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이프 오브 워터
▲2018년 아카데미상 13개 부문 노미네이트작 <셰이프 오브 워터>.
◈차별에 저항하는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

작년 미국 개봉 영화들 가운데 평단의 평이 극단적으로 우호적이었던 영화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첫 번째 부류는 압도적인 자본력, 기존의 팬덤, 그리고 홍보의 힘으로 평단을 제 편으로 끌어들인 영화들이다.

대표적 예로 <스타워즈 8: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The Last Jedi)를 들 수 있다. 허술하고 개연성 없는 서사에다 장면의 연출 역시 참신함을 찾아보기 힘들었음에도, 평단의 평가는 미국과 한국 모두에서 극단적으로 높았다. 디즈니의 자본력 및 홍보력을 절감할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평단의 절대적 호평을 받은 영화들 가운데 두 번째 부류에는 인종차별과 성차별을 예리하게 폭로하고 비판한 영화들이 속해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겟 아웃>(Get Out, 흑인 인종차별), <히든 피겨스>(Hidden Figures, 흑인 인종차별 및 여성차별), <로건>(Logan, 돌연변이 차별), <원더 우먼>(Wonder Woman, 여성차별), <빌리 진 킹>(Battle of the Sexes, 여성차별), <아토믹 블론드>(Atomic Blonde, 동성애) 등이다.

이 가운데 오늘 다룰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The Shape of Water)에 대한 평단의 평은 최고 순위를 달린다. 미국에서는 작년 12월, 국내에선 지난 주 개봉한 이 영화는 현재 2018년 아카데미상 작품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 여우조연상, 감독상, 음악상 등 14개 부문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어 있는 상태다.

약 1주 남짓 남은 3월 4일 시상식에서 독주가 예상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덩케르크>(Dunkird), <겟 아웃>, <더 포스트>(The Post) 등이 뒤를 좇고 있기는 하나, 노미네이트 부문 수는 물론이고 언론의 호평까지 감안하면 올해 아카데미상 최다 수상작은 <셰이프 오브 워터>가 될 가능성이 높다.

흥행도 준수하게 성공한 편이다. 제작비 1,950만 달러에 북미와 월드와이드 매출을 모두 합산해 1억 달러 조금 넘는 매출 성적을 거두었다. 통상 홍보비가 순 제작비와 비등한 수준으로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단 손익분기점의 2배는 넘겼다고 볼 수 있다.

대체 이 영화의 어디가 오늘날 미국인들과 영화 평론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우선 영화 전체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는 반차별의 메시지가 하나의 주된 이유였을 것이다. 이 영화는 흑인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여성에 대한 성차별, 냉전 시대에 만연했던 국적 및 진영 차별, 기술문명이 발달되지 않은 원시부족민과 그들의 정신문화에 대한 차별, 노인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에 대한 차별을 지탄의 대상으로 삼는다.

여기에 더해 동성애자에 대한 혐오감과 이종간 성적 결합에 대한 거부감도 사람과 사람, 그리고 사람과 생태 사이의 우호적 상호작용을 훼방하는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셰이프 오브 워터
▲부당한 차별을 일상적으로 감내하는 이들의 표상으로 등장하는 <셰이프 오브 워터>의 주동인물,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
이 영화가  '앞선 의식'을 갖추고 있다고 자처하는 평단의 마음을 사로잡은 두 번째 이유는, 이런 여러 차별적 사고가 기독교 세계관으로부터 유래되었다는 비판의 메시지를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작중 주요 반동인물(antagonist)로 등장하는 연구소 보안책임자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는 기독교적 가르침에 입각해 여러 양태의 차별을 정당화하는 대표적 사례로 소개된다. 그가 작중 인용한 성서 구절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차별을 정당화하는 그의 해석 방식을 보면, 이 영화가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는 각종 인종차별 및 성차별의 기원을 기독교 창조론으로부터 찾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차별과 포용, 둘 사이의 기독교적 경계는 어디인가?

스트릭랜드가 창세기를 해석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하나님이 그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고(창 1:26), 그리스도는 사람, 그 가운데서 남성의 몸으로 오셨으니, 백인 남성이 가장 온전하고 우월한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확고한 해석이다. 이런 해석을 바탕으로 그는 영화 내내 끊임없이 괴생물체와 주변인들을 강압적인 방식으로 다룬다. 다음은 스트릭랜드와 흑인 여성 청소부 간의 면담 중 대사다.

"우리는 주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지. 그것(괴생물체)이 주님의 형상을 닮았다고 보기는 어렵겠지?"

"주님이 어떻게 생겼는지 모르겠는데요."

"사람 모양이지, 그는 사람 모양이야. 나처럼. 혹은 당신처럼. 뭐, (남자인) 나랑 좀 더 비슷하다고 봐야겠군."

셰이프 오브 워터
▲기독교적 세계관을 바탕으로 모든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인물로 등장하는 스트릭랜드(마이클 섀넌 분).
작중 등장하는 괴생물체는 남미 오지의 한 강에서 포획된 것으로, 주변 부족민들에게 신으로 숭배되는 생물체다. 물 속에서 주로 호흡하고, 물 밖에서는 일정한 시간 동안만 돌아다닐 수 있으며, 사람처럼 팔과 다리가 있고 일정한 지성이 있어 사람과 상당한 수준으로 소통이 가능하다.

분명히 괴물에 가까운 모양이라 할 수 있는데,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에게는 동일하게 호의적으로 대응하고, 스트릭랜드와 같이 경멸을 표시하며 고문을 일삼는 자에게는 적대적으로 행한다.

작중 주동인물(protagonist)인 엘라이자(샐리 호킨스 분)는 심각한 언어장애를 가진 중년의 여성으로, 연구소의 청소부로 일하고 있다. 그녀는 스트릭랜드와 반대로 잡혀 온 괴생물체를 불쌍히 여긴다. 그녀는 장애인인데다 가족도 없는 고아이고, 외모로도 직업으로도 그다지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인 까닭에, 두어 명의 친구들을 제외하고는 사회적으로 거의 무시당하는 삶을 산다.

그런 엘라이자를 아무 조건없이 그저 마음으로 대하는 괴생물체에게 그녀는 깊은 사랑을 느낀다. 그녀는 스트릭랜드가 이 생물을 죽이려 하자 연구소에서 탈출시키는 모험을 감행한다.

어찌 보면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의 남녀 역할을 거꾸로 돌린 듯한 서사로, 종족을 뛰어넘은 애정이 줄거리의 핵심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이 애정을 둘러싼 세상의 편견, 차별, 경멸에 대한 문제의식 또한 사랑 이야기 못지 않게 중요하게 부각되는 것이 <셰이프 오브 워터>라는 작품의 특징이다.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 오브 워터>는 안데르센 동화 <인어공주>에서 남녀의 성별만 바꿔 놓은 듯한 동화적 서사를 선보인다.
영화가 전달하는 메시지는 간단하면서도 명료하다. 사람이 참된 호의와 우정과 사랑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존재라면, 그 어느 인종이나 종족에 속했든, 아니면 어떤 외형을 가졌든 차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견하기에 결코 잘못된 주장으로 보이지는 않는데, 문제는 이 영화가 권하는 다원성 포용의 범위가 기독교적 허용의 범위를 훨씬 넘어선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이것이 <셰이프 오브 워터>가 기독교적 세계관을 차별과 적개심과 분열의 원흉으로 몰아가는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인종차별,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 정신적 혹은 신체적 장애를 가진 이들에 대한 차별, 남녀차별 등은 결코 본래적인 기독교적 가르침에 속하지 않는다. 구약의 선민사상과 민족 간 차별은 이미 신약의 가르침에 의해 철폐되고 갱신된지 오래다. 세례 요한이 믿음과 무관하게 율법과 혈통에 기반한 '아브라함의 자손'을 인정치 않았던 것(마 3:8-9),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로 하신 것(마 28:19-20)에서 인종적-민족적 차별의 근거는 모두 해체되고 말았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선 질병과 장애를 가진 이들을 항시 고쳐주셨을 뿐, 결코 그들이 몰려오는 것을 금하신 적이 없다. 사회적 약자들에 대해서도, 여자와 아이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그리스도께 단 하나 차별점이 있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께로부터 전해지는 말을 믿으려 하는가 아니면 적대적인 자세를 보이는가의 차이, 바로 마음의 온유함과 신앙에 대한 개방적 자세 여부뿐이다. 이 점을 간과한 채 모든 차별적 사고의 원인을 기독교적 세계관에 돌린다면 심각한 오해라 아니할 수 없다.

사실 이런 문제는 기독교 외부에만 만연해 있는 것은 아니다. 기독교계 내부, 특히 여성신학자들은 기독교의 가르침 자체에 가부장적 차별의 연원이 존재함을 끊임없이 비판하고 새로운 방식의 성서해석을 시도할 것을 권고해 왔다.

성서의 역사와 교회사를 구성하는 한 주된 축인 유대교 문화와 서구 기독교 문화가 장구한 세월 가부장적 사고와 호흡을 함께해 온 것은 사실이나, 이를 일방적으로 본래적 기독교의 가르침에 포함시켜온 데 대해서는 진지한 반성이 필요할 것이다.

실상 <셰이브 오브 워터>의 악역 스트릭랜드가 끊임없이 인종차별, 성차별, 종족차별의 근거로 내세우는 성서의 예화들은 대개 구약성서의 예화들(창세기 인간 창조기사, 삼손과 데릴라 기사 등)이다. 그것도 1960-70년대 미국 주류사회에 만연해 있는 가부장적, 백인우월주의적 입장에서 편향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하다.

이를 기독교의 본래적 가르침과는 구분해서 비판해 주면 좋았을 것이나, 비교적 단순한 형태의 콘텐츠인 영화를 통해서는 이런 기대에 부응하기가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 오브 워터>는 남성중심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 차별의 기원을 일방적으로 기독교의 가르침에 지정하고 있다.
◈성차별의 경계, 어디까지 설정되어야 하는가?

그런데, 영화라는 콘텐츠 형태가 내포한 장치적 한계 때문일 수도 있지만, <셰이프 오브 워터>가 기독교적 사고에 제기하는 문제의식의 일방성 속에는 일정 부분 의도된 측면도 발견된다. 특히 동성애를 대하는 기독교계의 태도에 대한 거부감이 주되게 반영되고 있는 듯하다. 이 영화에는 이를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등장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에는 주동인물 엘라이자를 딸과 같이 아껴주는 이웃 화가 자일스(리처드 젠킨스 분)와, 이 노년의 화가가 자주 찾는 단골 파이가게 점원이 등장한다. 이 점원은 교육 수준이 높은 백인 신사의 모습을 한 자일스에게는 대단히 친절하고 호의적인 모습을 보인다. 반면 외모도 볼품없는 데다 언어장애마저 가진 엘라이자는 알게 모르게 무시한다.

여기에 더해 흑인 손님은 아예 가게에 발도 못 붙이게 한다. 결정적으로, 노년의 화가 자일스가 사심없이 친분의 표시로 손을 잡으려 하자 자일스를 동성애자로 오해하는데, 이때 이 점원이 정색하는 모습은 그간의 친절과 호의가 모두 인종, 성별, 성적 취향 등에 의해 선별된 가식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한다.

이로써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이 점원은 스트릭랜드와 함께 기독교의 차별적 사고방식에 깊게 물들어 사람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는 악독한 인물의 전형으로 제시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 오브 워터>에서 스트릭랜드와 함께 부당한 차별의 대표자로 등장하는 파이가게 점원.
그 반대편에는 엘라이자와 그녀가 사랑하는 괴생물체, 그리고 엘라이자를 돕는 자일스와 동료 흑인 청소부 젤다가 포진하고 있다. 특히 엘라이자와 괴생물체의 사랑은, 종족의 차이를 초월해 정신적 단계를 뛰어넘어 육체적, 성적 관계로 발전하는 단계에 이르는데, 이로써 둘은 파이가게 점원이 극도로 혐오하는 LGBT(lesbian, gay, bisexual, and transgender)를 대변하는 형상으로 등극한다.

영화 속에서 엘라이자와 괴생물체가 서로를 위해 헌신하는 모습은 처절하고 눈물겹다. 올드무비 풍의 1960-70년대 풍경과 느슨한 사랑 음악은 이 둘의 관계를 지극히 순정적인 것으로 포장한다. 괴생물체는 이 세상 모든 사회적 소수자의 화신이다. 특히 엘라이자와 괴물 간의 육체관계 장면은 이 사회적 소수자의 범위 안에 성적 의미를 더함으로써, LGBT에 대한 혐오 및 차별을 금지하라는 메시지를 강렬하게 전달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 이전에도 여러 편의 영화가 인간과 외계인, 혹은 인간과 유사인종 간의 교합을 주된 모티프로 선정한 바 있다. <에일리언>(Alien) 시리즈나 <스피시즈>(Spieces, 1995) 등은 외계생물체에 의해 자행되는 공포스럽고 강압적인 성관계를 모티프로 삼았고, <하워드 덕>(Howard the Duck, 1986)이나 <미녀와 야수>(Beauty and the Beast, 2017) 등은 외계인 혹은 사람과 이종족 간의 감미로운 에로스를 주된 모티프로 삼았다.

셰이프 오브 워터
▲<셰이프 오브 워터> 속에서 미화된 엘라이자와 괴생물체 간의 육체관계는 LGBT의 육체관계를 표상한다.
<셰이프 오브 워터>는 그 가운데서도 단연 특별한 작품이다. 이 영화가 이종 간의 교합이라는 모티프를 LGBT의 표상으로 삼았고, 또 성소수자들의 육체관계를 미화하는 가운데 여기에 반대하는 기독교적 사고방식을 모든 부당한 차별적 사고의 원흉으로 지목하여 비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