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중년 남자는 이승훈이었다. 이재에 밝은 사업가로서…”

입력 : 2018.01.08 13:58

[연재 소설] 꽃불 영혼(2)

남강 이승훈
▲남강 이승훈 선생.
2018년, 김영권 작가가 남강 이승훈 선생의 삶을 토대로 쓴 소설 <꽃불 영혼>을 연재합니다. -편집자 주

간밤의 악몽에 떨던 그는 노랫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배가 떠가는 방향과는 다른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아, 저 애닳은 노래는 어디에서 나왔을까? 물론 오랜 옛적부터 이곳에서 고통스레 살아온 서러운 사람들의 가슴 속으로부터 나왔을 것이다. 세월이 아득히 저 강물처럼 흐르고 나라의 왕조가 무수히 바뀌었어도, 권력자들의 달콤한 허풍과 달리 백성들은 늘 고달프게 살아왔다. 우리 부모님도 그런 가난한 백성이었다. 욕심 없고 순박한 분들이었겠지."

중년 남자는 대동강 가의 절벽 위에 우뚝 선 부벽루(浮碧樓)를 향해 가파른 돌계단을 밟아 올랐다. 땅거미가 내리기 시작한 길엔 행인도 거의 없었다. 육중한 돌 틈에 끼여 줄기가 찌부러진 채 겨우 피어난 흰 들꽃 앞에 멈춰 앉은 그는 오래도록 묵묵히 바라보았다.

"오, 가련하면서도 고귀한 생명이여!"

부벽루에서 내려다보는 대동강의 푸른 물결은 꿈 같고 환상 같았다. 그는 어릴 때 간혹 이곳에 놀러왔던 기억을 떠올렸다. 지금보다 더 해맑은 강에서 헤엄치던 천진난만하던 한때....... 그에게는 모성(母性)과도 같은 강이었다. 너무 일찍 고아가 된 신세였기에....

강바람이 불어와 희끗희끗한 그의 수염을 휘날렸다. 보랏빛으로 스러져 가기 전의 가장 아름다운 분홍빛 노을 한 자락을 바라보던 그가 중얼거렸다.

"고아 소년이 자수성가해 조선의 갑부가 된 게 과연 나 자신의 노력이나 능력만으로 가능했을까? 아마 그렇지는 않겠지. 세상엔 나보다 더 부지런히 뼛골이 빠지도록 일하고도 가난한 사람이 많으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내가 너무 지나친 욕심을 부렸기에 큰 실패를 두 번이나 한 거야."

강물은 그 마지막 노을을 받아 더욱 처연했다.

이 중년 남자는 이승훈이었다. 이재(理財)에 밝은 사업가로서 승승장구하던 그는 한두 해 사이에 연달아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저질러 큰 손해를 입었다.

첫 번째는 1902년의 '엽전 사건'이었다. 그 당시엔 새로운 화폐인 백동화가 발행되었는데, 정부의 실책으로 인해 옛 화폐였던 엽전의 가치가 각 지역에 따라 달랐다. 이를테면 서울이나 평양에서 엽전 두 냥을 주어야 살 수 있는 물건인데 경상도나 부산 지역에서는 한 냥으로도 살 수가 있었다. 그쪽엔 엽전의 유통량이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사실을 알게 된 이승훈은 급히 엽전 1만 냥을 모은 다음 배에 실어 부산으로 보냈다. 잘만 되면 두 배의 이익을 남길 수 있는 일종의 도박이었다. 그런데 엽전을 실은 작은 배가 검푸른 황해 바다를 휘돌아 목포 부근을 지날 때 느닷없이 일본 영사관에 소속된 최신형 배와 부딪혀 침몰하고 말았다. 사람들은 구조되었지만 엽전 1만 냥은 눈 깜짝할 새 바닷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일본 배가 짓궂게 집적거렸다는 사실을 선원에게 들은 이승훈은 곧 일본 영사관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그 즈음 일본은 온갖 술책과 무력 시위로 조선을 거의 침탈한 상태였기에 거만스레 코방귀를 뀌었다.

'그런다고 내가 포기할 줄 알면 오산이지. 요놈들, 조선인의 쇠심줄 맛을 보여 줄 테다!'

이승훈은 끈질기게 밀고 나갔다. 그건 아마 자기 개인의 욕심보다는 민족적인 이해관계가 자존심을 건드렸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일본 측은 결국 원금 1만 냥만 배상하겠다고 통보해 왔다. 만일 대한제국 정부가 일본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주적으로 외교 역량을 발휘했더라면 배값을 포함해 제대로 배상받았을지도 몰랐다.

혼란스런 시대에 사업가는 국내뿐 아니라 국제 정세에도 민활하게 대처해야만 생존할 수 있었다.

두 번째는 '소가죽 사건'이었다. 지난해에 러일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떠돌 때였다. 이승훈의 머리에 하나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약 전쟁이 난다면 소가죽이 많이 필요하게 된다. 군인들의 혁대와 군화 같은 것을 만드는 데 쓰이니까 수요가 많아 자연히 값이 오르겠지.'

그는 소가죽 2만 장을 사서 만주로 보냈다. 가능하면 돈을 많이 벌어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자기 일신의 영달을 위한 욕구만은 아니었다.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의 위기를 구하려면 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조금은 들었다. 사업을 하는 자기 같은 사람은 돈을 충분히 모아두어야 필요할 때 뜻을 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상은 빗나가고 말았다. 전쟁에서 의외로 일본이 빨리 이겨 전쟁이 일찍 끝나는 통에 소가죽은 별 쓸모가 없어졌다. 더구나 이런 사실을 눈치챈 음흉스런 중국 상인들의 농간 때문에 죄다 헐값에 팔 수밖에 없었다. 이익은커녕 막대한 손해만 입었다.

"일본이든 중국이든 미국이든 러시아든 절대로 믿어서는 안 돼. 그들은 그들의 이익을 바랄 뿐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먹혀 버리고 말아."

서산마루에 곧 넘어갈 듯 걸려 핏빛을 토하고 있는 해를 바라보며 이승훈은 중얼거렸다.

"저 태양은 죽어가는 것일까? 아니야, 내일 아침이면 다시 밝은 얼굴로 떠오르겠지. 공수래 공수거.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저 해를 보라. 아무것도 갖지 않은 빈손으로 가지만, 저 태양은 자신을 불태운 가장 소중한 빛을 이 세상에 마지막까지 뿌리고 있잖은가.

아, 부끄러운 인생이여! 난 제법 잘난 사업가로 행세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나 자신의 이익부터 앞세우지 않았던가 말이지."

그의 탄식은 부벽루 위의 허공을 떠돌다가 사라져 갔다.

김영권 남강 이승훈
▲김영권 작가(점묘화).
이윽고 해가 지자 어둠이 기다렸다는 듯 몰려와 사방을 휩쌌다. 모든 사물은 형체를 잃으며 침묵에 잠겨 갔다. 바람이 점점 차가워졌다.

이승훈은 천천히 발길을 돌려 시가지 쪽으로 내려갔다. 고적감 속에 강물만이 구슬피 흐느끼며 흐르는 듯했다. <계속>

김영권 작가

인하대학교 사범대학에서 교육학을 전공하고 한국문학예술학교에서 소설을 공부했다. <작가와 비평>지의 원고모집에 장편소설 <성공광인(成功狂人의 몽상: 캔맨>이 채택 출간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작품으로는 어린이 강제수용소의 참상을 그린 장편소설 <지옥극장: 선감도 수용소의 비밀>, <지푸라기 인간>과 청소년 소설 <보리울의 달>, <퀴리부인: 사랑스러운 천재>가 있으며, 전통시장 사람들의 삶과 애환을 그린 <보통사람들의 오아시스> 등을 썼다.

*이 작품은 한국고등신학연구원(KIATS)의 새로운 자료발굴과 연구성과에 도움받았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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