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코코
▲조상숭배를 통해 조상의 영혼과 화합할 것을 강조하는 애니메이션 <코코>.
가족과 조상: <뮬란>과 <코코>를 통해 본 애니메이션 속 내세와 조상숭배

◈연예인 열풍에 대한 기독교적 비판의 변(辯)

이전 칼럼에서는 한국 관객들 사이에 만연한 연예인의 삶에 대한 비상한 세속적 동경심에 대해, 그리고 이 동경심을 적극적으로 자극하는 영화 <코코>의 서사에 대해 기독교적 관점에서 비판적 평가를 내렸다. 단, 이런 비판적 평가가 연예인의 업을 선택한 이들이나 선택하려는 이들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잘못 비쳐질 소지가 있어, 본 작품에 반영된 조상숭배 모티프에 대해 살펴보기 전 짤막한 변(辯)을 덧붙이고자 한다.

한국 내 연예인 열풍의 문제는 기본적으로 삶에 대해 아직 확고한 가치관 및 성숙한 수준의 신앙을 갖지 못한 소년기, 청소년기 자녀들에게 심각한 위해를 가한다는 데 있다. 한국의 가수, 댄서, 연기자 프로모션 구조는 대입 입시경쟁을 월등히 능가하는 수준의 경쟁률을 자랑한다.

기획사 오디션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한 후로도 숱한 내부 경쟁을 통과해야만 가까스로 가수 데뷔에 성공할 수 있다. 그 후 대중의 인기를 얻느냐 못 얻느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이 과정에서 통상 몇 년, 심한 경우 10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된다.

결국 청소년 시절의 인생 전체를 걸어야 하는데, 그 가운데 대중의 인기를 얻는 수는 채 1%도 되지 않는다. 이 사실은 이미 언론을 통해 여러 모로 잘 알려져 있지만, 극적으로 미화된 성공담들은 이런 불편한 현실을 무시하게 만들고도 남을 정도로 매혹적이다.

그러나 실상 연예인이라는 직업에는 대개 다른 직업과의 호환성이 거의 결여되어 있다. 가수든 연기자든 MC를 지망하든 간에, 일단 연예인 지망생이 데뷔의 관문을 통과하여 인기를 얻는 일에 실패했을 때 입게 되는 심적, 시간적 타격은 심각한 수준이다.

전편에서 고대 로마 제국의 자유계약 검투사 및 맹수투사인 아욱토라티(auctorati)의 삶에 대해 사도 바울이 비판적으로 평했던 사실(고전 15:32)을 언급한 바 있다.

바울은 당시 최고의 '연예인' 직종이었던 검투사 및 맹수투사의 삶의 방식에 대한 회의감을 표하기도 했지만, 그보다 더 중점적으로 강조된 점은 바로 이 직종에 자신을 몰아넣는 자들의 부활에 대한 소망 없는 삶의 태도를 문제삼았다. 연예인이라는 직종의 선택 이전에 순전히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인기, 그리고 돈을 좇는 욕망으로 가득찬 근원적 동기 자체를 비판한 것이다.

영화 코코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시즌 1의 주요 인물들. 이 가운데 바루스(오른쪽)는 범죄자나 노예 출신이 아닌, 자유민 자유계약 검투사다. 주전 1세기경부터 자유계약 검투사 아욱토라티(auctorati)들의 수가 급증하기 시작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까지 비판의 각을 세운 데는 그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사실 당시 '아욱토라티'가 된 이들, 즉 검투사와 맹수투사가 되기 위해 자원해서 계약을 맺는 이들 가운데는 10대 청소년들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신앙 이전에 기본적으로 삶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에 대한 고민 없이 맹목적으로 부와 명예와 인기를 좇는 모습이 내세를 바라는 사도의 눈에는 어리석다 못해 가엾게 보이지 않았을까?

실제로 주전 1세기 로마 사회를 묘사한 역사 문헌들을 보면, 빈한한 집안의 청소년들뿐 아니라 엘리트 가문의 청소년들까지 아욱토라티가 되려는 열풍이 불어, 로마 황제와 원로원이 엘리트 가문 청소년들의 아욱토라티 지원을 금지시키는 법안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주전 46년, 38년, 22년 법안). 귀족과 부호의 자제들이 노예 및 범죄자들이나 할 법한 일을 목숨을 걸고 자원하는 행태가 신분제 질서를 위협한다는 이유였다.

그럼에도 아욱토라티를 지원하는 청소년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자, 로마제국 제2대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는 유효성이 없다는 이유로 주후 11년 이 법안을 폐지해 버렸다. 이런 열풍은 사도들이 한창 복음전도 활동에 전념하던 주후 1세기 내내, 즉 바울이 고린도서를 작성하던 바로 그 순간(주후 55-56년)에도 변함없이 유지되고 있었다.

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연예인 열풍에 결부된 문제점은 어린 영혼들이 겉으로 드러난 부와 명성과 화려함에 맹목적으로 유혹된다는 데 있다. 이런 유혹들은 끝내 사람의 정신을 현세에 굳게 가두어 둠으로써, 어린 영혼들이 기독교 신앙에 접근하는 길을 원천봉쇄하게 된다.

이익과 인기가 자기 한 몸에 한껏 집중되기를 바라는 나르시스적 인간은 부활과 영생을 소망하고 자기 헌신을 통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할 것을 명하는 그리스도께 스스로를 내맡기기 쉽지 않다.

영화 코코
▲기독교인이 연예인으로 사는 과정은 험난하다. 나르시스적 인간상을 갖출 것을 끊임없이 강요받기 때문이다. <코코>에는 이런 고민이 별반 반영되어 있지 않다.
애니메이션 <코코>에서 보인 멕시칸 마리아치를 향한 미겔의 열정, 그리고 국내외 온갖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볼 수 있는 연예인을 향한 열망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지속하며 고유한 실존적 가치를 발굴해야 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역기능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높다.

기독교인이 연예인을 할 수 없는 것도, 연예인이 기독교인이 될 수 없다는 것도 아니다. 단, 본질적으로 나르시스적 인간상을 강요하는 삶의 방식 한가운데서 신앙을 지키고 자기 삶의 고유한 가치를 지키기 위해 성찰과 투쟁을 지속해야 하는 중한 어려움이 따를 뿐이다.

적어도 <코코> 속 미겔의 모습에서 그런 고민은 발견되지 않는다. 어린 자녀들에게 이 작품을 보여주려 할 때 한 차례 더 숙고해 주기를 권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가족과 마치스모: 가족을 버리는 가장과 가족회복을 향한 디즈니의 열망

<코코>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확연한 특징 하나를 이어받고 있다. 바로 편모, 편부 슬하의 어린이나 고아의 서사라는 특징이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주동 인물 혹은 주요 인물 대부분은 부모 중 한 사람 혹은 두 사람 모두와 이별하는 상황을 맞이한다.

이는 서사의 긴장감을 더하고 부모 없는 역경을 헤쳐 나가는 희망적 성장기를 전개하기 좋기 때문에 자주 채택되는 모티프이지만, 근본적으로는 월트 디즈니(Walt Disney) 개인의 가정사 및 가족관 때문에 채택되고 있다는 것이 문학 및 문화비평가들의 중론이다.

영화 코코
▲디즈니 창업자 월트 디즈니.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에는 그의 개인적 가족사 및 가족관이 자주 반영된다.
본 애니메이션의 제목은 '미겔'(Miguel)도 '마리아치'(Mariachi)도 아닌, '코코'(Coco)다. 코코는 작중 주동인물인 미겔의 증조할머니로, 어린 시절 그녀의 아버지 엑토르(Héctor)가 음악가의 꿈을 위해 집을 떠난 후 줄곧 아버지를 그리워한 인물이다. 작중 미겔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인 엑토르와 사후세계에서 만나 온갖 모험을 겪으면서 엑토르와 코코, 아버지와 딸의 재회를 위해 힘쓴다.

엑토르가 아내와 딸을 '버려두고' 음악가의 꿈을 좇아 떠나는 상황이 한국 관객들에게는 약간 낯설게 여겨질 수 있다. 가장인 아버지가 생계의무를 포기하고 가족을 버린 채 연예인의 꿈을 이루려 떠나 버리는 처사는 '수신제가(修身齊家)'를 남성의 훌륭한 덕목으로 삼는 동아시아 유교 문화권에서는 납득하기 어려운 처사다.

그러나 멕시코에는 특유의 마치스모(machismo) 문화가 있다. 동물의 수컷, 혹은 남성성을 뜻하는 스페인어 마초(macho)에 사상을 뜻하는 이스모(-ismo)를 더한 단어가 마치스모다. 마치스모는 한국말로 '남성주의, 남성우월주의, 가부장주의' 정도의 의미로 이해될 수 있다. 멕시코의 마치스모 문화는, 세계 모든 지역의 가부장제가 그러듯, 멕시코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다.

멕시코 마치스모의 대표적 행태 중 하나는 바로 남성의 가족부양의무 포기다. 20세기 멕시코에는 결혼 전 동거가 흔한 일이었는데, 동거 중 여성이 임신하는 경우 남성이 자기 삶을 추구하기 위해, 혹은 귀찮은 부양의무가 없는 다른 여자를 만나기 위해, 동거 상대 여자를 버려두고 떠나는 일이 빈발했다.

이로 인해 임신한 여성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이 도망친 남자를 붙잡아 결혼시키기 위해 총을 들고 추적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자주 발생했다.

영화 코코
▲멕시코 마치스모 및 여성인권 문제를 다룬 도표. 2011년 현재 17세 미만 여성 소녀 및 청소년의 수가 1900만명 정도이며, 이 가운데 10명 중 9명이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학업을 포기한다. 이 경우 상대 남성들 상당수가 여자를 버리고 떠난다.
이런 행태의 기원은 여러가지로 지목된다. 가장 흔하게 지목되는 원인으로는 스페인 식민지 당시의 관행이 있다.

메소아메리카(Mesoamerica) 지역은 1521년 코르테스(Hernán Cortés)가 아스테카 왕국 수도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을 점령한 후 약 300년이라는 오랜 기간 동안 스페인 식민지로 남아 있었다. 이 기간 중 스페인으로부터 멕시코로 부임해 오는 총독부의 관리 및 군인들은 멕시코 현지 여자들과 함께 생활한 후, 임기가 만료되면 여자와 아이를 버려두고 스페인 본국으로 귀환해 버리는 관행을 반복했다.

이런 행각이 멕시코인들의 가족관에 큰 상흔을 남겨 오늘날의 마치스모 문화로 발전됐다는 설이 대대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오늘날 멕시코 내 대부분 역사학자들은 이 주장을 신빙성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이들은 멕시코 남성들 가운데 가족부양의무를 하찮게 여기는 분위기가 퍼지기 시작한 주된 원인으로 20세기 초인 1910년 멕시코 전역에서 발생한 사파티스타 운동(Zapatista movement)을 지목한다.

사파티스타 운동은 구한말 한민족의 슬픔과 애환을 담은 영화 애니깽(Henequen, 1996)을 통해 국내에 널리 알려진 바 있는 역사적 사건이다.

영화 코코
▲1996년 대종상 최우수작품상 수상작 애니깽(Henequen). 사파티스타 운동을 국내에 널리 알린 영화 중 하나다.
미국 괴뢰정부 노릇을 하며 모든 형태의 민중운동을 가혹하게 탄압하던 독재자 디아스(Porfirio Díaz) 대통령에 저항한 이 운동은 수많은 멕시코 남성들을 혁명전쟁의 불길 속으로 몰아넣었다. 이 혁명 후, 남성이 자신의 꿈과 대의를 펼치기 위해 가족을 버리고 떠나는 일이 멕시코 사회 전체에서 암묵적으로 묵인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는 것이 멕시코 역사와 사회를 연구하는 학자들의 주장이다.

정답이 무엇이든 간에, 애니메이션 <코코>는 멕시코 고유의 마초적 가족관과 혁명적 사회관을 분명하게 반영하고 있다. 애니메이션 전체의 반동인물 즉 악역의 이름은 데 라 크루스(De la Cruz)인데, 이 이름은 사파티스타 운동의 퇴치 목표였던 독재자 디아스의 이름이기도 하다. 디아스의 정식 이름은 호세 '데 라 크루스' 포르피리오 디아스 모리(José 'de la Cruz' Porfirio Díaz Mori)다.

<코코>는 디즈니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이 맞지만, 엄밀하게 말해 모기업 디즈니는 기획, 투자, 홍보를 맡았고, 실제 제작은 자회사인 픽사(Pixar)가 담당했다.

픽사는 <스타워즈: 라스트 제다이(Star Wars: The Last Jedi, 2017)> 관련 칼럼에서 잠시 언급한 바 있듯, 원래 루카스(George Lucas) 감독이 <스타워즈> 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설립한 컴퓨터 그래픽 특수효과 팀에서 출발한 기업이다. 이 특수효과 팀은 애플의 잡스(Steve Jobs)에게 매각된 후 수익 없이 투자금만 잡아먹는 애물단지 취급을 받다가, 디즈니와 협업을 이루기 시작하면서 상업적 성공 가도를 달렸다.

디즈니의 기획을 바탕 삼아 제작하여 대대적 흥행에 성공한 <토이 스토리(Toy Story, 1995)> 이후, 픽사는 디즈니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3D 애니메이션을 연달아 제작하였고, <벅스 라이프(A Bug's Life, 1998)>,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s, Inc., 2001)>, <니모를 찾아서(Finding Nemo, 2003)>의 흥행을 성공시켰다.

잡스와 디즈니의 사이가 소원해졌던 시기에는 독자적으로 <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 2004)>을 제작해 흥행을 성공시키며 저력을 발휘했다. 이에 위협을 느낀 디즈니는 갖은 구애 끝에 2006년 주식 스왑 방식(잡스가 가진 픽사 주식 50%를 디즈니 주식 7%와 맞교환)으로 픽사를 인수했다.

영화 코코
▲2006년 디즈니가 픽사를 인수한 이후 통합 로고.
결과적으로 <인크레더블>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픽사 애니메이션은 디즈니 창업자의 사상과 가족관을 반영하는 방식으로 제작돼 왔는데, 그 대표적 모티프가 바로 편부, 편모, 혹은 고아 자녀의 가족 상실에 대한 두려움, 그리고 가족의 회복에 대한 열망이다. 그리고 이런 점 때문에 디즈니 애니메이션은 대개 세계 각지의 조상숭배 관습을 대단히 우대하는 모습을 보인다.

죽은 가족들조차 잊지 않고 사랑하며 그리워하는 모습이 디즈니가 내세우는 가족 회복의 열망에 완벽하게 부합했던 것이다. <코코>의 서사 전체를 이끄는 아스테카적 내세관과 멕시코 사람들의 조상숭배 문화는 바로 이런 의도 속에서 환상적이고 긍정적인 것으로 묘사된다.

◈가족과 조상숭배: <뮬란>의 멕시코판 변용, <코코>

이런 모습은 디즈니가 픽사와 협업 없이 자체적으로 제작했던 애니메이션 <뮬란(Mulan, 1998)>에서도 분명하게 확인된다. 중국 특유의 조상숭배 문화와 집안 내 사당(조상의 위패를 둔 곳)을 귀하게 여기는 풍습이 반영된 이 애니메이션은 조상들의 은덕을 힘입어 나라에 큰 공을 세운 여성 군인 뮬란의 일대기를 그렸다.

본 작품은 중국의 유명 가사(歌辭)인 목란사(木蘭辭)의 주인공이자 실존인물인 화목란(花木蘭)의 이야기를 기본 골자로 삼았다. <뮬란>의 서사는 조상들의 영혼을 잘 섬기면 후손의 삶이 평안하다고 믿는 동아시아의 조상숭배 사상을 대단히 훌륭한 덕목으로 소개하고 있다.

<코코>는 <뮬란>에서 디즈니가 선보였던 이런 태도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서사의 배경이 멕시코로 이전되고 그 구체적 형태가 아스테카적으로 변경되었을 뿐, 조상숭배 사상 자체에 대한 기본적 인식은 <뮬란>에 반영된 바와 전혀 다르지 않다.

영화 코코
▲영화 <뮬란>에 등장하는 조상신들.
아스테카 왕국의 내세관은 한국 무속의 그것과 매우 유사한 모습을 보였다. 우선 삶과 죽음의 경계가 그리 확연하게 구분되어 있지 않으며, 죽은 후 보상과 형벌 개념이 그리 강하지 않다. 여기에 스페인이 전수한 가톨릭교회의 내세관이 융합되면서 멕시코인들의 내세관에는 조상을 숭배하고 그들의 생전 공덕을 기리는 풍습이 추가되었다.

아스테카 사람들은 날개달린 뱀의 형상을 가진 신, 케찰코아틀(Quetzalcohuātl)을 숭배하고 인신공양 제사(전쟁 포로들의 심장을 태워 신에게 바치고, 남은 몸은 왕족과 귀족들이 요리해 먹음)를 행하기로 유명했지만, 이들이 정작 조상숭배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는지는 불분명하다.

멕시코 지역의 조상숭배 사상은 스페인에서 가톨릭 선교사들이 건너와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 및 제사 개념을 전파하면서 본격적으로 형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가톨릭교회는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 천국에 가기 전 중간 상태인 연옥(Purgatorium)에 머무르며, 생전 지은 죄악에 대한 형벌을 받는 정화(淨化, purification) 기간을 거친다고 가르친다.

그리고 이 정화 기간은 후손이나 교회의 기도를 통해 경감될 수 있다고 가르쳤다. 이런 내세관이 죽은 영혼과 긴밀한 관계를 강조하던 아스테카적 내세관에 융합되며, 동아시아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조상숭배 및 위패숭배와 유사한 모습으로 발전된 것이다.

가톨릭교회는 개신교회에 비해 토착화 신학에 포용적인 모습을 보였다. <코코>에 등장하는 '죽은 자들의 날(Día de Muertos)', 즉 멕시코 전체가 죽은 이들에게 제물을 드리는 날은 원래 가톨릭 교회의 만성절(萬聖節), 즉 '모든 성인(聖人)들의 날'이 변형되어 정착된 절기다.

영화 코코
▲영화 <코코> 속 조상숭배 장면.
조상을 비롯해서 죽은 이들에게 드리는 제사는 원래 성서에서 우상숭배로 규정하는 일이다. 1790년대 들어 점차 그 수가 늘어났던 한국 초기 가톨릭 교인들은, 멕시코 사람들과 달리 이 문제를 대함에 있어 성경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려 했다. 다시 말해 조상숭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배격했다. 때문에 이들은 당시 정권을 장악하고 있는 성리학자들로부터 사문난적(斯文亂賊)으로 규정되어 상당수가 처벌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개신교 선교사들과 초기 개신교인들 역시 이 문제로 상당한 고통을 받았다. 그리고 오늘날까지도 이런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조상숭배와 제사를 중시하는 집안에서 타인의 전도를 통해 기독교인이 된 이들은 제사참여, 위패 앞 배례(拜禮), 그리고 제사음식 문제 때문에 지금도 심적인 고통을 겪는 일이 흔하다.

물론 고린도전서에서 사도 바울이 말한 제사는 <뮬란>이나 <코코>에서 볼 수 있는 조상숭배 사상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바울이 지목한 로마 제국 시절의 제사 역시 죽은 이를 섬긴다는 점에서는 본질상 동아시아의 명절 제사 혹은 멕시코의 '죽은 자의 날' 제물 봉헌과 크게 다를 바가 없었다.

초대교회 역사를 기록한 문헌들에 의하면, 기독교인들을 가장 크게 괴롭혔던 종교는 바로 로마 황제숭배 종교(Roman imperial cult)였다. 로마인들은 그리스 신화의 사상에 입각해, 살아생전 위대한 정치적 업적을 남긴 인물은 죽은 후 신이 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로마의 위대한 황제들, 특히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Augustus)를 신으로 섬기는 종교를 피정복민들에게 강요했다.

로마 제국의 피정복민들은 간간이 황제숭배 종교에 참석하여 그 석상 앞에 절하고, 희생제물로 잡은 소의 살점을 함께 먹음으로써 로마 제국에 충성을 바치는 표시를 해야 했다.

영화 코코
▲로마의 황제숭배 종교의 제사 장면. 뒤에 제물인 황소가 보인다.
이에 바울은 죽은 이를 섬기는 행위 일체를 우상숭배로 규정하며 기독교인들이 여기에 참여하지 말 것을 명했다.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고전 10:20)."

주후 313년 밀라노 칙령(Edictum Mediolanense)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유명한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 황제는 정치적 필요성 때문에 기독교를 인정했지만, 원래 기존 로마 전통종교인 태양신 아폴로숭배 및 황제숭배 종교를 신봉했던 사람이다. 그는 이후 기독교의 교세가 강해지자 스스로 기독교인임을 천명했지만, 이것 역시 정치적 계산에 의한 것이었을 뿐이다.

그는 기독교 신앙 안에 그가 원래 믿던 황제숭배 종교의 요소들을 첨가시키기 시작했다. 그 대표적 잔재가 성인(聖人) 숭배 사상과 연옥 사상이다. 신앙의 모범이 되는 삶을 살았던 이들을 죽은 후 성인으로 지정하고 숭배하는 가톨릭 교회의 전통은, 사실 죽은 황제(사람)들을 숭배하던 로마 종교의 기독교적 변형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죽은 황제들에게 제사를 지냄으로써 제국의 안녕과 번영을 기원했던 행태는 죽은 이를 위한 기도와 봉헌을 정당화하는 연옥 사상으로 발전했다.

이로 인해 16세기 종교개혁 지도자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는 성인 및 성물숭배 사상을 우상숭배로 규정하여 비판했고, 면죄부 판매를 정당화한 연옥 사상을 '사람의 고안물(human invention)'로 규정하며 지탄했던 것이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던 성인숭배 사상 혹은 연옥사상이 메소아메리카 식민지 조상숭배 사상의 기원이 된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자연스러운 일이었다고 볼 수 있다.

<코코>는 이런 이교적 종교관을 사람에게 이롭고 흥미로운 것으로 소개하고 권장한다. 디즈니의 가족중심적 사상은 <코코>에서 확인되는 이 조상숭배 희화화의 원동력으로 작동하고 있다.

영화 코코
▲조상숭배를 가족의 화합을 위한 아름다운 덕목으로 소개한 디즈니의 애니메이션 <코코>.
불과 이틀 전, 우리는 추석과 함께 민족 최대의 명절 중 하나인 구정 설을 맞이했다. 이번 설에도 현재 섬기고 있는 교회의 몇몇 성도들은 연례행사처럼 제사 문제로 인해 가족들과 갈등을 겪거나 관계가 소원해지는 어려움을 당했다.

이런 시점에 <뮬란>이나 <코코>와 같이 조상숭배를 가족의 화합을 보장하는 아름다운 풍습으로 그려내는 작품을 대하는 일이 기독교인 입장에서 기꺼운 일은 아니다. 오히려 불편함과 씁쓸함만을 선사할 뿐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