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복협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3월 한국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진행중이다. ⓒ김신의 기자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이정익 목사, 이하 한복협)가 3월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종교교회(담임 최이우 목사)에서 ‘한·중·일을 중심한 동아시아의 상황과 기독교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월례 조찬기도회와 발표회를 개최했다.

기도회에서 김상복 목사(한복협 자문위원, 할렐루야교회 원로)가 마태복음 5장 9절과 고린도후서 5장 18~19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했고, 이상형 사관(한복협 중앙위원, 전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총장)이 ‘한국교회의 영적 각성’을 위해, 정주채 목사(한복협 중앙위원, 용인향상교회 원로)가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 각각 기도했다.

김상복 목사는 죄성과 죄악으로 인해 갈등과 전쟁으로 얼룩진 ‘평화 없는 세상’에 대해 언급하며 “기독교(Christianity)는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고, “‘평화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화목제물로 십자가에서 희생함으로 하나님과의 평화, 근본적 영적 평화를 회복했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은 평화를 모르(롬3:17, 렘6:14·8:11)”고, “평화는 하나님에게서 오기에(빌4:7,9, 엡2:14~15, 갈5:22, 민6:36, 사26:3·48:18, 눅12:51, 요14:27, 시29:11) 하나님의 자녀들이 한중일 간에도 강대국을 믿는 것이 아니라, 받은 직분대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해 기도하고 하나님이 주시는 평화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시34:14, 벧전3:11, 고후5:19, 딤후2:22, 히12:14, 골3:15, 시122:8, 살전5:13)”고 했다.

◈ 동아시아의 기독교 전파

첫 번째 발표를 맡은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는 ‘한·중·일을 중심한 동아시아의 역사와 기독교 신앙’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이만열 교수는 “중국과 일본은 한국보다 훨씬 빨리 기독교와 관련을 맺었다”며 중국과 일본에 기독교가 전파된 과정, 그리고 한국에 미친 영향을 소개했다.

중국은 당(唐, 618~907) 제국 초기(365)에 페르시아로부터 동방기독교의 일파인 경교(景敎)를 받아들인 후 천주교(1581)와 개신교(1842)를 받아들였다. 이후 1872년 요동반도 영구 우장에 도착한 로스(John Ross)에 의해 1882년 한글로 번역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은 한국 복음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일본의 경우, 자비엘(Francisco de Xavier)이 천주교(1549)를 전파, 미국과 서양의 개항으로 개신교(1853)가 들어왔고, 한국에 온 선교사 아펜젤러와 언더우드의 경우도 일본의 도움을 받은 점을 들었다.

한국은 중국 당(唐)나라의 경교가 신라에 전파됐다는 주장이 있지만, 기록으로 확증되지 않는 상황이다. 천주교는 일찍이 서학이란 이름으로 소개됐고, 신앙생활은 이승훈, 권신일, 정약종 등에 의해 18세기에 본격 시작됐다. 신해(1791), 신유(1801), 기해(1839), 병인(1866)년에는 큰 박해를 겪었다. 개신교는 박해가 심했던 20년 정도 후인 1885년 아펜젤러와 언더우드 선교사가 내한하며 선교가 본격화 됐다. 이에 앞서 1882년 중국에서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이 번역되며, 선교사들이 오기 전인 1884년에 국내엔 이미 수백 명의 세례교인이 있던 상황이었다.

이에 이만열 교수는 “천주교의 피 뒤에 한국에 개신교가 왔다. 한국의 개신교는 천주교에 큰 은혜를 입었다”고 했다. 또 “기독교가 수용될 당시 한국은 대내적으로 사회개혁, 대회적으로는 제국주의 침략에 맞서야 했던 시기였기에 기독교는 민족주의 운동과 연결돼 발전됐다”고 했다.

한복협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 3.1운동과 기독교

이어 이만열 교수는 3.1운동 당시의 배경과 상황, 의의 등에 대한 설명을 전했다. 이만열 교수는 “한국의 3.1운동은 전승국 제국주의자들의 의도에 개의치 않고 세계사적 반전을 기하려 했고, ‘민족자결’이란 일종의 복음으로 적용시켜 궐기한 최초의 봉화”라며 “남녀노소, 지역과 계층, 종교와 이념 등을 뛰어넘은 중요한 항일독립운동이자, 초기 운동 주체가 종교인들이기에 종교사적 의의가 클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이란 민주국가를 출발시킨 것으로 정치사적 의미도 매우 크다”고 평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서 3.1운동 정신을 계승했단 문구가 빠진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듯 3.1운동으로 대한민국을 세운 것”이라고 했다.

3.1운동 당시 한국은 일제로부터 언론, 결사, 집회의 자유와 정치, 사상의 자유를 박탈 당했고, 생존권을 위협받던 상황이었다. 1차 세계대전 후 ‘민족자결 원칙’으로 피압박민족이었던 유럽 8개국 나라가 독립을 가졌지만, 이것은 패전국 식민지에만 적용됐을 뿐, 한국은 ‘민족자결 원칙’이 적용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이 교수에 따르면 거사일자가 3월 1일로 정해진 것은 3월 3일인 고종의 장례와 관련이 있다. 장례를 치르기 위해 많은 백성들이 서울로 모였기 때문이다. 3월 2일은 주일이었기에, 이들을 배려해 3월 1일로 정해졌다. 3월 1일 낮 12시 선언서에 서명한 민족대표들이 태화관에 모였다. 33인 중 지방에 있던 4인(길선주, 김병조, 유여대, 정춘수)을 제외한 29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했고, 총독부 경무총감부에 독립선언을 통고했다. 이때 33인 중 16인이 기독인이었다.

이날 만세 운동을 일으킨 곳은 서울을 비롯해 평양, 진남포, 정주, 안주, 의주, 선천, 원산 등이었다. 운동의 주동세력이 뚜렷한 지역이 311개로 나타났는데, 기독교 78지역, 천도교 66지역, 기독교와 천도교 합작 지역 42지역인 점을 들어 교세를 주목할 만 했다.

통계에 따르면 1919년 3~4월 1,214회 시위에 110만명 참가, 박은식의 <한국독립운동지혈사>에는 1년간 1천만 명이 참여했다고 증언한다. 또한 그 해 46,948명이 체포·투옥, 2만명이 미결수·기결수로 수감, 15,900명이 부상, 7,500여명이 살해 당했고, 47개 교회와 2개의 기독학교, 715채 한국인 민가가 소각 당했다. 당시의 한국 인구가 1,600만 정도, 기독교인은 인구의 1.3~1.5%였던 점을 감안할 때 주동세력면에서 25~38%가 기독교, 체포·투옥면에서 17~22%의 비율이 기독교인일 정도로 기독교의 참여가 적극적이고 광범위했다.

마지막으로 이만열 교수는 “초등학교 시절에 다윗과 골리앗, 모세, 다니엘의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며 “<독립단 통고문>을 통해 3.1운동을 신앙고백 위에서 신앙 운동과 함께 진행시킨, 민족과 신앙을 일치시킨 것을 엿볼 수 있다”고 전했다.

한복협 월례 조찬기도회 및 발표회
▲윤영관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발표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동북아시아의 특징과 현황, 그리고 북핵

두 번째로 ‘한·중·일을 중심한 동아시아의 평화와 기독교 역할’이라는 주제로 윤영관 교수(서울대 명예교수, 전 외교통상부 장관)가 발표했다.

윤영관 교수는 “동아시아 중 동북아시아는 타 지역에 비해 독특하다(Asian Paradox)”며 ‘경제교류가 활발하면 국가 관계가 평화롭단 것이 일종의 가설인데 한중일은 상호 평화로운 관계가 아니고 상호 분쟁이 많은 점’, ‘국가주의, 민족주의 경향이 강한 점’, ‘역사분쟁, 영토분쟁이 많고 안보적 긴장이 고조되는 점’, ‘현안으로 북핵 위기, 동중국해분쟁, 독도분쟁’이 있음을 예시로 들었다.

이어 ‘중국의 권력 상승’, ‘지역패권국으로 군림하기 위해 미국의 영향력을 밀어내려는 중국의 노력’, ‘한반도의 한미동맹 약화를 시도하려는 중국’, ‘중국을 견제해 과 미일동맹 강화를 하는 일본’, ‘반중국 국제연대 형성을 위한 노력’, ‘한미, 미일동맹으로 중국 견제를 시도하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 등장’을 비롯해 동북아 세력 경쟁 현황을 살폈다.

◈ 평화를 위한 교회 역할

마지막으로 윤영관 교수는 “대단히 어려운 주제”라며 평화를 위한 교회, 기독교의 역할’에 대한 발표를 전했다.

윤영관 교수는 “오늘 주제 말씀인 ‘화평케 하는 사명’을 크리스천들이라면 다 부여 받았다. 앞서 기독교 사상가들이 복음을 상황 속에 녹여내는 역할을 했다고 했는데, 굉장히 중요한 시사점”이라며 “복음적 입장에서 어떻게 대응해야 할 지 처절할 정도의 고민과 성찰이 있어야 한다. 중국의 교회와 일본의 교회와 연대하고 협력하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윤영관 교수는 “북한 병사가 탈출을 했는데, 수술해보니 기생충이 수없이 나온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가 침묵을 지켜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며 북한 주민들을 향한 인도주의적 지원과 탈북민의 인간다운 삶 지원을 위한 한중간 교회 연대, 탈북민에 대한 국내 인식개선 및 지원을 독려했다.

한편 이날 모임은 총무 이옥기 목사(UBF)의 광고, 김명혁 목사(한복협 명예회장, 강변교회 원로)의 축도로 마무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