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과 일상
묵상과 일상

김병년 | 성서유니온선교회 | 196쪽 | 10,000원

'성경 묵상의 시대가 지났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왜 철 지난 이야기를 하려고 하느냐'며 묻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성경 묵상이 필요 없는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 진짜 성경을 묵상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이 책은 5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21장의 작은 이야기들로 묶여 있습니다. 1부에서는 '나의 여정'이란 제목으로 묵상과 일상의 이야기를 묶습니다. 2부는 '한 구절, 하나의 묵상'이란 제목으로 한 단어, 한 구절, 한 인물 묵상 법을 소개합니다. 저는 이 부분이 굉장히 특이하게 다가왔습니다.

3부에서는 '묵상과 일상'이란 제목을 달았지만, 일상보다는 거시적 관점과 미시적 관점을 오가는 성경적 세계관을 보여줍니다. 4부는 '묵상과 기도'인데, 기도와 관련된 묵상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마지막 5부에서는 '묵상과 자녀교육'이란 제목으로 가족과 성품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한 마디로 이 책은 단순한 묵상법을 소개하기보다, 묵상에 얽힌 삶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빈곤은 내 삶에 오래도록 결핍감을 안겨 주었다. 우리 아버지는 당신 술을 사 드셔도 아들 책은 사 주신 적이 없다. 집에 책이라곤 단 한 권도 없었다(21쪽)."

저자는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위 이야기를 풀어 놓습니다. 순간 성경에 대한 이야기를 잊어버릴 만큼 마음이 저려옵니다.

저도 어릴 적, 집에 책이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술고래는 아니었지만 공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책 없이 보낸 유년 시절의 추억은 송두리째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나는 예수님을 '책'에서 만났다(23쪽)"는 저자의 표현은 낯설면서도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성경과 얽히고 설킨 저자의 이야기 속에서 문득, 그리스도인은 성경과 결코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한 단어, 한 구절로 묵상하기가 궁금해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동일한 단어를 다른 문맥에서, 다른 성경에서 읽을 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먼저 아브라함을 묵상하다, '경외'라는 단어에 붙들립니다. 경외라는 단어가 저자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이죠. 경외는 직역하면 두려움이란 뜻이지만, 성경은 두려움을 감정적인 차원이 아닌 삶의 우선순위로 확장시킵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드림으로 하나님께 '경외'한다고 칭찬받았습니다. 저자는 경외를 사람이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체가 되어 인정하는 것이라 말합니다.

"경외감은 내가 느끼고 판단하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내 삶을 보고 판단하시는 감정이다. 하나님이 내 삶을 보고 베푸시는 인정이다(48쪽)."

결국 경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법정적 의미를 갖는 것과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성도는 '묵상하는 자'로 태어났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묵상은 얻기 위함이 아니라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에도 동의합니다. 고넬료의 삶을 통해 "경건한 경외는 '행동으로 보여주는 말'을 형성한다(53쪽)"고도 말합니다.

저자의 말은 묵상과 삶이 결코 분리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우리는 종종 '묵상만' 하는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제가 보기에 그것은 오해입니다. 묵상은 근원적으로 '삶'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말이 곧 존재이며, 존재는 곧 행위였습니다. 우리는 구약을 읽을 때, 말씀하시면 '성취'되는 것을 압니다. 묵상은 삶을 변혁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묵상에서 일어나는 경외감은 우리를 순종으로 이끌고, 수고로 이끌고,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게 한다. 경외가 자라가는 인생은 묵상에서 성공하는 인생이다(54쪽)."

이렇게 보니 경외라는 한 단어를 통해 성경 전체를 통찰하고 해석할 수 있다는 즐거움을 줍니다. 성경이란 역사와 인생의 본질을 통찰하며, 존재를 규명합니다. 세상을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경외라는 한 단어만으로도 우리의 인생을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9장 '묵상과 축구와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오타인 줄 알았습니다. 축구가 아니라 '추구'로 읽었습니다. 그런데 진짜 축구였습니다(82쪽).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일까요? <천국만이 내 집은 아닙니다>의 저자인 폴 마샬은 '놀이는 그 자체를 위한 것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다(82쪽)'고 말합니다. 그러나 취미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볼 수 있다는 저자의 주장에 동의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내 삶의 영역으로 들어온다(83쪽)'는 저자의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형이상학적 개념이 아니라 삶이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해야 합니다. 그것이 예배이든, 취미이든, 직장이든 말입니다. '삶의 모든 영역(88쪽)'에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 묵상이 주는 맛이 아닐까요?

가족들의 이야기는 우리 집과 다르지 않네요. 묵상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요? 그러나 허술하긴 하지만 조금씩 하나씩 연단해 간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하리라 믿습니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에레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