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절 받는 꿈, 야곱의 사닥다리 꿈... 꿈은 정말 반대인가?

입력 : 2018.01.11 18:57

[김충렬 박사의 ‘치유상담’] 칼 융의 분석심리학과 상담치료(54)

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54장 꿈의 기능(1)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 꿈에 대한 융의 명제이다. 이 간단한 명제는 꿈의 속성과 그 기능까지 극명하게 드러내는 측면이 있다. 꿈이란 무엇이냐, 그 꿈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암시해 주는 것이다. 이미 앞에서 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았다. 여기서는 그 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꿈-기능을 살피고자 한다.

1. 정신의 균형을 위한 꿈

꿈은 정신적 균형을 이룬다. 꿈의 정신적 균형은 꿈이 갖는 가장 중요한 기능에 해당한다. 꿈은 의식이 쉬는 동안 활동을 하는데, 그 활동이 일정한 역할을 한다는 것은 실로 놀라운 사실이다. 의식이 합리적인 사고에 의해서 진행되는 제한성으로 초래된 불균형을 꿈이 그것을 회복한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융은 일반적인 꿈의 기능을 정신의 균형회복으로 본다. 꿈은 의식에 대한 무의식의 균형을 위한 것이라는 점에서다.

1)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으로서 꿈

정신의 균형은 꿈을 통하여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을 이루려 한다. 의식과 무의식의 통합은 정신건강에 중요한 요인임을 의미한다. 이러한 균형은 정신적인 안정 뿐 아니라 신체적인 건강을 위해서도 필요한데, 이는 의식과 무의식이 통합되지 않으면 서로 갈라지는 해리(解離)로 인한 정신적인 장애가 발생되기 때문이다. 무의식은 의식에 일정한 신호를 보내어 이를 알리려 한다.

이를 위하여 꿈은 상징적인 언어를 통하여 심리의 본능적인 부분인 무의식에서 합리적인 부분인 의식에로 메시지를 전달한다. 꿈이 정신적인 균형을 이루는 역할을 한다면, 꿈이란 기묘한 방법으로 정신적 수준 전체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무의식이 꿈의 소재를 산출하여 정신적으로 균형을 되찾는 수단이 된다는 것인데, 이것이 바로 융이 말하는 꿈의 일반적인 기능이다.     

2) 내향과 외향의 균형으로서 꿈

우리는 심리적인 불균형의 예를 일상생활에서도 경험할 수 있다. 의식의 세계에서도 외향적인 것과 내향적인 심리태도가 편향된 사람들이 있다. 외향이 지나친 사람은 객관적인 것에만 집중하는 현상을 보인다. 따라서 그들은 주관적인 측면, 즉 자신의 내향에 소홀함으로써 심리적 불균형을 초래한다. 내향이 지나친 사람은 외부의 세계보다는 자신의 내부세계에 집중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객관적인 측면이 무시되거나 소홀해지기 쉽다. 정신의 세계에서는 외향과 내향의 균형, 의식과 무의식의 보이지 않는 균형이 있다. 사람은 의식이라는 세계에서 논리만을 중심하여 살 수는 없다. 자신이 모를 뿐 무의식적인 영향을 받고 사는 것이다. 정신에는 의식한 일이 없어도 은연중에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의 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의식에서 무의식의 작용과 관련하여 융은 어느 철학교수를 그 예로 든다. 그 철학교수는 자신이 악성종양에 걸렸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심리적인 고통에 차 있었다. 그러나 병원의 여러 번의 검진 결과는 전혀 이상이 없었다. 그는 융에게 찾아와 "검진 결과로는 아무 이상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혹시 무엇인가..." 하면서 말하였다. 교수는 검진결과를 믿지 못했다.

그 검진결과를 불신하는 것이 결국 교수의 심적 고통의 원인이자 병이라면 병일 것이다. 이는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지식인이 비합리적인 것에 지배되는 경향의 한 사례이다. 그 교수는 어떤 공포심에 눌려 있는 심적 상태이다. 그 원인은 분명이 의식적으로 형성되지 않은 곳에서부터 온 것이다. 그런 병적인 생각이 갑자기 엄습하면 의식이 통제할 힘을 잃을 수 있다. 이는 마치 미개인들이 귀신의 존재를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나 다름없다.

3) 주관성과 객관성의 균형으로서 꿈

주관성과 객관성의 문제는 현실과 비현실의 문제이기도 하다. 주관성이 비현실에 가깝다면 객관성은 현실에 해당하는 것이다. 병리적인 원리에서 보면 환자들은 대개 주관성이 높은 편이다. 이 주관성은 물론 자신이 생각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이기에 현실과 차이를 보인다. 이런 것은 현실과 이상의 문제라고 보아도 같은 말이다. 현실은 논리의 세계라면 이상은 비논리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원주민은 밤에만 나타나는 짐승이 낮에 발견된 경우에는 이상한 변형을 생각하는 관습이 있다. 이것은 마치 초원의 혼령이나 조상의 혼령이 변장하여 나타난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신화의 세계에 사는 그들은 자연의 신비적인 참여에 자연스럽다. 융은 이를 문명인들이 상실한 부분이라 지적한다.

문명인들은 합리적인 객관세계에서 비합리적인 신화성을 상실한 정신의 황폐화를 가져왔다는 것이다. 합리적인 세계에 지나치게 익숙한 사람이 지극히 비합리적인 현상들은 비단 전술한 철학교수만 아니라 주변에서 찾기가 어렵지 않은 경우들에 속한다.    

2. 의식의 보완이나 보상의 기능으로서 꿈

꿈은 의식에 대하여 보완 및 보충의 역할을 한다. 그러니까 꿈의 보상적인 기능은 정신, 특히 의식이 어느 한 쪽에 치우친 경우에 꿈은 정신적인 확장을 통하여 보충하는 역할을 한다. 이런 경우에 꿈의 보상성은 전날 의식의 '문턱' 아래, 그것도 억압 때문에 머물러 있던 것, 또는 그 내용의 강도가 의식에 도달되기에는 너무나 약해서 의식 밑에 있던 모든 요소들이 의식 상황에 결합하는 것이다.

때로 지나치게 비현실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들, 자신을 과대평가 하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성격적으로 편파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평가를 받는다.

1) 의식의 보완을 알리는 꿈

의식이 편향된 상태일 때 무의식은 그 보완이나 보충(Komplemen- tierung)을 알리게 된다. 물론 이 보완은 의식과 무의식의 관계가 결과적으로 균형을 위한 것이기는 하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신호의 성격상 의식의 보완이라 부르게 된다. 의식이 지나치게 높아져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높은데서 떨어지는 꿈을 꾼다고 본다. 이들은 꿈에서 교통수단인 차량, 고속버스를 타고 가다가 가파른 낭떠러지에서 떨어지는 꿈을 꾸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런 꿈은 물론 심각한 사고이기는 하지만, 다행히 다친 데가 없는 무사한 꿈일 수 있다. 이런 경우의 사람은 아마도 떨어지면서 꿈에서도 엄청난 낭떠러지로 떨어지고 있구나, 이제 '나는 죽는가 보다' 하고 생각을 하면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런 꿈을 꾸는 사람들은 대개 현실의 조건이나 상황보다도 의식이 지나치게 높아진 상태에 있기 때문에 무의식이 꿈을 통하여 마음을 조금 낮추라고 지시하는 것이다.

이 외에도 이처럼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꿈을 꾸는 비현실적인 사람들, 자신을 과대평가하여 능력이상의 계획을 세운 사람들은 대개 공중을 날아가다가 갑자기 떨어지는 경험을 한다. 이런 꿈은 모두 무의식이 그 편파성을 지적하는 작용이다. 무의식의 편파성을 지적하는 것을 통하여 개인은 지적받은 정신의 어느 부분을, 즉 인격의 결함을 보충하게 된다.

무의식이 인격의 부족한 면을 보완 및 보충하는 형태는 또 다른 것도 있다. 경고의 형태가 그것이다. 물론 경고란 그 특성상 예시적인 측면을 포함한다. 따라서 예시적인 기능은 꿈의 따른 형태의 하나로 다루어진다.

2) 보상으로서 꿈

꿈은 보상(Konpensation)적 기능을 수행한다. 꿈에서의 보상적인 기능은 정상적인 정신에서 심리적인 평형을 이루는 것을 목표로 하고, 스스로 정신 체계의 자가 조정임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보상적인 기능의 꿈이란 현실의 보상적인 기능을 나타낸다는 것인데,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을 꿈에서 이룸으로써 보상한다는 것이다.

꿈의 보상과 관련해서 세 가지 가능성이 있다. 꿈을 꾸는 사람이 생활에서 의식의 태도가 지나칠 정도로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꿈의 관점은 반대편을 취하지만, 꿈을 꾸는 사람의 의식이 비교적 '중앙'에 근접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 꿈은 의식과 비슷한 변이를 만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꿈을 꾸는 사람의 의식이 옳거나 적절하면 꿈은 이와 일치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도 꿈이 무의식 특유의 자율성을 잃어버리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꿈을 해석할 때 환자의 이식상황을 평가하는 것이 중요하게 작용하기에 분석자는 이것을 잘 파악하여 해석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할 뿐이다.

꿈이 보상적인 기능을 수행한다는 것은 아마도 꿈의 기능 중 가장 고전에 해당하는 기능이기에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에 대해서는 고대 헬라의 히포크라테스의 시대에도 발견된 바가 있기 때문이다. 히포크라테스는 환자가 꿈속에서 먹었다는 음식을 제공해 주었더니 정작 먹고 싶었던 음식이었다고 말했다는 점에서다.

프로이트 역시 이를 강조하여 신경증 환자들의 소원충족을 입증한 것으로 유명하다. 남편의 사랑을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은 여성 환자의 경우는 꿈에서는 하나 같이 남편의 포근한 사랑을 받는 꿈을 꾸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꿈은 반대이다."고 하는 말은 이 보상적 의미에서 옳은 것이다.

실제로 "꿈은 반대이다."는 말은 꿈의 보상적인 기능과 일치한다. 그러나 보상적 기능이 현실과 모두 반대일 수는 없다. 그것은 해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중요한 것은 꿈꾸는 사람의 의식에 태도에 따라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의식의 태도가 지나치게 일방적일 때는 꿈과는 반대이며, 의식의 태도가 어느 정도 적절한 경우에는 보충의 현상이 나타나고, 대체로 균형을 유지하는 경우에는 의식의 태도와 일치로 나타난다.

전술한 것처럼 환자가 어떤 음식을 먹고 싶어 했지만, 먹지 못한 것은 의식의 일치와 관련된다. 그런가 하면 신경증 환자의 애정망상의 꿈은 그 반대로 나타난 것이라 볼 수 있는데, 이는 현실에서 이루지 못한 것이 꿈에서는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정한 대학에 합격을 굉장히 바라는 사람의 경우에 꿈에서는 합격하는 수가 있다. 어느 누구와 결혼을 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이런 경우에 현실은 꿈과는 전혀 반대일 수 있다.

3) 의식에서 일치를 이루는 보상으로서 꿈

보완이나 보상은 대개 반대적인 성격이 중심을 이룬다. 하나의 부족한 다른 것이 채워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의식에서 일치를 이루면서 보상적인 경우의 꿈이 있다. 이와 관련하여 융은 등산에 매우 열심을 가진 중년남자의 예를 든다. 그 남자는 실제로 현실에서 무엇인가 이루려는 한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좋아하던 것은 등산이었다. 아마도 등산가로서 높은 산을 정복하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는 다음과 같은 꿈을 꾸었다. "나는 높은 산 위로 만년설이 가파른 경사를 올라가고 있다. 그것은 점점 더 높아진다. 날씨가 기막히게 좋다. 높이 올라갈수록 기분이 점점 더 좋아진다. 그저 영원히 그렇게 올라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정상에 올라갔을 때 행복감과 고양된 기분이 너무도 커서 나는 더 높이 우주로 올라갈 수 있다는 느낌까지 든다. 아는 이제는 이것을 할 수 있다고 느끼고 공중으로 올라갔다. 나는 충만한 황홀감 속에서 깨어난다."

이 꿈에서 융은 등상을 가지 말라고 권고했다. 산에 가려면 두 사람의 안내자와 함께 가라고 했다. 융은 그에게 등산을 조심하라는 경고성 있는 근신을 당부하였지만, 그는 이를 무시하고 등산을 감행하였다. 3개월이 지나서 그는 꿈대로 정상에서 발을 헛디뎌 사망한 것이다.

다른 한 부인은 분수에 지나친 생활을 하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일상생활에서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사람으로 보였는데 꿈은 불미스러운 것이었다. 융은 그녀에게 장래의 불미스러운 사건을 예고 및 경고해 주었다. 그러나 그 부인은 그것을 전혀 수긍하는 눈치가 아니었다. 얼마 안가서 그녀는 산책하는 중에 숲길을 가다 성폭행을 당하였다.

다행히 그녀는 살해되지는 않았으나 갈비뼈가 두 개가 부러지고 머리를 다치는 등 자칫 목숨까지도 잃을 뻔 했다. 융은 이를 두고 그녀가 심리적으로 이미 그런 모험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점을 지적하였다. 이런 것은 중년남자나 중년부인의 경우가 모두 의식의 일치를 이룬 꿈이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꿈이 보상적이라는 것은 의식의 태도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는 점이다. 의식에서 등산의 만족감을 추구하던 그 중년남자나 여자는 모두 거기에 엄청난 대가를 치룬 것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꿈이 보상적 기능을 통해 암시해준 바를 무시한 결과였다.

보완이나 보상은 자동적으로 진행되는 우리 신체의 장치와도 같은 것이다. 마치 우리의 몸에서 최적의 생존조건을 맞추면서 일정한 수준을 유지하려는 자율조정의 과정인 항상성(homeostasis)이 작동하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실제로 우리의 정신도 신체의 삶처럼 자가 조정체계로서 평행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모든 과도한 과정이 발생하면 즉각 또는 불수의적으로 보상(補償)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한 쪽에서 너무 적은 것이 다른 쪽에서는 너무 많은 것을 생기게 하는 원리와도 같은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의식적 태도가 꿈에 의해 보상되고 있는 것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4) 부정적으로 보상하는 환원적인 꿈

보상에는 긍정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보상에는 부정적인 것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는 대개 의식의 태도가 자신의 독특한 성격의 표현의 측면과는 달리 환경에 대한 적응의 측면에서는 결함이 없는 사람들과 관련되는 꿈이다. 이런 사람들은 그 의식적이 태도나 적응성과가 개인적인 능력을 넘어선 사람들이기도 하기에 그들은 실제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좋아 보이고 값지게 보이는 편이다. 그래서 그들은 외적인 과도한 성과는 결코 개인적인 자원만으로 지불될 일이 없고, 대부분은 심지어 집단암시로 생긴 역동적 저장원에서 지급되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집단적인 이상의 영향이나 집단적인 이익의 유혹, 또는 회사의지지 덕분에 그들의 본성에 해당하는 것보다 더 높은 단계로 오르는 경우이다. 이들은 결국 그들의 외부적인 높이에 오을 만큼 내적으로 성장하지 못했기에 이런 모든 경우에서 무의식은 하나의 부정적으로 보상하는, 즉 하나의 환원적인 기능을 갖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물론 이런 경우에 환원 또는 평가절하는 자가 조정이라는 의미에서 똑같은 보상임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이러한 환원적인 기능은 또한 탁월한 예시적 기능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예시적인 것에 대해서 융은 구축하는 것, 준비하는 것, 합성적인 것의 견지를 연결하지만, 분석자가 환원적인 꿈에 충실하려면 이들을 '예시적인' 개념에서 완전히 분리해야 하는 것도 지적한다. 환원적인 꿈이란 준비하거나 세우거나 합성하기보다는 분해하고 용해하고 평가절하하고 심지어 파괴적이며 끌어내리기조차 한다는 점에서다. 다만 이런 경우에 파괴적인 작용에 대해서는 조심성이 요구되는데, 이는 꿈의 작용이 단지 태도에만 가해지고 전체 인격에 가해지지 않는 한, 그것은 매우 치유적인 때가 많지만, 이차적인 작용은 꿈의 성격을 전혀 바꾸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꿈은 철저하게 환원적이며, 회고적인 특성이 있으므로 '예시적'이라고 부를 수도 없기에 정확한 자격을 부여하기 위해서 그런 꿈은 환원적인 꿈이며, 해당되는 기능은 무의식의 환원적인 기능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 융의 생각이다.

3.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꿈의 기능에 대하여 기술했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것이 꿈에 대한 융의 명제라고 했다. 이 간단한 명제는 꿈의 속성과 그 기능까지도 극명하게 드러내는 측면이었다. 꿈이란 무엇이냐 그 꿈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를 암시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미 앞에서 꿈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을 살펴보았기에 여기서는 그 꿈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에 대한 꿈-기능을 살피고자 몇 가지로 구분하여 다루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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