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지방선거와 함께 '개헌 국민투표' 여부를 놓고 정치권에서 격렬하게 논쟁 중인 것으로 보인다.

개헌의 주된 골자가 담긴 '헌법 개정 자문보고서'는 지난 해 2월 초 53명으로 구성된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가 같은 해 10월에 마련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이 개헌특위 인원은 36명이며, 소속 정당 분포를 보면 민주당 15, 한국당 14, 국민의당 5, 바른정당 1, 정의당 1명이며, 한국당 소속 의원이 위원장이다. 특정 정당 한 편에서 작성한 것은 아닌 셈이다.

우리 실생활에 가장 밀접하게 다가올 만한 눈에 띄는 주요 변경 부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제33조 2항 사회보장을 받을 권리, 보건의료서비스 보장 받을 권리
제35조 1항 모든 국민의 노동의 권리 → 모든 사람의 노동의 권리
제35조 2항 기간제/파견제 사실상의 금지
제35조 3항 최저임금제 시행
제35조 5항 해고의 금지
제36조 2항 노동자는 사업운영에 참여할 권리를 가진다.

현재 한창 이슈가 되어온 기간/파견제 고용 문제나 최저임금제 문제도 들어가 있고, 사회보장 및 의료복지가 한층 강화된다거나 노동의 권리가 외국인에게까지 폭넓게 적용될 것이라는 전망은 다 위와 같은 문안으로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상기의 항목을 포함 수많은 개정 항목 가운데 가장 강력한 개정 부분은 아마 다음과 같은 내용일 것이다. 전문과 총강 부분이다.

전문(前文) 부분.

헌법 개정안

총강 부분.

헌법 개정안

바로 '자유민주'에서 아예 '자유'를 제거한 것이다.

자유란 무엇인가?
민주란 무엇인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같기 때문에 하나를 생략한 것인가, 다르기 때문에 하나를 제거한 것인가? 얼핏 보기에 양자는 같은 것일 수 있다. '자유'는 곧잘 '민주'라는 이름으로 임하고, '민주' 또한 '자유'로서 임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양자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기도 하다. 현실 속에서 자유(또는 민주)의 궁극적 파괴자는 바로 자유(또는 민주)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양자의 혼용은, 명백하게 다른 두 개의 개념을 하나의 유사(Similarity)가 되도록 만드는 인간이 지닌 강력한 변용술에 따른 것으로(그것을 주로 '정치'라 부른다), 둘 중에 하나를 남겨야 한다면 그 한 가지는 바로 '민주'가 아닌 '자유'였다는 사실을 포착할 수 있다.

이는 자유가 민주를 대체할 수는 있지만, 민주가 자유를 대체할 수는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테면, 보통 '종교의 자유'라고 말하지 '종교의 민주'라고 말하지는 않는 이유이다.

그러므로 이 두 종류의 실체를 그 어휘가 갖는 용례와 용법을 통해 확실한 차이를 드러내 보일 것이다. 여기에서 '자유와 민주'는 자유(liberty)와 자유(freedom)라는 유사로 표현된다.

이를테면 이렇게 다르다.

트럼프 대통령 이전의 미국은 동성애 자유(liberty)를 위해 개인과 종교의 자유(freedom)를 박탈시켜 버렸지만, 트럼프가 권력을 쥔 후에는 동성애자에게 있는 자유(liberty)가 개인과 종교의 자유(freedom)를 파괴하지는 못하도록 복원시켰다.

여기서 보았다시피 자유(Freedom)는 개인의 해방이지만, 자유(Liberty)는 개개인 권리의 총합이다. 전자는 획득하고 쟁취해 내는 것이지만, 후자는 자기가 그냥 승인하는 것이다.

또 동성애의 자유(liberty)를 무한대로 넓혀 놓았던 오바마와 동일한 인종인 알렉스 헤일리의 조상 쿤타킨테는 자유(freedom)를 얻어야 하는 것이었지만, 지난 2011년 모 서울시장 후보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광화문 네거리에서 '김일성 만세'를 부르면 어떻게 하냐는 우려는 헌법에 나와 있는 표현의 자유(liberty)를 포기하고, 이를 억압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한 바도 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에서는 돈 있는 동성애자 연예인들이 호화 결혼식을 할 자유(liberty)는 있지만, 그것을 호적으로 펴내는 자유(freedom)는 아직 거절당하고 있다.

하지만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실권할 경우 동성애는 죄라고 말할 자유(liberty)가 없어질 가능성이 큰데, 일군의 동성애자 전체의 자유(liberty) 총합이 위협받는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상기의 개헌 내용을 볼 때, 곧 우리도 동성애는 죄라고 말할 자유(liberty)가 없어질 가능성이 짙어졌다.

이상이 명확하게 다른 두 자유의 용법과 실체이다.

그렇다면 앞서 '종교의 자유'라 말할 수는 있어도 '종교의 민주'라고는 말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의 그 '민주', 즉 자유가 민주를 포함할 수는 있지만 자유를 포함하지 않은 '민주'라는 개념은 어떤 것일까.

이런 것이다.

민주주의(liberty) 자체는 근현대에 대개 독재나 집단주의로부터 탈출(freedom)하려는 동기에서 시작하지만, 그것은 역사적으로 언제나 스스로 독재나 집단주의에 근접해 있다. 민주주의 즉, 전체(democracy)를 표방한다고 하는 그 가치 역시, 언제나 군주정(monarchy)의 부패태(態)인 폭정(tyranny)을 늘 잠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통상은 독재 폭정(τύραννος)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는 1인 군주정(Βασιλεία)보다는 귀족정(Αριστοκρατία)이 낫고, 자기네끼리 과두정(ἀριστοκρατία)이 될 우려가 있는 귀족정치보다는 민주주의(δημοκρατία)가 낫다고 알려져, 현대에는 민주주의를 자유(liberty)로 변용되어 계몽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 명제들이 등장했던 고대 그리스어에서 민주주의를 뜻하는 데모크라티아(δημοκρατία)는 '사람들(people)'을 뜻하는 데모스(δῆμος)와 법을 뜻하는 크라티아(κρατία)가 합쳐서 된 말이며, 이 용어가 공히 사용하고 있는 기독교 경전에는 그 '데모스'라는 말이 서너군데 나오고 있다.

다음과 같은 문맥에서다.

1. 파울로스(Παῦλος, 바울 -편집자 주)가 연설을 할 때 사람들이 다 그리로 넘어가자 유대인이 주도한 '데모스'들은 시기가 나서 시장 바닥의 불량배들을 동원해 떼를 지어 일부러 막 소란을 피우며 파울로스 일행이 머무는 숙소로 난입하여 파울로스 일행을 '데모스'들에게 끌어낸다. -사도행전 17장

2. 파울로스가 에페소스의 한 극장에서 '데모스'에게 이르기를 미개한 미신에 속아 우상숭배를 하지 말라 하자 우상 제작 업자들이 '데모스'를 격동시켜 파울로스를 잡으라고 선동하자 '데모스'들이 막 흥분을 하며 밀려든다. -사도행전 19장

3. 헤로데가 하루는 왕복을 입고 단상에 앉아 '데모스'에게 연설을 하자 '데모스'들이 크게 부르짖으며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며 몰려든다. -사도행전 12장

이것이 '자유'가 빠지고 '민주'만 남은 기본질서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이영진 기호와 해석
▲이영진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이영진
호서대학교 평생교육원 신학과 주임교수이다. 다양한 인문학 지평 간의 융합 속에서 각 분야를 자유롭게 넘나들면서도, 보수적인 성서 테제들을 유지해 혼합주의에 배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신학자로, 일반적인 융·복합이나 통섭과는 차별화된 연구를 지향하고 있다. <기호와 해석의 몽타주(홍성사)>, <영혼사용설명서(샘솟는기쁨)>, <철학과 신학의 몽타주(홍성사)', <자본적 교회(대장간)> 등의 저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