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충렬 인터뷰
▲김충렬 교수. ⓒ크리스천투데이 DB
제52장 꿈의 기초 이론(1)

우리는 꿈에 대하여 분석심리학이 어떻게 다루는지 접하게 되었다. 꿈은 분석심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꿈이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중요시되는 치료 과제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꿈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치료의 방법과 목표에 그만큼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 된다. 꿈은 의식이 전혀 문제시하지 않았거나 갈등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현재의 사실들을 지적해주기 때문이다. 분석치료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꿈의 원리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의 몇 가지로 구분하여 기술하고자 한다.

1. 꿈의 이해

꿈을 무엇이라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는 꿈을 꾸며 살면서도 꿈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 꿈이 나에게 무엇을 말하는지? 왜 꿈이 나에게, 어느 때에 등장하는 지에 대해서 알 방법이 없다. 그만큼 꿈이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면서 가장 모르는 부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일상의 꿈을 통하여 여러 가지 경험을 한다. 그것들은 대체로 자신의 생활과 관련되고, 어떤 것은 자신의 대단한 고민거리와도 연관되며, 그리고 전혀 알 수 없는 꿈에 이르기까지 실로 다양하다.

우리는 꿈을 통하여 큰 도움을 받는가 하면, 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하는 사람, 꿈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 이는 꿈의 경험뿐 아니라 꿈이 상당한 영향력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꿈은 더 이상 아무것도 아닌 채로 우리의 생활에서 제외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실제로 꿈은 개인의 정신이나 일상의 생활, 나아가 자신의 인생과의 상관성을 생각해야 하는 정도로 중요성을 갖게 되었다.

1) 일반적인 꿈-이해

사람들은 꿈에 대하여 말하기를 좋아하고 꿈을 어느 정도 신뢰한다. 이러한 꿈은 일반적일 뿐 아니라 매우 보편화된 현상이다 다만 꿈에 대하여 정확한 지식이 없어 궁금하거나 답답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의 꿈-이해는 매우 주관적이고 경험적이 되는지 모른다. 꿈에 대해 체계적으로 알지 못한다고 해도 개인적으로 꿈을 경험하고 또 꿈의 역할을 어느 정도 인정해 왔다. 그것은 꿈을 자기의 방식으로 해석하고 의지하는 수단으로 삼아 온 것임을 의미한다. "꿈은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꿈을 쉽게 지우거나 부인(否認)하지 못한다.

사람들은 인정하지 않으려 하면서도, 꿈을 자꾸 생각한다는 것이 참으로 흥미롭다. 그리고 사람들은 꿈을 다시 한 번 생각할 뿐 아니라, 꿈을 의지하는 경향이 있다. 꿈은 누구보다도 자기에게 가장 친근한 안내자요 미래의 일을 알려주는 예언자의 역할을 해 준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꿈은 중요한 때에 자기에게 무엇인가 제시하고 있다는 신비로움을 갖고 있지만, 이런 꿈에 대한 이해는 사람마다 모두 동일하지 않다. 특히 꿈에 대한 이해는 개인에 따라서도 다르지만, 문화와 환경적인 조건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런 꿈에 대하여 갖고 있는 이해의 차이에 대해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특징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 꿈이 현실과 같다는 시각이다. 원시인에게는 꿈과 현실의 구분이 없었다. 그들에게 꿈은 현실의 연장(延長)이다. 원시인들은 꿈과 밀접하게 지낸다. 현실에서의 일이 그들에게는 꿈에서도 나타나며, 실제로 현실의 일이 꿈으로 이어진다. 그들에게는 밤보다 낮이 길지만, 낮의 행동이 정해진 반복이나 습관적인데 비해 꿈은 낮과는 다른 것을 느끼게 된다.

아마도 원시인들은 현실에서 하지 못하는 것을 꿈으로 이어서 하는 것을 생각했음직하다. 그들에게는 현실에서 하는 행동이 연장이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현실에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행동이 꿈에서는 가능해진다는 점에서다. 꿈에서 그들은 높은 산을 단숨에 오르거나 하늘을 날아다니기도 한다. 꿈을 현실과 그다지 구분하지 않은 원시인들이 꿈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했는지 궁금하기만 하다.

둘째, 꿈이 신의 계시이자 예언이라는 시각이다. 고대인들은 원시인들과는 달리 꿈과 현실을 구분하였다. 그들은 꿈을 매우 중요한 것으로 여겼다. 고대인에게 꿈은 신으로부터 보냄을 받은 신의 사자(使者)이며 예언의 수단이었다. 비교적 하등종교가 지배적인 사회나 문화에서는 꿈이 신의 사자나 예언의 역할을 한다는 것이 인정되는 편이다. 우리의 사회에서도 아직도 꿈의 그런 기능을 상당히 인정하는 추세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꿈에서 만난 고인(古人)이 알려주는 것들은 모두 이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우리에서도 종교인들이 꿈으로 자신의 일을 알거나 하는 것은 바로 신의 계시적 차원을 인정하는 것이다. 심지어 종교인들은 일반적인 꿈마저도 특별한 신의 계시나 예언의 현상으로 인정하려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종종 교인들이 꾼 꿈을 해몽해 주느라 바쁜 종교가는 이런 경향의 선두에 서 있는 편이다.

셋째, 꿈이 치료적인 기능을 한다는 시각이다. 꿈이 치료적인 효과가 있다는 것은 오래 전부터 알려져 있는 편이다. 우리의 주변에서도 어떤 사람이 꿈을 통하여 치료가 되었다는 말을 종종 듣기도 한다. 꿈을 치료의 수단으로 인정하는 행위는 고대 그리스에서도 성행했다.

흥미롭게도 꿈의 치료적 기능은 현대의 정신치료와 비슷한 점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아스클레피우스(Asclepius)사원에서 치료를 위한 수면이 행해졌다. 이 치료를 위한 수면(Incubatio)으로 일컬어진 것이다. 여기에서 병자들은 치료하는 신(神), 즉 의신(醫神) 아스클레피우스를 모신 사원에 가서 목욕재계하고 아바톤(Abaton)이라는 신성한 건물에 들어가 의신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러면 신이 여러 모습으로 나타나 처방을 일러주어 그대로 따르면 치유된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그리스의 도시인 에피다우로스에 있는 아스클레피우스사원에는 주춧돌로만 남아있지만, 건너편에 있는 박물관에는 병을 고쳐주어 감사의 표시로 헌납한 대리석상과 기념비 등이 많이 진열되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종종 치료받은 꿈을 꾸고 나서 실제로 치료되었다는 말을 듣는 경우가 있다. 이는 앞의 치료를 위해 인위적으로 꿈을 꾸려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대개는 생각지도 않게 자연적으로 된 경우이다. 도무지 낫기 어려운 중병환자가 꿈에서 치료를 받은 후 거뜬히 나았다는 것은 꿈의 치료적 의미를 말하는 것이다.

넷째, 꿈이 다양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시각이다. 꿈에 대해서는 각기 문화나 부족, 민족에 따라 다양한 생각을 갖고 있다. 다양한 꿈의 기능이란 대개 신비로운 것으로 간주되는 경향이다. 시베리아 중앙아시아의 샤머니즘에서 꿈은 환자의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동양에서 꿈은 오래도록 길흉화복의 점복(占卜)의 수단으로 여겨져 왔다. 꿈의 신비력과 초월적인 기능이 인정되어 온 것이다.

물론 서양도 그런 측면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꿈-해몽서나 꿈-해몽사전 같은 것들은 이를 입증한다고 볼 수 있다. 동양에서는 오래전부터 꿈-해몽서가 이용되어 왔고 의학적으로 더 체계 있게 꿈-해몽의 원리를 활용해 왔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대개 꿈을 꾸는 사람의 신체 상태와 꿈의 관계를 해석하면서 꿈의 분류와 치료법을 제시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서양에서 꿈-해몽서로는 기원 2세기에 아르테미도루스(Artemidorus)의 것이 알려져 있다고 한다. 그 해몽서는 매우 체계적이고 자세하여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2) 병리학적인 꿈-이해

꿈은 환자의 질병과 관련하여 병리학적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병리학적인 이해란 환자가 어떤 질병이 걸렸는지, 그리고 어떤 원인으로 질병에 걸려서 고통을 당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꿈을 치료적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런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꿈을 과학적으로 연구하여 치료에 활용하는 차원이다.

철학에서도 일찍이 꿈을 연구하여 왔다. 여러 가지 꿈이 인간의 이성(理性)적 기능과 관련되어 일어나는 것에 대하여 신기해하면서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치료적인 의미가 아니었는데, 이는 단순히 인간의 정신적 측면, 특이성의 작용기능에 결부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꿈의 병리학적인 측면은 꿈과 정신의 이상유무(異常有無)를 진단하려는 노력과 관련된 것이었다.

처음 꿈에 대한 규명작업은 이미 정신치료적인 입장에서 시도되는 경험적인 것이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그만큼 이론적인 측면보다는 실제적인 측면이 요구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단순한 이론적인 측면의 기준으로 주장될 만한 성격이 아니다. 그것은 꿈이 인간 정신의 중요한 측면으로 설명되어 정신을 치료하는 문제와 관련되고 있기 때문이다.

비단 전문치료적인 관점에서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우리는 저마다 꿈에 대한 많은 경험을 갖고 있다. 다만 꿈에 대한 관심이 사람마다 다를 뿐이다. 때로 어떤 사람은 그 꿈에 관해 관심을 나타내는가 하면, 또 어떤 사람은 알 수 없는 이유 때문에 무관심한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런 관심의 유형과 관계없이 누구나 꿈을 꾸는 것은 사실이다. 실제로 꿈을 꾸지 않는 사람은 없다. 전혀 꿈을 꾸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조차도 꿈을 꾼다. 다만 꿈을 기억하지 못하거나 관심이 없을 뿐이라는 것이 심리학자들의 주장이다.

꿈은 우리의 정신에서 일어나는 신비한 작용이다. 보이지 않는 정신의 세계란 실로 신비한 것이어서 인간이 모두 알기는 어렵다. 그래서 꿈이 그 오랜 역사를 갖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정확하게 그 원인이 밝혀지지 않는 이유이다. 이런 꿈에 대하여 그 동안 여러 학자와 문학가들이 언급하여 왔지만, 비로소 프로이트에 와서야 그 이론적인 체계가 정립되었다.

프로이트는 꿈을 정신분석의 한 대상으로 삼아 꿈-이론을 체계화 시킨 최초의 인물이다. 그는 환자의 무의식의 세계를 발견하기 위하여 연상기법을 착안하였다. 이 자유연상을 위한 접근의 하나로 꿈을 중요시하게 되었는데, 꿈이야말로 환자의 무의식의 세계를 반영하는 풍부한 소재라는 단순한 동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는 초기에는 꿈이 환자들이 대체로 갈망하는 바를 이루려는 것, 긴장해소를 위한 것과 관련된 것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한 견해에 입각하여 그는 자기의 꿈도 분석하는 등 많은 진전을 보게 된 것이다.

그런 노력 끝에 프로이트는 꿈이란 정신의 가장 원초적인 표현이며, 인간정신의 가장 내면에 위치하는 무의식의 내용이라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다. 이때부터 정신분석에서 꿈을 해석하는 작업이 중요한 기능에 해당되어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다. 이로써 프로이트는 많은 임상실험을 통하여 꿈-연구를 통하여 무의식의 존재를 밝혀내어 정신치료에 길을 연 선구자가 되었다. 이것은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이 발간된 1900년의 일이었다.

융은 이런 프로이트의 업적을 높이 평가할 뿐 아니라, 꿈이 무의식의 측면을 나타낸다는 프로이트의 입장에도 동의한다. 다만 융은 프로이트의 꿈을 해석하는 방법이나 무의식에 대한 학설에서는 조금의 견해를 달리할 뿐이다. 그것은 융이 프로이트의 성애론을 지향하거나 리비도 일변도의 꿈으로 해석하기보다는 무의식의 다양성처럼 꿈도 매우 다양하다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라고 볼 수 있다.

3) 분석심리학적인 꿈-이해

분석심리학에서 꿈은 정신의 상태와 중요한 관련을 갖는다. 꿈은 개인의 정신을 나타내는 수단이자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는 점에서다. 분석심리학에서 꿈은 특히 무의식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정보통로라고 생각한다. 꿈은 융에 의하면 "무의식의 반영이며, 이 꿈은 또한 수많은 상징의 언어로 표현된다."

이는 융의 꿈에 관한 견해를 집약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분석심리학에서 꿈에 대한 언급에서 부득불 무의식과 연결시키고 있기 때문인데, 꿈이 무의식의 표현이라는 점에서 그렇다. 융의 꿈에 대한 견해는 인간의 의식의 측면을 넘은 이 무의식의 특성을 이해하지 않고는 꿈도 이해할 수 없다는데 기초한다.

특히 융은 "꿈이란 개인에게 무엇인가 가르치고자 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프로이트의 꿈과 비교되는데, 프로이트에게서 꿈은 꿈 뒤에 숨겨진 무의식의 욕구, 충동, 그 밖의 것들을 알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로이트는 감추어진 내용의 꿈을 꿈의 잠재적 내용(latent dream content)과 드러난 꿈을 현시된 꿈의 내용(manifest dream content)으로 구분했다.

그러나 융에게 꿈은 꿈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 된다. 꿈이 나타내는 '있는 그대로'가 중요하다. 꿈은 그대로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꿈에 '모르는 노인'이 나왔으면 그것은 모르는 노인으로서 중요한 것이다. 그것은 꿈을 꾼 사람의 대치물일 수 없다. '빨간 사과'의 꿈을 꾸었다면 과일이라는 사과가 의미를 갖는 것이다. 그것이 정신분석에서 보는 것처럼 성적 욕망을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니다. 융에게 있어서 꿈은 감추지 않고 오히려 가르치기 때문이다.

분석심리학에서 꿈은 많은 상징을 통하여 표현되고, 또한 상징은 꿈을 표현하는 방식이다. 꿈을 통하여 표현된 무의식은 의식과는 다른 형태여서 그 표현방식도 비논리적인 형태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융은 이렇게 말한다. "일반적으로 어떤 사상의 무의식적인 측면은, 꿈을 통해 그 모습을 드러내는데, 그것은 합리적인 사고로서가 아니라,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나타낸다."

그 무의식은 수많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어 꿈은 무의식의 상징-언어임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사실은 상징은 꿈에서 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인간은 일상에서 실제로 많은 상징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인간은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하여 말과 글이라는 수단을 사용한다. 이 수단은 상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기에 상징은 용어나 이름, 일상적으로 친숙한 그림 가운데 관습적인 의미 외에도 어떤 특정한 함축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 함축성의 그림들은 애매모호한 미지의 은폐된 그 무엇을 지니고 있다. 예를 들어 크레타 섬의 기념비들 중에는 쌍-도끼의 도안이 새겨져 있는 것이 많다. 이것은 보통 사람에게는 단순히 알고 있는 사물이지만, 그 상징적인 의미는 파악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인간은 의미전달을 위하여 기호나 이미지를 고안하여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단지 연관된 사물을 대표하는 것일 뿐 상징은 아니다. 언어나 이미지는 직접적이고 명료한 의미 이상의 그 무엇을 내포하고 있을 때 비로소 상징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반면에 꿈의 상징은 보다 넓은 무의식의 측면을 가지고 있고, 그 측면은 결코 정확히 정의되거나 온전히 설명되지 않는다.

그러기에 꿈으로 나타나는 상징을 탐구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이성의 영격을 넘어선 관념의 세계로 인도받는다. 이는 꿈에서의 상징의 중요성인 동시에 무의식의 존재표현을 의미한다. 따라서 상징으로 표현되는 꿈이란 우선 무의식과 의식의 관계가 규명되어야 하고, 그리고도 무의식의 존재가 무엇인가가 밝혀져야 이해될 수 있게 된다. 이런 무의식과 관련된 것들에 대해서 우리는 후술하게 될 꿈의 특성들에서 더 자세히 다루므로 그 이해를 넓히게 될 것이다.

2. 정리

지금까지 우리는 꿈의 기초이론에 대해서 기술했다. 분석심리학이 어떻게 다루는지를 접하게 된 것이다. 꿈은 분석심리학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했다. 꿈이 환자의 치료를 위하여 중요시되는 치료과제이고, 꿈을 정확하게 이해한다는 것은 치료의 방법과 목표에 그만큼 진전을 이룰 수 있는 도구를 마련하는 것이 된다는 점에서다.

꿈은 의식이 전혀 문제시하지하지 않았거나 갈등하는 것으로 여기지 않았던 현재의 사실들을 지적해주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여 우리는 분석치료에서 반드시 알아야 할 꿈의 원리에 대해 기술해 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