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시대
감정 시대

EBS<감정시대>제작팀 | 월북 | 192쪽 | 13,500원

좋아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본적이 없는 방송채널과 TV프로그램이 있다. 그것은 EBS와 EBS에서 방영하는 EBS 다큐프라임이다. 특히 다큐 프라임은 동 채널의 지식채널ⓔ과 더불어 좋아하지만 제대로 본 적도, 언제 하는 지도 알지 못한다. 그것은 두 프로그램 모두 책으로 먼저 접했기 때문이다(지식채널ⓔ은 책과 함께 부록으로 딸려온 CD로 동영상을 간혹 보긴 했다). 아마도 책이 더 많은 정보와 깊이를 줄 것이라는 선입견도 작용한 것도 원인인 듯 싶다.

그런데 'EBS는 다른 방송보다 보수적이고 딱딱할 것 같다'는 인상과 달리, 다큐프라임이나 지식채널ⓔ은 그 주제나 다루는 지식에 있어 왠만한 공중파보다 훨씬 차별성을 보여준다. 특히 주제 선정에 있어 상당히 진보적이고 개혁적일 뿐더러, 우리 사회와 삶에 대한 상당한 깊이와 시사성을 보여주곤 한다.

이번에 나온 <감정시대>도 마찬가지이다. 개인적으로 이 책의 제목을 접했을 때, 우리 사회 속에서 시민들이 겪는 대표적 감정의 문제들을 찾고 분석하는 정도의 가벼움(?)을 생각했는데, 이 책은 그 대표적 감정을 통해 우리 시대의 사회구조적 문제와 민감한 이슈들을 다루고 있다.

EBS 다큐프라임의 <감정시대>를 읽으며 얼마 전 읽은 앤 보스캠프의 <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가 생각났다. 이 책은 간만에 보기 드물게 강한 임팩트를 준 책이었다. 인생의 바닥에서 그 상처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어떻게 치유받았는지를 보여줄 뿐 아니라, 주위에 상처 입은 이들을 어떻게 도울지를 보여주는 진솔하며 가슴을 흔드는 책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십자가에 대해 말하지만, 정작 그 십자가가 자기에게 어떻게 새겨지고 자신을 변화시켰는지, 또 그 십자가를 내 주위에 어떻게 전하고 있는지를 피상적으로 말하는 경우들이 많다. 반면 저자는 이 십자가 사건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부스러뜨림으로써 우리를 치유하셨고, 또 예수 그리스도처럼 부스러짐으로써 우리는 달라질 뿐더러 다른 이들을 사랑할 수 있게 됨을 보여 준다.

그런데 종종 이런 기독교 서적들이 갖는 한계성이 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에는 탁월하고 힘 있게 접근하지만, 정작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이들이 거하고 있는 사회와 구조적 문제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물론 언급한 책은 그러한 문제를 배제하고서라도 필히 읽어볼 만한 책이고, 개인적인 상처에 집중하는 것이긴 하지만, 이 책을 제외하고서라도 전반적인 기독교 서적들에서 그런 아쉬움이 남곤 한다는 것이다.

상처 입은 마음을 치유할 수는 있지만, 상처를 입게 된 환경과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상처난 감정이 사회구조적 문제나 정의구현이 필요한 사건 속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어떨까. 단순히 그 사람을 위로해주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설사 당장의 위로는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상처입고 짓눌려진 상황에서 그 사람을 그냥 방치하고 그 상황 속에 살아가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것은 무책임하고 잔혹한 행위이다. 그것이 비록 의도적인 행위는 아니며 구조적 문제를 깨닫지 못함에서 오는 무감각일지라도, 그렇다고 그것이 우리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런 점에서 <감정시대>는 주목할 만한 책이다. 이 책은 지금 우리 사회의 적지 않은 이들이 갖고 있는 감정을 6가지로 들고 있다. 불안감, 모멸감, 고립감, 좌절감, 상실감, 죄책감 등 각 감정들을 제목처럼 '~의 시대'로 규정하면서, 각 감정들이 자리하는 대표적 사회 문제들을 다룸으로써 이것이 단순히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임을 보여준다.

한동안 우리에게 베스트셀러가 되었고 아직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아들러의 심리학이나 기독교계의 베스트셀러였던 <긍정의 힘>은 긍정적 마인드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에게 환상을 주곤 하지만, <감정시대>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우리 사회는 단지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다 해서 성공을 보장할 수 없기에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감정 시대
▲EBS <감정 시대> 중 한 장면. ⓒEBS 캡처
책에서 예로 들고 있는 거제조선소 파동이나 경제 양극화 현상 등은 우리가 열심을 다해 일한다 해서 자신이 꼭 도약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고용불안과 실직, 비정규직이란 암초들 속에서 아무리 내가 열심히 일한다 해서 내 토대를 지키거나 위험요소들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모멸감도 마찬가지다. '갑질 대한민국'이란 말이 여실하게 드러나는 한국 사회에서, 그런 갑질로 인한 희생이 인간성의 무시이며, 그렇게 당하는 사람이 나와 관계없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부모님이나 자식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한다. 그런 점에서 노동에 대해 다시 생각하고 고찰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립과 좌절의 경우 앞서 불안감이 현실화되어 실직과 퇴직, 정당하지 못한 임금 체계와 차별 속에서 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나고 그 대가를 정당하게 받지 못하면서 오는 좌절과 무너짐을 이야기한다. 특히 이런 문제들은 지금 어느 순간 생겨난 것이 아니라, IMF 때 '경영 정상화와 기업 살리기'란 이름으로 자행된 난파선 속에서 제비뽑아 던져진 이들에서부터 발생됐고, 그 버려진 이들을 우리가 의도적으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일깨워 준다.

마지막 두 가지 감정인 상실감과 죄책감은 특히 세월호 사건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세월호에서 친구들을 떠나보내고 살아남은 학생들과 사람들, 그리고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겨진 가족들의 아픔과 상실감에 대한 접근은 가슴을 짓이긴다.

특히 눈앞에서 또는 잡았던 손을 놓쳐 친구와 가족들이 사라지는 것을 목도한 살아남은 이들은, 자신의 생명을 건졌지만 친구들을 버렸다거나 친구들 대신 살아난 것 아닌가 하는 죄책감으로 이미 회복하기 힘든 상처를 받고 말았다.

그런데 더 이들을 아프게 만든 것 중 하나는 이렇게 상실과 죄책의 시대를 살아가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에게 정부와 일부 극우단체들이 행한 행동이다. 이는 배신과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행위와 진배 없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공감성을 상실한 무감각이요, 인간을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비인간화의 극한을 보여준 것일 게다.

다른 부분도 그렇지만, 세월호와 관련한 장은 읽는 내내 눈물을 참는 것이 쉽지 않았다. 감정을 자극하고자 하는 의도는 없었지만, 차분히 써내려가는 생존자와 유가족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저민다.

앞서 언급한 앤 보스캠프의 <난 더 이상 상처에 속지 않는다>는 내 곁에 있는 이를 공감한다는 측면에서 중요하며 본질적이다. 하지만 그 공감은 개인과 친구를 넘어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상처 입은 이들에게까지 확장돼야 한다.

종종 사회개혁을 외치지만 정작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으로 사회구조 속에서 아픔을 겪는 이들의 감정을 도외시하고 구조를 개혁해야 한다고 말하는 이들은, 결국 그 구조 속에서 희생양들이 발생해도 개의치 않는 한계와 비인간성을 보이는 것이다.

그에 반해 이전에 책으로 읽기도 했고 <감정시대>에서도 잠깐 언급된 정혜신의 <사람공부>는 자신이 중심된 상담실에서 아픈 이들의 현장으로 찾아가는 상담자로서의 역할을 보여주는데, 상담자는 '아픈 이들이여 오라' 하는 종합병원 차원이 아니라 아픈 이들을 향해가는 119가 돼야 한다고 말한다.

지금 우리 시대는 아픈 이들을 위해 그저 '좋아요'를 누르는 것이 아니라, 아픈 이들을 향해 그들의 현장으로 다가가, 그들을 품고 이해하려는 노력과 그들을 인간 자체로서 사랑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의 문제와 구조를 깊이 이해하고 파악하고자 하는 애씀이 수반돼야 할 것이다.

문양호 목사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함께만들어가는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