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김근주 | 성서유니온 | 184쪽 | 8,000원

성경은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쳐주는 것이 목적일까?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사랑하여 그것을 읽고 적용하고 실천하는 사람들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로 하여금 이 땅을 적극적으로 살아 철저한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지금 나의 게으름과 나태함을 발견하고 채찍질하여 분명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게 하는 것이 성경의 목적일까? 그런 자기계발과 발전을 위한 것이라면 시중에 있는 여러 방법론적인 책들이 훨씬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는 교회에서 성경을 읽어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성경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훌륭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성경이 가지고 있는 가치와 정신, 그리고 그 속에 녹아져 있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지 못하고 읽는 것은 독이 될 가능성이 많다. 성경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이 말은 성경에 기록된 일점일획을 문자적으로 지켜야 된다는 것도 아니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 최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1백독을 하더라도 성경 속에 흐르고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정신을 알지 못한 채 읽는다면, 자기 발전을 위한 지침서나 자기를 과시하는 도구가 될 것이다. 성경이 하나님 말씀이라는 것은 우상적 느낌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나를 거듭나게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온전하게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경읽기'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한 구절을 보더라도, 성경 전체와 본문과 전후 문맥을 고려하여 하나님의 심정을 보아야 한다. 그저 많이 읽는 것이(물론 성경의 흐름을 위해 그런 읽기와 이해도 필요하다) 성경읽기의 목표가 아니다. 그런 마음으로 성경을 접할 때, 성경은 단지 이 땅에서 나를 돋보이게 하고 남들보다 앞서게 하는 지침서가 될 것이다. 성경은 이 책의 제목처럼 '나를 넘어서는 성경읽기' 나를 벗어나고 나를 넘어서는 것이다.

필자는 구약 선생이신 저자의 책을 보며, 성경에 대한 소중한 시각을 몇 가지 발견했다. 그래서 본 글을 통해 그 중요한 깨달음을 세 가지로 정리하고자 한다.

첫째는 구약을 새롭게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구약과 신약을 'Old Testament'와 'New Testament'로 이해한다. 그래서 구약은 옛날에 맺어진 약속이고 신약은 새롭게 맺어진 약속으로 생각해서 구약을 열등한 약속처럼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예수님 시대에 예수님과 종교 지도자들이 사용했던 성경은 구약이라는 점이다. 신약 성경이 정경으로 확립되기 전에 교회에서 읽히고 가르쳐졌던 성경은 구약이다.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고 할 때 그 성경 또한 구약을 말하는 것이며, 바울은 구약을 기초로 교회를 세우고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전하였다. 그러니 구약은 그저 먼 시대에 체결된 약속 정도가 아니라,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신약 시대를 열고 연결하는 성경이다.

또한 구약은 율법이고 신약은 복음이라고 하면서, 구약은 행위와 순종을 강조하고 신약은 믿음만을 강조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구원은 행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믿음 또한 행위를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삶의 열매를 동반하는 행위가 뒤따른다.

이 땅 이후 천국을 확신하는 자는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다운 길을 걸어간다. 그러니 단순히 구약을 율법이라 여기고 믿음만을 강조하면 영광스러운 제자의 길을 놓치고 순종을 통한 기쁨을 알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구약의 율법이 신약의 믿음속에서 어떻게 녹아지고 펼쳐지는지 보아야 한다.

두 번째는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것에 대한 이해이다. 예수님께서 구약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다. 특히 예언서에 나오는 베들레헴에서 한 아기가 태어날 것이고, 그가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잉태될 것이며,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고, 그가 십자가에서 죽게 될 것이라는 구절을 가지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 구약을 성취했다고 은혜로운 말씀을 들어왔다.

이런 가르침이 부분적으로 맞기는 하나, 예수님이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말이 나타내는 더 깊은 의미가 있다. 구약이 증거하고 예언하는 것은 단순히 예수님이 언제 오시고 어디서 태어날 것을 맞추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구약은 예수님이 오심을 통해 이루어지는 새로운 날과 자유케 되는 날과 모든 압제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날을 고대한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 구약을 현실화시켰고 일상으로 가지고 온 것이다.

즉 예수님께서 구약을 성취하셨다는 것은 단지 구약의 예언을 맞추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구약이 내다보는 새로운 시대를 실제로 이루신 것이다. 그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자유와 구원의 날을 그분이 성취하신 것이다.

그 누구도 참 기쁨과 행복을 주지 못했는데 그분이 기쁨과 행복이 되셨고, 모든 불안과 공포로부터 벗어나 그분이 평안이 되셨다. 그러므로 그분의 성취는 구약을 온전히 살아내신 것이고 불완전한 것이 아닌 완전한 구약의 계시가 예수를 통해 현실이 된 것이다.

세 번째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삶의 강조이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대신하여 세상을 하나님의 목적에 맞게 다스릴 사람을 지으셨다. 그러나 첫 사람은 범죄하여 하나님의 목적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이루지 못한다.

그러나 그 죄로 인해 하나님의 계획이 무너지지 않고 아브라함을 통해 이어 민족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이어지고 생명을 살리는 역사가 펼쳐진다. 그리고 성경은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키고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한다.

우리는 교회생활을 통해 개인 구원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사실이다. 그렇게 된 것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바울이 교회를 세우며 십자가와 부활이 강조되었던 복음이 교회의 전부가 되고 타락한 중세 교회를 흔들어 깨운 이신칭의가 복음의 핵심이 되어 서구 신학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결과일 것이다. 또한 구약 성경을 깊이 이해하지 못하고 국가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구약을 무시한 결과일 것이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구원도 단지 죽음 이후의 삶을 나타내지 않는다. 구원은 오늘을 하나님의 통치 속에 살아가는 것이고 그분의 왕 되심을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내세만이 아니라 오늘을 그날처럼 살아가는 비전으로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는 것이다.

부활이라는 것도 단지 죽음 이후 영원한 육체가 된다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현실 속에서도 하나님을 의지하며 믿음으로 살아가는 힘이다. 유혹과 고통이 있어도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함으로 정의와 공의를 이루는 것이다.

서구 신학의 무비판적 수용과 구약에 대한 경시로 인해, 우리의 성경읽기는 매우 협소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성경읽기와 묵상과 설교가 개인의 만족과 위로와 결단과 도전 정도로 멈추었다. 성경은 우리를 이 땅에서 큰 소리 치며 사는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적이 아닌데, 우리는 성경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더 나은 사람이 되려 한다. 이러한 개인주의적이고 사적인 성경해석이 어느새 교회의 주류가 된 듯하다.

크리스찬북뉴스 방영민
▲방영민 목사.
이런 성경관은 사회 구조적 모순과 문제 앞에서도 자신의 문제와 죄와 구원에만 방향을 잡는다. 그래서 부패한 권력과 정부에게 종교적 도움을 주어 사람들이 자신만 바라보게 한다. 그러나 성경은 나를 넘어 주위를 살피고 사회와 국가를 보게 한다. 성경을 읽고 듣는다는 것은 철저히 내면화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의 불의와 참상 앞에 선지자적 소리를 발하는 것이다. 구약의 이스라엘에게 신약의 교회에게 하나님이 들려주셨던 말씀을 오늘도 우리에게 공동체적으로 들려주는 것이다.

구약에서부터 들려주는 재판 제도와 통치자의 기준, 사회적 제도에 관한 규정(안식년과 희년과 면제년), 신약에서 권세와 정부에 대한 말씀들은 공동체적으로 적용된다. 또한 성경은 끊임없이 가난하고 소외되고 연약한 자를 향한 긍휼을 멈추지 않는다. 정성된 십일조와 예배보다 올바른 백성으로서의 삶을 강조한다. 사사로운 집단이 아니라 정의로운 공동체가 되길 소망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성경읽기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부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