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
▲몽골 울란바타르대학교 캠퍼스
20년간 몽골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선교하신 뒤 현재 인천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으로 재직 중인 윤순재 목사님의 선교 칼럼을 격주로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성취를 향해 달려갔던 내 인생의 전반기: 울란바타르대학교의 놀라운 성장

1992년부터 몽골 선교사로 일하는 동안 쫓겨나지 않으려고 시작했던 한국어학원(KLI)이 단과대학(Ulaanbaatar College)이 되고, 9년 뒤에는 대학 재단법인이 설립되어 종합대학교(Ulaanbaatar University)로 발전했습니다. 몽골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시장경제로 전환하는 시기에 몽골에 사립교육기관들이 우후죽순처럼 설립될 때 외국인이 사립대학을 설립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은 것입니다.

한국은 사립대학이 생긴 지 100년을 넘었기에, 새로 시작된 몽골 사립교육시장(?)에서 우리는 경험과 기술력, 정보 면에 있어 몽골 현지 대학들보다 많이 앞서나갈 수 있었습니다. 경영학 용어로 설명한다면 교육 분야에 '블루 오션(Blue Ocean)'을 개척한 셈이지요. 그래서 몽골에서 처음 도입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아래에 소개하는 내용들은 그런 결과를 확인해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최초의 학점이수제도(Credit system), 장학제도 도입(1993)
최초의 한-몽, 몽-한 사전 제작 보급(1994)
최초의 외국인 투자 대학설립인가(1995)
몽골 대학 1단계 종합평가 "최우수대학"(1999)
몽골 교육부 선정 최우수 10대 대학교(2002)
6년 연속 졸업생 취업률 1위(1998-2003)
몽골대학 2단계 종합평가(2004)
재학생 대비 해외유학생 비율 1위(2005)
한국 대통령 몽골 국빈 방문 시 대학방문(2006)
한국문화관광부 전 세계 1호로 "세종학당" 설립(2007)
한국정보통신부에서 인터넷플라자 설치 및 기증(2007)
최초의 전자 출입 시스템 운용(2007)
대학 축구팀 몽골 축구 프리미어리그 우승(2009)

몽골 올란바타르대학교
▲울란바타르대학교를 방문한 당시 노무현 대통령 내외와 반기문 당시 외교부 장관, 송민순 정책실장, 윤순재 목사(앞줄 가운데부터).
1990년까지 기독교 자체가 전혀 없었고 70년간 사회주의국가였던 몽골은 선교활동이 자유롭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가 미션스쿨(Mission School)로 세웠지만 전공학과들은 언어학, 경영학, 소프트웨어공학, 디자인, 간호학 등 신학이 아닌 일반 종합대학으로 몽골 사회의 필요에 맞추었습니다.

울란바타르대학교는 사회변화 속도보다 더 빠르고, 큰 규모로 성장하여 제가 학교 발전을 이끌어가기는커녕 뒤따라가기에도 벅찼습니다. 학생 수가 2,000명이 넘어서자 경상운영비를 자체 조달할 수 있었고, 종합적인 교육 체계를 세우기 위해 부속 초등학교, 중고등학교도 설립하여 울란바타르대학교는 몽골 사회에 건실한 대학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저는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사회 환경에 대응하고, 급속도로 커져가는 대학의 외형적 성장에 맞춰 캠퍼스 조성과 건축, 교수 확보와 필요한 재원 조달 등 설정 목표를 달성하고 성취하는 일에 전념하였고, 대부분 놀라운 성과를 거뒀습니다.

울란바타르대학교가 외형적인 성장만 이룬 것은 아닙니다. 이 기간 6개의 기독교 동아리들이 활발하게 일하면서 수많은 학생들에게 복음 전도를 했고, 졸업생 수십 명이 목회자가 되어 교회 개척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또한 기독교 서적과 출판, 선교정보 제공, 문화와 스포츠 선교, 의료와 보건, 지역사회개발 등 종합선교의 공간으로서 몽골 선교의 중심적 역할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맡겨진 일들은 엄청난 속도로 성장하기에, 밀려오는 업무들을 처리하고 해결해 가느라 몽골에 입국한 이래 18년 동안 한 번도 제대로 된 안식년을 갖지 못했습니다. 더구나 총장이라는 직무는 누구에게 맡기고 안식년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일단 총장직을 사직하고 안식년을 갖겠다고 했더니 재단에서 만류하셨지만, 1년간 업무인계 과정을 거쳐 안식년을 시작했습니다. 마침 캘리포니아에 있는 풀러선교대학원 방문교수가 되어, 만 50세에 1년 반 동안 쉼과 배움의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프타임(Half Time): 선교대학원 방문교수

안식년을 어렵게 얻었기에 "의미 있게 잘 보내자!" 마음먹고 꼭 해야 할 일들을 다음 세 가지로 정했습니다.

①쉬기: 17년 동안 대학교의 설립자로, 책임자로 일하면서 일벌레처럼 지냈기에,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쳤다는 것을 스스로 느꼈습니다. 그래서 쉬고 싶었습니다.

②되돌아보기: 몽골 선교 현장에서 놀라운 성장과 발전을 체험하며, 날마다 일어나는 하나님의 역사와 기적들을 눈으로 목격하며 앞만 보고 달려왔습니다. 어느 날 문득 옆을 보니 마음을 나눌 친구도 없고, 개인적 필요를 채워주는 그룹도 없이 '돌진하는 군인'처럼 고립된 느낌을 가졌습니다.

③미래 준비하기: 그렇게 지난날들을 되돌아 본 후에 내 인생의 전반전을 마치고 중간 하프 타임(Half Time)을 갖고 나면, 새롭게 충전이 되어 다음 후반전을 시작하리라 생각했습니다.

비스타 포인트
▲미국 비스타 포인트 표지판(US-212 도로).
◈위에서 내려다 보는 비스타 포인트(Vista Point)

안식년 때 자동차로 운전하면서 미국 대륙을 왕복 횡단했습니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다 보면 대개 앞차 뒷모습만 주목하며 운전하게 됩니다. 가끔 주위 풍경을 보게 되지요.

그런데 먼 길을 가다보면 산 중턱쯤에 비스타 포인트(Vista Point)라는 표지판(Sign)이 나옵니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제가 운전해 왔던 길들을 볼 수 있고, 전체 모습이 나타나는 멋진 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신앙의 눈이란 일상 속에서 옆을 보는 것이 아니라, 하늘 위에서 주님의 마음으로 내려다보는 것입니다. 그러면 더 멀리, 더 넓게 보입니다. 저도 새로운 관점에서 살아온 일들과 사건들을 돌아보았습니다. 새로운 눈으로 미래를 생각해 보고, 이제 시작하는 내 인생의 후반기에는 다음과 같이 관점을 바꾸기로 하였습니다.

◈관점의 변화

첫째, 업무에서 관계로

그동안 저는 제게 부과된 일을 잘해내는데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일보다 관계가 더 소중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일 잘해보겠다고 서둘렀다가 좋은 동역관계가 깨지는 경우가 종종 발생합니다.

둘째, 성취에서 의미로

겉으로 보이는 많은 양적 지표들을 달성하느라, 그 안에 담겨 있는 본질적인 이유를 무시하거나 지나쳐버리기도 합니다. 어떤 것을 성취하는 것보다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볼 수 있는 안목이 더 중요합니다.

비스타 포인트
▲필자가 비스타 포인트에서 내려다 본 풍광.
셋째, 지위에서 역할로

많은 사람들이 높은 지위와 좋은 자리를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주면 열심히 일하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리는 얻었는데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에, 자기도 괴롭고 남도 힘들게 만드는 안타까운 일들을 많이 보게 됩니다.

넷째, 행함(Doing)에서 존재(Being)로

'바쁜 것이 좋은 시절'이 있습니다. 일자리도 많지 않고, 다들 경기가 나쁠 때는 뭔가 열심히 할 일이 필요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갑니다. 한국 사회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뭔가를 하고 있어야 한다'는 강박사회라고 합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살아 남아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인생의 후반기에는 사람의 존재 자체가 영향력을 끼치고, 진정한 감동을 주는 삶이 더 중요합니다.

◈새로운 출발

하프타임(Half Time) 기간에 관점을 바꾸니 저는 하나님 앞에서 용서받은 한 죄인이며, 창조주 하나님의 고귀한 자녀라는 정체성을 깊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을 잃는다 해도 내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을 얻은 것만으로 충분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다시 소박하게 한 가지 은혜를 청하였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을 사모하는 그 것이라(시 27:4)."

관점이 바뀌니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새롭게 일을 시작할 의욕을 얻었습니다. 바로 그 때 하나님께서 저와 제 아내를 새로운 사역의 일터로 부르셨습니다!

윤순재
전 몽골 선교사(1992-2012), 현 주안대학원대학교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