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철학 김형석 교수
▲김형석 교수는 책 <선하고 아름다운 삶을 위하여>에서 “예수는 구약의 계명과 율법을 인간적 생명의 진리로 승화시켰다. 그래서 기독교가 탄생된 것”이라며 “이제 기독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인간성과 삶의 진리를 구속하는 교리와 교리주의를 탈피하지 못한다면, 점점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신의 기자
김형석 교수는 1920년 북한 지역에서 태어나 일제시대를 온몸으로 겪어냈고, 해방 후 공산주의의 해악을 처절히 경험한 후 신앙과 자유를 위해 '탈북'했다. 6·25 전쟁으로 부산까지 피난을 떠나야 했고, 전란 전후 있었던 교단 분열도 목격했다. 4·19 혁명 때는 학생들과 거리로 나갔다. 1960년대에는 미국에 가서 당대 최고 신학자였던 라인홀드 니버와 폴 틸리히, 칼 바르트의 강연을 모두 듣기도 했다.

그 시대 속에는 신사참배 문제도, 종교의 자유 문제도 들어 있었다. 최근 인촌 김성수(1899-1955)에 대해 친일행위가 인정된다며 56년만에 건국훈장이 박탈됐는데, 직접 당대의 인촌을 목격한 그는 이를 어떻게 생각할까.

"지금도 나는 인촌을 존경한다. 그는 나에게 두 가지 잊을 수 없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애국심과 지혜로움이다. 그는 일제강점기 동안 국내에 있었기 때문에 바람이 불면 큰 나무는 바람을 피할 수 없듯이 시련을 면치 못했다. 그 때문에 일부에서는 친일 인사 중의 하나라는 말도 하고 있으나, 나는 그런 사고와 판단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만큼 민족과 국가를 위해 많은 일을 한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동아일보, 고려대학교, 중앙학교, 최초로 기계천인 태극호를 낸 경성방직 등 그가 남긴 일을 모두가 애국지성에서 우러나온 것이다(90쪽)."

"도산이 병중에 있을 때, 인촌은 일제의 감시 밑에서도 도움을 주곤 했었다. 그 지혜로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그를 따르며 존경했고, 누구보다도 측근들의 협력을 받으면서 살았다. 나는 대인관계에서 그렇게 지혜로운 사람을 별로 대해 보지 못했다. 그리고 그 지혜로움은 상대방을 진실로 아끼고 위해 주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한다(91-92쪽)." 그와의 인터뷰 마지막 내용은 친일과 신사참배, 그리고 무교회주의와 가나안 성도 등에 대한 것이다.

-책에서 신사참배를 고백하셨는데, 오늘날 '친일'을 기계적으로 구분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중학교 때 그 문제로 고민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그 뿌리는 십계명입니다. 십계명의 처음 세 개는 하나님에 대해서, 그리고 네 번째는 안식일에 대해서입니다. 당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제외하면, 모두 자연 신(神)을 믿는 종교였습니다. 철학도 자연의 질서에 따른 것이였지요. 그런데 아브라함에서 시작돼 모세에게 연결되는 기독교 신앙은 자연 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우상이 아니라 정신적인·영적인 신앙이었지요. 그래서 우상 개념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우상이 무엇입니까? 신사참배를 한다 안 한다, 그게 아니라 '인생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사느냐'로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걸 바로 갖고 살면 우상이 없는 사람이고, 바로 못 갖고 살면 다 우상숭배하는 사람들이지요. '돈이 최고'라는 사람은 신사참배라기보다 현대의 우상숭배입니다.

김형석
▲그는 책에서 인생의 위기 순간마다 꿈을 통해 받은 계시를 설명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항상 고민하고 어려움을 느끼던 것에 대한 영적 암시 또는 교훈으로, 이런 일은 일생에서 몇 차례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면서도 “이런 이야기를 하면 호기심에 빠지게 된다. 이건 자랑할 것도, 간증할 것도 아니다”고 했다. ⓒ김신의 기자
하나님의 뜻과 그리스도의 교훈을 최고로 모시는 사람은 우상숭배자가 아니지만, 그보다 명예를 높이 보거나 소유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은 우상숭배자입니다. 목사님들이 학위논문을 표절했다? 우상숭배자입니다. 모두가 아는 큰 교회 원로목사가 부목사를 때렸다? 크리스천에게 폭력은 말도 안 되는 것입니다.

교회가 왜 세상 사람들에게 배워야 합니까? 제게 가장 많이 묻는 질문이 이것입니다. '간디 선생을 존경하시는데, 간디도 구원받았나요?' 천당 갔다 지옥 갔다는 인간이 말할 수 있는 게 아니지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니 저는 모르고, 다만 간디는 살아있는 동안 기독교 정신에 가장 가까웠던 분입니다. 그 분이 거짓 없는 사회, 폭력이 없고 사랑으로 사는 사회를 평생 살았는데, 그것이 예수님의 뜻입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지 말고 하나님 뜻대로 살라'는 것이 답답해서 하신 말씀 아니겠습니까? 구원받았는가 하는 이야기는 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이 하실 일이지, 우리가 말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무교회주의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가 6·25 전쟁 때 부산 피난 가서 교회를 하나 설립했습니다. 목사는 아니지만 작은 공동체를 세워서 교회가 됐는데, 두 가지를 느낍니다. 하나는 박태선 장로의 신앙촌 운동이 당시 그 동네를 휩쓸었는데, 상경 후 우리 교회는 어찌 됐나 걱정했습니다. 그런데 아들이 신앙촌 운동에 취직한 여집사 한 사람 빼고는 아무도 가지 않았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분들에게 도움을 줬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통일교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리가 얼마나 귀한지 느끼게 해 줬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로 대형교회 목회자들의 설교가 더 빈약한 것 같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설교가 예수님보다 더 당당합니다. 불교방송을 보면, 스님들은 떠들고 야단하지 않습니다. 그냥 대담을 합니다. 천주교도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목사님들은 대단합니다. 큰 교회 만드는데는 성공했지만,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설교인가 하는 부분에선 의심이 갑니다.

저도 예전에는 설교를 많이 했고, 강연하러 갔을 때 '참 잘 한다'고 하면 우쭐했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끝나는 것입니다. 다음에 청하지 않습니다. 대형교회를 목적으로 삼으면, 천주교처럼 버림받는 때가 올 수 있습니다. 물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흐르는 것입니다.

일부 목사님들이 제게 무교회주의라고 하지만 개의치 않습니다. 무교회라는 건 있을 수 없습니다. 교회라고 하니 그렇지, 기독교 공동체 아닙니까. 기독교는 공동체가 돼야 하고, 그 공동체의 대표가 교회입니다. 병원도, 학교도, 직장 모임도, 가정도 기독교 공동체입니다.

일본은 좀 이상한 것이 무교회주의자들은 그룹에서 성경공부를 하고, 교회 형식이 하나도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성경에 대한 이해는 우리보다 높습니다. 교회에서 보면 퀘이커교도들도 무교회주의입니다. 하지만 제가 보기엔 성경주의자들입니다.

성경주의자라서 잘못 되는 건 없지만, 교회주의에 빠지면 교회가 잘못 됩니다. 교회주의라는 말은 없지만, 기독교가 교회에서 성장해서 교회만을 위해 끝나면 교회주의 아니겠습니까. 천주교가 그랬습니다. 성경 읽어봐도 예수님께서 '좋은 교회, 훌륭한 교회 만들어라'고 하신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대신 '하나님 나라'를 말씀하셨습니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교회에 가 보면 교회 이야기뿐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뜻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성도'가 많아지고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말합니다. 교회가 기독교 정신을 잃어버렸다면, 교회 안 나가야 한다고요. 그들도 크리스천입니다. 교회 안 나간다고 크리스천이 아닌 게 아니고, 교인이 아닌 것입니다. 교인은 아니지만 크리스천입니다. 제 친구들 중 그런 사람들 많은데, 점점 많아질 것입니다. 교회가 수준이 낮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사상가들의 책을 읽어본 사람이 목사님 설교를 들으면 어떻겠습니까. 소박하고 선량한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대학 나오고 지성인이 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민주주의가 뭔지 가르치는 목사가 없습니다. 시장경제의 장점과 공산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경제관이 어떤 차이가 있고 무엇이 기독교적인지 말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독일 메르켈 수상 같은 분이 기독교 정치가입니다. 50-70년 전에 그 분 같은 정치가가 영국과 독일, 미국에 있었다면, 원자폭탄은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조지 워싱턴이 어느 목사보다도 크리스천답습니다. 하지만 그 사람이 기독교 정신을 갖고 있는지를 보지 않고, 교회에 열심히 나가는가만 보고 평가합니다.

일본의 무교회주의자들의 신앙은 굉장히 보수적입니다. 그들은 신학을 공부하지 않습니다. 신학이 신앙을 위해 있어야 하지 않습니까. 저도 교회에 등록이 돼 있으니, 출석을 못 하면 주보를 보내줍니다. '성도'라고 써 줍니다. 거룩한 무리, 성도(聖徒)가 쉬운 게 아닌데 말입니다. 그런데 저 같은 사람은 성도이고 그 위에 집사, 장로가 있습니다(웃음). 저는 그저 신도(信徒)입니다. 천주교에서는 베드로를 성도로 보는데, 교황도 성도입니다. 제 말은 교회를 걱정하는 것입니다."


-이번 책에선 100년의 인생을 풀어놓으셨는데, 가장 기뻤던 시기와 가장 힘들었던 시기는 언제였는지요.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은총 가운데 평안히 살았다는 사람이 있다면, 예수님과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가장 어려운 역사의 고비를 넘기고 개인 생활에서 어려운 고비를 넘긴 사람이 깊은 신앙을 갖습니다.

중세가 기독교 사회였지만, 거기서부터 흘러나온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성실한 사람은 악마도 유혹하지 못하고, 하나님도 버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성실한 사람을 하나님이 버리면, 그 누가 선택을 받겠습니까?

또 하나의 교훈은 '악마는 우리는 유혹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시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이 겪는 만큼 어려움을 겪었지만, 다른 점은 시련을 겪음으로써 하나님의 은총을 더 많이 느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이 쓰는 말이 이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인가? 사랑을 실천하는 고생이다.'

예수님의 뜻을 위해 사랑을 실천하는 고생을 하면 십자가를 함께 지는 것 같겠지만, 고생을 멀리해선 안 됩니다. 극복해야지요. 은총의 시련입니다. 그때는 힘들지만, 겪었기 때문에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알게 된 것이지요. 아무 고생 없이 평안히 살았다는 사람은 신앙이 뭔지 모릅니다.

지금도 교회 가 보면 십일조를 강요하는데, 교회를 좀 섬겨보니 헌금을 요구할 순 없는 것 같습니다. 헌금이다, 십일조다, 다 무엇입니까. 예수님이 1억 주시면서 '네가 맡아서 써' 하시면 예수님 대신 쓰는 것이지요. 미안하지만 그 귀한 돈을 건축헌금에는 안쓸 것 같습니다. 구제헌금에는 쓰겠지요. 그게 십일조에 대한 제 판단입니다. 신약에는 십일조를 권하는 근거가 없습니다."

연세대 철학 김형석 교수
▲김형석 교수는 꿈 이야기에 이어 기적에 대해서도 “신앙에서 기적을 느낀 사람들은 밖에 나와서 이야기하지 않는다. 기적이 뭔지 모르는 사람들이 떠들 뿐”이라며 “우리는 기적으로 사는 것이다. 자연법칙에는 기적이 없다. 대신 우리 정신생활에는 은총이라는 것이 있다. 그걸 우리가 기적이라 부르는 것”이라고 전했다. ⓒ김신의 기자
-한국교회에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지금까지 한 이야기들이 다 그런 것들이지요. 하나 빠진 것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이나 캐나다에 가면 천주교, 성공회와 구세군, 동방정교회는 따로 있는데, 그 밖에 장로교와 성결교, 감리교 등은 하나입니다. 그저 '일본 기독교, 캐나다 기독교'입니다. 제도적으로 하나라기보다, 함께 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캐나다에서는 기도원 같은 곳을 교단에서 갖고 있으면 각 교회들이 다 이용하지, 이 교회 저 교회가 따로 하지 않습니다.

요새는 작은교회가 만들어진 후 생활비가 없다고 걱정하는 일이 가장 많습니다. 그러나 그건 다 교단에서 책임져 줘야 합니다. 적어도 사회에 모범은 보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니, 사회가 걱정합니다. 이 두 가지 운동을 해야 합니다."

-개인적인 비전이 있으신지요.

"신앙인들에게 개인적인 비전을 물으면 '글쎄요' 라고 합니다. 하지만 신앙인이란 항상 비전을 세우고 사는 존재입니다. 항상 주님께서 부탁하시는 일이 있고 주님의 뜻을 위해 할 일이 있으니,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 생각합니다.

어제도 후배 교수들과 모임을 갖다가 '우리가 앞으로 무엇을 도울 수 있을까' 토론하게 됐습니다. 그러다 '한국병이 무엇인가'를 찾아서 이를 어떤 가치관으로 바꿀 수 있을까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문제이고, 이런 것이 비전입니다. 신앙인들은 다 그렇게 살게 돼 있지 않나 싶습니다. '우리 교회 큰 교회 만들겠다' 이런 것보단, 우리 교인들이 어떻게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이런 것 말입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