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과 중독
영성과 중독

올리버 J. 모건, 멀 R. 조던 | 문희경 역 | CLC | 496쪽 | 24,000원

현재 한국교회와 기독교 심리상담계에서 영성과 중독은 모두 미지의 세계이자 어둠의 세계이다. 그리고 섣불리 아무도 쉽게 도전하지 못하는 영역이다. 영성이든 중독이든, 다른 무엇보다 오랜 시간을 요하는 영역이고 결과가 빨리 나타나지 않는 영역이다.

그래서 매력도 없고 도전하는 사람이 적었고, 여전히 미지와 어둠의 세계이며, 또한 관심과 후원을 받기도 요원한 영역이다. 그럼에도 영성은 오래 전부터 논란 가운데 있는 영역이고 중독은 현재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영역이다.

어떤 영성심리(심층심리)학자가 중독을 '영성의 실패'로 정의하는 것을 보기도 하였다. 또 본서에 등장하는 AA나 12단계 그룹들은 중독을 '삼중 질환', 즉 몸과 마음과 영의 질병으로 설명하고 있기도 하다.

그 동안(지금도) 한국교회 안에서 중독이나 영성에 관한 주제를 다루는 곳은 '신사도주의'에 속한 교회들이 주류를 이룬다. 그들은 말씀을 문자적으로, 그리고 믿음을 강조함으로 기도와 믿음(자기 확신)의 강화로 인한 에너지들을 통해 순간적인 증상들을 치료하는 현상들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중독자들에게 거부하기 힘든 미끼이다.

그러나 대부분 신사도주의 은사자들은 영성과 중독에 대한 바르고 깊이 있는 지식이 없으므로, 후속조치가 지속적으로 이뤄지지 않아 단회성 이벤트나 해프닝으로 끝나게 된다. 더욱이 이러한 이벤트적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라도, 내담자의 믿음(자기 확신)이 중요하다.

이러한 가운데 한국교회와 기독교 심리학계는 보다 편하고 쉬운 영역에 집중함으로써, 사실은 영성과 중독에 무지한 상황 가운데 있다. 얼마 전 모 기독교 심리상담 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도 그리스도교 심리 상담가, 그리스도교 심리 상담 기관에서 영성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모두 긍정적이었지만, 실제 임상에서 영성적 관점과 돌봄은 전혀 고려되지 않고 있음을 밝혔다. 이것은 영성과 그 영성의 적용에 대해 한국기독교 심리학계에서도 무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더욱이 교회의 목회적 현장에서는 영성에 대해 더욱 정리가 되지 않은 혼탁한 상황 가운데, 존재론적 관점의 교리로 실존적인 영성을 다루어 영성의 실재에 대해 부정하고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밖은 무서울 정도로 영성에 대한 연구와 중독에 대한 치료적 방법이 발전하고 있는데, 물론 거기에도 분명 가라지들이 넘쳐난다. 그럼에도 꾸준한 성장과 결과물들이 나타나고 있다.

여기서도 핵심 키워드는 '실존 신학'이다. 즉 과학적 접근 방법의 중요성이다. 본서는 영성과 중독에 대한 인지, 정서, 가족, 문화, 여성주의, 신학, 행동 등 다양한 학문적 관점의 논문들이 들어 있다. 그런데 이들의 공통점은 '실존'에서 근거하고 '실존'의 변화에 집중하여 방법을 모색한다는 점이다.

즉 어떤 고정된 틀(교리)로 중독과 영성의 관계를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중독 치료에서 영성이 왜 필요한지, 그리고 영성에 어떻게 접근할 수 있는지, 그리고 영성의 적용 결과들과 그 과정에 영성이 어떤 영향들을 끼쳤는지, 그 이유들을 설명하고 앞으로 중독 치료에 있어 영성의 전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매뉴얼은 없다

목회와 상담을 계속해 오면서 느끼는 것은, '매뉴얼은 없다'는 경험적 확신이다. 목회든 상담이든 매뉴얼로 진행되면, 경영(목회)과 훈계(상담)가 되어 버린다.

사실 나도 목회에서나 상담에서 매뉴얼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지금도 한다. 그러나 사람(목회의 대상)과 상처(상담의 대상)는 기계(사람)나 사건(상처)이 아니라, 나와 동등한 독립된 인격이다.

그러므로 아무리 뛰어난 목회자나 상담가라도, 성도의 신앙성장과 내담자의 증상들을 획일화시켜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각각 독립된 인격체임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앙의 성장이든, 마음의 치료이든 각자의 성장과 치료의 과정이 있다. 이 각자의 지문과 같은 독립된 인격이 바로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주신 영성(하나님의 형상)이다.

그러므로 목회를 하든 중독을 치료하든 그 사람의 방식을 파악하고, 존중하고, 그 사람의 영성이 온전해 지도록 돕는 것이 목회자와 전문가들이 해야 할 책임이다. 그러므로 본서에 등장하는 AA나 12단계 프로그램을 매뉴얼로 받아들이지 않길 바란다.

본서는 한국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한국 안에서 '영성과 중독'이라는 매우 희소한 책이라는 점에서 매우 가치와 의미가 있다. 상담 전문가들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신학자들이나 목회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본서가 실존적 관점에서 쓰였으며, 상담과 치료란 필연적으로 실존적일 수밖에 없음을 염두해 두시라는 것이다.

부디 본서가 한국교회와 그리스도교에 중독과 영성의 상관관계에 소중한 마중물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