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담과 이브, 사울, 압살롬... 욕심이 망친 성경 인물들

입력 : 2017.12.04 10:14

[칼럼] 죄 가운데 가장 무서운 것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욕심(慾心, greed)이라는 명사는 '어떠한 것을 정도에 지나치게 탐내거나 누리고자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쉽게 말해 무언가를 바라는 마음, 그리고 얻고자 하는 마음을 뜻합니다. '욕심은 부엉이 같다'는 속담은, 욕심이 매우 많다는 말입니다.

동물들에게는 욕심이 없습니다. 배가 고프면 즉시 해결할 뿐, 더 이상 욕심을 부려 다른 동물들을 잡아먹는 일이 없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고 한계가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잠시의 만족은 있을 수 있으나, 오래도록 지속되는 행복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욕심의 주위에는 늘 사탄들이 우글거리며, 인간들의 심령을 유혹하여 죄를 생산케 하기 위해 24시간 항시 대기하고 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는 남부러울 것 하나 없는 아름다운 낙원에 살았지만, 간교한 사탄의 유혹으로 욕심이 발동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금지하셨던 선악과를 따 먹으므로 교만하여, 인류 역사 최초로 불순종의 죄를 생산한 범인으로 지목됐고, 이는 지금까지 우리를 괴롭게 하고 있습니다.

욕심의 대명사는 사울 왕이지요, 그는 왕권을 다윗에게 옮겨갈 것을 두려워 한 나머지, 다윗을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헛된 수고를 했지만, 결과적으로 비참한 죽음과 장자인 요나단까지 죽음으로 몰아넣는 안타까운 사건을 초래하고 말았습니다.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불순종으로 전리품을 챙겼던 아간의 최후는 또 얼마나 불행했습니까? 북왕국 이스라엘 왕인 아합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포도원을 탐내 자신에게 팔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나봇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포도원을 지키기 위해 거절합니다. 아합 왕이 포도원을 얻지 못하여 고민하는 것을 부인인 이세벨이 보고, 나봇에게 거짓 누명을 씌우고 모함하여 돌로 쳐 죽여 포도원을 아합 왕에게 바친 사건도 있었습니다. 그의 최후 역시 비참한 죽음이었습니다.

다윗왕은 아끼고 사랑했던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적과 전쟁 중에 있던 그 부하를 불러들여 사건을 포장하려 합니다. 부하에게 융숭한 대접을 청했으나 거절하고 돌아간 부하를 전쟁 중에 죽일 것을 명령하고 부하의 아내를 취했던 다윗은, 자신이 저지른 죄를 선지자 나단의 충고를 듣고 깊이 회개한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 후광을 얻은 사건은 이세벨과 대조를 이룹니다.

다윗의 셋째 아들 압살롬은 아버지의 왕권을 차지하려는 무모한 욕심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습니다. 다윗의 아들 암논은 압살롬의 누이 다말을 욕심냈습니다.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인 요나답은 간교한 사람으로, 암논을 꾀어 압살롬의 누이인 다말을 겁탈하여 압술롬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게 했습니다. 야곱의 딸인 디나를 욕심낸 하몰의 아들 세겜 때문에, 그 성 안에 있던 모든 백성들은 비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시절, 삭개오는 세상 욕심으로 부를 채웠습니다, 하지만 그는 주님을 만난 후 토색하여 얻는 재물을 도로 나눠주며, 많은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말합니다. 그의 놀라운 회개는 우리 신앙인들이 본받아야 할 것입니다.

반대로 권력의 욕심으로 예수님을 모함하여 죽였던, 당시 율법학자들과 대 제사장들 그리고 바리새인들, 눈치 보며 동조했던 수많은 군중들, 그리고 은 30냥에 자신의 주인인 그리스도를 팔아넘긴 가룟 유다의 최후는 얼마나 불행했습니까?

세상에 수많은 종교들이 있지만, 이들 대부분이 욕심은 금물이라고 합니다. 특히 성경에서는 욕심은 죄이고, 죄의 결과는 사망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욕심이란, 끝이 없는 아주 못된 놈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시작과 끝이 존재하는데, 욕심은 시작은 있지만 끝이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특히 욕심은 무게로 치면 측량할 수 없는 무거운 존재입니다. 그리고 욕심은 착각과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욕심은 자기 자신을 속이고, 또 속으면서 합리화합니다. 욕심은 사물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판단력이 흐려지게 합니다. 늘 자신의 뜻에 유리한 방향으로 생각하며, 눈을 뜨고도 앞을 보지 못한 채 지금 현실 속 이익에만 몰두하게 하여, 먼 미래를 바라보지 못합니다.

욕심이란 병에 걸리면, 수술이나 약으로도 치료할 수 없음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합니다. 욕심을 치유할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 앞에 진심어린 회개 기도를 하고, 자신의 내면을 비워내는 것만이 욕심의 병에서 이겨내는 것입니다.

세상의 욕심으로 권력과 돈, 부동산과 주식, 명예와 출세, 그리고 장수하기 위한 많은 보양식이나 영양분들을 채우려 무던히 애를 씁니다. 하지만 이것들만 가지고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 없음을 신앙인들은 깨달아야 합니다.

즐겁고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은 오직 한 분이신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 때 가능합니다. 이것만이 최대의 기쁨이요 행복임을 성경을 통해, 그리고 많은 신앙 선배를 통해 배워야 합니다.

죄 가운데 제일 무서운 것이 바로 욕심입니다. 모든 죄는 인간의 욕심에서 시작되는 것이므로, 우리는 욕심을 품지 않는 정화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정직한 신앙생활, 남을 배려하는 신앙생활, 자기를 낮추며 이웃을 높이는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웃의 아픔을 내 아픔같이 품고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는 주님께서 모범적으로 손수 행하시고 말씀하셨던 사랑으로 가득해야 합니다. 물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공동체이므로 별별 사람들이 다 모이는 곳이기도 하지만, 욕심을 비워내도록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이어 간다면, 교회 안에는 따스한 사랑의 향기가 가득해질 것입니다.

고집과 아집, 그리고 교만과 자랑은 사라져야 합니다. 이 모두가 욕심으로부터 시작되는 암적 존재입니다. 교회를 개인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는 이들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특히 교회 안에는 시기와 모함이 없어야 합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신앙인들이 되어, 자신을 높이는 일과 자신을 드러내는 일과 교만, 권력, 돈, 명예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시간들을 쫓아내야 합니다.

책임질 일이 있으면 떳떳하게 책임을 감수하고, 물러서야 할 때를 정확하게 진단하여 물러서는, 용기 있는 지도자가 돼야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나 없으면 안 된다'는 얄궂은 사고방식은 버리고, 한 점 부끄럼 없는 마무리를 통해 후배들과 공동체의 발전을 도모하고, 우리는 고요히 뒤안길로 서서히 사라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참된 주님의 평화를 위해 오늘 하루도 욕심 없이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이효준 은퇴장로(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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