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비>와 기독교적으로 본 핵무장, 선제타격, 집총거부

입력 : 2018.01.07 18:12

[박욱주의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 영화 강철비(上)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 포스터.
※ 1. 본 리뷰에는 스포일러가 다소 포함돼 있습니다. 2. 외부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신앙과 전쟁: 대북 선제 타격과 대한민국 핵무장의 기독교적 정당성

지난 2017년 11월 29일 새벽, 북한은 미사일 발사 실험 직후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핵무장 완성을 선언했다. 1987년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핵무기 개발이 약 30여년의 시간을 소요하고서 마침내 완성된 것이다.

통상 핵무기라 하면 장거리 미사일과 핵탄두가 결합된 형태의 대량살상무기를 가리킨다. 북한의 핵탄두 개발은 풍계리 지하 핵실험이 본격화되던 지난 2006년에 이미 어느 정도 완성 단계에 놓여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남은 문제는 이 탄두를 타격지점까지 운반할 발사체, 특히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개발이었는데, 북한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고 선언한 것이다.

2006년 북한 핵탄두 개발 성공 시점에서 이미 한국과 일본은 북한의 핵공격 사정권 안에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북한 ICBM의 개발 성공은 곧 미국 본토 전역이 북한의 핵공격 사정권 안에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미국의 선제적 군사행동을 자극할 가능성을 대폭 확장시킨다. 실제로 작년 북한의 연속된 미사일 실험과 그 결과를 관측한 미국은, 미 본토 타격 위협에 대한 맞대응으로 최근 미국의 B-1B 전폭기, 이른바 "죽음의 백조"로 불리는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상공에 자주 전개했다.

영화 <강철비>의 서사는 최근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 한반도 정세가 극단의 상황으로 달려갈 때 발생할 수 있는 일들을 시뮬레이션 시나리오 형식으로 풀어나가고 있어, 영화의 현실감과 흥미를 더한다. 영화의 서사는 전반적으로 크게 치우침 없이 극적 요소들을 적절하게 섞어 가며, 한반도 핵전쟁과 관련된 현실감 있는 예견을 전달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본 작품에서 흥미로운 점은 남북관계에 대한 현실인식의 강조다. 양우석 감독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바 있듯, <강철비>는 남북한 주요 인사 간의 개인적 우정이나 순진한 동포애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편의 이익과 생존에 충실한 각 정치세력들 간의 역학관계를 서사의 중심부에 위치시킨다.

이런 역학관계에 대한 지혜롭고 현실적인 인식은 한반도에 거주하는 뭇 기독교인들의 현실적 생존을 위해서뿐 아니라, 지지부진하게 진행되고 있는 북한선교에 대한 전망 수립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의 두 주인공, 한국 청와대 외교안보 수석 곽철우(곽도원 분, 왼쪽)와 북한 정찰총국 정예요원 엄철우(정우성 분). 각각의 정치적 입장을 바탕으로 남북한 전쟁 발발을 막기 위해 협력한다.
◈신앙과 국방: 정당한 자기방어를 위한 무력 사용의 성서적 정당성

국가의 자기방어는 성서에 보장된 권한이라 볼 수 있다. 하나의 가정, 마을, 교회, 혹은 국가가 외적으로부터 부당한 침입을 당할 때,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무기를 드는 것은 살인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성서는 가르쳐 왔다.

구약성서는 말할 것도 없고, 영혼의 구원을 위해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복음이 담긴 신약성서도 군인이라는 직업의 존재 자체를 수긍함으로써, 정당한 국가권력에 의해 수행되는 자기방어를 허용하는 입장을 보인다.

로마의 백부장이 믿음을 갖고 예수께 나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그의 믿음을 칭찬하셨을 뿐, 그 백부장에게 군인의 직무를 버리라고 명하시지는 않았다(마 8:5-13). 만약 군인의 직무가 하나님의 뜻과 역사적 섭리에 어긋나는 것이었다면, 막달라 마리아에게 그러셨던 것처럼 이전의 생업을 버리도록 명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 베드로가 검을 사용해서 제사장의 종 말고(Malchus)의 귀를 자른 것에 대해 꾸짖으신 예외적인 사례가 있긴 하나, 이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 예수께서 무도한 자들에게 잡혀감을 스스로 허락하셨기 때문이지, 그리스도인의 정당한 무력사용 자체를 원천적으로 금하셨기 때문은 아니었다.

"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마 26:52)"는 가르침은 무력을 자기방어가 아닌 욕망의 충족을 위해 휘두르는 자, 타인을 강압하고 약탈하고 해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였다고 받아들이면 적절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화 <핵소 고지(Hacksaw Ridge)> 등에서 볼 수 있는 집총 거부의 믿음은 성서가 가르치는 수준을 과도하게 초월한 정교(政敎) 분리 및 극단적 평화 이념에 기반을 두는 것으로 볼 수 있다.

16-17세기 유럽에서 발흥한 일부 근원적 종교개혁(radical Reformation) 일파의 후예들이나 여호와의 증인 등은 여전히 이 잘못된 성서 해석을 고수하고 있다.

영화 강철비
▲영화 <핵소 고지>. 종교적 신념에 따라 집총을 거부하고 의무병으로 전장을 누비던 한 병사의 실화를 다룬 작품이다. 그의 행보가 영웅적인 것은 분명하나, 기독교적으로 적절한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위대한 기독교 신학자 대부분은 무력의 사용과 전쟁의 제한된 정당성에 대한 가르침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4세기 후반의 신학자 어거스틴(Augustine)은 <하나님의 도성(De civitate Dei)>에서 방어전과 사형의 정당성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가르침을 전한다.

"하나님의 권위로 전쟁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나 지극히 정당하고 합리적인 권력의 근원인 국가의 법에 따라 국가의 권위를 대변하면서 범죄자들에게 사형을 집행하는 이들이 살인을 금하는 계명을 어겼다고 할 수는 없다(제1권 21장)."

어거스틴의 정당한 무력 행사에 대한 신학적 옹호는 국가 권력과 질서를 인정하신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정의 집행 기관으로서 국가 권력의 절제된 무력 사용을 용인하던 로마의 대표적인 스토아 철학자 세네카(Seneca)의 견해를 종합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은, 전쟁의 구체적 발발 원인과 전쟁 수행의 행태다. 십자군 전쟁과 같이 기독교의 권위를 빙자한 침략전을 자행하거나, 방어전이라 해도 민간인 무차별 학살과 같은 부당한 행위를 저지른다면, 이는 기독교적 관점에서 명백한 죄악이다.

어거스틴의 이런 가르침은 중세기 후반 13세기의 대표 신학자 아퀴나스(Thomas Aquinas)에게도 고스란히 전수된다. 아퀴나스는 <신학대전(Summa Theologica)>에서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사인(私人)으로서 통치자나 재판관의 권위에 의거해 검을 사용하는 것, 혹은 공인(公人)으로서 공의를 향한 열심에 의해,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검을 사용하는 것은 (정당치 않게 타인을 해하기 위해) '검을 가지는 것(마 26:52)'이 아니고, 다른 (높은 권위를 가진) 이의 위임에 의해 검을 사용하는 것이므로 형벌 대상이 되지 않는다(2-2부, 제40문 1항)."

어거스틴과 아퀴나스의 무력 사용과 전쟁에 대한 신학적 고찰은 이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와 존 칼빈(John Calvin)에 의해 별다른 변화 없이 계승되었고, 이로써 오늘날 기독교(개신교)의 전쟁관을 형성하는 데도 이바지하고 있다.

영화 강철비
▲북한 쿠데타 주동자 리태환(김갑수 분). 한국 침략을 확고하게 결심한 인물이다. 한국민은 이런 침략자에 대항해서 무력을 행사할 기독교적 권한을 갖는다.
◈신앙과 매복: 대북 선제 타격의 성서적 정당성

영화 <강철비>에는 한국을 북한의 핵공격 위협으로부터 지키기 위한 중대한 결단의 장면이 두 차례 등장하는데, 이들 모두 기독교적 관점으로 충분히 수긍할 만한 것들인 까닭에 인상깊게 다가온다.

첫째는 임기를 얼마 남기지 않은 대한민국 현직 대통령 이의성(김의성 분)이 차기 대통령 당선자 김경영(이경영 분)의 반대를 무릅쓰고 미국에 대북 선제 타격을 요청한 일이다. 김경영은 선제 타격이 남북한의 화해와 통일 기회를 완전히 포기하는 결정이라고 질타하나, 이의성은 한반도에서 핵전쟁 위협을 소멸시킬 수 있는 길이라 믿고 선제 타격 요청을 결정한다.

만일 북한의 핵무기가 실제 사용을 자제하려 하는 지도자에게 맡겨져 있는 상황이라면, 선제 타격은 최후의 수단으로 보류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이런 경우에는 영화 <크림슨 타이드(Crimson Tide)>에 나온 핵잠수함 부함장 헌터(덴젤 워싱턴 분)의 대사가 그대로 적용된다. "핵무기가 존재하는 현대에 진정한 적이란 전쟁 그 자체입니다."

영화 강철비
▲영화 <강철비>에서 대북 선제 타격의 선봉장으로 등장하는 B-52B 전략폭격기.
이런 맥락에서 1994년 미국 클린턴 행정부의 북핵 선제 타격 계획의 실행 보류는 한국민에게 말 그대로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역사였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만일 당시 북핵 선제 타격이 실행되었다면 한국민 사망자가 최소 50만명에 달했을 것으로 추정되니, 이런 경우 선제 타격이란 절대적으로 회피해야 할 선택지였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강철비>가 보여주는 상황은 북한 군부 수뇌 리태환(김갑수 분)이 군사쿠데타를 성공시킨 상황이었다. 리태환은 한국에 핵무기를 사용하고 전면전을 일으키려는 의사를 분명하게 드러낸 인물이다.

이처럼 전면전이 확정된 상황에 이루어진 현직 대통령 이의성의 북핵 타격 요청은, 비록 영화 속에서 북한의 빠른 핵무기 발사로 인해 소기의 목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정치적으로든 신학적으로든 분명한 정당성을 가진 결정이었던 것으로 판단된다.

선제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 적의 대규모 침입을 막지 못할 상황일 경우에는 적극적인 자세로 무력을 사용해야 한다. 이와 관련하여 아퀴나스는 방어자 측의 '매복행위(insidiis)'가 가진 정당성을 주장한다.

"(적의 부당한 침략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기 위한 선제적) 매복행위를 (부당한 탐욕을 위해 속이는) 속임수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으며, 그런 매복행위가 공의에 어긋난다거나 질서있는 행동에 어긋난다고 할 수도 없다(<신학대전> 2-2부, 제40문 3항)."

다음으로 영화 속에서 인상깊었던 결단의 장면은 영화 결론부에 차기 대통령 김경영이, 리태환의 쿠데타로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 북한 1호(최고 지도자)를 치료하고 북으로 반환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무기 가운데 절반을 받기로 한 대목이다.

일단 그 실현 가능성 여부와는 무관하게, 북한의 것을 나누든 자체적으로 핵무기를 개발하든, 아니면 미국의 것을 다시 도입하든, 한반도의 현 정세에서 핵 억지력을 갖추기 위한 한국의 핵무장은 기독교적 입장에서 원칙적으로 정당화될 수 있는 일로 판단된다.

기독교는 세상의 영혼들에 대한 차별 없는 박애를 최우선시하는 신앙을 가르친다. 그러나 동시에 기독교 신앙은 인류가 원죄로 인해 극한 타락의 상황에 처해 있음을 전적으로 수긍하기도 한다. 즉 기독교는 죄의 현실을 벗어나려 하는 영혼, 믿음을 갖고자 하는 영혼, 복음에 귀를 기울이려 하는 영혼들에 대해서는 개방적이고 박애적인 자세를 유지하지만, 죄악과 탐욕을 기반으로 타인을 억압하고 해하려 하는 이들에 대해서는 공의를 바탕으로 방어와 경계의 자세를 고수한다.

이런 맥락에서 기독교 신앙은 자기 방어를 위한 무력의 확보 및 행사를 절제된 수준에서,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경우 단호히 결행할 것을 허락한다.

영화 강철비
▲<강철비>의 현직 대통령 이의성(김의성 분)과 차기 대통령 당선자 김경영(이경영 분). 각자의 입장에서 북한의 핵공격 위기에 대한 최선의 대책을 내놓기 위해 고심한다.
남북 핵문제 해결 노력은 영화 <강철비>가 보여주듯, 결국 냉정한 정치적∙군사적 계산을 바탕으로 전개될 수밖에 없다. 이는 정치적 현실 측면에서나 기독교 신앙의 입장 모두에서 타당한 행사다.

민족의 대동단결, 민족의 화해와 평화, 원래 하나였던 민족의 재결합 등과 같은 민족 이데올로기를 바탕으로 한 낭만적 전망은 적어도 과거 20세기에는 통용될 수 있었을지 모르나, 분단된 지 7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현 시점에서는 이전처럼 흡입력을 갖지 못하는 듯하다. <계속>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박욱주
▲박욱주 박사.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내신 분들은 쉽게 공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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