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총
ⓒ크리스천투데이 DB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가 곧 새 대표회장을 뽑는다. 현재 두 명의 후보가 확정됐다. 그런데 예전 만큼 관심이 뜨겁지 않다. "기대를 걸만한 지도자가 없다"고 혀를 차는 이도 있다. 한기총을 향한 실망감이 짙게 배어 있다.   

한기총은 그 동안 부침이 심했다. 노선을 달리한 이들이 한교연(현 한기연)을 만들어 나갔다. 지난해에는 법원이 대표회장의 직무를 정지시켰다. 그러는 와중에 연합기관(한교총)이 하나 더 생겼다. 이들 사이의 '기구 통합'은 '한다' '안 한다' 말만 무성하다. 이런 난국을 수습할 인물도 현재로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한기총'이라는 이름이 갖는 의미는 결코 작지 않다. 최근 목회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로 가장 많은 43.4%가 여전히 한기총을 꼽았다.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구가 필요하다는 응답도 76%나 됐다. 한기총은 무거운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

1989년 12월 28일 故 한경직 목사를 중심으로 36개 교단 6개 단체 대표 121명이 서울 강남침례교회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한기총을 세웠다. 당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가 연합기관으로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다수였던 보수 기독교를 대표하지 못했다. 그래서 탄생한 것이 한기총이다.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에 기독교인들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3.1 만세운동의 한 가운데 그들이 있었다. 1948년 5월 31일, 제헌국회는 의장이었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제안에 목사였던 이윤영 의원의 기도로 시작했다. 소련과 중국, 그리고 반도의 절반이 붉게 물들었을 때 대륙의 끝자락, 반도의 나머지 절반에 자유의 깃발이 꽂혔다. 하나님의 은혜다.  

이후 대한민국의 눈부신 번영과 발전, 그리고 민주주의 투쟁 속에도 기독교인들은 있었다. 학교와 병원을 세웠고, 소외된 자들을 도왔다. 국가적 재난이나 사고가 나면, 가장 먼저 달려갔다. 일부의 일탈이 부각되고 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해체와 상대주의에 저항해 '지킬만한 것을 지킨' 것 역시 프로테스탄트, 바로 그들이다.

한기총은 이것을 잊어선 안 된다. 단지 교회만이 아니라 이 나라를 위해서도 그래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가 망한 것은 의인 열 사람이 없었던 까닭이다. 풍랑을 만난 뱃사람들은 하나님의 낯을 피한 요나를 탓했다. 한 나라의 서고 넘어짐이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에게 달렸음을, 우리는 언제나 기도로 고백한다.

"심히 두려워하여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행하였느냐 하니라"(요나 1:10)

마치 하나님의 음성과 같은, 준엄한 심판의 목소리가 지금 한기총을 향하고 있다. 이제 한기총은 잠에서 깨어 요나의 참회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너희가 이 큰 폭풍을 만난 것이 나의 연고인 줄을 내가 아노라"(요나 1:12)

어느 때보다 한국교회에 구심점이 필요한 때다. 많은 이들이 성(性)의 질서를 무너뜨리려 한다. 500년 전 종교개혁에서 싹을 틔운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고 있다. 나라의 안보는 풍전등화와 같다. 북한에도 종교의 자유를 찾아주어야 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이 모든 것들을 붙들고 기도하며 행동해 온 이들은 저 아래서 스스로 뭉친 목회자와 평신도였다. 한기총은 무얼 하고 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