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혁승 칼럼] 도피성 제도의 필요성

입력 : 2018.03.14 10:27

여호수아서 연구(38)

권혁승
▲권혁승 교수 ⓒ권혁승 교수 블로그
여호수아서 20장과 21장은 땅 분배를 마치면서 마무리 지어야 할 두 가지 과제를 다루고 있다. 하나는 부지중 실수로 사람을 죽인 자들을 위한 도피성 결정이고, 다른 하나는 땅을 분배받지 못한 레위인들이 거주할 장소를 정하는 문제였다. 전자가 공정한 재판을 위한 사법적 조치였다면, 후자는 경제적 공평성과 관련된 사회 정의적 차원의 조치라고 할 수 있다. 도피성으로 지정된 여섯 성읍은 모두가 레위인들이 거주하는 성읍 목록에 포함되었다는 점도 이 두 과제는 긴밀히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 두 과제는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오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명령이기도 하였다. 그래서 여호수아서는 이 두 가지 과제의 마무리를 가나안 땅과 관련된 모든 일의 종결로 제시하고 있다(수 21:43-45).

도피성 문제가 제일 먼저 언급된 것은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여호와와 언약을 맺을 때였다. 폭행과 관련된 사법적 문제를 다루는 언약법은 고의가 아닌 실수로 사람을 쳐죽었을 경우 그 사람이 도망하여 피할 수 있는 한 장소를 정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출 21:12-14). 민수기에서는 이 문제를 보다 구체적으로 다루고 있다. 곧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 요단강 동편과 서편에 각각 세 성읍씩 모두 여섯 개의 성읍을 도피성으로 정하라는 것이다(민 35:9-15). 그 도피성들은 모두가 레위인이 거주하게 될 성읍이기도 했다(민 35:6). 신명기에서는 요단 동편에 세울 세 도피성이 베셀과 길르앗 라못과 바산 골란임을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다(신 4:43). 그리고 여호수아 20장에서는 요단강 서편지역의 나머지 세 도피성이 정해졌다. 그 성읍들은 갈릴리 가데스와 세겜과 헤브론이었다.

도피성의 필요성은 실수로 남을 죽인 사람이 우선적으로 무분별한 피의 보복을 피하게 한 후 공정한 재판을 받게 하는 일종의 긴급조치였다. 그런 보호 장치가 없을 경우, 고의성이 없는 살인이라 하여도 앞뒤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보복성 살해를 당할 수가 있었다. 그런 점에서 도피성은 고의성이 없는 살인자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적 차원과 함께 인간 생명의 고귀함을 강조하는 사법제도라 할 수 있다.

도피성으로 피신한 사람이 우선적으로 할 일은 자신의 무죄함을 도피성 장로들에게 진술하는 것이다. 장로들이 그의 진술을 사실로 확인하고 그를 받아들이게 되면, 성읍의 장로들은 그가 어떤 보복도 당하지 않도록 보호를 해주어야 했다(수 20:5). 그러나 그 사람이 도피성지역을 벗어나게 되면 그에게 가해지는 보복은 불법으로 규정되지 않는다.

도피성으로 피신한 사람이 위협을 당하지 않고 출신 성읍으로 돌아갈 수 있는 조건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회중들 앞에서 재판을 받게 되는 경우이고, 다른 하나는 당시의 대제사장이 죽게 된 경우이다. 전자는 공정한 재판을 통하여 무죄가 선언된 경우라 할 수 있다. 그러면 후자의 경우는 어떻게 설명할 수가 있을까? 당시 사회에서는 대제사장의 죽음은 곧 한 시대가 지나가고 새로운 시대가 열린 것을 의미했다. 그런 점에서 대제사장의 죽음과 더불어 새 시대가 열리면서 일종의 대사면이 이루어진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 적절한 해석은 당시의 제사제도와 관련된다. 곧 제사제도의 최고 책임자였던 대제사장의 죽음은 생명을 범한 그 살인자의 죄를 속죄하는 결과를 가져왔다는 보는 견해이다. 대제사장의 죽음 이외에 어떤 속전도 언급되지 않는 것도 그런 점을 확인해 준다. 따라서 구약시대의 도피성 제도는 곧 신약시대 우리의 영원한 대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이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한 유형으로 이해된다. 그분은 우리들이 피하여야 할 도피성이시면서 또한 그분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들이 도피성을 떠날 수 있도록 영적 자유를 베풀어주시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시다.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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