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스라엘 백성이 호르산에서 출발하여, 홍해의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했다가 길로 말미암아 마음이 상하여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했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에는 이 하찮은 음식이 지겹고 싫다'는 등 불평불만을 늘어 놓습니다.

이에 여호와께서는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 백성들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신약성경 요한복음 3장 14-15절에도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사건을 묵상하며, 우리는 쉽게 말 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왜 미련하게 불평불만을 해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되는 수난을 자초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나 자신도 용암 같은 뜨거운 사막의 길을 수십 년 동안 걸어간다면,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을까요?

참된 신앙인의 길이란, 과연 어떤 길일까요?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희생하셨던 그리스도의 모범을 본받아, 나뿐 아니라 우리 모두 함께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고민하고 노력하는 그런 삶의 길 아닐까요?

물론 그런 삶의 길에는 반드시 고통과 희생이 따르겠지만, 그 희생을 고통으로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기쁨으로 여기면서, 기꺼이 이웃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바로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순절을 지나면서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묵상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상대방을 적당히 이해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형제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그런 사랑을 요구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웃과 가족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자신의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어주고자 하는 그런 사랑의 마음이 있고 없음 아니겠습니까? 핏줄을 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나의 생명을 함께 나눈 사이기 때문입니다. 가족이 쓰러졌다면 내 목숨이라도 내어주어 살리고 싶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내가 대신 죽어도 좋다는 생각하는 그런 사랑을 기꺼이 실천할 수 있는,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삶의 참 모습일 것입니다.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는다'는 것은 희생과 고통을 의미하지만, 그런 희생과 고통 없이 더 많은 열매를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장 슬피 울어본 사람만이 가장 기쁘게 웃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죽인다는 것은 분명히 많은 갈등을 유발할 수 있고, 우리 자신을 고통스럽게 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를 죽이는 것만큼 자신을 슬프게 하는 것 또한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이웃을 위해 스스로를 썩혀 밑거름이 되는 밀알이 될 때, 부활의 기쁨과 새로운 삶과 생명의 소중한 의미를 참으로 체험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제 사순절의 막바지입니다. 사순절 시기를 시작하면서 나름대로 결심했던 것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해 보는 시간들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열풍같이 일어나고 있는 '미투 운동'은 신앙인으로서 함께해야 할 것입니다. 비단 성폭력 문제도 심각하지만, 하나님을 앞세워 타락의 모습을 보이는 목사 장로들이 있어 실로 유감입니다. 그런 목사 장로들을 퇴출시키는 '미투 운동'도 필요한 시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지금 현재 부산 어느 교회에서는 자신들과 뜻을 같이 하지 않는 성도들에 대해, 교회 출입구를 쇠사슬로 막아놓고 봉쇄한 후, 건장한 남자 집사님들을 동원하여 예배드리러 오는 성도들을 선별하여 입장시키고 있습니다. 그래놓고 오후예배 이후 자기들끼리 윷놀이를 하면서 희열을 느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자신들 편에 있지 않은 사람들을 혐오하며, 이상한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성도들 간에 원수 지게 만들고 있는 이들이, 과연 참된 교회 지도자들일까요? 당회는 자신들이 잘못을 저질러 놓고도 다른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전가시키며, 성도들의 눈을 흐리게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노회 측 재판국이라는 기관은 공정한 저울을 달아 재판해야 하는데도, 한쪽으로 치우쳐 사회법보다 못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도 억울하게 살인한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도피성이라는 곳을 만들어 그곳으로 피신하게 했다는데, 과연 하나님의 불뱀은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사순절 시기 더더욱 악행을 저지르는 저들이, 과연 구원의 구리뱀을 쳐다볼 수 있을까요? 의심 많고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저들의 욕구 때문에, 저들의 눈에는 구리뱀이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주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명예와 권력, 그리고 부를 위해 갖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저들이 과연 구리뱀을 믿을 수 있을까요?

당시 무서운 불뱀에게 백성이 괴롭힘을 당했던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시기 위해 내린 하나님의 진노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악한' 생각에 붙들려 하나님을 원망하고, 자신의 처지를 불평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자초된 죄의 결과로 일어난 사건이었습니다.

요즘도 교계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사건들을 보면, 입으로만 구호를 외치고 '사랑과 믿음 타령'을 앞세워 교묘히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얄팍한 인본주의자들 때문임을 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가 욕을 얻어먹고 신앙인들조차 세상에서 비웃음거리가 되는 기이한 현상이 늘어나고 있어,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이라도 악행을 저지르는 신앙인들이 있다면, 스스로 양심을 내려놓고 합당한 회개의 가슴으로 구리뱀을 향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분명 주님께서는 구리뱀을 바라본 사람들에게 치유의 은총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도 당신의 약속을 굳게 믿고 그 자비에 의탁하는 것이 신앙의 결정적 요소 아닐까요?

믿음으로 십자가를 바라보고 하나님의 약속이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라 철저히 믿고 의탁하는 이에게는 십자가의 은총이 주어진다는 의미이기에, 당시의 구리뱀 사건은 예수님 지신 십자가의 예표라고 합니다. 모순이 아니라 믿음이, 우리를 살린다는 주님의 약속 말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끝나가고, 고난주간이 다가옵니다. 모두들 진심 어린 주님의 사랑으로 다가가, 나를 철저히 내려놓는 참된 신앙인으로 거듭나는 귀한 사순절의 끝자락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뱀은 과연 어디로 향할까요?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