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심과 죄책감
수치심과 죄책감

임홍빈 | 바다출판사 | 440쪽 | 25,000원

인간의 실존은 온전한 자기 자신의 주체인 '개인(지‧정‧의)'과 우주의 일부 즉 전체의 일부로서 객체인 '자아'를 공유한 가운데, 이 둘 사이의 갈등, 균형, 딜레마 속에 살고 있다.

그런데 근대 이전의 존재론적이고 목적론적인 관점에서 '개인'과 '자아'는 개별적 존재로서 관찰되지 않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인간은 존재한다. 그러나 13세기 오스만 제국의 영토였던 스페인과 그 주변 지역 탈환은 그동안 정체돼 사변적으로 흐르고 있던,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와 사상에 혁명적 전환의 계기가 된다.

즉 오늘날 과학적 사고의 뿌리에 해당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오스만 제국의 관리 하에 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문헌)을 통해, '인간과 자연'이 당시 모든 관심의 중심이었던 '하나님(신)'의 자리를 대체하기 시작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에 대한 계몽이 시작됐다. 이는 플라토닉 중심의 형이상학적 관점에서 형이하학적 관점(자연과 귀납)의 발견을 초래하고, 결국 형이상학의 존재론적 관점에서 인문학과 자연주의의 형이하학적 관점으로의 이동이 시작된 것이다.

존재와 실존

존재론적 관점을 중심으로 한 그리스도교의 '죄책감'와 '수치'에 대한 해석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출발한다. 즉 그리스도교의 사상과 문화는 유일신으로서 하나님이 절대자로서 온 우주의 창조주일 뿐 아니라 그 창조주는 온 우주를 온전케 하고 온 우주의 충만한 존재이며, 온 우주의 질서의 창조자이며 집행자이다. 또한 그 하나님은 우주보다 큰 초월자로서 온 우주를 포괄하고 있는 존재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교의 문화는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출발함으로(하나님은 모든 것의 원인과 출발점이었다.) '죄'와 '수치'에 있어서 또한 존재론적이고 목적(종말)론적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하나님에게서 출발하는 것과 정반대의 관점인 보이는 것만을 실재로 보는 자연주의적(실존적) 관점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두지 않는다(실존신학은 다르다).

그래서 실존적 관점은 그 존재의 근원을 유추해 가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실존에 대해 현상적 관찰과 해석으로 그 이유들을 해석해 간다. 그리고 신학과 과학, 이 둘의 관계는 과거 18세기 이전까지 서로의 대결구도를 형성했지만, 18세기 말부터 서서히 협력의 관계로 돌아서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직 개신교회에서는 신학 밖의 신학에 속하지만, '영성학'에서는 '신앙과 이성', '신학과 과학'에 대해 '위로부터(존재)의 영성'과 '아래로부터(실존)의 영성'의 만남을 오래 전부터 추구해 왔다. 이제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일반은총(자연과학)'에 대한 연구와 논의가 좀 더 활발하게 일어나야 할 필요성만 남아 있다.

죄책감과 수치심의 구조와 유형

본서는 자연주의(실존주의)적 관점에서 감정(죄책감, 수치감)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과 정신 안에서 역동하고 있는 '죄책감'과 '수치감'에 대해 실존주의 철학자들의 연구들을 중심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이유는 정확히 밝히고 있지 않지만, 말미에서 자연주의와 인지주의를 비교하는 것을 통해 짐작해 본다면 '죄책감'과 '수치심'에 대해 개념(이성, 관념)적 접근이 아니라 감정과 정서의 관점으로 전제하고 있기 때문인 듯 하다.

미켈란젤로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그래서 죄책감의 구조를 니체의 '계보론'과 키에르케고어의 '불안' 개념의 구조와 유형으로 설명하며, 수치심의 구조로서 신체와 성적 수치심, 개인과 공동체 간의 갈등 구조와 정서 경제와 충동경제의 유형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수치심을 죄책감보다 더 근본적인 감정으로 설명한다.

이러한 진행 가운데 저자는 근대의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형성과 발전에 존재론적 도덕주의의 역할은 사라지고, 정서 경제와 감정의 문법으로 존재론적 개념을 배제시키고자 한다.

정서 경제

본서는 인간의 자아와 초자아, 개인과 공동체, 주체와 객체 간의 갈등과 딜레마의 발생이 죄책감의 발로라고 주장하며, 사적 신체와 공적 신체, 그리고 약자와 권력자의 관계에서 수치심이 시작된다는 자연주의적 정서 경제론을 펼치고 있다.

결국은 니체다. 니체의 인간관은 '이 세상에 던져진 사건으로서의 인간'으로서, 인간 안에 무한한 주체적 자유(가능성)를 주장한다. 그리고 그 자유에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죄책감'과 '수치심'을 정당화하는 '죄'라는 존재론(종교)적 규범의식이다.

그래서 인간은 신의 목적의 의해 창조되고 그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피조된 존재가 아니라, 생명과 죽음의 자연순환 속에서 교환경제에 근거한 '사건으로서 던져진 존재'이며, 그러므로 인간의 탄생에는 어떠한 목적이 아닌, 무한한 자유가 주어진 비규범적이고 무윤리적인 정서 경제에 의해 죄책감과 수치심이 형성됐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국 수치심은 인정하지만 죄책감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니체와 프로이트의 욕망적 행복론으로 귀결되고 있다(그러나 욕망의 그 끝은 죽음이고, 그 죽음을 통한 재생의 무한 반복은 결국 행복의 불감증과 삶의 의미 상실로서 그 무한한 가능성과 자유가 역설적이게도 허무로 귀결된다).

물론 마지막장 '비극적 인식, 사라진 세계에 대한 하나의 고찰'에서 존재론적 비판을 피하고자 애매한 출구를 만들어 놓았지만, 과연 죄의 개념이 없는 사회, 목적이 없는 무한한 자유가 행복한 개인과 사회일까라는 질문을 낳게 한다.

그럼에도 본서는 실존과 현상학적 철학의 관점에서 수치심과 죄책감의 역사와 문화적 흐름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자연주의적 정서 경제 개념에 대한 체계적인 설명으로 반복해 읽어볼 필요가 있는 책이다.

강도헌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제자삼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