엑스트라일지라도, 남몰래 그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신앙인이라면 분명 천국의 아름다운 잔치에 참여하여 주인공이신 주님을 만나고, 큰 상급으로 화답받을 것입니다.

젊은 시절에 주님을 영접하며, 평생 주님과 함께 살리라 서약하고 맹세했던 목자들이라면, 초심을 잃지 않고 은퇴하시는 그 날까지 최선을 다하며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 교단들마다 내로라는 분들의 마지막에 결국 불행한 사건들이 일어나면서 많은 성도들이 가슴 아파하며 실망합니다. 어쩌다 말년에 그렇게 변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혀를 차기도 합니다.

끝까지 순교의 정신으로 변함이 없어야 하는데, 성경 속 많은 실패자들처럼 본인 역시 설교를 하면서도 정작 이를 지켜야 할 본인은 사탄의 유혹에 넘어지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이 모두는 늘 주인공만 하려는 탐심에서 나오는 현상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조연과 엑스트라 역할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하며 그들에게 다가갔더라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텐데 말입니다.

돈 문제, 세습 문제, 권력과 명예, 성추행 문제로 끊임없이 신문과 방송에 도배되는 목회자들을 보면, 주님을 모르는 지도자들 같기도 합니다. 특히 말과 행동이 전혀 다른 분들이다 보니, 처음부터 아예 세상 사업의 길로 가셨더라면 좋았을 걸 하는 생각도 해 봅니다.

지금 교회들마다 성도들이 갈수록 줄어들고, 복음을 전하기도 극히 어려운 상황입니다. 더구나 교단들마다 존경했던 분들이 사고를 치고 있으니, 복음 전파는 갈수록 점점 어려워집니다.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암시하는 것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제자 120명처럼 순결하고 정직한 삶으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해야 하겠습니다. 그것만이 세상의 빛을 비추며, 주님을 위한 우리의 조연과 엑스트라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