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P 처음 만나는 루터 우병훈
▲우병훈 교수와 이정규 목사(왼쪽부터)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이대웅 기자
IVP 열린 특강이 '개혁과 건설의 신학자 마르틴 루터'라는 주제로 15일 오후 서울 합정동 100주년기념교회 사회봉사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특강에는 <처음 만나는 루터> 저자인 우병훈 교수(고신대)가 강사로 나섰다. 우병훈 교수는 특강에서 루터의 특징들을 꼽으면서 '유머'를 섞어가며 하나 하나 차근차근 설명하고,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까지 나눴다.

우 교수는 "당시 대도시에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그만큼 가톨릭의 영향력이 막강했다"며 "반면 루터는 비텐베르크라는 작은 도시에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종교개혁은 '작은 도시들의 운동'이라고도 불린다. 루터는 '이 작은 도시에서 목사로 살아가지만, 하나님은 내 사역을 프랑스 왕보다 더 인정해 주실 것'이라고 말할 만큼 자신의 사명에 대해 확신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종교개혁자 하면 루터와 칼빈 정도 밖에 모르지만, 루터파만 해도 1,500여명이고 칼빈을 비롯한 스위스 개혁파는 2,500여명에 달한다"며 "모두 유럽의 작은 도시들에 흩어져 살면서 하나님 말씀에 붙잡혀 교회 개혁을 위해 활동했다. 저도 서울에서 10년 넘게 살고 지금은 부산에 살고 있지만, 이러한 대도시보다 작은 도시나 작은 공동체에서 주어진 사명을 감당하고 사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가 생각해 보게 된다"고 말했다.

또 "루터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고 스스로를 자주 표현했는데, 루터의 부모님은 결코 가난하지 않았다. 루터는 그 도시에서 두 번째로 큰 집에 살았고, 아버지는 광산을 2개나 소유할 정도였다. 물론 부모의 신분은 높지 않았지만, 지금으로 말하면 루터는 '재벌 2세'였다"며 "'가난한 농부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세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IVP 처음 만나는 루터 우병훈
▲우병훈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이대웅 기자
루터는 '성경 박사'로 불릴 만큼 성경을 사랑하고 열심히 탐구했다. 이에 대해선 "평생 자신이 번역한 성경을 손보면서도, '성경 지식에 관한 한 우리는 다 거지들'이라고 말할 정도로 성경 앞에서 겸손하길 원했다"며 "루터 같은 성경 박사가 자신을 '거지'라고 했다면, 우리는 어떠한가"라고 질문하기도 했다.

루터는 다혈질이었고, 그의 어록을 정리한 <탁상담화>를 보면 욕설이 등장한다. 이슬람과 유대교에 대해서도 좋지 않은 감정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그러면서도 '적그리스도'로 부른 것은 오로지 '교황' 뿐이었다. 이와 관련, 그는 "그만큼 교황을 싫어했고 욕도 많이 했다. 스스로를 '교황의 적'으로 불렀다"며 "유대교나 이슬람 등을 적대시한 것도 이신칭의 교리에 위협된다고 여겼기 때문"이라고 했다.

우 교수는 "중세에는 '내가 채우지 못한 공로를 채워달라'는 독특한 사상이 있었다. 그래서 헌금도 많았지만, 가짜 수도사들도 많았고 교회 개혁을 위해 생긴 수도원 자체에 문제가 많이 생겼다"며 "하지만 루터는 부패한 수도사가 아니라 깊이 영적으로 고뇌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갖고 씨름했던 사람이었다. 양심에 아주 예민한 사람이어서 아주 작은 죄까지 4-6시간씩 고해성사를 하곤 했다. 그의 고해성사를 받아주던 스승 슈타우피츠 신부가 '다음에는 큰 죄를 짓고 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이신칭의, 로마서 1장 17절을 깨달은 것에 대해선 "루터는 수도사로서 시편과 갈라디아서, 히브리서 다음 로마서를 가르쳤는데, 1장 17절을 놓고 독특한 문제에 부딪쳤다. 해석이 되지 않은 것이다. 여기서부터 '종교개혁의 돌파'가 일어났다"며 "중세 사람들은 '하나님의 의(義)'를 성품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이 온전히 의로우신 분이기에, 죄인인 인간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설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실 로마서에 나타난 의는 그런 것이 아니었다. 루터는 그렇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의 의가 어떻게 '복음'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루터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바울이 도대체 로마서 1장 17절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바울이 말한 바를 깨닫기 위해 열심을 냈다." 그렇게 밤낮으로 수도원 탐에서 묵상하다가, 드디어 그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을 깨달았다.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믿는 우리를 의롭게 하시는 의, 믿는 자를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의이다. 기준이 아니라, 약속이자 선물이다."

우 교수는 "이렇듯 종교개혁은 성경을 보는 관점의 변화 때문에 생겨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순간을 아까 말씀드렸듯 '종교개혁의 돌파' 또는 '탑 체험'이라고 한다"며 "이 시대의 루터는 어디에 있는가? 골방에서 말씀으로 씨름하는 그곳에 있다. 우리도 해결이 되지 않는 한 구절을 붙들고 하나님 앞에서 씨름할 때, 교회를 갱신하고 개혁할 수 있는 힘과 에너지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가 루터를 너무 큰 인물로 보기 때문에, 오늘날의 개혁도 거대담론이나 시스템 문제부터 생각하기 쉽지만, 여기서부터 출발하면 어떨까"라고 권유했다.

IVP 처음 만나는 루터 우병훈
▲특강이 진행되고 있다. ⓒ이대웅 기자
우병훈 교수는 당시 가톨릭의 구원론을 '마일리지 구원론'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이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이 그를 가엾게 여겨 구원의 자리로 부르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표현대로, 구원의 완전한 확보는 아니고 다시 공로를 쌓아가야 한다. 새로운 '성향'을 받은 사람이 공로를 쌓아 '커트라인'을 넘겨야 구원을 받는 것이다. 넘기지 못하면 그만큼 벌을 받으러 가는 곳이 '연옥'이다. 살면서 공로를 쌓다가 큰 죄를 지으면 아예 구원을 상실할 수도 있다."

<독일 민족의 귀족에게 호소함>, <교회의 바벨론 포로>, <그리스도인의 자유> 등 루터의 종교개혁 3대 논문의 공통점으로는 "사제직을 비판하고, 만인제사장직 교리를 제시한 것"이라며 "만인제사장직은 모든 사람이 세례를 받는 동시에 제사장이 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반면 종교개혁의 '3대 장벽'으로는 "세속 군주보다 높은 교황의 지위, 성경 해석권을 최종적으로 가진 교황의 오만, 종교회의의 유일한 교황 소집권"이라며 "모두 교황에 대한 것"이라고 했다.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등 종교개혁 5대 원리 중 가장 중요한 것으로는 '오직'을 꼽았다. 그는 "가톨릭도 성경의 권위와 속성, 은혜, 그리스도 등을 많이 이야기한다.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며 "그러나 '오직'이 빠져 있는 것이다. '성경'과 '전통'을 같은 위치에 두는 식이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종교개혁 정신도 바로 '오직'에 있지 않을까"라고 밝혔다. 그래서 루터는 로마가톨릭을 '영광의 신학'이라 불렀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챘기 때문이다.

루터가 개혁한 것은 라틴어가 아닌 자국어로 설교하면서 그럴싸한 이야기가 아닌 '복음'을 설교한 '말씀의 개혁', 모든 성도들이 빵과 포도주를 받도록 한 '성찬의 개혁', 주문 비슷한 기도와 라틴어로만 부르던 찬송을 개혁한 '기도와 찬송의 개혁', 그리고 '신앙고백과 교육의 개혁' 등 4가지였다.

우병훈 교수는 약 1시간 30분 동안 열정적으로 루터에 대해 설명했으며, 기도로 강의를 마무리했다. 이후에는 이정규 목사(시광교회)와 함께한 대담 시간이 이어졌다.

저자 우병훈 교수는 책 <처음 만나는 루터>에서 '새 시대의 사도, 계몽주의자, 신앙의 모범, 자유주의의 아버지, 괴팍한 사람' 등 천의 얼굴로 묘사되는 개혁자 루터의 진면목을 살피면서 그가 추구한 개혁이 단순히 구시대의 해체가 아니라, '오래된 미래'를 되찾는 건설을 지향하고 있었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IVP는 마르틴 루터에 대한 또 다른 신간 스콧 헨드릭스의 <마르틴 루터> 출간을 기념해 '비전의 개혁자 마르틴 루터와 그의 시대'를 주제로 열린 특강을 오는 22일 오후 7시 한 차례 더 개최한다. 강연에는 이재근 교수(웨스트민스터신학대학원대학교), 대담에는 책 번역자인 손성현 목사가 각각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