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크 챕터
다크 챕터

위니 리 | 송섬별 역 | 한길사 | 552쪽 | 15,500원

청소년 시절 난 우등생은 아니어도 나름 모범생으로 살았다. 그러나 적절한 표현일지는 모르지만, 주변을 보면 마치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나 <데미안>마냥 또 다른 세계가 존재했음을 경험하곤 했다.

밝은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비치는 거리 옆에 어두운 골목길이 열려 있고 그곳에 밝아 보이는 길과는 달리 음울하고 어두운 그림자가 존재하는 것처럼, 상처입고 둥지를 잃고 방황하거나 반항하는 이들이 있었다.

비록 내가 그 골목길에 들어서지는 않았지만(그 어둠에 들어오라고는 하지 않지만), 도움을 요청하거나 외로워 힘들어 하는 이들을 종종 만나곤 했다. 그 골목 어귀에서 이야기를 들어주고 도와야 할 여력이 있다면 도우려 했을 때가 가끔 있었다.

그런 이들 중에 한 명이 있었다. 중학교 때였는데, 집단 성폭행의 협박에 놓인 어떤 이의 고민을 상담하게 된 적이 있었다. 그가 속한 무리들 속에서 벌어지는 겁박과 압력은 별로 선택의 기회를 그에게 주지 않았고, 한 친구와 더불어 그 문제를 어떻게든 막으려 했고 그를 돕고자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었다.

살아오면서 그 정도는 아니어도 그런 일들을 주변에서 보곤 했다. 아니, 그런 일들은 골목길에서만 벌어지는 것이 아니다. 유심히 들여다 보면 그런 일들이 사람들이 활발히 다니고 분주함으로 가득찬 거리 곳곳에서 일어남을 보곤 한다.

성폭행이나 추행 및 아픔을 겪는 일은 여러가지 형태로 있어왔다. 그것을 보거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른 이들에게 관심 자체가 없거나 그런 일이 있어도 피하려 하기 때문은 아닐까?

그런 것을 외면하고 지나가면 당장은 내게 어떤 어려움이 일어나지 않는 듯 하고 아무 일 없는 듯 편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일들을 겪은 이들은 남에게 나누지 못하고 혼자 그 고통을 끌어안은 채, 가슴에 박힌 칼이나 심장 깊숙히 날아든 총알을 꺼내지 못하고 언제든 일어날 수 있는 부작용과 후유증으로 짓누르는 통증 속에서 살아가곤 한다.

결국 그것을 치유하지 못하면 언젠가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고통을 유발할 것이고, 결국 그 사람의 인생은 더욱 굴곡케 될 위험성이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일어난 '미투 운동'은 우리나라에서도 그 불길이 일어날 조짐이 이미 작년부터 여러 번 보였지만 제대로 그 불씨가 살아나지 못하다, 최근 폭발적으로 그 응어리짐과 부끄러운 민낯이 드러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그 속에서 이번에 한길사에서 출간된 위니 리의 <다크 챕터>는 시의적절해 보인다.

성폭력에 대한 자전적 경험이 녹아있는 이 소설은, 지금 미투 운동처럼 위계에 의한 성폭력과는 원인이 다른 부분은 있지만, 성폭력이 갖는 폭력성과 인격적 파괴, 피해자가 치러야 할 트라우마 등에 대해 잘 보여준다는 측면에서 지금 우리가 주목하고 읽어볼 만한 책이라 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성폭력은 살인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가벼울 수 없는 범죄라고 생각한다. 일반 폭력도 감정과 인격에 상흔을 입히긴 하지만, 성폭력이 가하는 인격과 감정의 파괴는 그것과 비교할 수 없다. 살인으로 인해 피해자가 생을 마감하며 최소한 이 생에서는 그 고통이 멈추는 것에 반해, 성폭력 피해자는 내면의 상흔을 평생 안고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 잔혹성과 파괴는 더욱 크다 할 수 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책을 대하기 무척이나 주저했다. 몇 년 전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도 가 봐야 한다는 의무감을 가지면서도, 가는 것이 부담되어 한참을 주저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우연찮게 자의반타의반(自意半他意半) 책을 읽게 되었다.

다크 챕터
▲ⓒunsplash
이 책은 성폭력을 행한 가해자와 피해자의 시각이 교차되어 나타난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그 둘이 살아오는 삶이 교차되어 나타나고, 사건 이후 가해자가 잡히기까지의 과정과 재판, 그리고 피해자가 조사되는 과정에서의 또 다른 상처와 재판에서의 잔인한 증언 과정이 그려진다. 처음에 가해자의 성폭력 행위와 그의 저열한 언어들은 거칠고 거북하지만, 저자가 그것을 그렇게 담아냄은 그 잔혹성과 악함을 고스란히 드러내기 위함인 듯싶다.

또 그 조사 과정에 있어 피해자 중심으로 배려하고 돌보며 그 일을 행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저 하나의 일과 절차로서 대하는 이들로 인해 또다시 상처와 아픔을 겪는 모습도 담담히 그려져 있다. 특히 변호사의 잔혹한 피해자 심문은 죄인의 인권도 존중받아야 한다는 기본적 인권 존중에 대한 의문마저 들게 한다.

저자는 그러면서도 가해자의 성장 과정과 그 환경을 통해, 성폭력에 대한 기본적 죄의식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하는 이들을 담아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가 결코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이것이 그저 성폭력을 저지르는 선천적 악인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환경으로 인해 그들의 사고와 행동이 고착화되어갔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기에 범인은 가석방 후 사라져 버림으로, 그가 진정 변했는지 의문이 가게 한다.

또한 주인공이 자신이 겪은 일을 주변에게 알렸을 때, 주변에 여러 사람들이 경우는 다르지만 그런 경험을 했음을 같이 나누게 되는데, 그것을 통해 그를 해한 가해자 같은 부류의 사람들만 그런 일을 행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형태의 사람과 방법을 통해 성폭력이 벌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한 가지 우리나라와 구별되는 것은, 자신이 겪은 일을 주변과 나눈다는 것이다. 이것은 문화적 차이이긴 하겠지만, 이것을 통해 오히려 건강한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짐을 보여준다. 또 자신만이 아니라 주변의 자신과 같은 고통을 겪는 이들을 어두운 골목길에서 거리로 이끌어 내는 계기가 됨을 보여준다.

이 책을 통해 성폭력과 그 피해자에 대한 이해, 그리고 치유에 대한 접근을 배워나갈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최근의 '미투 운동'에 있어서도 피해자 중심의 좀 더 올바른 접근을 할 수 있을 듯 싶고, 우리 주변에 알게 모르게 있는 이들의 아픔을 볼 수 있는 눈도 가질 수 있으리라.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