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의 도심 한 복판에 울려퍼지는 찬양 예배

김신의 기자 입력 : 2018.02.09 09:04

<찬송가와 함께> 도노마리아 김동연 음악감독과의 인터뷰

도노마리아
▲강남 스페이스바움에서 진행된 찬양 예배 <찬송가와 함께>. ⓒ김신의 기자

<찬송가와 함께>의 찬양 사역자로 섬기고 있는 강남 스페이스 바움의 음악감독 도노 마리아(김동연) 를 만났다.

<찬송가와 함께>는 지난 2016년 6월 시작해 지금까지 매달 셋째 주 화요일 오전 11시에 열리는 찬양 예배다. 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오는 부모, 반차를 내고 오는 직장인 등 도심 속에서 은혜를 사모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예배한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 안녕하세요. 선교사로서 활동하셨는데요, 지난 날부터 현재의 사역에 이르기까지 소개를 부탁 드립니다.

“저는 모태신앙이었는데, 처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것은 대학시절 농촌전도여행 때였어요. 임종을 얼마 남겨두지 않은 할머니께 예수님을 전했고, 그분은 주님을 영접했지요.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폭우를 만났어요.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는 것은 쉬운 경험이 아니잖아요? 그런데, 제게는 그 비가 성령의 임재 같았죠. 비 가운데 무릎을 꿇고 찬양을 드리기 시작했는데, 저는 그 때 할머니의 영혼을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셨다는 확신을 가지게 됐지요. 한 영혼이 얼마나 귀한지, 잃어버린 영혼이 돌아오는 감격과 복음을 전하는 기쁨을 알게 된 것이지요.

대학을 졸업한 후 두란노 올네이션스의 <경배와 찬양>에서 찬양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지요. 당시 경배와 찬양 사역이 불화산처럼 타오르던 때라 주말마다 큰 집회들이 열렸지요. 많이 힘들었지만, 이제와 보니 하나님께서 저를 마치 군인이 어떤 행동이 몸에 체득될 때까지 끊임없이 훈련하듯 강하게 훈련하신 것 같아요.

사역은 국내에서 해외로 확장되었는데, 일본을 시작으로 대만, 러시아, 키르키스탄, 미국 등에 이르게 되었지요. 그때 체험한선교에 대한 뜨거운 마음은 결국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우즈베키스탄 선교사로 가는 것으로 이어졌지요. 의사인 남편은 의료사역을, 저는 음악사역을 했습니다. 병원 지하실에서 시작한 교회가 개척되었어요. 저는 교회가 자라는 과정에서 믿음을 지키려는 성도들이 가정과 학교, 사회 공동체에서 밀려 나는 걸 봐야했지요. 우즈벡의 지체들은 제게 주님을 위해 핍박 받는 삶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어요. 그들을 통해서 주님은 겸손을 가르쳐 주셨고, 억눌린 가운에 당당히 예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시간들을 통해 연약한 저의 믿음을 단단히 해주셨습니다.

그러다 만 4년째 비자가 더 연장되지 않았고, 남편이 미국 보스톤에서 신학공부를 하게 되면서, 저는 그곳에서 현대음악을 더 공부할 수 있었지요. 그리고 그것은 다음 사역을 위한 준비가 됐죠. 지금 생각해보면, 마음의 소원은 있었어도 구체적인 계획이 있었던 게 아닌데, 아버지 하나님께서 아시고 인도해주신 것이라 깨닫게 돼요.”

도노마리아
▲도노 마리아(김동연) 음악 감독. ⓒ김동연

- 선교지의 자리에 있으면서 마음이 아팠던 일도 많았을 거 같아요.

“인생에는 아픔으로 겪어야 하지만, 결국 그것을 기쁨으로 변하게 하시는 사건들이 있죠. 아픔과 기쁨은 떨어져 있지 않았어요. 교회를 개척한지 3년 만에 뜨거운 함성, 자유로운 외침으로 마음껏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했어요. 강력한 통제국가요 이슬람 국가인 우즈베키스탄에서 부흥을 맛보게 된 것이지요. 그러나 결국 비밀경찰들이 예배 처소에 들이닥쳤고, 우리 모두는 흩어져야 하는 아픔을 겪었습니다.

그 핍박을 겪었던 해가 시작될 때 우리는 열 개 이상의 가정교회를 세우자고 결정하고 기도했는데, 좀처럼 가정 교회들이 열리지 않았어요. 작은 모임도 감시 대상이 된다는 사실을 잘 아는지라 모두 두려웠던 것이죠. 그런데 비밀경찰이 들이닥치고, 그 핍박으로 인해 흩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자, 우리가 생각지 못했던 방법으로, 그토록 원했던 가정교회들이 세워진 거예요.

주일이 되면 열두 가정으로 흩어져 몰래 예배를 드렸습니다. 멋진 예배실도, 반주도, 풍성한 합창도 없었지만, 마음을 다해 드리는 찬양과 기도, 간증과 말씀, 빵을 나누는 사랑스러운 교제가 이루어졌어요. 네, 그곳들이 바로 교회였죠. 꽁꽁 얼어붙은 상황도 함께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는 감격을 꺾지 못했습니다.

나의 기대와는 달랐지만 그것은 주님의 역사하심이었지요. 생명을 담았기에, 예배하는 자들은 깨어져 흩어져도 흩뿌려진 그곳에서 다시 예배하는 공동체를 피워내는 것을 확인하는 놀라운 아픔과 기쁨이 함께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찬송가에 담긴 이야기, 고백과 기도

이제 한국으로 돌아온 그녀는 현재, 강남 스페이스 바움 소극장의 음악감독으로 있으면서 찬송가를 예배하는 <찬송가와 함께>를 인도하고 있고, 개인적인 찬양 사역과 베이직교회 예배 인도자로 섬기고 있다. 반주자엔 재즈 뮤지션 데이비드 퓨즌스키의 멤버, 편곡자이자 프로듀서인 박상현 피아니스트가 섬기고 있다.

- 매달 드려지는 <찬송가와 함께>는 어떤 모임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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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노 마리아(김동연) 음악감독이 부상으로 깁스를 한 채 찬양하고 있다. ⓒ김신의 기자

“잔잔한, 마치 묵상 같은 찬양예배 모임입니다. 우선 오전 시간에 예배하게 된 건, 결혼하고 가정이 있는 분들은 저녁 시간에 찬양예배에 자유롭게 참석하기 어려워지는 점 때문이었어요.

한편으론 좀 더 다양한 찬양예배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요즘의 찬양예배는 풀 밴드의 찬양 팀, 그리고 인도자의 압도적인 소리가 찬양과 예배를 이끌어가는 형식이 대부분이지요. 그래서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이의 찬양소리가 살아있는 예배, 노래를 잘해야 찬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의 찬양소리를 다 담을 수 있는 예배를 소망하게 된 거예요. 하나님은 자녀 된 우리 모두의 목소리를 다 듣기 원하시니까요. 그래서 어쿠스틱 피아노 한 대로 찬양예배를 시작했죠.

또 찬양을 여전히 설교나 메시지를 준비하기 위한 과정이라 여기는데, 그것이 아니라 찬양 그 자체가 하나님을 향한 예배 행위로 존중하는 예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목사님의 설교가 없어도 주님이 우리에게 직접 말씀해주신 성경 말씀이 있으니, 그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그 말씀과 연결된 찬양을 부릅니다. 꼭 원칙이라고 할 수 없지만, 10 곡 중에 8 곡 정도는 찬송가를 택합니다. 찬송가는 멜로디와 리듬이 단순해서 누구든 1절을 듣고 나면 2절부터는 쉽게 따라 부를 수 있지요. 그리고 그 가사는 잘 정련된 기도와 같아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모를 때 가사를 한 번 다 같이 읽고, 곡조와 함께 다시 찬양하면 그 찬양은 모두 기도가 됩니다.

그래서 제가 인도를 하지만 때로는 마이크를 내려 놓고 다 함께 어우러져 찬양할 때가 많아요. 피아노 한 대의 반주와 회중들의 목소리 하나 하나가 다 들리는 찬양 모임이죠.”

- 찬송가 하니,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가장 좋아하는 찬송가를 고른다는 건 어렵지만 그래도 한 곡을 꼽는다면 ‘내 평생에 가는 길’이에요. 이 곡의 작사가인 스패포드는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죠.

이 찬양은 그의 삶의 불행이 겹치어 일어났을 때 쓰여졌지요. 외아들을 잃고 난 후 얼마 안 되어 그가 살던 시카고에서 대화재가 일어나 집이 불타버렸죠. 그로부터 2년이 지나 사랑하는 네 명의 딸들마저 대서양 바다에서 실종됐죠. 스패포드의 고통이 얼마나 크고 무거웠는지… 그런데 그는 딸들을 잃어버렸던 대서양의 바로 그 자리에서 이 찬송가의 가사를 썼다고 해요. 그 이야기를 듣고 저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8-9절처럼 내 영혼이 평안한 것은 그럴만한 상황이 주어져서가 아니에요. 하늘로부터 오는 평안은 우리가 얻으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로부터 오는 선물인 거죠.”

- 또 많은 곡들을 작사·작곡 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가장 기억에 남는 곡은 무엇인가요?

“‘오병이어’라는 찬양이 가장 기억에 남아요. 대만사역을 할 때 찬양과 워십 댄스를 함께 해야 했어요. 워십 댄스가 쉽지 않아서 그냥 찬양만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우즈베키스탄에 오니 워십 댄스가 너무 필요한 거예요. 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어 제가 해야만 했는데, 잘 하는 것이 아니니 정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했죠. 그러다 뜻밖에 워십댄스를 전적으로 지도하게 되었어요. 작은 것, 연약한 것을 주님께서 받아 쓰신 것이지요. 그래서 ‘오병이어’는 주님의 놀라운 기적을 위해, 잘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부족한 것, 적은 것을 오병이어로 받으신다는 고백이에요.”

도노마리아
▲도노 마리아(김동연) 음악 감독. ⓒ김신의 기자

- 사역을 하면서 마음이 굳어지거나 지치시는 일은 없으셨나요?

“굳어지거나 지치는 일보다는 예전에 받은 은혜로만 사는 삶을 경계하고 있어요. 젊은 시절부터 하나님이 생각지 못한 큰 은혜들을 주셨습니다. 그 은혜가 너무 커서 그때를 생각하면 너무 감사하고 기쁘죠. 그러나 매일 새로운 하나님을 경험하고 내일 또 하나님이 저에게 새롭게 역사하심을 기대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만나는 하루 양식이잖아요. 만나를 모아 내일의 양식으로 쓰려면 다 썩었다고 하잖아요?아침마다 오늘 양식을 구하고 성경통독과 찬양의 조화를 맞추려고 합니다.”

- 늘 하나님 앞에 겸손과 눈물로 무릎 꿇을 수 있는 비결(?)이 궁금합니다.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주님 앞에서 볼 때, 죄인을 구원하신 그분의 사랑을 기억하는 것 말고 달리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샘물과 같은 보혈은’이란 찬양 중에 ‘저 도적 회개하고서 이 샘에 씻었네/ 저 도적 같은 이 몸도 죄 씻기 원하네’라는 가사가 있어요. 이 찬양은 ‘저 도적 같은 내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하나님의 딸이 되었나’를 기억하게 하고, 나의 모든 죄를 씻어주신 주님을 기억하게 도와준답니다.

오늘의 내가 어떻게 이루어졌는지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해요. 그러기 위해서는 매일 주님 앞에서 정직하게 우리를 바라봐야 하지요. 말씀이라는 거울은 숨겨진, 참 질기게 남아있는 우리들의 부끄러운 모습들을 내보이고, 그럴 때 우리는 다시 주 앞에 무릎을 꿇게 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랑을 알게 되고, 그 사랑이 우리로 주님의 겸손을 사모하게 한다고 믿습니다.”

- 꾸준히 앨범을 발매하고 계신데요, 다음 앨범은 어떤 방향성과 어떤 마음을 갖고 준비하고 계신지.

“2집 <세상 끝에서 불어오는 노래> 앨범은 선교지에서의 제 고백을 담은 창작곡 앨범이었지요. 최근에는 <찬송가와 함께>라는 찬양 모임과 같은 이름으로 찬송가 앨범을 냈어요.

찬송가와 함께 모임을 하면서, 주님 앞에 독대하는 기도 같은 묵상을 하고, 그 소리들을 간결하게 절제한 찬송가 앨범을 꾸준히 발매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다음 앨범은 <찬송가와 함께-2집>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러나 더불어 창작 활동도 게을리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 못다 한 말씀과 이 시대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주님은 우리 일상의 삶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아무도 없는 곳에서 주님과 독대하고 찬양하시길 바랍니다. 다른 이에게 감동을 주는 찬양도 분명 중요하지만, 주님을 위해 홀로 있을 때 찬양하는 삶이 진정 귀하다 믿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사랑고백을 남들 앞에서 보다 둘만 있을 때 하는 것을 더 좋아하실 것 같아요. 남편이 남들 앞에서는 아내에게 애정고백을 많이 하다가 둘만 있을 때 냉랭하다면 그건 가식적인 보여주기 식 사랑이죠. 하나님과의 사랑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주님과 단둘이 있을 때 사랑을 고백하고 그분께 찬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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