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로

입력 : 2018.01.04 08:29

[서평] 종교개혁과 예배

예배 종교개혁가들에게 배우다
예배, 종교개혁가들에게 배우다

문화랑 | CLC | 200쪽 | 10,000원

*본 서평은 신학서적중고장터의 독서 지원 프로그램에 의해 기록되었음을 알립니다. -편집자 주

문화랑, <예배, 종교개혁가들에게 배우다(서울: 기독교문서선교회, 2017)>

서론

그리스도인은 예배하는 자이며, 예배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예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예배하는 자여야 한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예배에 대해 이해하고 있는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수가성 우물가에서 여인에게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한다(요 4:22)"고 말씀하셨다. 오늘날도 누군가는 예배하지만, 그 의미를 알지 못하고 예배한다. 하지만 우리는 예배를 알아야 한다. 예배가 무엇인지 바르게 알아야 바르게 예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아야 할 예배란 무엇인가? 무엇을 알아야 바르게 예배할 수 있는가? 이런 질문들을 가지고 <예배, 종교개혁가들에게 배우다>를 읽었다. 이 책의 저자는 필자가 졸업한 학교의 예배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학교를 졸업했지만, 예배에 대한 궁금증을 이 책을 통해 담당교수의 강의를 듣고 질문하듯 읽었다.

본론

저자는 종교개혁가들의 개혁의 중심 주제가 '예배의 개혁'이었다고 전제하며, 몇몇 종교개혁가들의 예배에 대한 논문 및 저서들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저자가 선별한 인물은 마르틴 루터, 츠빙글리, 마틴 부처, 존 칼빈 등이며, 이런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에 대한 이해를 오늘날 우리 시대에 고민하며 적용하고 있는 북미주 개혁교회(Christian Reformed Church)의 예배 개혁에 대해 다룬다.

예배는 교회의 얼굴이기에, 교회의 특징은 예배를 통해 가장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 대한 개혁을 단행했던 종교개혁가들의 개혁은 당연히 예배를 향할 수밖에 없었다. 예배를 개혁하는 것이 교회를 개혁하는 것이며, 예배의 개혁을 통해 교회는 개혁될 수 있었다.

저자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예배가 '성직자 주도 예배'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성례를 행하는 사제의 예배 행위 자체를 보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18쪽)'고 정의한다. 이와 같은 '보는 예배'의 진행은 예배의 자리에 참여하는 성도들은 물론, 집례하는 사제조차도 무슨 뜻인지 알지 못하는 라틴어로 진행됐다. 즉 예배를 하지만 아무런 이해도 없이 예배하였다.

수많은 예전들이 있고 성찬을 미사 때마다 시행하였지만,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신학적 이해를 따라 성도들의 참여가 제한된 예배를 하였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예배는 성도들의 이해와 참여가 힘든 예배였기에, 성도들은 신앙생활을 말씀과 예배 중심으로 한 것이 아니라 미신적인 방법으로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종교개혁가들이 중세 로마가톨릭교회를 개혁하고자 할 때, 반드시 예배의 개혁이 필요하였다.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의 초점은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worship seeking understanding)'였다(19쪽). 이는 앞서 말한 대로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예배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와 방식으로 진행된 예배였고, 이런 이해 없는 예배를 통해 성경에서 벗어난 예배와 신앙생활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종교개혁가들의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는 예배에 있어 '규정적 원리'를 따른 예배를 주장하였다(19쪽). 성경에는 예배를 어떻게 드려야 하느냐는 것과 예배 순서 등에 대해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성경을 따라 예배의 기본 원리와 요소 등을 파악하고 성경을 따라 예배하려는 원칙이 '예배의 규정적 원리'이다.

이런 성경적 원리를 따라 종교개혁가들이 개혁하고자 한 예배의 요소들은 성찬, 세례, 기도, 찬송 등이다. 물론 종교개혁가들은 예배에서 말씀의 예전을 강조하였다. 종교개혁가들은 말씀의 선포인 설교를 예배의 중심으로 자리하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설교는 이전에 라틴어에서 이제는 모국어로 설교하여 예배에 참여한 모든 회중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교하였다.

책의 저자는 예배에 있어 말씀의 요소에 대한 설명을 개별적으로 하지는 않고, 간략하게 종교개혁가들의 설교가 '주해적'이었고 자국어로 설교했음을 언급한다(19쪽).

마르틴 루터가 개혁하고자 한 예배의 요소는 성찬, 세례, 참회 등이었다. 루터의 예배 개혁의 특징은 기존에 행하던 관행을 따른 예배가 아닌 말씀을 통한 예배의 개혁이었고, 예배에서 성찬과 세례 등을 시행할 때도 말씀에 근거하며 말씀이 선포되고 설명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이런 예배 개혁에 대한 루터의 태도는 급진적인 방향이 아닌 기존의 '시행되고 있는 실천 자체의 정화를 추구했다(45쪽)'. 루터는 자신이 추구한 예배 개혁을 절대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루터는 '목회적 민감성과 여유를 가지고 있었다(51쪽)'고 한다.

기독교한국루터회 김철환 총회장 루터교 종교개혁기념주일
▲기독교한국루터회 종교개혁 기념예배 모습. ⓒ크리스천투데이 DB
츠빙글리의 예배 개혁은 특별히 세례와 성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츠빙글리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 예배의 수많은 예전들로 인해 신앙의 혼동을 초래했다고 진단하며, '가능한 적은 수의 의식과 교회적 관습(54쪽)'만이 있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성찬의 시행을 1년에 4회 정도로 제한하며, 성찬의 분배 방식에 있어 옆으로 전달하는 방식을 제안한다. 그는 세례에 있어서도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미신적인 방식을 배제하여 세례의 물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며,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외적인 요소가 아니라 내적으로 이해하고 믿는 말씀(61쪽)'이라고 정의한다.

이 책에서 가장 많은 내용은 마틴 부처의 예배 개혁이다. 마틴 부처는 한국교회에 소개가 많이 되지 않은 개혁자이며, 부처의 예배 개혁에 대한 책인 <근거와 이유>는 아직 한국교회에 소개되지 않았다. 이 책을 통해 부처는 개혁되어야 할 예배의 요소들 가운데 성찬은 희생제사가 아닌 성만찬임을 강조하며, 성찬에서 미신적 행위들이 제거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찬은 사적이 아닌 공예배 가운데 시행되어야 함과, 세례에 있어 외적 요소들에 대한 미신을 타파하고 유아세례의 근거를 제시한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 과도하게 많이 제정한 성일들이 성경적인 근거가 없음과 성화들을 통한 미신의 형성과 우상숭배 문제를 다루며, 찬송과 기도에 있어 언어의 문제와 성경적인 근거와 이유를 설명한다.

칼빈의 예배 개혁에 관해서는 예전과 신앙 형성에 대한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칼빈은 예전에 관해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에서 시행한 과도한 예전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예전의 폐지를 말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예배에는 예전이 필요함을 강조한다. 칼빈은 성경적 가르침을 따른 예전 시행과 이 예전에 참여함을 통해 성도의 신앙이 올바르게 형성될 수 있다고 한다. 칼빈이 말하는 예전은 '공적 예배를 의미한다(170쪽)'. 그러므로 성도는 공예배를 통해 신앙이 형성되며 성숙하게 자란다.

저자는 이런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을 오늘날 우리 시대에 어떻게 적용하며, 성경적인 예배를 어떻게 시행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북미주 개혁교회의 예배개혁'을 통해 제시한다. 북미주 개혁교회들은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을 단순히 답습하지 않고 그들의 원리를 오늘날 우리의 시대와 문화 가운데 적용하여, 그 접점을 찾아 예배하려고 한다. 이런 예배 개혁에 대한 의지는 교단 신학교 상설 연구소를 통해 성경적인 답을 찾고, 시대적인 적용을 시도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저자가 제시하는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 요소는 성찬, 세례, 기도, 찬양이며, 그 중에서도 성찬과 세례에 집중되어 있다. 예배에는 여러 요소들이 있는데, 왜 종교개혁가들은 성찬과 세례에 집중한 것일까?

그것은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성례관'과 관계가 있다.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7성례는 '은혜'의 방편이 아닌 '구원'의 방편으로 인식되었다. 이런 성례관-구원관으로 인해 중세 로마가톨릭교회 예배는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도 반드시 참여해야 했다. 이해가 결여된 예배 참여는 예배의 요소들에 미신적인 힘을 부여하였다.

결국 종교개혁가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예배의 요소들을 개혁하였는데, 그 가운데 가장 핵심인 성례를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통해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으로 제한하였다. 그리고 세례와 성찬은 외적인 표지에 신비한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제정의 말씀과 그것을 믿음으로 받는 것에 강조를 둔다.

종교개혁가들은 예배 개혁에 있어 하나님의 말씀에 강조를 두었다. 그래서 저자가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 요소 가운데 말씀, 설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지만, 다른 요소들에 대한 개혁은 분명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러므로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은 단순히 몇몇 요소들에 대한 개혁 이전에 하나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와 적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은 '말씀, 성례, 기도'라는 은혜의 방편에 대한 개혁이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말씀, 성례, 기도를 통한 예배에 아무런 이해 없이 미신적인 참여를 통해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의 방편에 대한 분명하고 바른 이해를 통해 참된 믿음으로 참여함을 통해 받을 수 있다. 결국 종교개혁가들이 개혁한 예배의 요소들, '말씀, 성례, 기도'라는 은혜의 방편에 대한 바른 이해와 바른 시행을 통해 성도는 은혜에 참여하게 된다. 즉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가 성도에게 은혜의 방편이 된다.

이 책의 아쉬운 점은, 먼저 예배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개혁을 단순히 종교개혁가들의 책을 요약, 정리해서 알려주는 수준에 그친다는 것이다. 부록을 통해 예배에 대한 종교개혁가들의 이해와 현대적인 적용을 시도하지만, 전체적으로 종교개혁가들의 저서를 요약한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둘째,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 배경과 각각의 개혁에 대한 종합적 평가와 발전에 대한 안내가 없다. 종교개혁가들은 서로의 예배 개혁을 통해 도움을 받고 발전시켜 갔다. 종교개혁가들 상호간의 이해와 차이를 통한 발전 등에 대한 설명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셋째,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에 있어, 성경과 설교에 대한 이해를 설명하지 않는다. 종교개혁가들은 기본적으로 말씀의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개혁은 말씀 선포를 통해 더욱 구체화되었다. 말씀의 사람이었던 종교개혁가들의 기본적인 성경에 대한 이해와 설교의 개혁에 대한 부분들에 대한 자료를 포함하여 설명해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결론

종교개혁가들은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를 강조했다(19쪽). 그들의 예배 개혁은 하나님 말씀에 근거한 성례와 기도의 바른 이해와 시행이었다. 예배 개혁은 은혜의 방편인 '말씀, 성례, 기도'를 개혁한 것이다. 즉 종교개혁가들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은혜를 주시는 방편을 성경적인 원리를 따라 개혁하여 참된 예배를 회복하였고, 예배를 통해 은혜를 받도록 한 것이다.

은혜는 중세 로마가톨릭교회의 주장처럼 단순히 성례들에 참여함으로 은혜를 받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설교와 그 말씀을 믿음으로 수납하며, 바른 성례의 시행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심으로 영적으로 양육받고, 기도를 통해 성삼위일체 하나님의 은혜를 실제로 누리는 것이다.

교회는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개혁의 본질과 의미를 파악하고, 오늘날 우리 시대의 문화와 상황 속에서 예배를 끊임없이 개혁해 나가야 한다. 이런 개혁은 예배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 대한 이해를 전제한다. 이 이해는 바른 말씀의 선포를 통해 가능하며, 특별한 능력이나 이해를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이해를 추구하는 예배'는 사실 지적인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만의 예배가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대한 바른 선포와 은혜의 방편에 대한 성경적인 이해를 요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수한 복음 설교가 선포되고, 그리스도께서 제정하신 대로 성례들의 순수한 집행을 유지하는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는 성도들에게 임한다.

오늘 우리 교회는 종교개혁가들의 예배 이해와 예배 개혁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하게 되었다. 이는 단순히 종교개혁 500주년이기 때문이 아니다. 오늘 우리 교회의 예배가 바른 이해를 통한 예배인지 돌아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교회의 예배가 은혜의 방편을 통해 예배하는 자들에게 은혜가 임하며, 믿음을 강화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의 예배는 단순히 이전 시대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토대에 충실하되 예전적-창의력을 가지고 이 시대에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156쪽)."

글: 임용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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