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에르케고어 이창우
▲이창우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주님은 스스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라고 말씀하셨다. 주님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요 14:6). 그분은 삶 자체가 길이시다. 이런 의미에서 그분은 진리이시다. 따라서 진리란 현존의 삶이고, 살고 나서 알게 되는 것이지 알고서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그분은 어떤 삶을 사셨는가? 그분의 삶을 집중적으로 살펴보자.

그는 가난과 궁핍 가운데 태어난다.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강보에 싸인 채, 말구유에 누워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이미 아기였을 때부터 그는 권력을 가진 통치자에 의해 핍박을 받았다. 갓 태어난 아기가 핍박을 받아야 하다니! 그래서 가난한 부모는 그와 함께 이집트로 도망가야 했다. 이것은 진실로 세상에서 유일하게 좁은 길이다.

사람이 왕위를 상속받을 만큼 고상한 지위에 태어났다면, 그래, 그렇다면 그가 권력자의 핍박의 대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는 마굿간에서 태어났고 강보에 싸여 있었다. 이것은 충분히 지독하게 좁을 수 있는 궁핍과 가난이다. 그러나 그때 일반적으로 권력자에 의해 핍박받는 일은 면제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태어날 때부터 높은 지위까지 올라갈 운명이 아니었던 것처럼, 역시 모든 일은 처음과 동일하게 남게 된다. 그는 가난과 비천함 가운데 살았고 머리 둘 곳조차 없었다(눅 9:58).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이것은 확실히 이 길이 좁다고 말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이것은 틀림없이 좁은 길 중에 가장 쉽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그가 언제나 가난과 비천함 가운데 살았다는 것, 이것은 그가 걸은 좁은 길 중에서 가장 쉽다.

이 길은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좁다. 처음부터 그렇다. 처음부터 그의 삶은 시험, 유혹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시험은 그의 삶에서 40일이라는 특정한 하나의 기간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다.

물론, 그는 마귀에게 40일 동안 시험받은 것은 사실이다(마 4:1-11 참고). 그러나 그의 전 생애가 시험에 대한 이야기였다. 마치 그의 전 생애가 고난의 이야기인 것처럼 말이다. 매 순간 그는 시험을 받았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소명, 자신의 과업을 무효로 만들 만한 가능성을 갖고 있었다.

광야에서 유혹자는 마귀였다. 그렇지 않다면, 다른 사람들이 유혹자의 역할을 감당했다. 때로는 사람들이, 때로는 제자들이 그를 시험했다. 그리고 아마도 동시에, 특별히 처음부터, 권력자들은 그의 소명과 그의 과업을 '세속화'하기 위해 그를 시험하려 노력했다.

어쨌든 간에, 그는 세상에 중요한 인물이 될 수도 있었다. 그는 왕과 통치자가 될 수 있었다. 군중들이 그를 왕으로 세우고 싶어할 만큼 인기가 있을 때도 있었으니까(요 6:15).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의 유일한 단 하나의 소원, 이 역시 그가 왕이 되는 것이었다.

처음에, 아주 처음에, 마귀가 그를 유혹했던 것이 무엇인가? 나에게 경배만 한다면, 이 모든 나라를 주겠다던 자가 마귀 아니었던가? 결국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의 제자도, 심지어 마귀도, 그가 왕이 되기를 바랐다.

한때 그는 제자들에게 처음으로 그의 사명을 말한 적이 있다. "나는 왕이 되려고 온 것이 아니고, 죽으러 왔다. 그러나 3일만에 부활할 것이다." 그때 그의 제자의 반응은 어떠했는가. 베드로는 그를 꾸짖으며 말했다. "절대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습니다! 왕이 되셔야죠. 죽는다니 말이나 됩니까(마 16:22)!" 아마 성서의 의도는 이랬을 것이다.

그때 인간적으로 말해, 그가 자신의 사명을 고집한다면, 제자들은 불행해진다. 그러나 그의 사명을 조금만 양보한다면, 그래서 제자들의 소원을 조금만 들어준다면, 그들은 행복해진다.

이것이 그의 시험의 본질이다. 그가 사명을 고집하는 한, 제자들은 불행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처음부터 왕과 통치자가 되기 위해 엄청난 노력하는 반면, 그는 처음부터 왕과 통치자가 되지 않도록 무한히 엄청난 노력을 해야만 했다.

이 얼마나 좁은 길인가! 세상에서는 성공하기도 힘들다. 그러나 성공이 밀려올 때, 덥석 물기만 하면 성공은 식은 죽 먹기거늘, 성공하지 않기 위해 싸워야 하다니! 고통을 피할 수 없을 때에도, 피할 길이 없을 때에도, 그 길은 충분히 좁다. 그러나 놀랍다, 그의 삶은 매 순간이 고통이었다!

고통의 매 순간마다, 세속적인 마음이 그토록 바랐던 구원, 성공, 명예, 인기와 같은 것들을 얻을 수 있는 가성성이 식은 죽 먹기보다 더 쉽게 그에게 밀려 들어올 때, 이 길을 거부해야 한다니! 사랑하는 제자들을 불행해지게 해야 한다니!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을 찌르는 칼이 되어야 한다니(눅 2:35)! 이것은 얼마나 더 좁은가!

이 좁은 길, 아무리 작더라도 진정으로 그를 따르려는 자는 이 길을 통과해야 한다!

위대한 사람으로 존경받고자 하는 마음은 인간의 공통적 갈망이다. 이때 시험이란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더 대단한 인물로 행세하는 데 있다. 가진 것도 없으면서 비싼 차를 타고 명품 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도 같은 심리일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시험은 다르게 시작한다. 부르심을 받은 자, 그분의 길을 따라가는 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능력을 부여받기 때문에, 더 나은 사람처럼 보이는 갈망에 의해 시험을 받지 않는다. 세상에서 성공, 명예, 인기 등을 얻고자 하는 마음은 믿음의 시험이라기보다 마귀의 시험이다. 그가 마귀에게 시험받는 것처럼.

그러나 같은 순간에 치명적인 불안이 부르심을 받는 자를 엄습하고 완전히 사로잡는다. 왜냐하면 이런 성공, 명예, 인기와 같은 선물이 어떤 파멸을 의미하는지 이해하기 때문이다. 모든 나라를 주겠다며 그를 유혹했던 자가 마귀가 아니었던가. 이때, 마귀는 빼앗는 자가 아니라 선물을 주는 자가 아니었던가.

그때 그의 시험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보다, 자기 자신에 대하여 더 작게 말하는 것이다. 그가 얻는 성공을, 명예를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다루는 것이다. 다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을 제외하고 누구도, 그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는 자, 그가 이것을 행할 수만 있다면 기쁨과 환희와 영광이 그를 기다렸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때 그는 승리했으니까. 결과적으로 세상의 관점에서 보면, 그는 승리하지 않도록 자신을 방어해야 한다. 얼마나 좁은 길인가! 과연 누가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이창우 목사(키에르케고어 <스스로 판단하라> 역자, <창조의 선물>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