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장
▲내가 자유롭다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현실에 무심해지는 것이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생각하기보다는 느끼는 편이 현명하다.
"저도 당신처럼 자유로워지기로 했어요."

당신이 왜 내게 그런 말을 했는지 나는 모른다. 이제까지 한 번도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한 적은 없었다. 다짐과도 같은 당신의 말을 들었을 때 처음에는 나를 비난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뭘 잘못하기라도 한 걸까?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그다음 생각한 건 '자유로워진다는 게 뭐지?'였다. 더구나 '나처럼'이라니! 그렇다면 내가 자유로워 보인다는 뜻인가? 내가 자유롭나? 여러 질문이 갑자기 내 안으로 대책 없이 쏟아져 내렸다.

자유. 좋은 말이다.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그리 감촉이 있는 말은 아니다. 노랫말이나 책의 문장, 영화 대사에서가 아니라 내 앞에 있는 사람이 그 단어를 직접 입에 담은 건 당신이 처음이다. 나는 묻는다.

"자유롭다는 게 뭔데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거요."
"내가 그렇게 보인다는 거예요? 당신이 보기에...?"
"네. 누가 봐도 당신은 자유로워 보여요. 당신은 자신이 자유로운 거 못 느껴요?"
"자유롭다기보다 나는 그저 홀가분하고 싶은 것뿐인데요."
"그게 자유로운 거예요."
"아... 그래요? 그런데 왜 갑자기 당신도 자유로워지기로 한 거예요? 지금은 자유롭지 않아요?"

"지금까지 자유로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그냥 주어진 상황에 따르며 지냈어요. 학교 땐 공부를 해야 했고, 다른 친구들이 취업 준비를 하니까 나도.... 그러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다 갔어요. 다행히 회사에 취직이 되었고, 그 이후로는 적응하느라 바빴죠. 회사에 적응하고 나니까 언젠가부터 중요한 걸 놓쳐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어요. 마음이 텅 빈 것 같아서 어디 마음 둘 데가 없었어요. 그러다 당신을 만났는데, 나와는 다른, 완전히 딴 세상 사람 같았어요."
"내가 출근을 안 하고 여행을 자주 길게 다녀서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닌가요?"
"물론 그것도 이유이긴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에요."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서 그다지 생각해본 적 없는 내 삶에 대해 생각해봤다. 나는 확실히 내 방식대로 살아왔다. 하고 싶은 일은 웬만하면 하려 했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포기했다. 솔직히 별다른 재주 같은 건 없었다. 남들 다 하는 공부에도 소홀했고, 또래 친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스포츠도 싫어했다. 나는 늘 다른 것에 정신이 팔려 오롯이 하고 싶은 것만 했다. 그건 음악 듣기와 책 읽기였다. 내게는 그것이 더 맞는 것 같았다. 물론 거기에 내 미래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앞날에 대한 원대한 계획이 있어서 그랬던 건 아니었다. 음악을 듣거나 책을 읽으면 지겨운 시간들이 빨리 지나갔다. 지겨운 시간들이 나를 빈틈없이 둘러싸고 있는 시절이 있었지만 책과 음악 덕분에 미쳐버리지 않고 견딜 수 있었다. 그 시간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

나는 스스로 자유롭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오히려 조금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의 비겁함이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는 건 아니니까 그냥 이대로의 모습으로 살고 있다. 그런데 이런 내가 자유롭다고 하니 부담스러웠고, 어쩌면 다른 사람들도 나를 그렇게 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당신에게 어색하게 웃어 보일 수밖에 없었다.

내가 자유롭다는 말에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자유로워진다는 건 현실에 무심해지는 것이고, 조금은 뻔뻔해져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남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니까. 후회도 미련도 없어야 한다. 선택했다면 어떤 결과가 펼쳐지든 운명처럼 묵묵히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매 순간 생각하기보다는 느끼는 편이 현명하다. 머리로 생각하기 시작하면 방향이 정해진다. 바보가 아닌 이상 누구나 가능한 한 최고의 선택을 하려 한다.

마지막으로 나는 자유로움이 쓸쓸한 거라고 생각한다. 내 가족, 친구, 내가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자유롭지 않은데 혼자 자유로워 봐야 의미가 없다. 사실 나는 자유롭지 않다. 그저 내 새장에는 작은 문이 열려 있고, 그곳을 통해 나갔다가 다시 새장 안으로 돌아오는 방법을 알고 있을 뿐이다. 나처럼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당신에게 말해주고 싶었다.

"당신의 새장은 원래부터 열려 있었고, 그 밖으로 자유를 찾아 날아가는 건 당신의 진심입니다."

- 『무엇이 되지 않더라도』 중에서
(김동영 지음 / 아르테 / 284쪽 / 15,000원)<북코스모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