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고난(苦難) 뒤에 은혜(恩惠)의 단비가

입력 : 2018.03.12 17:37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어학 사전에서 '고난'을 찾아보면 괴로움과 어려움을 말합니다. 또 은혜란 '사랑으로 베풀어 주신 신세나 혜택'이라고 합니다. 사실 고난 없는 인생이란, 어쩌면 뗄 수 없는 접착제와 같은 것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옛말에도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했습니다. 어려서부터 무던히 들어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탐심으로 인하여 아름다운 낙원에서 추방되는 그 시점부터 인간에게는 고난이 시작되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추방당한 인간들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기회를 제공하십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사랑하고 말씀에 순종하면 고난의 괴로움을 물리고 은혜의 단비를 풍성히 부어 주십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시는 최고의 선물인 것입니다.

인간들은 저마다 나에게서 고난을 피해갈 수 있도록 갈망하지만, 고난이 또한 유익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에는 분명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난을 통해 그만큼 나를 연단하시며, 더 위험한길을 피하기 위해 감당할 수 있는 고통이나 고난으로 대신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의 장소가 광야든 바다든 산이든, 그 장소가 바로 은혜의 장소가 됩니다. 비온 뒤 땅이 굳는다는 말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고난을 통해 감사 할 수 있는 믿음으로 전환해야 합니다. 고통과 좌절, 고난의 행군 없이는 은혜를 맛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나에게서 고통이 밀려온다면, 쉬운 일은 아니지만 믿음으로 '아멘' 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사순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물로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나아가사 사탄의 시험을 이기시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다"고 기쁜 소식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주님께서 시험받으신 그 광야가 바로 우리 인간의 삶의 장소입니다. 그 장소에는 인간 누구의 삶에도 턱 없이 부족한 황량하고 쓸쓸하고 외롭고 두려운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유혹에 쉽게 넘어갑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광야에서의 유혹을 이기심으로, 우리 인간들에게 희망을 주셨던 것입니다.

인간들이 누리는 빵과 명예와 권력이 삶의 전부가 아니라, 그 유혹에 맞서 싸워 이겨내며 하나님께로 성큼 다가가는 그 순간이 참으로 놀라운 은혜를 맛볼 수 있는 귀한 시간임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들은 광야에서 40년이라는 긴 세월동안 아픔과 모진 시련을 통해서 믿음이 정화되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없이는 어느 한 순간도 안심할 수 없으며, 약속의 땅을 차지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아 갑니다.

이스라엘 민족으로 하여금 광야의 시련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점점 다가가며, 회복으로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광야는 바로 은혜의 장소이기도 합니다. 신앙인들의 삶에서 광야의 유혹은 분명히 큰 도전이지만 결코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광야는 분명 변화의 장소요 개혁의 장소인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을 성숙되게 하는 장소이며, 최후에는 그곳이 축복의 현장이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 신앙인들의 생활에 있어 광야는 어디입니까? 그것은 바로 사람들과 나누는 친교와 배려, 베풂과 나눔의 따뜻한 가슴입니다. 지금 신앙인들에게는 이기주의와 끝없는 탐심을 이끌고 있는 물질주의, 명예와 권력이 하나의 광야인 것입니다.

그리고 자녀 때문에, 고부 관계에서, 경쟁심에서, 열등감에서 그리고 사사건건 맞지 않는 이웃들과의 관계 역시 일종의 광야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겪는 모든 것들이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해마다 사순절을 맞습니다. 매년 연례행사로 그쳐 하나님의 고난의 의미를 모르고 있으니 실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교회 안에서 설교할 때는 사랑해야 한다고 하면서 늘 구호에만 그치질 않나, 성도들을 교회 예배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문을 걸어 잠그질 않나, 사극에서나 볼 수 있는 '살생부' 또는 '블랙리스트'로 교회 문 앞에서 성도들을 선별하여 말 잘 듣는 사람들만 입장시키질 않나.... 자신들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별별 수단을 다 마다 하지 않고 자행되는 범죄는 어디 이곳이 진정 하나님의 교회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성도들을 편 갈라서,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일하는 성도들의 시위를 못하도록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언어폭력은 물론 칼까지 들고 협박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래놓고 예배 후에는 자기들끼리 윷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예배당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아랫사람들을 시킨 후, 자신들은 위에서 미소를 띠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차마 이곳이 하나님의 주시는 광야는 분명 아닐 것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우리 삶의 현장에서, 그리고 성전 안에서 욕심과 욕망의 어두움을 내려놓고, 빛 가운데로 나아가기 위해 단호한 결심이 필요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여 기도한다면, 우리의 광야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에서 만날 수 있는 곳 아닐까요?

우리 신앙인들의 광야 생활이 하루 속히 종지부를 찍으려면, 먼저 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명예와 권력으로부터 자유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을 긍휼히 여기는 따뜻한 가슴이 있어야 합니다. 그 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겸손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사순절이 깊어갑니다. 주님의 고난에 신실하게 참여하여, 닥쳐질 고난을 슬기롭게 이겨내어 은혜의 단비를 풍성히 누리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헛되고 헛된 것을 위하여 고군분투하는 부산 덕천동 어느 교회의 광야는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곧 골고다에서 우릴 위해 십자가의 형틀에서 죽으신 주님을 또 다시 못박는 일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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