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낚는 어부’인가, ‘사람들의 어부’인가?

입력 : 2018.02.05 16:35

이영진 교수의 ‘사람들의 어부들’에 대한 반론

요나
▲Jonah and the Whale, by Alma Sheppard-Matsuo. @wafflesushi
신년에 다소 의아한 견해를 보았기에 펜을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인 이영진 교수의 크리스천투데이 2018년 1월 25일자 기고문이 그것이다. 그는 이 글에서 마가복음 1장 17절의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표현이 잘못된 번역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이라는 표현이 '사람을 낚는 어부'라는 뜻이 아니라 '사람들의 어부'라는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사람(ἀνθρώπων)'은 속격 복수이고, '어부(ἁλιεῖς)'는 대격 복수라는 사실을 그 근거로 제시한다(이영진 교수가 '할리에이스'를 '알리에이스'로 표기한 것은 단순한 실수로 보인다).

본문에서 '어부'가 대격인 이유는 동사 '포이에오(ποιέω)'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므로, 이는 해당 어구가 '사람들의 어부'를 뜻하는지 여부를 결정하는 요인은 아니다. 문제는 안트로폰(ἀνθρώπων)이 속격으로서 할리에이스(ἁλιεῖς)를 수식한다는 사실이 그 어구를 '사람들의 어부'로 해석하는 근거가 되는지 여부이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영진 교수의 견해는 근거를 찾기 어려운 주장이다. 만약 그의 주장이 옳다면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에 대한 영어 번역 'fishers of men'도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들의 어부'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fishers of men'는 '사람을 낚는 어부들'라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이다.

'fisher of 목적어'가 '~을 낚는 어부'라는 영어의 관용적 표현이듯, 'ἁλιεύς('어부'의 주격 단수) + 속격'은 '~을 낚는 어부'라는 그리스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어부'의 대격 복수(ἁλιεῖς)와 '사람'의 속격 복수(ἀνθρώπων)를 결합한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도 '사람을 낚는 어부들'이라는 그리스어의 관용적 표현일 뿐이다.

'할리에이스 안트로폰(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이라는 문구에서 '안트로폰(ἀνθρώπων)' 대신 물고기를 의미하는 단어인 '익투스(ἰχθύς)'를 삽입해 보면 상황이 쉽게 파악된다. 할리에이스(ἁλιεῖς)와 해당 어휘들의 속격 복수를 결합한 'ἁλιεῖς ἰχθύων'은 곧바로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ἀπό ἁλιεῖς ἰχθύων σέ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은 '물고기를 잡는 어부들에서 사람들을 낚는 어부들로'를 의미하는 구문으로서, 그리스어로 해당 성경 본문을 해설할 때 상투적 문구로 사용할 만한 관용적 표현이다. 구글 검색만 해봐도 해당 본문에 대한 현대 그리스어 해설이나 그리스어 설교문에 이러한 표현이 여러 번 등장한다. 그러므로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를 '사람들의 어부들'로 해석한다면 넌센스가 된다. 따라서 '사람들을 낚는 어부들'이 맞는 해석이다.

따라서 이영진 교수가 'ἁλιεῖς ἀνθρώπων'을 '사람들의 어부'로 해석한 것은 그리스어에 대한 기초적 이해를 결여한 것으로서 재고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오해를 전제로 한 요나서 3장 1-5, 10절에 대한 해석 역시 주목할 가치가 적어 보인다.

다만 나의 학문적 선배는 다음과 같은 조언을 주었다. 나의 해석은 주로 현대 영어 및 현대 그리스어의 용법을 바탕으로 한 해석이다. 그런데 현대 그리스어에서 'ἁλιεύς + 속격'이 '~을 잡는 어부'로 해석되는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것이 성경의 용례에 기초하여 생성된 용법인지, 아니면 성경의 용례가 기존의 고대 그리스어 용법에 기초한 것인지를 문헌학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ἁλιεύς + 속격'의 용법이 전에 없었다가, 성경의 용례로 말미암아 출현한 것일 가능성을 확인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복음서 이전의 그리스어 문헌을 찾아보았다. 많은 용례를 발견하지는 못했다. 오직 플루타르크(Plutarch)의 Ἠθικά(ethika, Moralia)에서 다음의 용례를 찾을 수 있었다.

ἐξ ἀποδημίας προσιὼν ἠρώτησε, "μή τι καινόν," ἐζημίωσαν αὐτόν. ὡς γὰρ οἱ μάγειροι φορὰν εὔχονται βοσκημάτων οἱ δ᾿ ἁλιεῖς ἰχθύων, οὕτως οἱ πολυπράγμονες εὔχονται φορὰν κακῶν καὶ πλῆθο... (Plutarch, "On Being a Busybody," Moralia, 519)

플루타르크는 기원 후 46년-120년의 그리스 철학자, 정치가, 작가였다. 아테네 아카데미에서 암모니우스에게서 수학했으며, 생애 마지막 30년을 델피의 아폴로 신전에서 신관으로 봉직했다. 그의 생애와 저작에서 기독교의 영향을 찾아볼 수 없으니, 'ἁλιεῖς ἰχθύων'의 용례는 복음서에 기인한 것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어 자체의 용법임을 짐작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이영진 교수가 'ἁλιεῖς ἰχθύων'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의 어부'로 해석한 것은 그리스어에 대한 단순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의심을 불식시키려면 반증적인 문헌학적 근거를 제시할 필요가 있겠다.

이후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모두가 좀 더 학문적이고 신중한 접근방법을 사용하기를 바란다.

박우석
박우석
연세대 국문과와 총신대 신학대학원을 졸업. 연세대 신대원 신약학 석사(Th.M.)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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