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가 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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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가 된다는 것
로완 윌리엄스 | 김기철 역 | 복있는사람 | 140쪽 | 9,500원

원제 Being Disciples: essentials of the christian life(저자 Rowan williams)

1. 한국의 전례적 교인이, 한국의 다른 모든 자매 형제들에게

매너리즘, 엄숙함, 로마가톨릭, 종교적, 비본질.... 내 주변 사람들에게 '전례적'인 예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면 나오는 단어들이다. 매너리즘이라는 단어를 제일 많이 들었고, 그 외에도 대체로 부정적인 단어들이다. 그나마 최근에 IVP에서 출판된 제임스 스미스의 책을 읽어본 친구들은 감각적, 전인적 등의 긍정적인 단어들을 말해주었는데, 그럼에도 그들은 굳이 그런 의식적인 예배가 필요한지 의문을 품는다.

이렇게, 한국에서 기독교 신앙을 갖고 있는 신자들에게 전례란 어색하고 다가가기 힘든 무엇이다. 그런 그들이 전례적인 예배가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연단해 주고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을 선택하게 하는 정말 유용한 신앙의 길이라는 걸 안다면, 전례를 대하는 태도가 조금은 바뀔까?

오늘 읽을 책은 영국 성공회의 수장, 캔터베리의 대주교였던(지금은 아니다) 로완 윌리엄스가 쓴 제자도에 관한 책이다. 개인적으로 제목만 봤을 때, 한국의 개신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위 '제자훈련'이 생각나기도 한다. '아마 이 책을 집어 드는 독자들 중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다.

한국교회는 제자훈련의 교회이다. 어느 특정 교회와 특정 목사를 계기로 '제자훈련'이라는 하나의 패러다임이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에 파고들었고, 그 이후 한국교회는 '그리스도의 제자됨'을 누구보다 진지하게 열망하는 사람들이 되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자매형제들은 그 '제자됨'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이 상당히 요원한 모양이다. 시대의 흐름이 바뀔 때마다 '제자됨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묻는 이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 책을 소개하려 한다.

물론 나는 성공회와 관련이 없지만, 한국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전례적 교회의 개신교 신자다. 누구보다 '제자됨'을 향한 열망이 강한 같은 한국의, 전례가 어색한 다른 전통의 독자들에게 전례적 교회의 제자도란 무엇인지 로완 윌리엄스의 책을 통해 소개하려 한다.

이를 통해 누구보다 제자의 삶을 열망하는 거룩한 공적 교회의 여러 자매형제들이 성사적 세계관(17쪽)을 통해 전례와 전례 이후의 전례(17쪽)를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조금은 더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기를, 이것이 교회 일치를 위한 하나의 작은 창구가 되기를 빌어본다.

2. 성사적 세계관

이 책의 가장 앞쪽에는 대한성공회 교인들이 종종 대성당이라 부르는 주교좌 성당의 주낙현 신부가 쓴 해설이 있다. 주낙현 신부는 여기서 "이 책을 성사적 세계관 안에서 읽을 것을 부탁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성사란, 이 글을 읽고 있는 이들이 '혹시?'하고 염려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바로 그 성사가 맞다. 성찬례와 세례 그 외에 가톨릭교회에서 공인한 5성사들 말이다.

그렇다고 화들짝 놀라 이 글을 뒤로하기 하거나 닫을 필요는 없다. 성사란, 한국 개신교 내에 흔히 퍼져있는 오해와는 달리, 생각보다 우리 주변에 늘 함께하고 있는 것들이다. 아무리 회중예배의 전통을 지향하는 교단이라도 세례와 성찬례는 하지 않는가? 바로 그 성사들을 생각하면 된다. 하다 못해 예배 후 전교인이 함께하는 점심식사도 나는 전례의 일환이라 생각하고 있으니, 생각보다 전례는 개신교회의 가까이에 있다.

성사적 세계관으로 이 책을 읽어달라는 주낙현 신부의 말은 옳다. 이 책이 말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삶의 기저에는 전례적이고 성사적인 배경과 전제들이 깔려 있다. 앞서 성사란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중심으로 참여하는 세례와 성찬례를 말한다고 했다.

그렇다면, 성사적 세계관이란 무엇인가? 주낙현 신부는 물질적 세계에 하나님이 깃들어 있으며, 온갖 물질 감각과 물리적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체험(17쪽)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 말이 조금 어렵다면 우리는 루터의 표현을 빌려올 수도 있다. 루터는 그의 대교리문답에서 사람의 일상에서 이뤄지는 하나님 말씀의 실천을 말한다. 루터에게 있어 거룩함이란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할 때 이뤄진다. "말씀이 물질(일상)을 성례전으로 만들"기 때문이다(『마르틴 루터 대교리문답』, 복있는사람, 328-329쪽).

다시 말해, 성사적 세계관이란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관계는 언제나 우리의 감각이 닿는 물질을 통해 이뤄진다는 세계관이다. 세상에 물질과 형식이라는 틀을 갖지 않는 진리는 없다. 예를 들자면 먼저 언급했던 세례와 성찬례다. 우리는 빵과 잔을 통해, 세례 물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한다. 특별히 영적인 진리를 추구하지 않아도 우리가 늘상 먹는 음식과 흔히 쓰는 물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하는 것이다.

이런 일상의 사물과 사람 속에 하나님이 계시다. 한국 개신교인들이 매주 혹은 매달 혹은 일 년에 두 번 참여하는 성찬례와, 그리스도인이 되겠다는 선언으로 세례를 받을 때에는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그리고 윌리엄스가 말하는 제자도에도 이런 의미가 담겨 있다.

3. 성사와 전례 속에서 제자가 된다는 것

이런 전제 위에서 윌리엄스는 제자도를 말한다. 그는 제자도를 말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제자의 정의를 내리는데, 그에게 있어 제자란 간헐적 상태가 아닌 지속적 상태를 가리킨다(26쪽). 윌리엄스가 볼 때 '제자'란 마치 사막 교부들의 금언집에 나오는 수도승이나 선종 불교의 고승들과도 같은 것인데, 그들은 언제나 스승의 주위를 맴돌고, 곁에 머물고, 경청하고, 주의 깊게 살펴보기 때문이다(27쪽).

윌리엄스가 생각하는 제자는 스승에게서 조금 떨어져 있다가 가르침을 구할 때가 되면 찾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제자는 스승을 관찰한다. 언제나 제자는 스승의 말을 경청한다. 이는 마치 전례적 교인이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통해 매일매일 복음서 신앙 속의 그리스도의 일생을 따라서 항상 그리스도 곁을 맴돌고 그리스도의 말을 경청하고 그리스도의 삶을 주의 깊게 살피는 것과도 같다.

전례적 교인들은 매 주일 '교회력'에 맞춰 예배를 드린다. 교회력이란 복음서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 예수의 일생을 따라 정해진 절기를 기록해놓은 일종의 달력이다. 아마, 감리교단이나 일부 장로교단 등에서도 사용하기에 익숙한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또한 성서일과는 이 교회력에 맞춰 배치한 일종의 독서목록이다. 성서일과를 사용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성서일과와 교회력에 맞춰서 매일 정해진 말씀을 읽고 기도하며 관상한다.

윌리엄스는 제자도의 비간헐성을 말할 때, 이런 점을 염두에 둔 것 같다. 전례적 그리스도인들은 대림절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의 탄생부터 사순절의 수난과 부활절의 기적까지 절기에 맞춰 그리스도 예수의 일생 곁을 맴돈다. 절기마다 그리고 매일 배치된 성서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며 언제나 그리스도 예수의 인생을 관찰한다. 그 날 일과에 따라 정해진 성서를 읽고 그 내용을 관상과 함께 묵상하고 기도함으로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경청한다.

제자의 삶을 사는 전례적 그리스도인은 스승인 그리스도를 간헐적으로 만나지 않는다. 언제나 스승인 그리스도의 일생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머문다(27쪽).

3. 성사와 전례 속에서 용서한다는 것

나아가 그리스도의 제자는 스승인 그리스도의 곁을 맴돌고, 그의 일생을 관찰하고 스승의 말을 경청하는 것을 넘어, 제자들 간에도 서로 맴돌고 바라보고 경청한다(33쪽). 제자들은 그리스도로 인해 하나로 묶인 자들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제자가 되기를 바란다면, 마땅히 따라야 하는 당위를 윌리엄스는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라면) 믿음 안의 자매 형제들이 처한 공경에 적확하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71쪽)'.

우리는 모두 곤경에 처해 있다(72쪽). 특히 한국처럼 인간의 모든 생활이 '생존'을 목표로 설정되어 있는 사회에서는 매일이 생존을 위한 곤경이다. 제자들은 이런 곤경 속에서 생존을 위한 양식을 놓고 기도할 때 사람과 사람이 서로를 온전히 돌보는 '참으로 사람됨'을 바라게 된다. 우리가 생존을 위한 양식을 얻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기를(74쪽), 서로가 서로의 인간성을 기대하며 의존하기를 바라게 된다(73쪽).

이런 맥락 속에서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사람을 볼 때 '제자들 자신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듯이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다'는 기독교 특유의 사고를 한다(107쪽). 이는 세상에 여분의 사람은 없고, 어떤 사람이던지 간에 관심과 돌봄을 온전히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다(109쪽).

윌리엄스는 이러한 사실이 왜 주기도문에서 양식을 위한 기도가 곧바로 용서를 위한 기도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해 준다고 말한다. 양식을 위한 기도는 우리가 매일 곤경에 빠져 있다는 처참함의 고백이며, 용서는 우리가 이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의 인간성에 기대는 가장 근원적(Radical)한 방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74-75쪽). 오직 서로 생존을 위한 양식을 주고받을 수 있는 사람만이 용서할 수 있으며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서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다.

때문에, 용서는 하나님이 담보하시는 인간성의 지표가 된다. 이는 마치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서로 화해하고 평화를 빌어주고, 같은 빵을 떼고 같은 잔을 나누며, 서로의 손을 마주 잡고 함께 주의 구원을 보았으니 나가서 주님을 섬기겠다고 맹세하는 성찬례 일련의 과정과도 같다.

전례적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은 매주의 성찬례를 통해 모습도 생각도 환경도 각기 다른 사람들이 같은 빵과 같은 잔을 나누어 서로를 지탱하는 하나가 됨을 충만히 경험한다.

특히 이 성찬례를 가운데 두고 전후에 수찬자들은 서로를 위해 평화를 빌어주고 인사를 나누는데, 이때 특별히 서로를 용서하고 용서를 구할 일이 있는 이들은 이 시간에 꼭 화해와 용서를 나누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대로 오직 용서할 수 있는 사람만이 서로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후, 평화의 인사와 화해 뒤에 성찬으로 연합을 이룬 사람들이 서로의 손을 잡고 주의 말씀대로 살겠다는 다짐의 찬양을 부르는데, 이 찬양은 전례 밖에서의 주님 섬김, 즉 참 인간성의 발현으로 이어진다. 유사하게 이 책에서 윌리엄스는 성찬례를 "우리가 서로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드러내고 인간의 존엄함을 서로 인정하는 하나님의 미래를 미리 맛보는 사건(79쪽)"이라 규정한다.

그리스도의 일생을 곁에서 공유하고 함께하는 제자들은, 이런 기반 위에 그 옆에서 같은 길을 걷는 자매, 형제들과도 생명을 공유하고 함께한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용서와 생존(양식)을 나눔으로, 서로의 인간성에 의존한다(73쪽).

4. 전례 이후의 전례를 사는 제자(17쪽)

성사적 세계관에서 제자도는 그리스도의 곁을 맴돌고, 그 곁을 함께 맴도는 다른 이들과 참 인간의 모습으로 기대는 삶이다. 이런 삶을 통해 전례적 전통의 제자도는 최종적으로 '성도의 본성 변화'를 지향한다. 제자도는 결국 변화한 제자 본인의 본성을 예배당 밖에서 주님을 섬기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윌리엄스가 '성령 안에서 산다(123쪽)'는 말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윌리엄스가 생각하는 제자의 삶은 성령 안의 삶, 다시 말해 참된 인간성에 관련된 여러 미덕들(124쪽)을 내면화하는 삶이다.

그렇다면 이 미덕들을 어떻게 정리할 수 있을까. 제자가 그 본성의 변화를 경험할 때, 머리를 비우고 가슴을 채우게 된다. 이를 윌리엄스는 아파테이아(apatheia)라 표현하는데, 이는 우리의 감정에 여백을 두고 여유를 갖는 일을 뜻한다(126쪽).

제자는 전례를 통한 감정의 변화를 이해하고 가다듬어 그 안에서 제자 자신에 대해 알려주시는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즉 감정을 감동으로 승화시킨다. 이런 변화 속에서 제자는 누구보다 자신을 이해할 수 있게 변하며, 이런 제자의 자기인식은 마음을 침묵과 평정으로 안내한다.

윌리엄스는 이 평정을 통해 제자는 하나님께서 지금도 모든 물질계의 사람과 사물 속에서 계심을 알고 놀라게 된다고 말한다(131쪽). 하나님은 그렇게 제자들이 마치 그리스도처럼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기다리신다.

이 미덕들은 대체로 철저하게 예배 밖 세상에 참여하는 과정에서 나타난다(87쪽). 교회력을 통한 일과적인 기도와 성찬례를 통한 인간성의 깨달음 등을 통해 본성의 변화를 경험한 제자들은 공적인 영역으로 파고들어가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본격적으로 인간성을 세상에 공유한다.

교회 밖 세상에서 인간성을 최고로 구현하는 공동체의 삶을 제시하고(117쪽), 하나님 나라의 약속을 좀 더 가시적으로 구체화하기 위해 노력한다(118쪽). 이는 전례적 전통의 그리스도인들이 예배의 끝에서 파송의 전례를 드리며 언제나 다짐하는 것들이다. 전례 속에서 제자들은 전례 이후의 전례를 위해 우리가 경험한 본성의 변화를 일상으로 가져간다.

5. 나가며

한국에서 전례적 교인으로 산다는 것은 꽤나 오해를 많이 받는다는 것을 뜻한다. 혹자는 우리가 너무 상징물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때때로 누군가로부터 우상숭배자라는 오해를 받기도 한다.

그러나 윌리엄스가 인용하는 동방교회 전통이 말하듯, 물질 세계의 모든 요소는 하나님의 말씀을 담고 있다(111쪽). 그래서 우리는 때로 의식적으로 보이는 절차와 예식을 통해 우리 본성의 변화를 바란다.

이 책은 그런 우리들이 전례를 통해 지향하는 제자도를 설명해 주는 책이다. 주낙현 신부의 설명대로 제자도는 전례 이후의 전례이다. 우리는 성사들을 통해 그리스도의 일생을 그 곁에서 함께하며, 그를 주의 깊게 바라보고, 그의 목소리를 듣는다.

또한 이 전례를 함께 참여하는 자매 형제들과 함께 서로를 바라보고 서로의 본성이 변화하기를 기대하며 서로 의지한다. 함께 손을 마주 잡고 우리가 경험한 것들을 일상으로 가져가 사회와 세상 속에 철저히 참여한다.

나는 이 책을 우리 전례의 그리스도인들이 따르는 제자도를 설명해 주는 책으로서 많은 독자들이 읽기를 바란다. 나아가 이 책에서 표현하는 우리들의 제자도가 같은 한국의 다른 그리스도인 자매형제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누구보다 제자되기를 열망하지만, 그 길이 쉽지 않은 다른 독자들에게 또 다른 가능성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의 참 인간됨을 위해 우리의 참 인간됨이 의지할 버팀목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글 권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