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39
▲ⓒ사진 박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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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여성이 친척 일을 잠시 돕다가 붙잡혀 본의 아니게 몇 달째 맞벌이를 하고 있다고 했다. 온종일 서서 하는 일이라 처음부터 죽을 맛이었고, 지금까지 적응이 안 되어 힘이 든다고 한다.

그런데 가끔씩 너무 힘들다는 내색을 해도, 남편은 아무 말이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두라든지, 왜 사람 데려다 고생시키느냐며 사장 욕이라도 해야 속이 후련할 것 같은데 매번 침묵하는 남편.... 대학생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조금이라도 더 벌면 좋은 것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서운함을 떨칠 수 없었다.

그 집 남편은 오십 줄에 들어선 대기업 직원인데, 얼마 전부터 부쩍 노후 걱정이 많아졌다고 한다. 회사에서 정년을 다 채우는 사람은 아예 없다며, 한숨이 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의 고생이 심해도 계속 일해주기를 은근히 기대하는 것이 아닌가 싶어 짜증이 나는 것이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남편 험담을 했더니, 요즘 남자들 생각이 대개 그런 것을 이제 알았느냐고 확인을 해 줘서 더 서운하다고. 내 남자가 별다를 것 없는 범부라는 사실에 여자들은 실망한다. 이때 남편도 오죽하면 그러겠느냐며 정색하고 위로하다가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물론 남편의 고생을 왜 모르겠는가. 여자는 정 힘들면 그만둘 여지라도 있지, 남자는 뒤에서 굴러오는 눈덩이를 계속 피해 달리면서 앞에 쌓이는 눈을 삽질해 길을 터야 하는, 잠시도 쉴 수 없는 존재 아닌가. 실제로 남자들은, 너무 힘들어서 딱 오늘 죽고 싶은 날도, 당장 예수님이 오늘 나를 데려가셨으면 하는 날도 망설임 없이 일을 밀어내야 한다. 어떤 때는 기계나 다름없다.

물론 여성이 가계를 책임지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테고, 여성들도 죽을 만큼 힘들겠지만, 이 가정의 문제에 있어서는 그렇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남편은 왜 빈말이라도 그만두라는 말을 못했을까. 왜 묵묵히 알아서 빨래를 돌리고 청소를 해 주는 것으로 아내를 더 열받게 했을까.

그게 남자다. 남자는 그만두라는 말을 할 줄 몰라서 안 하는 게 아니다. 그게 진심이 아닌데 말로만 하면 얼굴에 티가 날까 걱정되고, 진짜 그만두면 표정관리가 안 돼서 그런 것도 있지만, 말로만 호기를 부린다고 할까 봐 미안한 마음으로 입을 다무는 것이다.

하지만 다 필요 없다. 여자는 공감을 원한다. 구구절절 긴 이유는 아내도 다 안다. 하지만 듣고 싶은 말이 있다. 입이 안 떨어져도 그 말을 해라!

아..., 그래도 남자의 뇌구조는 그게 안 된다. 돈도 충분히 못 벌어서 맞벌이까지 하게 만든 주제에, 말로 다 때우라고? 차라리 날 죽여라. 그런 짓은 못하겠다..., 이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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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평행선은 어떻게 깨지는가. 남자가 얼굴에 철판을 깔고 '공감'할 때, 내가 원하는 말이 아닌 상대방이 원하는 말을 해줄 때, 비로소 인정을 받고 사태가 마무리된다. 이게 돼? 이게 통해? 이렇게 간단한 거였어? 너무 싱겁잖아....

십여 년 전 우리 교회 담임목사님이 원로로 은퇴하시고 새로운 목사님이 부임했다. 남전도회마다 돌아가면서 얼굴을 익히기 위해 만남의 시간을 가졌다. 얼굴들은 낯이 익은데, 누가 누구랑 부부인지 매칭이 안 돼서 대면을 하고 소개하는 자리였다.

열 명 가까운 남편들이 자기 소개를 하고 아내 소개를 한 다음, 여자들이 자기소개를 했다. 그런데 이런 시간이 다 지나고 나면, 무서운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누가 적절한 발언으로 아내의 얼굴을 세워줬는지, 집에 돌아가는 길에 알게 된다. 남편들은 각자 점수를 받고 책망이나 후한 밥상을 받는 것이다.

어떤 이들은 아내 칭찬이 늘어진다. 요리도 잘하고, 아이들에게도 좋은 엄마이고, 교회 봉사도 열심히 하는 아내라며 추켜세운다. 어떤 이들은 덤덤하게 소개하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옛날 남자들처럼 하찮게 여기는 듯한 가부장적 인상을 준다.

그렇게 아슬아슬한 시간이 지나가는데, 한 남편이 자기 차례를 맞았다. 그 집은 전쟁 같은 사랑으로 만난 사이로 여전히 전쟁같이 사는 부부였기 때문에, 다들 걱정 아닌 걱정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그런데 남편이 이렇게 말했다.

"제 아내는 다른 분들처럼 요리도 못하고, 육아도 그냥 그렇고, 별로 잘하는 게 없습니다."

뭐지? 모두의 긴장 어린 시선이 그의 입을 향한다.

"근데 그냥..., 이뻐서 데리고 삽니다."

순간 빵 터졌다. 누가? 그 집 부인이. 그렇게 행복한 모습은 처음 보았을 정도로 깔깔대며 남편을 때린다. "어머, 어머, 이 이가...."

분명 그 집 아내는 제일 미인이 아니었지만, 그 집 남편은 그날의 '위너'였다. 그런데 다들 웃고 있는 상황에서 웃지 못하는 남편도 있었다. 아내를 깎아내린 사람이나, 유머랍시고 아내를 디스한 만든 사람 등등....

다른 아내였다면 그런 입에 발린(?) 소리를 하는 남편을 '채신 없다'고 책망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은 그녀가 듣고 싶은 말이었다. 그것이 포인트다. 내가 골똘히 머리를 굴려서 어떤 말을 해줘야 할까 이런 거 말고, 아무리 닭살 돋아도 그녀가 원하는 말..., 눈 딱 감고 그걸 말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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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이 그런 이야기를 했다. 구원받은 사람과 안 받은 사람은 간증이 완전히 다르단다. 구원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과 손 내미심과 인도를 말하고,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 신앙 경력과 수고와 열심을 말한다는 거다. 아들을 내어주실 정도의 절절한 사랑으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은 구원의 원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야기....

물론 말을 하다 보면 이것저것 생략할 수도 있으니 단순한 언어들로 남을 판단해선 안 되겠지만, 하나님 앞에서도 공감 능력이 너무 없으면 왜 내가 구원받아야 할 죄인인지, 하나님이 어떤 이유로 나를 살리시는지 깨닫기 어렵다는 면에서는 일리가 있는 말인 것 같다.

이처럼 사랑은 내 편에서 머리를 써서 잘 해주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으로 생각하고 이해하며 못할 말도 하고, 안 할 일도 하는 것이다. 물론 남편 입장에서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이런 말을 한다는 것은 가증스럽고 거짓말 같아서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그런 마음을 설명해도 여자는, 알긴 아는데 그래도 그게 아니란다. 사탕발림인 걸 빤히 알아도, 알면서도 좋다는데 어쩌랴.... 남자의 뇌로는 겨우 이런 걸로 감동하나 싶은데, 겨우 그런 걸로 감동하는 게 여자다. 이렇게 쓰고 있지만 또 그런 일을 맞으면 나 역시 '말도 안 돼. 무슨...' 하고 고개를 저을지 모른다. 남자니까.

우리 남자들이 종종 듣는 이야기 중 하나가, 기껏 고생할 거 다 하고 말로 다 까먹는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자기 행복은 자신의 입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사람은 자기 입의 대답으로 기쁨을 누리나니 때에 맞게 한 말이 얼마나 좋은가(잠 15:23)!"

사랑하는 사람과의 대화는 '공감', 그리고 '표현'이다. 입만 열면 손해보는 것이 남자지만,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면 그냥 원하는 말을 해 주라. 백전백승, 공감불패의 효과를 체감하게 될 것이다.

김재욱 작가

사랑은 다큐다(헤르몬)
연애는 다큐다(국제제자훈련원)
내가 왜 믿어야 하죠?, 나는 아빠입니다(생명의말씀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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