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어 헬라어 사전
바우어 헬라어 사전

발터 바우어 | 이정의 역 | 생명의말씀사 | 1,720쪽 | 90,000원

바우어 헬라어 사전은 명불허전(名不虛傳)이다. 설명이 굳이 필요 없는 사전이다. 바우어 사전의 간략한 역사를 살펴보자. 책의 이름은 저자인 발터 바우어(1877-1960)의 이름을 따서 만들었다. 저자는 독일의 신학자요 사전 편찬자이다.

동프로이센의 수도 쾨니히스베르크에서 출생한다. 대학교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마르부르크로 이주한다. 1895년 마르부르크 대학에서 신학을 시작하고 스트라스부스 대학교와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계속 이어간다. 그러다 1903년 드디어 교수 자격을 획득한다. 1916년 괴팅겐 대학으로 옮겨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가르친다. 그는 학업적 능력이 탁월해 신학박사는 물론이고 명예 철학박사 학위까지 받는다.

저자는 또한 교회 역사가이다. 그는 현재 알고 있는 기독교 이단들이 콘스탄티누스 황제 이후 기독교가 로마의 기독교가 된 이후 정죄되었다고 주장하는 <초기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이란 책을 출간한다. 하지만 정경학과 고등 비평이 마무리되던 1960년 이후, 그의 가설은 증거 불충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바우어의 주장은 초대교회 문헌에 눈을 돌리게 했고, 방대한 연구 결과들을 만들어 냈다. 그중의 하나가 바로 이 사전이다.

소위 '바우어 사전'으로 불리는 이 사전은 신약성경 당시의 헬라어를 총망라했을 만큼 탁월성을 인정받는다. 1928년 처음 출판됐고, 계속 편집 보강되어 제6판까지 출간된 상태다. 수정 보완에 지대적인 영향을 미쳤던 쿠르트 알란트(Kurt Aland)와 바르바라 알란트(Barbara Aland), 빅토어 라이히만(Viktor Reichmann)의 공이 컸다. 결국 이들의 이름을 삽입하여 1988년 BAAR(Bauer-Aland-Aland-Reichmann) 판이 된 것이다. 제5판을 영어로 번역한 영역본이 BDAG 판이다. 이제 <바우어 헬라어 사전>이 독어에서 직역됐으니, BDAG 사전은 힘을 상실한 것 같다.
 
그럼 이 책은 어떤 책인가? 이 책이 가진 독특성은 바우어의 <초기 기독교의 정통과 이단>으로 되돌아가야 한다. 이곳에서 바우어는 초기 기독교가 자신들만의 독특한 전통을 가진 집단이라고 주장한 교부들을 반박한다. 바우어에 의하면 기독교는 여러 사상이 혼합된 종교집단이었으며, 하나의 운동처럼 발전했다고 보았다.

이러한 주장은 초기 기독교의 문헌을 살펴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치닫게 했다. 교회가 인정한 교부 문헌부터 외경으로 밀려났던 초기의 수많은 문헌들을 대조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이다. 빠르게는 3세기 중반, 늦게는 4세기까지 적지 않은 교부 문헌들이 헬라어로 기록돼 있다. 이후 점차 라틴어로 넘어가게 된다. 필자도 1년 가까이 초대 교부들의 책들을 기고할 목적으로 읽어 나가고 있다.

이냐시오스의 <일곱 편지>,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으로 알려진 <디다케>의 경우 모두 헬라어로 되어 있다. 1세기 후반부터 시작된 교부 문헌들은 시간이 흐를수록 사용되는 단어나 교리적 색이 조금씩 바뀌어 가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런 미세한 변화를 잡아 준다는 것이다.

이 사전이 본 텍스트로 삼은 성경은 쿠라 알란트와 바르바라 알란트가 편집했던 <네스틀레-알란트 헬라어> 성경과 UBS 성경을 사용했다. 이곳에서 편집 과정을 일일이 언급할 수는 없지만, 진액이 나올 만큼 과도한 수고가 있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더 자세한 내용은 사전 서문에서 읽을 수 있다.

한국어로 번역되는 과정도 기적에 가깝다. 역자 이정의는 빌헬름 게제니우스의 <히브리어 아람어 사전>을 심장수술을 하면서 번역했다. 이 사전만 해도 역작(力作)이지만, 2006년 현존하는 최고의 헬라어 사전인 발터 바우어의 사전 번역을 시작한다. 그러나 2010년 암이 발병하여 위를 절개한다.

결국 2016년 5월 10년이 넘는 세월을 지나 번역의 대장정을 마치게 된다. 그러고 편집에만 거의 2년을 쏟아 부어, 세상의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책 자체에도 위엄이 있지만, 번역 과정 속에서 하마터면 불가능했을 기적을 이룬 셈이다. 그렇다면 이제 이 책이 가진 몇 가지 특징들을 살펴보자.

먼저 알파와 아바를 살펴보자.  

Αα, '알파'로 읽는다. '첫째, 첫 번째'라는 뜻이다. 표지어로 사용된다. α는 시작을 상징한다. "이런 뜻에서 이 두 글자(알파와 오메가)는 우주 그리고 모든 신과 귀신의 힘을 표현함." 기독교 내에서 제일 오래된 표현은 폼페이어의 Sator-Rebus에서 '시작과 끝의 뜻'으로 사용된다. 

αββα, '아바'로 읽는다. 아람어 아바-호격. 아람인이 기도할 때 부르는 칭호. 헬라어로 말하던 기독교인들이 제사의 형식으로 이어받아 ὁ πατήρ(호 파테르)라고 번역한다. 교부 문헌에는 표기되지 않았다.

상당히 고무적인 소개 글이다. 알파와 오메가에 온 우주와 신과 귀신의 힘을 표현한다는 해석이 쉽게 이해되지 않지만, 당시 그렇게 이해됐다는 점이 신기하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에서 알파와 오메가는, 단순한 시작과 마침으로서의 신적 능력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영적 전쟁이며, 세상의 신들과 교회가 섬기는 하나님과의 전쟁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아바의 경우도 아람인들이 기도할 때 사용했다는 것과 교부 문헌에 표기되지 않았다는 것은 놀랍다. 이것은 방대한 교부 문헌을 살피지 않고는 확신할 수 없는 문장이다.

δύναμιις, '뒤나미스'. 이 단어는 3쪽 정도의 방대한 분량으로 소개한다. 대개 힘, 권력, 권세를 뜻한다. 성령의 권능, 성령의 능력으로, 기적의 능력, 역량 재능, 세력 신장 등에서 골고루 사용된다. 성경에는 사용되지 않았지만, 플라톤이나 필로의 글에 '뜻', '의미' 등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유일하게 고린도전서 14장 11절에는 '소리의 뜻'으로 번역되어 있다.

"그러므로 내가 그 소리의 뜻을 알지 못하면 내가 말하는 자에게 외국인이 되고 말하는 자도 내게 외국인이 되리니(고전 14:11)

ἐὰν οὖν μὴ εἰδῶ τὴν δύναμιν τῆς φωνῆς, ἔσομαι τῷ λαλοῦντι βάρβαρος καὶ ὁ λαλῶν ἐν ἐμοὶ βάρβαρος".

뒤나미스는 분명 물리적인 힘이나 권세 등을 나타내기도 하지만, 성경을 넘어서면 '뜻'과 '의미'로 많이 사용됨을 발견할 수 있다. 

헬라어 사전을 자주 사용하는 필자에게, 바우어 사전에서 바이블웍스를 능가하는 힘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격에 따라서도 사용하는 의미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을 일일이 언급하며, 그렇게 사용된 성경의 구절들을 열거한다.

특히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인 ἐγώ εἰμι의 εἰμι의 경우는 6쪽에 달하는 방대한 해설을 가한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의미는 '있다', '존재하다'이지만, '~하다'의 뜻과 '머물다', '발생하다'의 의미도 있다.

마지막으로 이 책의 뜻을 간략하게 정리하면 이렇다.

먼저, 방대하다. 이 사전은 그 어떤 헬라어 사전과 감히 비교할 수 없다.

둘째, 세밀하다. 이 세밀함은 자세함을 넘어 미묘한 차이를 분석하는 예리함이다.

셋째, 성경 안과 성경 밖의 용례를 살핌으로 단어의 의미를 풍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정현욱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에레츠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