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사순절이 점점 깊어가고 있습니다.  매년 사순절은 자신의 신앙을 점검하는 귀한 절기입니다. 물론 일부 신앙인들에게는 무덤덤하게 지나가는 행사로 묻히는 경우도 적지 않아 아쉽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올라 가사  기도하실 때에 용모가 변화되고 그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나더라, 문득 두 사람이 예수와 함께 말하니 이는 모세와 엘리야라(눅 9:28-30)".

오늘 복음서에서 만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함께한 제자들도 모두 겁에 질릴 정도로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는 우리도 장차 천국에서 그렇게 변화되리라는 것을 미리 암시해 주는 참으로 놀랍고 희망찬 기쁜 소식입니다.

주님께서 변모하신 것처럼, 주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도 변화를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오늘날 기독교의 현실을 보노라면 안타까움이 늘 마음 한 구석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올해 50년 희년을 맞는 어느 교회에서는 성도들을 두 편으로 갈라,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 성도들은 예배당에도 들어가지 못하도록 쇠사슬로 문을 걸어 잠그고, 덩치가 큰 젊은 집사들을 앞세워 교회 입구에서 철저히 감시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예배를 방해한다는 것입니다. 어처구니없는 변론입니다. 오히려 그들이 예배를 방해하는 것이 아닐까요?

2009년 11월 당회원 전원 합의로 정해진 65세 정년을 지금까지 아무 탈 없이 잘 지켜 왔지만, 정작 본인들이 합의를 스스로 깨고 70세로 연장하려 하여, 목사와 당회원 전원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습니다. 당회가 정하였더라도 제직회를 통과하고 공동의회를 열어서 성도들에게 이를 알려 투표로 결정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데, 공동의회를 열면 그들의 목적이 이뤄지지 않음을 알고, 이를 무시하고 자신들의 뜻대로 하려 했을 것입니다. 이를 저지하려는 성도들에게 이 같은 만행을 저지르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입니다.

지금 시대가 어떤 시대인가요, 로마 시대도 아니고, 조선시대도 아니며, 일제 강점기 시대도 아닙니다. 자유분방하게 자신의 의사를 나타내며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시대에, 오히려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옛 시대보다 못한 '갑질'을 하면서 세상 사람들로부터 손가락질과 조롱의 대상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로 인해 기독교의 복음 사업에 크나큰 지장을 초래하고 있음을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교회 안에서는 서로 화목해야 합니다. 이런저런 사람들의 다양한 성격과 사고가 모여 이루어진 공동체임을 먼저 알아야 합니다. 내 의견, 내 생각만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 아닙니다. 생각이 서로 다른 신앙인들이 그 지혜를 모으고 합의점을 찾아 일을 한다면, 참으로 아름다운 신앙인들이 모인 공동체가 될 것입니다.

더욱 희한한 일은, 교회 문제와 신앙인들을 지도해야 할 노회 재판국장과 소수 목사와 장로들이 그들의 편에서 재판을 한 것입니다. 믿지 않는 세상 재판보다 못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공명정대하게 재판할 것을 당부하셨는데, 이를 지켜 모범이 돼야 할 노회 재판국에서 주님의 당부를 무시하고, 그들 스스로 한쪽 저울만 사용하고 있으니 어찌 교회 지도자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교회 시위를 감시하던 경찰관의 말이 떠오릅니다. '교회가 세상을 위해 앞장서야 하는데, 오히려 세상이 교회를 이끌어 간다'고 했던 말이 문득 떠오릅니다. 이 경찰관의 말을 그냥 흘러들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당회든 노회든 총회든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이를 감시하며 화평하게 교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해야 합니다. 그러나 작금의 현실은 국회의원들이 의무 없이 특권만을 남용하여 나라의 변화가 없듯, 오늘날 노회나 총회에서도 오래 묵은 잘못된 법들을 개정하지 않고 자신들의 잇속만 채우므로, 100년 넘은 기독교가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안주해 있어 실로 개탄스럽습니다.

베드로가 주님께 아부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변화산상의 찬란한 순간을 포착하고 주님께 말합니다. "선생님! 저희가 여기에서 초막 셋을 짓고 지내면 좋겠다"고 제안합니다. "하나는 주님에게,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도록 하겠다"고, 주님의 마음을 읽지 못한 채, 매우 자신만만하게 건의를 합니다.

이런 베드로가 참 인간적이고 열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이는 나의 아들 곧 택함을 받은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눅 9:35)" 하는 음성이 나의 귀를 자극합니다. 그리고 산에서 내려오실 때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십니다. 그리고 구름은 곧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영광의 구름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급하고 열성적이고 다혈적인 베드로의 성격을 감안해 볼 때, 불평과 불만을 토하는 만큼 베드로의 마음에 미련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어쩌면 많은 성도님들도 신앙생활하면서 비슷한 경우를 종종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변화 하셨던 사건은 예수님의 영광, 곧 수난과 죽음을 겪은 후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되실 영광인 동시에, 재림에서 실현될 인자의 영광을 예시해 주는 참으로 신비하고 놀라운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근본 출발은 순종이어야 합니다. 제아무리 인격과 품성이 좋고 뛰어난 영성가라 해도, 그리고 열심히 활동을 한다 해도 거기에 순종이 함께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순종의 참 덕이 없다면 모든 신앙에는 실패 할 수밖에 없으며 모든 것이 허사로 변하고 마는 것입니다.

순종의 적인 아집과 고집, 교만은 반드시 끌어내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하나님과 호흡을 함께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순종에는 반드시 변화하는 모양이 갖춰져야 하며, 변화의 향기가 묻어나야 하겠습니다.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 여정은 반드시 예수님과 같은 거룩한 모습으로 변화가 이뤄지는 결과를 불러올 것임을 확실히 믿고, 나 자신부터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는 변화의 모습으로 바뀌어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거룩한 사순절에 있을 수 없는 사건들을 만들어내는 교회가 있으니 참으로 안타깝고 황당할 뿐입니다. 자신들의 이익에 부합되지 않고 욕구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핑계로 교회 문을 쇠사슬로 묶어놓고, 문 입구에서 성도들을 선별하여 입장케 하는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자행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불신의 불을 지피는, 앞으로 기독교가 건강하고, 밝게 나아가야 하는 길목에서 발목을 잡는 실로 참담한 사건에는 주님의 재림을 모르시는 분들 같기도 합니다.

목자와 몇몇의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이 사건에서는 초기 대응에서 너무나 주님의 방법과 관계없이 자신의 잇속을 챙기기 위해 벌어진 일임에도 전혀 반성과 회개의 기미는 보이질 않고,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음에 실로 한탄스럽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는 오직 신실함과 정직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했을 경우 과감히 시인하며 용서를 구할 수 있는 태도를 보여야 합니다. 자신이 한 말에는 분명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거짓말과 변명, 그리고 유언비어를 날조하여 상대방을 무너뜨리려 하는, 세상보다 못한 권모술수로 유혹하는 지도자들이 있음을 실로 개탄합니다.

블랙리스트를 통해, 상대를 시기하고 모함하여 있지도 않은 일들을 엮어 성도들을 현혹하기까지 하는 현재의 사태가, 어찌 하나님의 존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들의 목적을 채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하여 있을 수 없는 일들을 교회 안에서 만들어 내고 있으니, 진정 하나님의 사람들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믿음의 선배들이 피와 눈물과 땀으로 일궈낸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참으로 평화스럽게 예배드리며 자유분방하게 신앙생활을 행복하게 누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네스북에서나 기록될 법한 나쁜 사건들을 제작하는 교회 때문에 앞으로 복음 사업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음을 깨닫고, 지금부터라도 과감히 내려놓을 것은 내려놓고, 듣는 귀를 열어 소통과 연락으로 사태를 해결하여야 할 것입니다.

교회는 교회다운 변화로 사명을 이어가야 하며, 성도들은 말씀 안에서 날마다 슬기롭게 순종의 날개 속에, 서로 사랑하는 모습으로 이 세상을 향해 비춰야 할 것입니다.

성도들이 성도답지 못할 경우, 늘 분쟁과 문제만 제공이 되는 것입니다. 나를 내려놓고, 배려와 나눔의 성품을 품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오늘 날 우리가 해야 할 사명입니다.

유한한 이 세상에서의 옷을 벗고, 무한한 주님의 사랑이 가득한 그 곳, 천국에서 변화 될 우리 모습들을 품으면서 새로이 거듭나는 신앙생활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잔머리나 굴리고 자신의 잇속을 위해서만 고군분투하는 삶에서 변화를 받아, 오직 주님의 거룩한 품에 안기는 것만이 사탄의 쇠사슬을 끊고, 새로운 용모의 변화를 생산할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교회 가기를 즐거워하며, 저 높은 곳을 향하여 날마다 나아가는 아름다운 주님의 군병들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