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여호와 하나님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사람을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지으시며, 때로는 사람을 부르시고 연단시키기도 하셔서,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했던 세월 430년간 울부짖으며 하루 속히 해방이 되기를 간절히 간구하며 지나온 한 많은 고통의 나날 속에 그들을 구원해 줄 인도자를 그렇게도 기다렸지만, 그들의 삶은 더욱 힘들고 지쳐 절망 속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들의 생각에는 하나님께서 단번에 저들을 무너뜨리고, 우리는 고향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 같은 인간들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역과 비교할 수 없는 것들이 있음을 우선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사람을 통해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모세의 40년간 화려한 궁중 생활을 접게 하시고, 미디안의 광야에서 모세를 연단 하셔서 황혼의 나이인 80세에 일할 수 있도록 그를 부르십니다.

난세(亂世)란 무엇일까요? 어지러운 세상이라는 뜻으로, 혼란스럽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난세의 반대말은 치세(治世)이며, 이는 잘 다스려진 태평한 세상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지켜내야 할 이 땅은 그 옛날 성경 속 이스라엘과 비슷하게, 외세로부터 많은 침략을 받아왔습니다. 특히 두 번의 왜란을 겪어 나라를 완전히 빼앗길 순간 류성룡과 같은 위대한 정치인이 등장했으며, 임진왜란 3대 대첩인 한산대첩의 이순신 장군, 행주대첩의 권율 장군, 진주대첩의 김시민·김천일 장군과 논개가 있었고, 의병대장 곽재우도 활약했습니다.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다'며 포기를 몰랐던, 불멸의 이순신 장군 또한 난세의 영웅이 아닐까요?

"제 아무리 적이 10만 대군이라 할지라도 나는 차라리 진주성의 돌쩌귀가 될지언정, 그런 적이 두려워 도망가지 않을 것이요." 진주대첩은 김시민 장군이 분전한 1차전도 있었지만, 10만의 왜군을 맞아 1만 명의 군사로 7일간 버틴 김천일 장군도 있었습니다. 매우 처절한 싸움 전에 피할 것을 권유받은 김천일 장군이 도망가지 않고 당당하게 싸우겠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며 한 이 말은 유명합니다. 이처럼 나라의 위기가 닥칠 때, 반드시 난세의 영웅은 나타납니다.

이 땅에 하나님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찾아왔던 수많은 선교 영웅들의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날 우리 신앙인들은 태평스런 가운데 신앙생활을 즐기고 있습니다. 깊숙이 뿌리박힌 유교 문화의 그늘에서 숱한 고통과 처절한 아픔을 감내하며 순교를 이룬 결과, 현재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신앙인들은 행복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오래 자리잡은 안일 무사한 신앙생활에서 오는 무정한 양심, 그리고 타성에 젖어있는 말장난, 하나님 말씀을 왜곡하는 현상 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어 심히 안타깝습니다.

분명 성경에는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에 이르도록 네 자신을 연단하라(딤전 4:7)"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통해, 디모데에게 선한 일꾼이 되기 위해 믿음의 말씀으로 양육받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경건을 훈련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오늘날 마치 자신이 하나님처럼 군림하는 지도자들도 있어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 주된 원인은 바로 이 말씀에 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딤전 6:10)".

그러므로 "주의 종은 마땅히 다투지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온유하며 가르치기를 잘하며 참아야(딤후 2:24)" 합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비롯해 오늘날 사역자들이 갖추어야 할 태도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예장 통합 총회 헌법에 명시돼 있듯 목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양육하는 목자이고, 그리스도를 위해 봉사하는 종 또는 사자이며, 모든 교인의 모범이 되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이고, 구원의 복된 소식을 전하는 전도인이며, 그리스도의 설립한 율례를 지키는 자인고로 하나님의 도를 맡은 청지기입니다.

하지만, 어느 교회 목사는 자기 이름을 넣어 "OOO을 축복하는 자는 하나님이 축복하시고, OOO을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이 저주하십니다. OO교회 모든 성도가 OOO을 통해 복을 받습니다" 라고 성도들 앞에서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어이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이렇게 왜곡해도 되는 것일까요? 일부 성도들은 또 이 말을 따라할 뿐 아니라 "아멘" 하고 큰 소리로 외칩니다. 하나님 말씀은 일점일획이라도 가감하지 말라고 했는데 말입니다. 그리고 거짓말과 변명으로 일관하는 목사가 과연 참 목자인지 의심스러울 뿐입니다.

물론 이 땅에는 참 좋은 목자들이 많습니다. 그 분들이 밖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훌륭하고 아름답고 선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선한 목자들입니다. 수준 이하의 목자들 때문에 오늘날 기독교는 '개독교'라는 듣기 민망한 평가를 받게 됐으니, 실로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부끄럽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선택한 인물 중 하나님의 참 뜻을 헤아리지 못한 채, 교만하여 하나님의 방법대로 일하지 않고 스스로 판단하여 비참한 최후를 자초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예로 사울왕과 일부 사사들이 있습니다.

반면 하나님을 신뢰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나아갔던 다니엘과 세 친구, 그리고 자신의 가족과 민족, 이웃나라 사람들까지 처절한 가뭄을 이겨내게 했던 요셉 등도 있습니다. 다윗은 일찍이 머리에 기름부음을 받았지만, 많은 시련과 아픔을 경험하면서 오로지 한 분이신 여호와를 의지하며 경외하므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왕이 되었고,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으뜸 가는 왕으로 추앙받고 있습니다. 또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은 100세에 얻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자식까지 제물로 바치는 놀라운 믿음을 증명함으로써 '믿음의 조상'이란 칭호를 얻게 됐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선택하시는 기준은, 인간들이 보는 시선과 전혀 다릅니다. 이스라엘이나 우리 대한민국의 공통점은 장자를 선호하고 장자에 대한 혜택이 다른 형제들보다 우위에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일꾼은 장자도 아니요, 겉으로 드러난 풍채가 좋은 사람도 아닙니다, 요셉은 12형제 중 11번째요, 다윗은 8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야곱도 장자가 아닌 둘째입니다.

특히 조직에서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옳은 결심에서 이탈하여, 힘 있는 권력자들에게 합세해 오히려 그들과 함께 핍박을 일삼는 신앙인들은 너무 한심합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를 믿지 않고 핍박하던 자였지만, 주님을 만난 후 철저한 회개를 통해 거듭나 마지막 생애까지 주님을 위해 순교를 선택한, 오늘날 우리에게 아름다운 믿음의 본을 물려준 위대한 인물이 아니겠습니까?

우리 뒤에는 놀라운 하나님의 든든한 '빽'이 있는데, 무엇이 두렵습니까? 이렇게 말들은 많이 하지만, 실상은 겁과 두려움 속에 오히려 권력자 앞에서 춤을 추는 거짓 신앙인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하필 당신이 이 일을 감당하려 하느냐?'며 비아냥거리기도 합니다. 그러면 위기에 빠진 나라를 위해 독립운동은 누가 합니까?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찬란한 광복의 영광과 기쁨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의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희생하지 않고 노력하지 않으면 결코 얻어지는 것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나 자신이 대의를 위해 조금이라도 수고에 동참한다면, 하나님의 몸된 교회를 위해 나선다면, 그 가치는 하늘나라에 상급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교회 안에 잘못된 관행, 잘못된 암투와 권력을 타파하기 위해, 그리고 믿음의 본질을 지켜내기 위해 작은 수고로부터 모든 어려운 난관을 감내하며 헤쳐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신앙인들이 바로서지 못한다면, 그 미래가 불투명합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로서의 사명을 감당치 못한다면, 이 사회는 암울하게 변할 수밖에 없습니다.

신앙인이라면 먼저 나 자신이 겸손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만 높여야 합니다. 내가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내가 해결하려고 한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을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일할 때 늘 문제만 발생하게 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조금 어렵고 힘이 부친다 해서 조직을 이탈하며 배신하는 행위는 가룟 유다보다 못한 제자가 되는 것임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힘들고 고통스런 날들이 나를 힘들게 할지라도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그날이 임할 것임을 굳게 믿고 기다리면서, 몸과 마음으로 함께해야 합니다. 그 동역자들과 승전가를 부르며, 더 높이 나부끼는 십자가 깃발의 함성이 온 사방에 메아리쳐 울려지는 그 날을 기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분임을 확실히 믿고, 나 자신부터 부르심 입은 사람임을 인지하고 기도하며, 묵묵히 끝까지 참고 기다리면서 열매를 맺으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