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새해’ 보러 가는 대신 이웃 살피는… 따뜻한 신앙인들

입력 : 2018.01.09 15:50

이효준
▲이효준 은퇴장로. ⓒ크리스천투데이 DB
해마다 겪는 일이지만, 연말이나 연초가 되면 신앙인들이나 비신앙인들이나 모두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난 일은 잊고 새해에는 복을 많이 받아라", "건강해라", "돈을 많이 벌어라", "대박나라"는 덕담을 건네기도 하며, 원하는 모든 일들이 실타래 풀리듯 잘 풀리라고들 합니다. 해마다 이맘때면 마치 모두 천사가 된 것 같기도 합니다.

물론 입술로 하는 말은 '경비'가 지출되지 않으므로, 쉽게 말을 토해내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마 돈을 들여서 하라고 하면, 상황은 분명 달라질 것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세상에는 카카오톡이나 문자로 그냥 쏘아댑니다. 보내는 그 마음에 진심이 담겼다면 문제는 다르겠지만, 너무 남발하는 것도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 오래되지 않은 시대만 해도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편리한 시대가 되어, 그런 것들도 서서히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참 안타까운 모습입니다.

이와 같은 따뜻한 정성들이 사라지고, 오직 이기주의와 편의주의에 따라 선택하면서 이웃 간의 정(情)마저 식어갑니다. 그때 그 시절에는 비록 가난하게 살았었만, 따뜻한 마음과 정이 있어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여기서 '따뜻하다'는 것은, 쾌적한 느낌이 들 만큼 온도가 알맞게 높다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①warm ②hot ③heartwarming ④tender 등으로 쓰입니다.

따뜻한 겨울이란, 연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3개월 동안 겨울철 평균기온이 최근 30년간의 평균기온보다 0.5도 이상 높은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따뜻'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어원도 살펴봅시다. 한국어의 '조상어'인 세소토어를 참조해 보면, 세소토어 'thata(따타)'는 어렵다(to be difficult hard)는 뜻이라고 합니다. 한국어의 '따뜻'은 세소토어(thata+thuse)에서 유래한 것으로서, 어려움을 돕는 일, 즉 '온정'을 의미합니다. '따뜻함'이란 결국 남의 어려움을 돕고자 하는 온정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신앙인들은 온정의 의미를 잊고, 입술로는 뭐든지 다 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믿음'과 더불어 '행함'을 강조하셨지만, '믿음과 행함' 어느 한 가지도 실천하는 신앙인들이 드문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사실 앞에, 십자가의 공로는 어디로 숨었을까, 안타까운 심정뿐입니다.

이 땅에 성실하고 정직한 신앙인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점은 더욱 마음 아픈 사실입니다. 살을 에는 사나운 폭풍의 한파가 휘몰아쳐도, 3일은 추웠다가 4일째에는 다소 따뜻해진 날씨를 선물해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우리 이웃 모두는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을 함께 누려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는 자신만을 위한 이기심과 편견과 욕심으로 가득한 나머지, 이웃을 향한 시선이 점점 희미해져감을 봅니다.

자신의 출세, 자신의 가족을 위한 일과 자신의 명예와 부를 위해서라면 열과 성의를 다하지만, 입술로는 '형제 자매'라고 고백하는 교회 안의 이웃에는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더구나 아예 눈을 가로막아 이웃을 향해 눈을 돌리지 못하게 하기도 합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평소 잘 있는 하늘에 떠 있는 해는 괄시하더니, 새해에 떠오르는 해를 보려고 또 한 번 한바탕 난리가 났었습니다. 해마다 떠오르는 첫날 해를 보면서 소망하며 다짐해 보지만, 매년 습관적으로 할 뿐이라는 것을 며칠만 지나도 깨닫곤 하지요. 차라리 뜨는 해를 보러 가는 경비를 일부라도 이웃에게 나눈다면, 얼마나 가치 있는 해를 함께 맞을 수 있을까요.

주변의 이웃들은 외면한 채, 떠오르는 해를 보러 가는 신앙인들이 많다는 생각하다 보면, 떠오르는 해 대신 분노가 떠오르는 것은 왜일까요? 베풀고 나누는 시선은 우리 신앙인들이 누려야 할 의무인 것을 왜 모르고 있을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시는데, 주님 주시는 사랑을 받고도 외면하고 있다면, 주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지 못한 신앙인들 아닐까요?

주님께서는 우리 같은 불쌍한 인간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우리의 오랜 기다림을 위해, 그리고 우리를 만나주시기 위해, 천하고 천한 냄새나는 마굿간으로 내려오셔서 지금 우리 신앙인들을 향해 말씀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나를 믿는 다면, 따뜻한 신앙인들이 되어달라"고....

거친 세상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뒷모습을 바라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기억합시다. 가슴 메어질 듯한 그 음성으로 나를 부르시는 주님....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 부족하고 가난해도, 그리고 아파 신음할 때도 내가 너를 사랑하며 원한다." 이처럼 여전히 십자가의 고통 속에 묵묵히 우리의 뒷모습을 지켜보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 십자가의 고통을 통한 용서와 화해, 그것은 너희도 가서 이웃을 따뜻하게 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아닐까요?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고, 오직 우리를 위해 고통의 형틀을 마다하지 않으신 주님의 따뜻한 입김을 느껴보세요. 그리고, 우리 주위의 많은 이웃들도 그 따뜻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세요.

그러므로 구원의 열매는 선한 행동입니다. '교회 나오라'고, '새벽기도회에 나오라'고만 권유할 것이 아닙니다. 예배드리는 참 목적은 주님을 향한 믿음 아니겠습니까. 그 믿음의 결실은 곧 아름다운 우리의 삶일 것입니다. 그 삶이란 곧 신실함과 정직, 그리고 나눔과 이웃을 향한 시선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해마다 바뀌는 해만 찾아다니지 말고, 오늘도 주님을 향해 열정적인 믿음을 갖고, 아파하는 세상을 위해 주님의 따뜻한 이웃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것이 복음이요, 주님의 따뜻한 손길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자신의 부를 자랑하며 권력과 온갖 명예를 탐하며 소리내는 거짓 지도자들이 있다면, 하루 속히 자신을 인정하고 교만 없는 회개와 더불어 이웃을 향해 따뜻한 시선으로 다가가는 따뜻한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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