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칼럼] 죄와 의의 공공성

입력 : 2018.03.09 09:36

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하나님의 진노를 일으킨 핵심적 죄는, 전 인류를 저주에 빠뜨린 아담의 원죄(original sin)입니다. 이 원죄가 인류 죄책의 핵심입니다. 이에 비해 자범죄(actual sin)는 원죄를 유전 받은 타락한 인간에게 따르는 복속적인(subjective) 죄입니다.

비유컨대 썩은 거름더미에 구더기가 생기듯, 원죄에 자연발생적으로 따르는 결과물입니다. 그렇다고 자범죄를 과소 평가해도 좋다는 말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자범죄의 복속성과 원죄로부터 발생되는 불가항력성을 들어 죄의 남용을 정당화하나, 자범죄의 복속성이 죄를 면책받게 하지 못합니다.

이와 반대로 자범죄를 개인의 책임 영역 아래 두려는 이들도 있습니다. 원죄는 그리스도께 대속시켜 다 해결됐고 자범죄만 개개인에게 남겨졌기에, 인간에게는 오직 자범죄만이 관건이며 그것으로 천국과 지옥이 결정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자범죄를 해결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원죄와 자범죄를 분리시키고, 죄책을 나누는 것은 죄의 연속성과 일관성을 부정하는 것일뿐더러, 그리스도의 대속을 불완전한 것으로 만드는 이단적인 가르침입니다.

원죄는 원죄대로, 자범죄는 자범죄대로 두부 자르듯 나눌 수 없습니다. 사실 인류가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았다는 것은, 자범죄의 경향성을 유전받았다는 뜻입니다. 자범죄는 숨겨진 원죄의 실상이고, 원죄는 자범죄의 경향성을 통해 증거됩니다. 원죄가 보이지 않는 뿌리라면, 자범죄는 그것의 나타난 열매입니다. 따라서 원죄와 자범죄, 원죄책(liability for original sin)과 자범죄책(liability for actual sin)을 분리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리스도가 원죄를 대속했다면, 당연히 인과관계에 있는 자범죄도 함께 대속되며, 자범죄만 따로 남겨질 수 없습니다. 성경은 원죄·자범죄 구분 없이 일괄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받는다고 말합니다.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이런 자범죄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원죄의 엄중성은 조금도 약화되지 않습니다. 이는 하나님을 가장 모독하고 인간에게 저주를 갖다준 것이 원죄이기 때문입니다.

원죄의 엄중성은 먼저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완전무결자의 죄라는 점에서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을 닮았다는 말은, 단지 막연하게 하나님의 인격을 닮았다는 정도나, 도덕적으로 무흠하다는 정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신적 속성(신성)인 거룩, 의, 영광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무죄했을 때의 아담과 하와는 서로를 볼 때마다 하나님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모습을 완벽하게 반영했습니다. 누가 하나님에 대해 가르치고 설명해주지 않아도 그들 스스로가 하나님을 보여주었습니다.

'하나님 형상(image of God)'이었던 그들은 말 그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하나님(real image)의 반영(image)이었습니다.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으로 세상에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도, 인간의 하나님 형상됨의 존귀를 보여주었습니다.

지혜와 능력 면에서도 아담은 하나님 버금갔습니다. 아담이 동물들에게 이름을 작명해 주고(창 2:19-20) 세상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한 것은(창 1:28), 그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을 공유했음과 하나님 대행자의 위치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또한 무죄한 시절 그들이 죽음을 알지 못한 것은, 영생불사하시는 하나님 지복(딤전 6:16)에의 참여자 였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하나님 버금가는 존귀한 지위를 가진 아담이었기에 그가 범한 원죄는 더할 나위 없이 엄중한 것이었으며, '왜 완전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면 죄를 속할 수 없는가'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완전무결한 하나님 형상자가 범한 원죄를 점없고 흠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피로 속하는 것은(벧전 1:18-19) 당연합니다. 옷같이 낡아지는 죄인의 의(사 64:6)는 해당사항이 없습니다.

원죄가 엄중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의 순종 여부에 의해 전 인류의 운명이 결정되는, 인류의 머리로서 범한 공적인 죄였기 때문입니다. 그가 범죄했을 때 온 인류도 더불어 죄와 사망에 빠졌습니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이 아담의 범죄는, 부득불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 되도록 하는(롬 5:19)"두 번째 머리의 출현을 요청했습니다. 그가 바로 마지막 아담 예수 그리스도였습니다(고전 15:45). 아담이 인류에게 그의 죄를 전가해 주었듯, 그는 택자들에게 자신의 의(義)를 전가해 주었습니다(롬 5:18-19). 여기서 우리는 인류의 운명은 개개인 자신에 의해서가 아닌, 인류의 두 머리에 의해 결정되게 하신 하나님의 경륜을 봅니다.

곧 인류를 타락에 빠뜨렸던 '원죄(原罪)'나 인간을 구원하는 '원의(原義)'는, 개개인의 행위와는 무관하게 전가되는 공적인 것이었습니다. 원죄자(原罪者) 인류의 첫 머리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났다는 사실 때문에 인류는 죄인이고, 원의자(原義者) 둘째 머리 그리스도께 믿음으로 연합됐다는 사실 때문에 의인되는 것이어서, 인간이 죄인 되고 의인되는 것은 사사로운 개인의 일이 아닌 공적인 것입니다. 여기서 죄와 의의 공공성 개념이 등장합니다.

이 공공성 개념이 사실 기독교를 이해하는 키포인트입니다. 예수를 믿어 구원받은 기독교의 근본 도리를 비롯해 부활, 영생, 양자, 성령의 부어짐도 모두 머리인 그리스도와의 연합 속에서 일어나는 공적인 것입니다. '죄와 의'가 아담의 원죄(原罪)와 그리스도의 원의(原義)에서 전가되도록 한 공공성 원리는, 전가 받은 공적인 의가 개인의 죄나 의에 의해 손상받거나 완전해지지도 않게 합니다.

원죄(罪)와 원의(義)가 인간에게 전가해 준 '죄와 의'의 내용 역시 공공성 개념을 담지 합니다. 아담의 원죄는 개인의 도덕성 같은 사사로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기하는 공적인 것이었습니다(사실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이 하나님이 되려고 한 공적인 도발이었습니다(창 3:5). 더구나 그 도발이 전 인류를 등에 업은 인류의 머리로서 했기에, 전 인류적인 도발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의(原義) 역시 인간을 하나님을 향해 사는 공적 존재로의 회복을 갖다 주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원의를 전가받은 택자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누리며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마 6:33)" 공적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그들은 자신을 하나님을 위한 공적 존재로 세우는데 관심을 갖습니다. 그의 추구하는 바 신앙의 목표도 개인의 사사로운 행복이나 안녕보다는 사람을 하나님과 화목시키고(전도)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공적인 일에 연루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죄'를 사사로운 윤리적 개념으로, '구원'을 윤리성 회복과 개인의 구복으로 설정하는 것은 '죄와 의'에 대한 공공성 개념의 부재에서 왔습니다. 이런 공공성 개념이 결핍된 사람들의 신앙은 대개 수양 종교 아니면 기복종교의 모습을 갖습니다.

사실 마귀가 사람들을 미혹하려는 핵심 사안도 신앙에서  공공성을 배제시키는 것이었습니다. 마귀는 아담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 공영적(公營的) 존재에서 떠나 자기를 떠받드는 자기 경영적(經營的)인 사사로운 존재가 되도록 미혹했습니다(창 3:5).

베드로에 대해서도 마귀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하나님 공영적인 태도에서,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 자기 경영적인 사람으로 변질되도록 미혹했습니다(마 16:23). 오늘도 마귀가 인간을 미혹하여 타락시키려 하는 내용은 인간을 무슨 엄청난 도덕적 파탄에 빠뜨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엔 무관심하고 자기 배만 위하는 사사로운 삶에 연루시키는 것입니다(롬 16:18).

반면 그리스도의 원의를 전가받은 중생한 성도는, 사사로운 자기 경영적(經營的)인 삶에서 하나님 공영적인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열병에서 고침을 받은 베드로의 장모가 일어나 즉시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수종들었듯(마 8:15), 죄의식과 자기 연민에 매몰돼 섬처럼 고립어 살았던 사마리아 여인이 구원받은 후 전도자가 된 것처럼(요 4:28-29) 하나님 공영적(公營的)인 사람으로 변모됩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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