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기독교가 구원을 강조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심판과 저주아래 있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인류는 조상 아담의 원죄(a original sin)와 자범죄(a actual sin)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죄는 하나님께 너무나 적대적이어서 인류를 영원한 지옥에 던져지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현세에는 감춰져 있기에, 그것의 두려움을 아는 사람들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 질병, 육체의 죽음, 가난, 실패 같은 현세의 고통들만을 심판으로 알고 두려워 할 뿐입니다.

물론 그런 현세적 고통도 심판의 한 부분이지만, 영혼과 육체를 아울러 지옥에 멸하시는(마 10:28) 종말론적 심판에는 견줄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궁극적인 구원 개념은 바로 이 두려운 종말론적 심판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이 심판에서 벗어나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림으로서 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기독교인들의 구원 개념은, 온통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는 것에만 한정돼 있고, "하나님의 진노와 그것의 해소" 개념이 결여돼 있기에, 온전한 구원 개념에 이르지 못합니다.

구원에 있어 인간 편에서의 최대 관심사는, 당연히 하나님의 진노에서 '벗어나는(to escape)'것이겠지만, 구원 사건이 일어나려면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to release)' 일이 먼저 선행돼야 합니다. 죄로 유발된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림으로서만 그의 진노에서 벗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지지 않는 한, 구원도 없습니다. 인간의 '진노 탈피(구원)'와 하나님의 '진노 해소'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 이 점에서 구원은 인간 중심인 동시에 하나님 중심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를 풀어드리는 방법은,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에 빠뜨리게 한 '죄 삯 사망(롬 6:23)'을 그리스도께 대속시킴으로서입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참고 마 8:18; 20:28, 히 9:28, 벧전 2:24)."

이 그리스도의 대속 교리는 어거스틴(Augustine), 그레고리 1세(Gregory the Great Ⅰ), 칼빈(John Calvin)으로 이어 온, 소위 '형벌대속론' 개념으로 오늘날 개혁주의 진영의 속죄론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벗어나는(to escape wrath)' 구원이, 하나님의 '진노를 푸는(to blow off wrath)'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독특하지만, 공의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구원은 자비 이전에 먼저 공의의 만족을 요구합니다. 공의의 만족 없인 구원의 자비도 없기 때문입니다.

결국 이러한 구원의 공의적 요구가 하나님 아들을 대속물로 드려지게 하여 율법을 완성시켰고(롬 10:4), 우리는 그의 자비 안에서 믿음만을 요구받았습니다.

다시 말하지만 '구원'이란, 거두절미 하고 단지 인간을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져내는 행위만을 뜻하지 않고,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켜 그의 진노가 풀어진 결과물입니다. 화목제물을 뜻하는 '힐라스테리온(ἱλαστήριον)'이라는 단어는 만족(propitiation)이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중세 신학자 안셀무스(Anselm of Canterbury, 1033-1109)가 '만족 교리(doctrine of propitiation)'를 세우는 기초가 됐습니다.

화목제물 그리스도로 만족을 얻으신 하나님은 우리와 화해하셨고, 그 화해가 우리의 구원이 됐습니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롬 5:10)".

우리의 죄 때문에 우리를 외면했던 하나님의 얼굴이, 화목제물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다시 우리에게로 향하게 되므로(화목), 우리의 구원이 성취됐습니다. "하나님이여 우리를 돌이키시고 주의 얼굴빛을 비취사 우리로 구원을 얻게 하소서(시 80:3)."

구원을 말하면서 화목을 전제하지 않고, 다만 하나님의 진노에서 건짐 받기만을 원한다면, 우물에서 숭늉을 찾는 격입니다. 하나님과 화목 없인 인간의 구원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화목제물 되심은, 율법적 공의만 만족 시킨 것이 아니라, 그의 '분노의 고통(pain by wrath)'도 풀어드렸습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인간에게만 고통을 준 것이 아니라, 진노를 쏟는 하나님 자신에게도 고통이었다는 뜻입니다.

성경이 '인간의 죄가 하나님을 괴롭혔다(사 43:24)'고 한 것은, 인간의 죄가 하나님께 분노의 고통을 안겨주었음을 염두에 둔 것입니다. 숱한 인류의 죄가 하나님을 매일같이 분노시켰고(시 7:11), 매일의 분노는 하나님 자신에게 고통이었습니다.

이러한 성부의 진노의 고통을 유일하게 아시고, 또한 그 진노를 풀어드릴 수 있는 이도 오직 자신뿐임을 아시는 성자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화목제물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가 풀어졌을 때, 그의 분노의 고통(pain by wrath)도 사라졌습니다.

진노의 풀어짐이 인간에게는 구원을 갖다 주었고 하나님께는 분노의 고통(pain by wrath)을 멈추게 했습니다. 구원을 하나님자신을 위한 일이라고 하신 말씀(시 98:1)은 이런 의미도 함의합니다. "자기를 위하여 구원을 베푸셨도다(시 98:1)."

구원이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사실은, 또 다른 측면에서도 확인됩니다. 곧 '구원(salvation)'이 우리를 살리는 것 일뿐 더러, 하나님의 소유를 뜻하는 '구속(redemption)'개념을 함의함에서입니다.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계 14:4)",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행20:28)",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고전 7:23)", "일찍 죽임을 당하사... 사람들을 피로 사서(구속) 하나님께 드리시고(계 5:9)."

구원에 함의된 구속 개념이 최종 구원의 보장을 약속합니다. '구속자'가 영어 성경에는 'Redeemer'로 번역됐습니다. 하나님께 속했다가 죄로 사단의 소유된 사람을, 그리스도의 피로 다시 하나님이  '되샀다(repurchase)'는 뜻입니다. '구속'이 '하나님의 소유'와 동일시 됐습니다.

다음의 본문도 같은 내용입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이러한 하나님 소유됨의 구속 개념이 하나님과 성도를 '윈윈(win-win)'하게 합니다. 구원(σϊζω, σωτηρία)을 영속적이고 안전하게 보장해주는(keep from harm) 것이 구원의 보존(preservation)개념이고, 이 구원의 보존 개념을 성취시켜주는 것이 '사서 소유하는' 구속(redemption) 개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속하여 자기 것으로 소유삼아 주심으로 우리의 구원을 보장하셨습니다. 우리가 죄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은 후, 아무렇게나 방치되지 않고 끝까지 구원에의 길을 가게 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자기 소유로 구속해 주신 덕분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구출하신 후, 가나안 입성까지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만나, 메추라기, 반석의 생수로 그들을 건사해 주신 것은, 그들이 구속받은 당신의 소유였기 때문입니다. 이 구속이 출애굽에서 최종 구원지 가나안 입성을 보장해 주었습니다. 우리의 구원 보장은, 우리에게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의 소유 삼아주신 하나님의 구속에 달려 있습니다.

성도가 하나도 잃어지지 않는 궁극적인 구원에 이르는 것은, 그들이 구속받은  하나님의 소유이기에(요 6:39, 마 18:14), 아무도 그의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요 10:29). 하나님이 만일 우리를 구속하여 장악해 주지 않으면, 우리는 곧바로 마귀에게 다시 넘겨지고 구원은 보장받을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에게 귀신만 쫓아 내 주고, 그를 장악해주지 않고 빈집처럼 내버려두면, 일곱 귀신이 들어와 그를 장악하여 이전보다 더 악한 형편이 되고 맙니다(마 12:43-45).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우리에게는 구원의 보장을, 하나님께는 우리를 소유하실 권리를 안겨 드림으로 모두 '윈윈'하게 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