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읽는 유럽사
법으로 읽는 유럽사

한동일 | 글항아리 | 424쪽 | 22,000원

"서양 법제사를 통해 종교와 법이 어떻게 분리되어 왔는가를 돌이켜 보면, 법이나 정치권력이 종교 위에 군림했던 게 아니라 거꾸로 법과 정치권력이 종교로부터 독립하기 위해 치열한 투쟁을 벌여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42-43쪽)."

저자의 언급처럼, 종교와 법의 관계는 4세기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을 계기로 수립된 '기독교 왕국' 이후 시민생활과 사회생활 및 정치에 있어 종교적 이상과 윤리적 가치를 부정하고, 20세기에 접어들면서 '정교분리' 개념으로 이어져 왔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과 서양 사회에서 종교, 특히 기독교(개신교)의 자유로운 활동을 법(法)으로 규제하려는 것은, 어쩌면 시대의 흐름일 수도 있다. 법은 그 사회의 가치가 어디 있는지를 밝혀주고, 그 공동체의 수준을 가늠할 지표가 된다는 점에서, .

우리나라는 헌법에서 '종교의 자유'를 명문화하고 있지만, 이미 제정된 국가인권위원회법과 계속해서 제정이 시도되는 차별금지법, 지자체 자치법규인 (학생)인권조례 등을 통해 기독교 교리의 자유로운 발표와 전파에 제약을 가하려 하고 있다. 이는 미국과 영국 등 서양에서 이미 시행된 내용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기독교 사학(미션스쿨)의 건립 목적 구현도 애매모호한 이유로 법률을 제정해 막고 있다.

<법으로 읽는 유럽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일들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물론 그것이 주 목적은 아니다. 이 책은 '법을 통해 읽는 서양 역사'로, 로마법이 기독교 세계에 끼친 기여, 그리고 교회법이 서양의 법률과 사회에 끼친 막대한 영향력을 소개하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민사소송 절차도 기원 면에서 로마법을 계수하여 발전시킨 교회의 소송절차법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교회, 인권과 박애주의의 토대 마련하다

"그리스도교를 이해하지 못하고서 서양 문화를 말할 수 없듯이, 교회법의 전통을 모르고서는 서양 법제사를 논할 수 없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한때 교회법의 영향력은 막대했습니다(156쪽)."

책에 따르면 '교회법'이라는 단어는 325년 니케아 공의회(Concilium Nicaenum Primum)에서 '규율(kanones)'과 '법률(nomoi)'을 구분한 데서 유래한다. 이후 공의회들은 신앙 규범(canones fidei), 도덕 규범(canones morum), 규율 규범(canones disciplinares)을 구분했는데, 이 중 규율 규범은 강제적 의무라기보다 주로 권고적 성격을 띠었고 이를 '노모카논'이라 불렀다.

'노모카논'은 법을 뜻하는 '노모스(nomos)'와 규율을 뜻하는 '카논(canon)'의 합성어로 후기 비잔틴 시대에 일반시민법과 교회법 규범의 수집 방법으로 나타났고, 교회법이라는 말은 이 '카논'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영어는 교회법을 '캐넌 로(canon law)'라 부르고, '노모카논'은 교회와 관련된 일반시민법과 교회법으로 구성된 교회법 모음이었다.

동방 교회는 초기부터 유지된 이 전통을 받아들여 자신들의 교회법을 '노모카논'이라 불렀고, 이후 18세기까지 효력을 갖는다. 서방 교회에서는 '교회법'이라는 용어가 8세기경부터 사용됐지만 정식 학문으로 정착하는 것은 1140년 '그라치아노 법령집' 출간 이후다.

교회는 사회에 복음의 메시지와 이에 따른 보편적 가치를 제시하며 인권과 박애주의의 토대를 마련했고, 이러한 현상은 특히 법조 분야에서 눈에 띄게 나타났다. 그리스도교 저술가들은 로마의 법률 개념을 통해 생각했고, 교회의 고유 규율에 대해서조차 로마의 법률과 행정 용어들로 말하기 시작했다. 교회법이 독립 학문으로 탄생하게 된 계기도 로마법 연구의 쇄신과 관련이 있었다.

레바논 레 체드레 수도원
▲레바논에 있는 레 체드레 수도원 전경. 동방의 수도원은 유럽 교회에 영향을 끼쳤고, 결국 유럽의 법률·종교·교육 발전에 기여했다. ⓒ출판사 제공
원제목이 '모순되는 교회법 조문들과의 조화'인 '그라치아노 법령집'은 문제를 제기한 다음 교회법 자료의 원문을 바탕으로 설명하거나 해설했는데, 이러한 학문 방법은 이제 막 태동한 로마법의 유스티니아누스의 법전을 설명하기 위한 학문 방법으로 볼로냐에서 읽히고 해석된다. 이후 1234년 '그레고리오 9세 법령집'에서는 이자 수령 금지와 폭리 행위 금지가 유래했고, 여기서 울피아누스가 말한 '계약은 지켜져야 한다(Pacta servanda sunt)'는 국제조약법과 계약법의 대원칙이 된다.

또 '보나파시오 8세 법령집' 마지막 권 속 '법의 원칙(Regulae iuris)' 88개항은 훗날 유럽의 보통법으로 발전한다. 소송 절차(ordines iudiciarii) 유형 발전의 절정은 굴리엘모 두란테(Guglielmo Durante, 1237-1296)의 <재판의 거울(Speculum iudiciale)>에서 나타난다. 이 외에도 책에서는 '다수결의 원리'부터 '종교인 과세'까지, 노예제 폐지와 일부일처제, 소송절차법 등 교회법이 일반시민법에 미친 영향을 상세하고 재미있게 설명하고 있다.

◈마르틴 루터, 교회법 관련 서적부터 불태웠다?

한편 중세 교황들의 법령집은 종교개혁 이후 개신교에서는 완전히 사라진다. 루터가 비텐베르크 주교좌 성당 앞마당에서 가장 먼저 불태운 것이 교회법 관련 서적이었다고 한다. 이후 프로테스탄트 대학에서는 교회법학이 사라졌고, 교회법이 일반시민법에 끼친 광범위한 영향도 잊혔다.

저자는 "나아가 이 일은 단순히 개신교 대학에서 교회법학이 사라지는 데 그치지 않고, 개신교단 내에서 교회법이라는 존재가 자취를 감추도록 했다"며 "오늘날 한국 개신교에 일어나는 수많은 법률적 어려움은 이때 태동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톨릭 신부로서 한국 개신교의 현실을 제대로 짚어내진 못했지만, 한국교회 내 각종 법률이 견고하지 못한 이유가 그 배경이 되는 '교회법학'의 부재 때문이라는 차원에서 새겨들어야 한다.

저자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를 '한국기독교총연맹'이라고 표기하는 등 한국 개신교에는 문외한일지라도, 한국 일반 독자들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한국인 최초 바티칸 대법원 변호사이자 지난해 최고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을 쓴 한동일 신부다. 개신교에도 인문과 신학을 넘나드는 이런 대중 저자들이 절실하다.

교회법은 로마가톨릭교회의 윤리신학에 바탕을 두다, 점차 법적 성격을 띠는 제도로 발전했다고 한다. 개신교는 저자의 말처럼 '율법'으로 상징되는 강제성과 의무감은 아무래도 배격하기 쉽지만, 예수님도 율법을 '완전케 하러' 오셨다고 친히 말씀하셨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