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 95개조 논제
▲95개조 논제를 성문에 게시하는 마르틴 루터. 벨기에 작가 페르디난드 파웰(Ferdinand Pauwels)의 그림이다. ⓒ위키피디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해부터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관련 서적들이 꾸준히 출간되고 있다. 그 중에서, 먼저 한국인 저자들이 쓴 루터 관련 저작들을 소개한다. <처음 만나는 루터>에 이어, 박흥식 교수(서울대 서양사학과)의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다.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박흥식 | 21세기북스 | 284쪽 | 18,000원

이 책은 신학이 아닌 일반 역사학(서양 중세)을 전공했으며 '기독교와 유럽 문명' 등의 강의를 했던 학자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일반 대중들에게 루터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고자 쓴 작품이다. 저자는 물론 기독교인이며, 양화진문화원 원장을 역임했다.

1장 제목이 '신화가 된 논제 게시'. 저자는 시작부터 종교개혁의 '상징'을 공격(?)한다."면벌부를 비판한 루터의 '95개조 논제'는 성 (비텐베르크) 교회에 게시되지 않았다. 루터를 영웅화하려던 주변 사람들의 욕망 때문에 일종의 루터 신화가 만들어진 것이다. 논제 게시 신화는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루터는 논제 게시를 긍정하는 듯한 말을 단 한 차례도 한 적이 없다."

'95개조 논제'의 게시 여부가 논란이 있다는 정도만 알려져 있었는데, 역사학자인 저자는 확고하게 이를 부정하고 있다. 당사자인 루터가 그 사안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한 적도 없고, 유일한 증언자인 멜란히톤도 그 사실을 직접 보지 않았다는 것. 물론 여전히 논제 게시를 지지하는 학자들도 존재한다.

저자는 "(논제 게시 여부 논쟁은) 종교개혁사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루터에 대해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했다"며 "루터가 논제를 작성하되 공개적으로 게시하지 않았다면, 신학적·윤리적 논거로 교회 고위층을 조용히 설득해 면벌부의 남용을 막고 신학적 개선을 시도했다는 사실이 한층 분명해진다. 이런 측면에서 논제 게시 여부는 루터의 의도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척도가 된다"고 의의를 설명한다.

그리고 설령 루터가 만성절 전날 혹은 그 이후에 논제를 게시하지 않았더라도, 1517년 10월 31일은 루터가 과감하게 논제를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 발송해 면벌부 문제에 대한 개선을 요청한 날이기에, 종교개혁 기념일에 걸맞은 역사적 의미가 충분하다고 부연하고 있다. 그러므로 루터가 용기 있게 시작한 신앙 및 사회의 개혁운동과 그 의미가 부정될 이유는 조금도 없다는 것이다.

이 외에도 면벌부 비판과 종교개혁의 시작부터 라이프치히 논쟁과 루터의 파문, 보름스 제국의회와 성경 번역, 동지들과의 협력과 갈등, 농민전쟁과 교회 재조직, 개혁세력 분열과 유대인 문제 등을 꼼꼼하게 짚어준다.

특히 역사가들별로, 시대마다, 관점에 따라 천차만별인 루터에 대한 평가가 존재함을 인식하면서, 역사학적 견지에서 루터의 행적과 성과를 재평가하고, 나아가 그의 한계와 잘못도 과감하게 지적하고 있다. 신학적 맥락에서 루터를 재발견하거나 16세기 교회사 연구 주제로 그치지 않고, 21세기 글로벌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종교가 서 있어야 할 자리를 전하고자 한다.

미완의 개혁가 마르틴 루터
저자는 에필로그 '루터는 어디에서 길을 잃었는가'를 통해 "개혁가 루터는 자신이 박해를 받거나 죽음의 위험 아래 있을 때에는 이견자에 대해 관용을 요구했지만, 루터파가 제국 내에서 지배적인 종교로 확립되고 정치권력의 지원이 견고해진 상황에서는 불관용의 태도를 보였다"며 "루터에게는 종교가 삶의 전 차원, 즉 개인의 생활과 공동체적 삶, 나아가 사회의 다양한 영역을 포괄하지 못했다. 사회 구성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이 결여됐기에 루터가 바라보는 세계는 피상적이었다"고 말한다.

또 "루터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성경에서 길러 올렸고, 그리스도인이라면 성경과 그리스도라는 신앙의 본질이 훼손되는 경우 그에 맞서 저항해야 한다는 모본을 보여줬다"며 "그런데 2017년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한국교회는 공교롭게도 종교개혁 직전 유럽 교회와 많은 부분이 닮아있다"고 개탄한다.

그러면서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루터의 말이나 글을 당대의 맥락에서 정확히 이해하는 것은 중요하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우리에게 더욱 중요한 것은 루터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대응하면서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기 위해 견지했던 저항과 비판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이 위기에 처한 교회를 스스로 갱신하지 않으면, 개혁 대상으로 전락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경고한다.

이와 함께 "교회의 위기를 초래한 배경에는 목회자의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많은데, 그들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교회 공동체에서 다수를 이루고 있는 평신도들이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주어진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루터는 성직자가 특권계급이 아니라며, 성직주의를 질타했다. 담임목회자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교회 공동체를 좌지우지하는 운영 방식으로는 바른 공동체를 이룰 수 없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제자리를 찾는 성숙한 교회 공동체가 절실하다"고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교회가 쇠락하고 역동성을 상실한 이유는 '그들'만을 위한 모임으로 변질됐기 때문이다. 복음의 시각에서 볼 때 존재 의의를 상실했다고 할 수 있다"며 "한국교회는 다시 세상과 이웃을 위한 종교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