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국열차에 올라

러시아의 대지는 끝없는 지평선이다. 가도가도 끝이 없는 눈 덮인 대지, 자작나무들이 무거운 눈을 어깨에 메고 휘어져 힘겹게 버티고 있는 길을 끝없이 달린다.

필자는 지난 1월 중순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1천km 내륙지방으로 순회 사역차 올라갔다. 까렐리야 공화국, 27만의 인구가 사는 지역, 얼마 남지 않은 소수 민족도 몇 개 있었다. 그 민족을 방문하고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지방을 순회하는 것은 이제 교회 사역이 현지인에게 이양 완료되었고, 현지 목회자들이 잘 감당하고 있기 때문에 한 걸음 더 나갈 수 있게 된 것이고, 또한 선교사만이 감당할 수 있는 중요한 사역이기 때문이다. 즉 전략적인 사역으로 이 지역을 어떻게 복음화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에 응답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현장을 살피다 보면 답이 나온다. 그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어떤 곳에는 교회 건축이 필요하고, 어떤 곳은 목회자의 자립이 필요하다. 어떤 곳은 말씀의 교육이 절실하고, 어떤 곳은 교회의 방향을 설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교회 건축은 일반적으로 모두에게 필요한 일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말씀으로 교회가 바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하는 것이고, 목회자를 격려하고 협력하여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워나가는 것이다.

현장 속에서

첫째, 현장은 아직도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말씀으로 든든히 세워져 가도록 가르침이 필요하다. 이 부분을 감당하기 위하여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말씀의 전문가로서 편협함 없이 가르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선교사가 지금까지 알고 있는 지식과 배운 것으로 적당하게 한다면 아주 우스운 일이 된다. 현장의 목회자들이 변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말씀의 전문가가 되어 깊이 연구하고 묵상한 것을 나누어주고 함께 말씀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들보다 나은 특별한 무엇이 있다고 생각하는가? 선교사라는 타이틀인가? 러시아 목회자 대부분은 타국에서 파송 받은 자들이다.

현장 목회자들의 모습을 보면, 매우 많은 연구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보고 놀라게 된다. 중요한 신학적 주제에 대하여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모든 자료를 도표화하고 누구나 만나면 형편에 따라서 교육할 수 있는 준비를 하고 있으니 말이다.

둘째, 현장 교회의 생동감이다. 대부분 러시아 교회는 개척이 기본이다. 30명이 모여도 300명, 천명이 모여도 교회가 없는 지역을 끊임없이 찾아 교회는 사역자를 보내든지 목회자가 가든지 하여서 기도처를 찾고 가정교회로부터 개척을 시작한다. 러시아 교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교회를 세워나가는 일에 열심이다.

예를 들어 800명이 모이는 지방의 한 교회는 90개의 교회를 개척하여 사역 자를 보내고, 자체적으로 예배할 수 있도록 후원을 한다. 이번 1월 중순에 방문한 지역교회는 450여명이 모이는 교회였다. 10년간에 걸쳐서 교회를 건축하고 있는데, 건축 때문에 선교 사역을 줄이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약물 중독자 센터를 운영하면서 저들에게 새 생명과 소망을 교육하고 있었으며, 나아가 교회를 45개나 개척하였다. 동서남북 사방으로 사역자를 보내고 교회가 없는 마을에 들어가 기도처를 세우고 더 발전하면 작은 예배 공동체를 세우게 된다.

시골 지역은 아무래도 작은 투자로 교회를 개척할 여건이 좋기 때문에, 사람만 세워지면 바로 일을 시작하는 것이다. 교회의 기본적인 사역이고 반드시 행할 일이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직 러시아 교회는 매우 소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러시아 교회는 이렇게 역동적으로 사역을 하고 있다. 필자가 보기에 매우 열악한 환경이고, 모든 것이 부족하고 미완성 상태이다. 그런데도 활발한 사역의 모습에 오히려 감동하게 된다.

목회자들은 기회만 있으면 배우고 연구한다. 이제는 선교사라는 이름만으로 적당하게 그들 앞에 설 수 없을 정도다. 그들보다 신학적으로, 선교적 태도나, 말씀 선포의 내용과 인격적 태도, 진실함과 판단력에 있어 진보를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런 상황을 둘러보면서 과연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하게 된다. 120여년이 넘은 한국교회 역사, 300년이 넘은 러시아 개신교회의 역사 속에 들어와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냉정하게 던지는 질문이다.

어쩌면 많은 경우 선교사들은 자기들이 만든 온상 속에서,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면서 우물 안 사역만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현장은 매우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들의 환경이 우리가 보기에 세련되지 못한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오히려 한국교회를 능가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직도 고리타분한 교단주의에 빠져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한국교회를 현장에 이식하는 경우도 있고,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적인 태도, 오직 목사 중심적인 태도로 현지인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매우 염려스럽다.

현지 교회는 예배 속에 사역자들이 골고루 분담하여 동참한다. 구약 제사장 개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한국교회나 선교사는 목사 한 사람이 원맨쇼를 하는 것처럼 독점하고 있다.

저런 수준의 생각과 태도와 습관으로 현장에 나와서, 순진한 성도들을 자기의 방식과 알고 있는 것으로 성공을 위한 사교육을 시키나 싶은 생각도 든다.

공적 영역과 공동체성을 교육하고 정의로운 사회와 세상을 향하여 나가는 사명자로 교육해야 하는데, 너무 사적이고 편협한 태도로 종교인을 육성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

선교사나 목사는 매우 다양하게 공부하고 열심히 배워야 한다. 성경은 기본이고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사역 대상은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삶과 생각을 알려면 다양하게 배워야 한다. 너무나 거룩한 척 하면서 세상의 일에 대한 관심을 불신앙적으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세상은 4차원의 세상을 꿈꾸면서 날마다 발전해 나가고 있다. 21세기를 살아가면서 19세기의 학문과 지식으로 사람들을 가르치고 있다면, 수준이 그것밖에 되지 않는다면..., 현장이 만만치 않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을 할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다시금 고민하면서 20시간, 어떤 때는 30시간, 쉬지않고 달리는 설국 열차를 타고서 현장을 누빈다.

모스크바 세르게이 리 Lee7095@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