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Me Too) 운동, 현실은 영화보다 불쾌하다

입력 : 2018.03.11 19:30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연애의 목적>(上)

연애의 목적
▲영화 <연애의 목적>. 권력형 성폭력에 의해 고통받는 한 여성의 문제를 다룬 작품이다.
◈폭로와 몰락의 미학(美學): 유력자의 악행이 초래한 몰락을 목격하는 쾌감

지난 1월 말 검찰 내 권력형 성추행 피해자의 방송 인터뷰 이후, 국내 각종 방송 및 인터넷포털 1면에 단 하루도 유명인사 및 유력자들의 성추행 및 성폭행 폭로가 등장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 검찰, 교육계, 영화계, 음악계를 비롯해 정치권에 이르기까지 피해자들의 폭로가 끊어지지 않았고, 폭로된 내용의 괴악함 또한 그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지난 주에는 작년 치뤄진 19대 대선에서 현 여권의 유력 경선주자였던 안희정 전 충남지사가 최측근인 정무비서를 강압적으로 성폭행했다는 폭로로 정치 생명을 마감하게 된 사태가 발생했다. 그는 진보계 정치인답게 평소 인권과 사회적 평등을 강조해 왔던 인물이다. 그의 이런 극단적 표리부동함은 지지자들의 배신감을 배증시켰고, 결국 폭로 방송이 나간지 단 2시간 만에 그의 정치 생명을 끝장내 놓았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크게 선전했을 뿐 아니라, 이후로도 고위 선출직을 유지하며 향후 대권을 노려보던 인물의 전광석화 같은 몰락은, 긍정적인 의미로든 부정적인 의미로든 대한민국을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긍정적 의미로 본다면 이런 반응은 이 땅 위에 아직 흐릿하게나마 공의의 심판의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는 점을 확인한 데서 오는 것이라 해석할 수 있을 듯하다. 반면 부정적인 의미로 본다면 유력자의 성적 타락이 선사하는 악의적 카타르시스로부터 유발되는 흥분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폭로에 의한 몰락, 특히 성적 타락의 폭로에 의한 몰락은 이를 목격하는 제3자에게 묘한 쾌감을 선사한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들여다볼 수 없는 어둡고 내밀한 행위들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데서 오는 관음적 욕망의 충족감, 자기보다 높은 위치에 처했던 이가 한없이 추락하는 것을 보는 데서 오는 우월감이 뒤섞이며 형언하기 어려운 쾌감을 선사한다.

현 사태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들 가운데는 분명 유력자의 악행에 대한 분노와 피해자의 처지에 대한 동정을 담은 시선들이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성폭력의 폭로와 몰락이라는 사태가 수여하는 부정적 의미의 카타르시스를 탐미하는 시선들도 존재할 것이다.

미투 운동
▲미투 운동이 유발한 대중의 흥분감 속에는 긍정적인 것과 부정적인 것이 뒤섞여 있다.
이런 이유로, 최근 미투 운동이 유발한 대중의 동요와 흥분 속에는 폭로와 몰락의 미학이 비교적 뚜렷하게 확인된다. 미학(aesthetics)이라는 말의 의미를 근대적 사고에 입각해 정의하면 '감성의 느낌에 대한 학문'이 된다.

근대 사상가들 가운데 이 용어를 애용한 이들 중 가장 유명한 인물을 고르라면 칸트(Immanuel Kant)를 지목할 수 있는데, 실제로 국내 저명 칸트 번역자들은 <순수이성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에 사용된 '애스테틱(die Ästhetik)'이라는 독일어를 '감성학'으로 번역한다. 육체적 감성의 쾌감 혹은 기쁨의 느낌 자체와 이를 유발하는 대상에 대한 사유, 이것이 바로 칸트가 정의하는 미학 혹은 감성학의 기본 규정이다.

타인의 성적 타락에 대한 폭로, 그리고 그로 인한 유력자의 몰락을 바라보는 것이 누군가의 감성에 상당한 쾌감을 선사한다면, 폭로와 몰락의 사태 역시 미학적 탐구 대상으로 지목될 수 있을 것이다.

◈몰락하는 자와 관음증(觀淫症) 환자: 머시아 왕국의 고다이버 백작 부인과 '피핑 톰'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이들이 느끼는 미학적 쾌감 가운데는 일정 부분 관음의 쾌감이 속해 있는 듯하다. 언론이 현 사태를 다루는 태도를 보면 이 점이 분명하게 확인된다.

미투 운동을 다루는 온갖 보도와 기사들 중 일부는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명목 아래 사태에 대한 자극적인 묘사를 감행하거나 진흙탕 싸움이 되어가는 진실공방을 부각시키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현 사태에 집중된 관음적 시선들을 의식하는 것이다.

제3차 산업혁명, 즉 디지털 혁명과 함께 활자 텍스트보다 이미지 및 영상 미디어가 문화의 주축을 이루는 시대가 도래했고, 이로 말미암아 관음적 욕구의 충족 경로가 실질적으로 무한하다 할 만큼 넓게 개방되었다.

여기서 관음적 욕구란, 협의적으로는 사회에서 금기시돼 온 섹슈얼리티에 대한 시각적 탐닉을 의미하지만, 보다 넓게 보자면 사회적으로 금기시돼 온 모든 종류의 내밀한 행위에 대한 시각적 탐닉으로도 정의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미국 종교사회학자이자 루터교 신학자로서 20세기 사회학의 거두 중 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피터 버거(Peter Berger)는,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를 '전문 관음증 환자들(professional Peeping Toms)'로 규정했다.

사회학자는 동시대 인간들의 행위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내밀한 의도와 동기를 들여다 봄으로써 쾌감을 얻는다. 반면 역사학자는 과거 인간들의 행위 이면에 감춰져 있는 의도와 동기를 들여다 보는데서 쾌감을 얻는다. 버거는 이 사실을 부각시키기 위해 다소 자극적인 용어로 사회학자와 역사학자를 규정했던 것이다.

피터 버거
▲루터교 신학자인 동시에 미국 사회학의 거두로 인정받는 피터 버거와 그의 대표작 ‘Invitation to Sociology’.
관음증은 정신의학 전문용어로서, 영어로는 'voyeurism'으로 표기한다. 그런데 특별히 남성 관음증 환자를 지칭할 때는 'voyeur'라는 용어보다 '피핑 톰(Peeping Tom, 엿보는 톰)'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한다. 위에서 예시한 버거 역시 사회학자 및 역사학자를 규정할 때 '피핑 톰'을 사용했다.

동양으로 치면 고사성어 격에 해당되는 이 용어는 다음과 같은 역사적 기원을 갖는다. 11세기의 잉글랜드 지역은 아직 통일 왕국을 이루지 못한 상태로, 앵글로-색슨족이 건립한 7왕국(Heptarchy)이 존재하고 있었다.

최근 7년여 간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끈 드라마는 <왕좌의 게임>(Game of Thrones)인데, 이 작품의 원작 소설인 <얼음과 불의 노래>(A Song of Ice and Fire)가 바로 이 7왕국 시대를 모티프로 삼고 있다.

11세기 초, 7왕국 가운데 중앙부에 위치한 머시아(Mercia) 왕국 코벤트리 지역의 영주는 리오프릭(Leofric) 백작이었다. 그에게는 고다이버(Godiva)라는 이름의 젊은 아내가 있었다. 고다이버 백작 부인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로서, 남편 리오프릭 백작이 영지민들에게 펼치는 학정, 특히 가혹한 세금정책 때문에 극심한 양심의 고통을 받았다. 가혹한 세율 때문에 춘궁기마다 죽어가는 영지민의 모습을 보다 못한 고다이버 부인은 세율을 낮춰 달라고 남편에게 탄원했으나, 리오프릭은 아내의 탄원을 무시했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내의 탄원에 귀찮음을 느낀 리오프릭은 고다이버가 들어주지 못할 조건을 제시했다. "만일 네가 밝은 대낮에 옷을 모두 벗은 채 말을 타고 내 영지를 한 바퀴 돈다면, 세금을 감면하도록 하겠다."

이는 중세 시대에 고귀한 신분의 젊은 여성(당시 고다이버 부인의 나이는 16세였다)이 감행하기에는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요구였으나, 고다이버 부인은 남편의 말에 따라 실제로 옷을 모두 벗고 대낮에 말을 타고 영지를 돌기로 했다. 소식을 들은 영지민들은 고다이버 부인의 마음에 감동하여, 그 날 누구도 거리에 나가거나 고다이버 부인의 모습을 보지 않기로 결정했다.

고다이버 부인의 영지순례 당일, 누구도 그녀가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려 하지 않았으나, 톰이라는 이름의 양복점 점원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커튼 틈으로 고다이버 부인이 지나가는 모습을 훔쳐봤다. 그 순간 강한 햇빛이 그의 눈에 비쳐 톰은 눈을 멀게 됐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고다이버 백작 부인 피핑 톰 관음
▲앵글로-색슨 7왕국 가운데 하나인 머시아 코벤트리 지역 영주의 아내였던 고다이버 백작 부인의 선행은 오늘날까지 유명한 전설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고대-중세 권선징악형 전설 대부분이 그러하듯 이 이야기는 행복한 결말을 맞이한다. 리오프릭 백작은 자신의 말을 지켜 세율을 대폭 하락시켰고, 영지민들은 고다이버 부인을 칭송하였다. 이 전설의 교훈적 가치는 당연히 영지민을 아낀 고다이버 백작부인의 선한 마음씨와 자기 희생을 배우는 데 있다.

그러나 이 교훈이 청자의 마음에 보다 강렬하게 남게 하는 요소는 바로 '피핑 톰'의 존재다. 선행과 옳은 일조차 성적 호기심을 충족하는데 이용하려는 관음적 욕망은 많은 이들이 경계해야 할 요소다. '피핑 톰'의 고사는 이 관음적 욕망이,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독소처럼 내재하고 있음을 반증한다.

최근 유력인사들의 성추행 및 성폭행에 의한 몰락의 향연, 그리고 피해 사실에 대한 자극적인 언론 보도는 대중에게 분노와 쾌감이 묘하게 혼합된 흥분과 카타르시스를 전달한다. 미투 운동이 우리들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피핑 톰'을 일깨우는 절호의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몰락하는 자와 폭로하는 자: 피해자가 겪는 2차 피해의 본질

작금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불현듯 오래 전 의도치 않게 관람한 영화의 서사가 떠올랐다. <연애의 목적>(2005)이라는, 실제 서사 내용과 지극히 어울리지 않는 자가당착적 제목이 붙은 이 작품이 기억 속에 남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관람 당시에 느꼈던 진득한 불쾌감 때문이다.

영화의 서사는 그리 특별하지 않다. 한 고등학교 여성 교육실습생이 연애라는 명칭으로 포장된 권력형 성폭력에 넘어가 주는 척 하다가 결정적 순간 공개적인 폭로를 통해 성폭력 가해자에게 역공을 가하는 이야기다.

얼핏 통쾌해 보이는 서사를 담아낸 이 영화가 일부 관객들에게 상당한 불쾌감을 안겨주는 이유는, 권력을 가진 측에 의해 자행된 강압적 성폭력으로부터 출발된 범죄의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다소 격정적이고 서투른 방식으로 시작된 연애 사건으로 미화하는 데 있다.

연애의 목적
▲권력형 성폭력을 연애감정의 발로에 의한 행위로 둔갑시키는 영화 <연애의 목적>.
작중 고등학교 영어과목 정교사 유림(박해일 분)은 새로 온 교생 홍(강혜정 분)에게 연애감정을 내세우며 막무가내로 접근하다, 수학여행을 기점으로 그녀를 성폭행한다. 가해자 유림은 이 시점에 이미 같은 학교 여교사 희정(박그리나 분)과 결혼을 전제로 교제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교생 홍은 이것이 자신에 대한 범죄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알고 있지만, 정교사 유림이 자신의 실습 평가를 담당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소리를 지르거나 적극적으로 거부하지 못하고 소극적으로 성관계 요구를 거절하다 피해자가 되고 만다.

이 시점부터 영화는 두 사람의 관계를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 관계가 아닌 연애 당사자 관계로 미화하기 시작하는데, 그 자세한 과정이 어떠하든 권력형 성폭력을 쌍방간 연애감정의 출발점으로 지목하는 서사는 여기에 공감하지 못하는 관객들의 심사를 심히 불편하게 만든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한재림 감독은 이런 불쾌감 유도를 의도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성폭력을 연애 감정의 발로에 의한 행위로 미화하는 이들의 작태를 역설적으로 비판하기 위해, 감독은 권력형 성폭력을 저지르는 자들이 주로 변명으로 내놓는 연애 감정과 성폭력을 영화 속에서 '제대로' 뒤섞어놓는 과감한 결정을 내렸을지 모른다.

상당히 불쾌한 강압적 성관계로 출발한 유림과 홍 두 사람의 관계는, 점차 피해자 홍이 겪은 과거의 아픔을 달래주려는 가해자 유림의 '순정'을 바탕으로 연애로 둔갑한다. 홍 역시 이렇게 발전되는 상황이 싫지 않은 듯 결국 적극적으로 유림의 접근에 호응하는 입장으로 전환한다. 이로써 <연애의 목적>은 성폭력과 연애 감정의 경계를 흐려버리고 만다.

여기서 영화는 이런 도덕적 경계의 희석을 보완하려는 듯, 반전 결말을 제시한다. 유림과 홍 두 사람의 연애감정이 발전되면서, 주변 교사들과 학생들은 둘의 관계를 알아차리게 된다. 교사들은 약자 입장인 교생 홍보다 강자 입장이자 원래의 동료인 정교사 유림과 그의 애인 희정의 편을 든다. 그들은 홍이 유림을 유혹했다는 식으로 결론을 내고 홍을 파직하려 한다.

이에 구석에 몰린 홍은 교사들이 모두 보는 앞에서 유림이 저지른 성폭행을 폭로한다. 결국 홍에게 집중됐던 혐의는 해소되고, 그녀는 교생 실습 과정을 무사히 마쳐 정교사가 된다. 성폭력을 저지른 유림은 파직되어 영세한 학원을 전전하는 강사로 전락한다.

연애의 목적
▲영화 속 성폭력 2차 피해로 인해 궁지에 몰린 홍의 범죄사실 폭로 장면.
여기까지만 본다면 그나마 괜찮은 방식으로 정의가 실현된 것 같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감독은 재차 이 성폭력 가해자-피해자 관계를 연애 감정의 얽힘으로 둔갑시키는 기교를 발휘한다. 영화는 정교사가 된 홍이 볼품없는 처지가 된 유림을 찾아가 다시 연애를 시작하는 것으로 결말을 맺는다.

이로써 이 영화는 두 가지 토끼를 모두 잡아내는 성과를 얻는다. 하나는 역설적인 방식으로 권력형 성폭력과 관계된 한국의 부조리한 현실을 비판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런 권력형 성폭력 속에 담긴 남녀 간의 미묘한 성적 문제를 관객 앞에 자세하게 그려냄으로써 관객들이 가진 관음적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 영화는 개봉 당시 심각한 수준의 성적 코노테이션을 부각시키는 장면과 대사로 세간에 화제가 된 바 있다. <연애의 목적>은 성폭력과 그로 인한 유력자의 몰락이라는 사태가 제3자의 마음 속에 숨어 있는 '피핑 톰'을 일깨운다는 것을 알고, 이를 흥행 전략으로 적극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현재 한창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바라보면, 현실판 <연애의 목적>이 아닌가 할 정도로 양측 간에 절묘하게 오버랩되는 특성들이 발견된다. 우선 유력 정치인, 유명 예술인과 연예인, 그 외 여러 교직자들의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폭로가 주로 '궁지에 몰린' 피해자들에 의해 수행된다는 점이 첫 번째 공통점이다.

폭로자들은 원래의 성폭력 피해 외에도, 가해자나 주변 인물의 위압에 의한 2차 피해 때문에 궁지에 몰리는 경우가 다반사다. 성추행을 당한 것으로 알려진 검사는 은폐 압력과 인사상 불이익을 받는 데 지쳐 방송 폭로에 나섰고, 성폭행을 당했다는 정치인의 비서관 역시 주변인들의 은폐 압력과 지속되는 성관계 요구 때문에 절망하는 심정으로 방송 폭로에 나섰다고 증언했다.

영화와 현실 사이의 두 번째 공통점은 가해자들이 천편일률적으로 내놓는 변명, 즉 자신들의 행위가 '서로 간에 감정적 교류에 의한' 혹은 '합의에 의한' 신체적 접촉이나 성관계였다는 변명이다. 이는 향후 경찰 및 검찰의 조사 과정에서 상당한 공방과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

세 번째 공통점은 이를 곁에서 바라보는 관객과 대중의 태도다.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는 유림과 홍, 그리고 교사들 사이의 신경전 및 홍의 폭로 현장을 목격하는 학생들의 태도가 묘사되는데, 이들은 마치 축제를 만난 양 이 스캔들을 떠들썩하게 즐긴다. 이들의 모습은 마치 관음적 욕망을 해소할 기회를 얻은 현 시점의 언론 및 그에 부화뇌동하는 대중과 유사하다.

그러나 이 시점에서 분명하게 인지해야 할 사실이 있다. 현실은 영화보다 추하고 '불쾌'하다는 점이다. <연애의 목적>은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연애감정 발전 과정을 묘사함으로써 추악한 범죄를 '유쾌한' 연애담으로 변모시킨다. 그리고 이를 통해 성폭력이라는 사태를 바라보는 제3자의 마음 속에 성적 환상의 유발을 자극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고 있는 미투 운동을 이런 방식으로 바라보는 것은 심각한 현실왜곡이다. 미투 운동으로 폭로된 현재의 상황은 엄연한 죄악의 현실이고, 심판을 받아야 할 불의의 사태이며, 피해자들에게 진심 어린 위로와 격려를 전달해야 할 책무를 일깨우는 계기이기도 하다.

이런 시점에 미투 운동을 '미투 극장'으로 만드는 일부 언론과 대중의 자가당착적 행태는 보는 이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이는 피해자들이 대중으로부터 입는 거대한 2차 피해다.

미투
▲미투 운동.
미투 운동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들 가운데는 이 운동이 담아내고 있는 원래 의의에 어울리지 않는 것들도 존재하고, 이는 새로운 양태의 2차 피해를 양산한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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