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칭의, 루터에게 묻다

김용주 | 좋은씨앗 | 200쪽 | 12,000원

오직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는 '이신칭의(以信稱義)'는 마르틴 루터를 필두로 일어난 종교개혁의 핵심 교리이자, 가톨릭과 대비되는 개신교의 정체성과 같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것은, 간단히 말해 '행위 구원'을 주장하는 가톨릭과의 근본적인 견해 차이 때문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이 칭의론이 또 다른 '도전'을 받고 있다. '바울에 대한 새 관점(New Perspective on Paul)' 학파는 바울이 주창하고 루터가 재발견한 이 칭의론에 지속적인 문제를 제기했고, 루터의 '이신칭의'는 역설적인 방법으로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칭의, 루터에게 묻다>는 독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에서 '루터 신학' 연구로 교회사 박사학위를 받고 루터의 십자가 신학에 대해 16년간 연구해 온 저자가 이러한 논쟁을 염두에 두면서 집필한 루터의 칭의론 연구서이다.

저자는 "루터의 칭의론과 관련해 매우 안타깝게 여기는 것은, 16세기 후반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루터의 칭의론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너무나 '법정적 칭의론'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연구를 해왔고, 또한 루터의 저작 일부분만 보고 그 중에서 일부 문장을 뽑아내 그의 칭의론을 구성하려 했다는 점"이라며 "그래서 그의 칭의론 이해가 그의 신학 초기와 중기, 말기까지 역사적으로 어떻게 발전했는지를 저작 중심으로 살펴보면서, 그의 칭의론의 다채롭고 심오한 측면을 부각하여 전달하고자 했다"고 전한다.

그래서 저자는 루터가 칭의론을 부르짖게 된 계기부터 최초 성경 강의인 시편 강의(1513-1515)에 나타난 칭의 이해, 루터 칭의론의 정초인 로마서 강해(1515-1516), 개인적 칭의 체험에 의한 하나님의 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1519년), 소위 종교개혁 3대 논문을 비롯한 가톨릭교회와의 쟁투기에 쓰인 저작들(1519-1520)에 나타난 칭의 이해, 대(大) 갈라디아서 강의(1531-1535)에 나타난 칭의 이해, 마지막 강의인 창세기 강의(1535-1545)에 나타난 칭의 이해 등 루터의 저작을 순차적으로 살피면서 칭의 이해의 발전과 변화를 탐구하고 있다.

저자는 루터의 칭의론을 단지 현대 교회에서 벌어지는 논쟁을 정리하는 차원에서만 다루는 것으로 만족하고 싶지 않고, 도리어 현대 교회가 처한 위기를 해결할 대안으로 제시하고 싶다는 포부를 내놓았다. 그 이유는 "현대 교회가 겪는 위기의 본질은, 죄인의 칭의에 대한 확고한 관점이 결여돼서 생기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루터에게 칭의론은 교회를 살리고 자신을 살린 중요한 교리였으며, 이 교리를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고 많은 사람에게 전파하기 위해 힘썼다. 루터에게 칭의론은 하나님의 영광을 사수하기 위한 교리였고, 칭의를 올바로 가르쳐야 창조도 올바로 세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모든 조항의 핵심이자 목회자가 올바로 목회할 수 있게 하는 조항으로 봤다. 그는 이신칭의를 '교회가 서고 넘어지는 조항(articulus stantis et carentis ecclesiae)'이라고 말했다.

루터는 첫 번째 시편 강의를 통해 당시 스콜라 신학자들이 가르치는 칭의론과 바울이 말하는 칭의 이해가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고, 로마서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칭의 이해를 드러내는 동시에 스콜라 신학자들의 잘못된 칭의 이해를 비판했다. 그리고 바울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됐다. 그러나 갈라디아서(1516)와 히브리서(1517-1518) 강의에서 새로운 해석을 내놓지 못하다, 1519년 2차 시편 강해 직전 이신칭의의 진리를 개인적 체험하고 하나님의 의를 '심판하는 의'에서 '구원하는 의'로 해석하게 된다.

이후 '라이프치히 토론' 등을 통해 루터는 신앙과 행위의 관계, 그리고 율법과 복음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설명하면서 그의 칭의론을 좀 더 완성된 형태로 제시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와 창세기 강해를 통해 칭의론을 완성한다. 루터는 그리스도의 의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을 통해 획득된 의라며 속죄 사역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사랑을 통해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만 의로워짐을 천명함과 동시에, 참된 믿음은 반드시 사랑을 동반해 선행의 열매를 맺게 하고 십자가를 지게 한다는 사실도 강조한다.

저자는 이후 트리엔트 종교회의가 루터의 개혁을 어떻게 비판했는지 살펴부터, 루터 정통주의와 칼빈에게서 시작된 개혁파 신학, 자유주의·신정통주의 신학, 제2차 바티칸 회의, 새 관점 학파 등 역사적으로 신학계에서 루터의 칭의론을 어떻게 평가해 왔는지를 짚어본다.

특히 새 관점 학파 중 톰 라이트에 대해 "라이트는 루터의 신학에 심한 적대감을 드러내는데, 그의 루터 비판이 루터에 대한 불충실한 연구에 기인한다는 사실을 알 때 충격을 받게 된다. 그의 책을 읽어 본 독자들은 알겠지만 그가 루터를 비판할 때 루터의 저작에서 직접 인용한 곳이 거의 없다"며 "그는 루터가 말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sola fide)'의 뜻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국내에서 톰 라이트를 비판하는 이들을 향한 주 반박이 "그의 저작을 다 읽고 비판하라"인 점에서, 아이러니한 일이다.

칭의, 루터에게 묻다
또 "톰 라이트와 존 파이퍼의 칭의 논쟁을 비롯해 현대 칭의 논쟁에서 가장 큰 문제점은, 논쟁자들이 루터의 칭의론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의 칭의론의 극히 일부분만 말하고 있다는 것"이라며 "이런 점은 전통적 칭의론을 사수하려는 학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해당되는 것이어서, 전통적 칭의론 입장을 지지하고 변호하려는 학자들은 루터의 칭의론을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공부해야 할 것"이라고 양측 모두에게 이야기하고 있다.

결론에서 저자는 "한국교회의 칭의론은 엄밀한 의미에서 루터의 칭의론이 아니라 멜란히톤의 칭의론으로, 그로 인해 한국교회 목회자들은 대체로 루터의 칭의론을 '법정적 칭의론'으로 규정하면서 루터 칭의론의 좀 더 깊은 측면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루터의 칭의론을 올바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가 말하는 신앙, 칭의, 칭의와 선행의 관계, 믿음과 사랑의 관계 등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와 함께 "이 책이 루터 칭의론 연구의 기폭제가 되길 바란다"며 "루터의 칭의론이 제대로만 이해된다면, 오늘날 무기력해진 교회를 살릴 수 있는 교리라고 믿는다. 특히 학자들과 목회자들이 칭의론을 올바로 이해하고 설교해야 할 것이다. 죄인의 칭의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에 관한 학문에서 진보할 수 있고, 교회를 살리는 설교를 할 수 있으며, 영혼을 살리는 목회를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도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