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
▲이경섭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거듭난 성도들에게는 반드시 천국이 있어야 합니다. 다른 이유들은 제쳐놓고서라도, '천국'과 '거듭남'의 신학적 관계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선 천국이 없으면 거듭난 영혼이 있을 곳이 없습니다.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느니라(요 3:5)"는 예수님 말씀은, 단지 거듭남이 천국민의 자격 요건이라는 것 외에, 천국은 거듭난 자가 들어가 머물 처소라는 일반론적 진술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내가 처소를 예비하러 간다(요 14:2)"고 하신 말씀은, '내가 너희가 머물 천국을 예비하러 간다'는 뜻이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제자들에게 천국 길을 마련해 주신다는 뜻도 함의하지만, 천국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거할 처소라는 일반론적인 가르침을 진술한 것입니다.

"거듭남과 천국"에 대한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하나님은 천국을 만들어놓고 들어갈 자격자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거듭난 성도를 위해 천국을 준비하셨다는 해석이 더 신빙성 있어 보입니다.

이사 가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집이듯, 거듭난 영혼이 육체를 떠날 때 가장 필요한 것이 그가 거할 처소 천국입니다(반면 거듭나지 못한 불신자의 영혼이 사후에 들어가 머물 곳은 지옥 뿐입니다).

그리고 거듭난 영혼에게 천국은 사람을 거듭나게 한 원처, 본향이라는 의미에서 둘은 불가분입니다. 누가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그의 영혼이 거듭남을 입은  본향으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본래  "거듭났다"는 말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롬 6:4; 벧전 1:3)', '예수를 구주로 믿어 죽었던 영이 살아났다(엡 2:1; 요 6:63)'. '하나님으로부터 났다(요 1:13)'는 뜻 외에, '하늘로부터 다시 났다(요 3:3, γεννηθῃ ανωθεν)'는 뜻도 있습니다.

따라서 만일 거듭난 영혼에게 천국이 없다면, 엄마의 자궁 없이 아기가 태어났다는 말과 같기에 모순입니다. 성경이 천국을 성도의 본향으로 말씀한 것도, 단지 성도가 죽어서 가는 곳이란 뜻만 이 아니라, 천국이 성도가 자기를 거듭남을 있게 한 원처(原處)로 돌아간다는 뜻입니다.

연어라는 물고기는 죽을 때, 자기가 부화된 수천km 떨어진 모천(母川)으로 회귀한다고 합니다. 이는 연어의 뇌에 각인된 모천에의 기억이, 그 먼 태평양에서 강원도의 작은 시냇가에 이르기까지 천신만고를 무릅쓰게 하는 것입니다.    

거듭난 성도가 천국을 갈망하고 그곳으로 회귀하려는 것 역시, 중생한 그의 영혼에 각인된 본향에 대한 기억이 본능적으로 그런 마음을 일으킵니다.

성도들이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거의 맹목에 가깝게 천국을 갈망하는 이유도 여기 있습니다. 그의 연고지가 하늘에 있고(빌 3:20) 그의 모든 관심사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Muller). 아브라함을 위시해서 모든 믿음의 선진들이 "더 나은 본향(천국)을 사모했다(히 11:16)"고 한 것도 다 이 때문입니다.

따라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나, '천국에서 난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는 뚯입니다. 자유주의자들이나 공격자들의 주장처럼 천국은 고난스런 현실을 극복하고 위로받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피안의 세계가 아닙니다. 혹은 종교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 천국을 구색 맞추기로 끼워 넣은 것도 아닙니다.

천국은 거듭난 영혼이 자기의 난 곳으로 회귀하여 머물 실존 세계이며, 그들이 천국을 갈망하는 것 역시, 거듭난 영혼에 각인된, 본향을 향한 본능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성경의 '나그네(히 11:13)' 개념 역시, 종말주의자들의 염세적 인생관을 빗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명을 받잡기 위해 세상에 보냄을 받은 성도가(Christ's ambassadors, 고후 5:20), 사명을 다한 후 언젠가는 다시 자기의 나온 고향으로 돌아갈 자라는 뜻입니다. 곧 천국으로부터 파송된 거듭난 영혼이, 사명을 다하는 날 다시 본향인 천국으로 회귀할 것임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천국이란 본래 천국과 상관없던 자가, 비로소 그 천국을 획득하거나 천국민의 자격을 얻어 처음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 재산을 팔아 천국을 샀다(마 13:44)","천국은 침노하는 자가 들어간다(마 11:12)",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마 7:21)", "부자가 천국 들어가기가 약대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마 19:23)"는 말씀들을 제시하며, 천국은 인간이 자기 의지와 노력을 통해 현재적으로 획득하는 것이라 강변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들은, 유업으로 받은 천국을 소중히 여기라는 독려의 말씀이지, 천국을 인간의 노력으로 획득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 영생, 하나님 아들 됨의 복이 다 그렇듯이(엡 1:4-5), 천국 역시 창세전부터 예정을 입은(마 25:34), 거듭난 자들에게 허락된 복입니다(요 3:5).

그러나 이 "거듭남", "천국" 복의 가치를 아는 것은, 그가 예수를 믿고 거듭난 후입니다. 거듭난 후에라야 비로소, 예수 믿기 전의 자기는 죄로 죽었다는 것과, 자신이 위로부터 거듭나서 천국을 유업으로 받았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후적인 지식입니다.

이뿐이겠습니까? 모든 신령한 축복들, 예컨대 구원, 영생, 하나님 자녀 됨의 확신과 가치를 알게 되는 것도, 예수 믿어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후에 갖는 사후적 지식입니다. 이는 마치 선천적인 소경은 눈을 떤 후에라야 비로소 자신이 날 때 부터 소경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거듭난 영혼에게 있어, 천국은 육체를 떠난 후에나 들어갈 미래의 처소만이 아닌, 거듭난 영혼이 현재 머물고 있는 현재적 처소임을 말하고자 합니다. 거듭난 그의 영혼은 현재 살아있는 자기 육체를 근거지로 삼지만, 동시에 천국에 올려졌습니다.

실제로 성경 곳곳에 구원받은 성도 곧 거듭난 생명이, 현재완료적으로 이미 하늘에 앉히었다 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거듭난 영혼은 두 처소를 가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1:13)",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엡 2:6)".

하나님이 거듭난 영혼을 현재적으로 천국에 앉힌 것은, 거듭난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향해 가장 소중한 보물은 하늘에 쌓으라고 한 것은(마 6:20), 사실 우리에게 주신 명령 이전에, 하나님 자신에게 해당되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신께 가장 소중한 보물인 거듭난 성도의 영혼을 안전하게 보호하시려고  그들을 하늘에 올리셨습니다. 그의 보물들을 악한 자가 만질 수 없도록(요일 5:18), 아버지의 손에서 뺏을 자가 없도록(요 10:29) 현재적으로 천국에 앉히셨습니다.

성도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사실에서도 동일한 유추가 가능합니다. 현재 예수가 천국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계시다면, 예수 안에 있는 거듭난 영혼 역시 아무도 범접할 수 없도록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앉혀져 있습니다(엡 2:6).

성도가 실족할 수 없고(요일 3:9) 구원에서 탈락할 수 없는 이유는, 그의 거듭난 영혼이 하늘에 올리어 그리스도의 생명싸개 안에 감쳐져 있기(삼상 25:29)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이경섭 목사(인천반석교회, 개혁신학포럼 대표, byterian@hanmail.net)
저·역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CLC)>, <현대 칭의론 논쟁(CLC, 공저)>, <개혁주의 교육학(CLC)>, <신학의 역사(CLC)>, <개혁주의 영성체험(도서출판 예루살렘)>, <쉽게 풀어 쓴 이신칭의(CLC), 근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