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언론회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유감”

이대웅 기자 입력 : 2018.03.05 18:35

“역사를 왜곡,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 주장

문재인
▲3·1절 행사에서 만세를 부르고 있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 ⓒ청와대 제공
한국교회언론회는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유감'이라는 제목으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왜곡을 지적하는 논평을 5일 발표했다. 다음은 논평 전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 유감
역사를 왜곡, 퇴행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 선조들이 1919년 3월 1일 선포한 '독립선언서'는 패자(敗者)의 비참함이나 약자의 비굴함에서 출발하지 않고, 오직 자랑스러운 반만년의 유구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 독립국가의 자주민으로서, 일제의 침략주의를 꾸짖고 우리 민족이 나아갈 대의(大義)를 천명한 것으로, 일본을 원망하거나 우리 자신을 비하하거나 또는 과장하지도 않았다.

즉 당시의 처지를 절제된 겸손함으로 받아들임과 동시에, 내일에 대한 자신감이 함께 배어 있는 선언문이다.

이 선언문은 1919년 3월 1일 이후, 일제 지배 시기에는 물론, 오늘에 이르기까지 99년간을 국민들의 마음에 새겨진 희망문(文)이며, 결기의 명문장으로, 또 다시 99년이 흘러도 빛바래지 않을 가치를 담고 있다.

독립된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매년 3·1절을 민족의 슬픔을 떨치고 일어난 선조들의 의기를 기념하고, 새로운 각오와 미래로 나아갈 길을 밝히는 기회로 삼아왔다.

그 역사적인 기념식에서 국가 최고 수반인 대통령의 기념사는 늘 중요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금번 3·1절에 발표한 대통령의 기념사는 귀와 눈을 의심케 하는 내용으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첫째는 역사사실 왜곡(歷史史實 歪曲)의 문제이다.

금번 3·1절 기념사는 정치적 목적을 위한 독립 운동사 해석이라는 논란과 함께, 국제적인 신뢰의 문제가 발생할 것이다.

우리나라 영토 내에서 그리고 우리 국민들 간에, 우리의 역사를 조금 다르게 표현했다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겠으나, 국제적 관계성이 있는 역사의 왜곡이 위험한 것은, 국제적 신뢰의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 대통령은 이렇게 말했다.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선조들이 '최후의 일각'까지 죽음을 무릅쓰고 함께 싸워 이뤄낸 결과입니다."

그리고 한 번 더 강조하기를, "우리는 더 이상 우리를 낮출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가 있습니다"라고 했다. 과연 광복은 결코 밖에서 주어진 것이 아니고 우리의 노력만으로 된 것인가? 아니다. 명백히 밖으로부터 주어진 것이, 역사적 팩트(fact)이다.

우리 선조들의 독립운동, 무장독립투쟁은 자랑스러운 역사인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1945년 8월 15일의 광복은 일본이 미국과 연합군에게 패망함으로서 얻어진 것으로, 안에서라기보다 밖으로부터 주어진 광복인 것이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제시하면, 독립군의 활동은 1930년대 들어서서 만주에서 그 활동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1921년에 발생한 '노령 자유시 참변' 사건으로 조선 독립군은 무장해제를 당했으며, 그 후 일본 관동군 백만에 달하는 대군이 만주에 주둔함으로 인하여, 중국 내륙에까지 일본의 감시와 독립운동가 색출이 이어져, 우리 독립군은 설 자리가 전혀 없게 되었다.

그럼, 대통령의 기념사대로 "우리 힘으로 광복을 만들어낸 자긍심 넘치는 역사"라고 한다면, 어찌하여 1945년 9월 2일 미국 전함 미주리(Missouri)함상에서 시행된 종전선언 조인식에 승전국 대표 가운데 우리 선조는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는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을 멸망시킨 연합국의 승리로 광복된 지 73년 만에, 그 명백한 역사를 어찌 국가적 공식행사이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의 기념사에서 왜곡할 수 있는 것인지 놀라울 따름이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하므로 결과적으로는 대통령의 말이 거짓말이 된다면 국정수행에 막대한 장애가 오게 되는 것은, 그 말의 신뢰성에 문제가 제기 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국제적인 신뢰관계가 발생하게 된다. 우리가 일본의 정직하지 못함을 지적하려 한다면, 우리가 그들보다 더 정직해야 하지 않겠는가?

둘째는 퇴행적 역사관(退行的 歷史觀)의 투영이다.

3·1절 기념사를 작성하려면 먼저 99년 전, '3·1 독립선언서'를 면면히 살펴보았어야 했다. 그 중요한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丙子修好條規以來時時種種의金石盟約을食하얏다하야日本의無信을罪하려안이하노라學者는講壇에서政治家는實際에서我祖宗世業을植民地視하고我文化民族을土昧人遇하야한갓征服者의快를貪할ᄲᅮᆫ이오我의久遠한社會基礎와卓犖한民族心理를無視한다하야日本의少義함을責하려안이하노라."
"병자수호조약 이후, 시시때때로 굳게 맺은 약속을 먹어 버렸다 하여, 일본의 신의 없음을 탓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학자는 강단에서 정치가는 실생활에서 우리 조상 대부터 물려받은 이 터전을 식민지로 삼아서, 우리 문화민족을 마치 미개한 인들처럼 대하여, 한갓 정복자의 쾌감을 탐낼 뿐이요. 우리의 영구한 사회의 기초와 뛰어난 민족의 마음가짐을 무시한다고 하여, 일본의 속 좁음을 책망하려 하지 아니하노라."

비록 국권은 일본에게 빼앗겼으나, 정신과 의기는 제국의 침략주의를 충분히 제압하고도 남음이 있는 대범함과 넉넉함의 독립선언서인데, 어찌 99년이 지난 오늘 대통령의 기념사는 선조들의 독립선언서 정신에 못 미치는 역사 퇴행적 사고로, 국민과 세계 앞에 발표하고 있는 것인지, 이는 국민을 부끄럽게 하는 것이다.

또 다른 것도 문제이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도 가해자인 일본정부가 '끝났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전쟁 시기에 있었던 반인륜적 인권 범죄행위는 끝났다는 말로 덮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역사일수록 그 역사를 기억하고 그 역사로부터 배우는 것만이 진정한 해결입니다"라고 말했다.

위안부 문제는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분통터지고, 용서하기 어려운 참담한 일이다. 그러나 한-일 양국 간의 합의가 피해자인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부족한 점이 있어도, 이제는 그 부끄럽고 원통한 비극은 당시 우리가 힘이 없어서 당한 것이라는 사실을 국민들 각자의 마음 속에 새겨야 한다.

우리가 힘이 없어 당시 우리의 누이, 고모, 이모를 지켜드리지 못한 그 죄송함과 비통함을 국민 각자의 마음에 품고, 그 분들을 위로해 드리고, 그 '어르신들의 희생이 다른 많은 국민들의 희생을 대신 하신 것입니다' 라고 진심으로 위로해 드리고, 얼마 남지 않은 그 분들의 시간들을 우리의 비용으로 극진한 대접을 다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위안부 할머니들은 국가유공자로 대우해 드림이 마땅하다.

이 일을 밖으로는 의연하고 안으로는 국민 각자 마음 속에 칼처럼 아픈 교훈으로 삼아야지, 어느 때까지 남의 탓만 하려는 것인가. 이는 퇴행적 역사관으로 피해 받으신 어른들의 아픔을 어루만져 드리기보다, 상처와 아픔을 다시 꺼내는 것이며, 대한민국 국민들을 세계 2류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셋째는 비전 제시에 위험성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는 앞으로 광복 100년으로 가는 동안, 한반도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합니다. 분단이 더 이상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한반도의 통일, 즉 남한과 북한(대한민국과 조선인민민주주의공화국)이 하나로 통일돼야 한다는 것은 민족역사의 당위이다. 그렇다 해도 통일지상주의(統一至上主義)가 아니라, 반드시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켜줄 수 있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통일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기념사에서 대통령은 어떤 가이드라인 제시도 없이, "한반도 평화공동체, 경제공동체를 완성해야 합니다"라고 발표했다. 이 말은 자칫하면, 매우 무모하고 위험이 따르는 일이 되지 않나 염려하는 국민들이 많다.

게다가 "분단이 더 이상 우리의 평화와 번영에 장애가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라는 말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많은 국민들이 의혹의 눈으로 바라보듯,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양보하고, 인민민주주의 체제도 관계없다는 것인가?

99주년이 되는 3·1절 기념식에서 행한 대통령의 기념사는, 역사 왜곡과 퇴행적 역사관, 그리고 국가 비전을 제시함에 있어 위험성을 함께 내포하고 있는 주장으로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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